[유럽의 그림자 포르투갈편 #001] 영매 – 2화: 의식의 대가

2화: 의식의 대가

모레가 되었다.

이네스는 오후 내내 거실 소파에 앉아 시간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벽시계의 분침이 움직일 때마다 위장이 조금씩 조여들었다. 오후 7시가 넘어갈 무렵, 그 조임은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되어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점심을 거른 탓에 위액만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 목구멍을 쓰라리게 했다. 그녀는 변기 물을 내리고 세면대에 기대어 선 채로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눈 밑의 그늘은 더 짙어져 있었고, 입술은 갈라져 있었다.

페드루에게는 친정에서 저녁을 먹고 온다고 문자를 보냈다. 짧은 한 줄이었다. 페드루는 “알겠어”라는 더 짧은 답장을 보내왔다. 그 두 글자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듯했다. 이네스는 그 무심함이 오늘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더 물어본다면 거짓말을 더 보태야 했을 테고, 그 거짓말이 입안에서 썩은 무언가처럼 씁쓸하게 고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차에 오르기 전, 그녀는 지갑에서 백 유로를 꺼내 코트 안주머니에 밀어넣었다. 지폐는 반으로 접혀 있었고, 그 접힌 자국을 따라 손톱으로 몇 번이고 덧눌렀다. 그 지폐 한 장으로 페드루와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할 수도 있었다. 작은 비스트로에서 구운 생선과 화이트 와인을 시키고, 디저트로 아몬드 타르트를 나누는 평범한 저녁. 하지만 그 상상은 곧바로 다른 이미지에 잠식당했다. 어머니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고, 페드루의 얼굴이 검은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모습. 이네스는 지폐를 더 깊이 밀어넣고 현관문을 나섰다.

해가 지고 있었다. 리스본 외곽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로 노을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 붉은 빛이 차량 보닛 위에서 느리게 미끄러졌다. 이네스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질렸고, 가죽 운전대에서 전해지는 비정한 한기가 손가락 끝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관절 마디마디가 저려왔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통증에 집중했다. 통증은 불안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마취제 같았다.

도시 외곽으로 접어들면서 가로등의 수가 줄었다. 길은 점점 좁아졌고, 코르크 나무들의 실루엣이 차창 양옆으로 검게 솟아올랐다. 낮에 왔을 때는 평범한 나무들에 불과했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는 전혀 다른 형상으로 다가왔다. 가지들은 뻗어나간 손가락처럼 보였고, 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껍질들은 찢겨진 살갗의 조각들 같았다. 이네스는 라디오도 켜지 않은 채, 오로지 엔진 소리와 타이어가 노면을 문지르는 소리만 들으며 운전했다.

안토니오의 집 앞에 차를 세웠을 때는 여덟 시 십 분 전이었다. 이네스는 시동을 끄고 잠시 앉아 있었다. 이층 건물의 창문들에는 여전히 어두운 커튼이 쳐져 있었지만, 커튼 뒤에서 촛불로 보이는 희미한 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불빛은 마치 누군가 촛대를 들고 방 안을 천천히 걷고 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한 번은 불빛이 창문 가까이 다가왔다가, 다시 깊은 곳으로 물러갔다.

현관문 앞에 서자 유향 냄새가 바깥까지 스며나와 있었다. 지난번보다 더 진하고 달콤한 냄새였다. 그 냄새는 콧속의 미세한 점막에 들러붙는 듯한 끈적임을 가지고 있었다. 이네스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안쪽에서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안토니오가 그녀가 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다. 아마도 차량 엔진 소리를 들었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도착을 감지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목에는 작은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셔츠의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 올려져 있었고, 드러난 전완에는 옅은 흉터 하나가 길게 뻗어 있었다. 이네스는 그 흉터에 시선이 잠시 멈췄지만, 안토니오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들어오세요. 의식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거실은 지난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소파와 탁자는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고, 방 중앙에는 둥글게 배열된 일곱 개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밀랍이 녹아내리면서 내는 미세한 지글거림이 방 안에 가득 찼다. 촛불들이 만드는 원형 안에는 바닥에 분필로 그린 듯한 기하학적 문양이 있었다. 원과 삼각형, 그리고 이네스가 알 수 없는 고대 문자 같은 것들이 겹겹이 그려져 있었다. 문양의 일부는 누군가 손으로 문질러 지운 듯 흐릿했지만, 그 흐릿함이 오히려 더 오래된 의식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바닥 전체에는 유향 연기가 얇게 층을 이루며 떠 있었다. 연기는 공기보다 무거운지 무릎 높이까지 가라앉아 있었고, 그 연기 층이 촛불의 아래쪽을 흐릿하게 가렸다. 발을 디딜 때마다 연기가 소용돌이치며 흩어졌다가, 이내 다시 모여들었다.

“중앙에 서십시오.”

안토니오의 목소리는 일상적인 대화 때보다 한 옥타브 낮았다. 그 낮은 주파수가 이네스의 고막을 울리고, 두개골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이네스는 신발을 벗고 촛불 원형 안으로 들어갔다. 양말을 신은 발바닥으로 바닥의 차가움이 스며들었다. 분필로 그린 선들이 발밑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양말을 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뱀의 비늘을 밟고 있는 듯한 불쾌한 감촉을 느꼈다.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떠오르는 모든 것을 제게 말하십시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숨기지 마십시오. 숨기는 것은 곧 저주를 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저주는 비밀을 먹고 자랍니다. 당신이 말하지 않은 것, 당신이 숨기려고 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저주의 양분이 됩니다.”

이네스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유향 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코와 입을 통해 들어온 그 냄새는 목젖을 타고 내려가 폐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치 혈관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감각이 이어졌다. 그녀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몸이 붕 떠서 촛불 위를 떠다니는 듯한 부유감이 밀려왔다.

“어머니가…… 보여요.”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침대에 누워 계세요. 얼굴이…… 창백해요. 손을 뻗고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안토니오는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가, 그녀의 어깨 위에 양손을 얹었다. 그 손은 뜨거웠다.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 마치 체내에서 무언가가 연소되고 있는 사람의 체온 같았다.

“계속하십시오. 무엇이 보이는지 다 말하십시오.”

“손이…… 손이 닿지 않아요.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아요. 그리고…….”

이네스의 호흡이 빨라졌다. 안토니오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서 팔꿈치로, 그리고 손목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손가락 끝이 그녀의 팔 안쪽 피부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 움직임은 주술적인 무언가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의식의 문맥과는 다른 무언가도 담고 있었다. 이네스는 그 미묘한 위화감을 눈을 감은 채로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하면 의식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굳은 몸은, 아이러니하게도, 안토니오의 손길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페드루가 보여요.”

“남편분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서 있어요. 아주 멀리서…… 저를 보고 있는데, 얼굴이 안 보여요. 아주 어두워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어요.”

안토니오는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로, 반대쪽 손을 그녀의 이마에 대었다. 그의 손바닥에서는 여전히 비정상적인 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열이 그녀의 이마를 통해 뇌 안쪽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저주가 이미 당신의 눈앞에서 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어둠이 바로 저주입니다. 남편분의 얼굴을 가린 그 어둠. 그게 저주의 실체입니다. 당신의 어머니에게서 시작된 이 저주는, 이제 당신을 거쳐 당신의 남편에게까지 손을 뻗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지고 느려졌다. 마치 최면을 거는 듯한 리듬이었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격이 의도적으로 길게 늘어졌다. 이네스는 그 목소리에 이끌려 점점 더 깊은 암시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의 의식은 이제 안토니오가 제시하는 이미지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저주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페드루의 얼굴을 집어삼킨 검은 형체였고, 어머니에게서 손을 뻗어도 닿지 않게 만드는 투명한 벽이었다. 그녀의 내면에서, 그 이미지들은 실제 기억만큼이나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눈을 뜨십시오.”

이네스가 눈을 떴을 때, 촛불들은 여전히 타고 있었다. 하지만 불빛이 전보다 훨씬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는 촛불 하나하나의 불꽃이 평소보다 두 배는 크게 보였고, 불꽃의 중심부는 하얗게 타오르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그녀 앞에 서서 작은 은색 잔을 내밀고 있었다. 잔의 표면에는 오래된 흠집들이 무수히 나 있었고, 그 흠집들 사이로 촛불이 반사되어 일렁였다.

“마시십시오. 의식을 마무리하는 물입니다. 로즈마리와 올리브 잎, 그리고 축복받은 소금을 섞은 물입니다. 이것이 당신 안에 남아 있는 불순한 기운을 씻어낼 것입니다.”

그녀는 잔을 받아 들었다. 액체는 씁쓸했고, 허브 같은 찌꺼기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혀끝에 닿은 첫맛은 흙냄새가 났고, 목구멍을 넘어가는 감촉은 예상보다 걸쭉했다. 그녀는 단숨에 마셨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액체의 감촉이 이상하리만치 오래 지속되었고, 식도에 남은 잔열이 몇 분 동안 가시지 않았다.

안토니오는 잔을 받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의 손놀림은 의식적인 정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첫 번째 의식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유향 연기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오늘 의식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저주가 생각보다 훨씬 깊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오래되었고, 더 단단하게 박혀 있어요. 마치 수십 년 묵은 떡갈나무 뿌리처럼, 이 저주는 당신 가족의 영혼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의 옅은 갈색 눈동자는 촛불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삼백 유로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더 많은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각 의식에는…… 각기 다른 수준의 헌신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날 밤, 이네스는 새로이 요구된 금액을 머릿속으로 반복하며 차를 몰았다. 오백 유로. 다음 의식을 위해서는 오백 유로가 필요하다고 안토니오는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의식은 또 그보다 더 비쌀 것이라고.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었다. “각 의식에는 각기 다른 수준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도로의 흰색 차선이 헤드라이트에 비쳐 하나씩 다가왔다 사라졌다. 그 반복 속에서 그녀는 돈의 출처를 계산하고 있었다. 페드루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생활비 통장에는 얼마가 들어 있었고, 자신의 개인 통장에는 결혼할 때 부모님에게서 받은 예단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그 예단은 원래 둘이 신혼여행을 더 길게 다니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껴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돈은 전혀 다른 목적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페드루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심야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텔레비전이 아닌 바닥의 어느 지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리모컨이 그의 무릎 위에 놓여 있었고, 커피 테이블 위에는 식은 머그잔 하나가 방치되어 있었다.

“늦었네.”

그는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끄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비난도 걱정도 아닌,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배어 있었다. 지난 몇 달 사이 이네스가 여러 번 들어본 그 어조였다.

“응…… 엄마랑 이야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이네스는 코트를 벗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코트 안주머니에서 백 유로짜리 지폐를 꺼내 안토니오에게 건넸던 손의 감촉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 손으로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이 입안에서 퍼지는 느낌은 묘했다. 마치 혀가 부풀어 오르는 듯했고, 침샘에서는 씁쓸한 침이 고여 나왔다. 그 침을 삼키자 목구멍이 조여들었다.

“요즘 좀 이상해.”

페드루가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이 이네스의 어깨에 닿았다. 안토니오가 의식 중에 같은 자리에 얹었던 손과는 완전히 다른 무게였다. 익숙하고, 안정적이고, 지난 4년 동안 그녀를 지탱해준 손. 하지만 바로 그 점이 그녀를 더 괴롭혔다. 남편의 손길이 익숙할수록, 그 익숙함을 배신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가슴 깊은 곳을 더 깊게 파고들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요즘 계속 친정에 가 있고, 나랑은 말도 잘 안 하고.”

“아니야. 그냥 엄마가 아프니까 좀 신경 쓰여서 그래. 그것뿐이야.”

그녀는 페드루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시선은 그의 어깨 너머, 어둑어둑한 부엌 쪽을 향하고 있었다. 입안에서는 여전히 쓴 침이 고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쓴맛을 삼키며, 거짓말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처음에는 힘들었던 거짓말이, 이제는 거의 자동으로 입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페드루는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거두었다. 그 손길이 떠나자 이네스는 안도감과 동시에 상실감을 느꼈다. 두 감정은 동시에 찾아와 서로를 상쇄하지 않고 뒤엉켰다.

“알겠어. 피곤할 테니 씻고 자.”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침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는 체념 비슷한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이네스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 그들 사이에 또 한 겹의 투명한 막이 생겨났음을 직감했다. 막은 투명해서 보이지 않았지만, 그 존재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동안 그녀는 오랫동안 물줄기 아래 서 있었다. 뜨거운 물이 어깨와 등을 때렸다. 안토니오의 손이 닿았던 자리들을 물이 씻어내기를 바랐지만, 그 감촉은 피부 아래 깊숙이 박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냄새였다. 유향 냄새가 머리카락과 코끝, 그리고 옷의 올올이에 배어 있었다. 그녀는 샴푸를 두 번이나 덜어 써서 머리를 감았다. 손톱으로 두피를 긁어가며 감았지만, 코를 스치는 달콤하고 씁쓸한 그 냄새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마치 냄새 자체가 살아서 그녀를 따라온 것처럼.

침대에 누웠을 때 페드루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아니면 잠든 척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네스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누워, 남편의 등 너머로 드리운 짙은 방 안의 음영을 바라보았다. 그 음영은 침실 구석에서부터 시작되어 페드루의 등을 타고 올라와, 방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어둠은 점점 안토니오의 의식에서 보았던 검은 형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주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바로 저 음영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느끼는 이 죄책감과 불안이야말로 진짜 저주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 핸드백을 더듬어 통장을 꺼냈다. 테이블 램프를 켜자 불빛이 통장 표지의 비닐을 반사했다. 예단이 들어 있는 통장의 잔액은 이천 유로 정도였다. 오백 유로를 빼내면 천오백 유로가 남는다. 그 돈이면 앞으로 몇 번의 의식을 더 버틸 수 있을까. 안토니오는 더 많은 의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각 의식은 더 비쌀 것이라고.

그녀는 통장을 덮었다. 손가락이 통장 표지의 비닐을 긁는 소리가 어두운 거실 안에 작게 울렸다. 그 소리가 페드루의 잠을 깨우지 않도록, 그녀는 통장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핸드백 안으로 밀어넣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은행에 가서 오백 유로를 인출했다. 현금인출기에서 지폐들이 툭툭 떨어져 나오는 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들렸다. 다섯 장의 지폐를 손에 쥐자 종이의 온기가 손바닥에 전해졌다. 이 돈이 안토니오의 손으로 건너가면, 거기서 어떤 의식이 벌어질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녀는 현금을 지갑에 넣고, 영수증은 찢어서 현금인출기 옆 쓰레기통에 버렸다. 안토니오가 말했던 주의사항이 이제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스며들고 있었다. 흔적을 남기지 말 것. 저주는 모든 흔적을 추적한다.

두 번째 의식은 그로부터 엿새 뒤에 열렸다.

그 엿새 동안 이네스는 두 번 더 안토니오의 집을 방문했다. 한 번은 나머지 백 유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 번은 전화 통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어머니가 다시 어지럼증을 호소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차를 몰아 안토니오에게 달려갔다. 그 짧은 방문들 속에서도 안토니오는 조금씩 그녀의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그는 이제 그녀에게 ‘이네스’라고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네스 씨’라는 존칭을 붙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사라졌다. 그 변화는 미세했지만, 그 미세함 속에는 계산된 의도가 숨어 있었다. 호칭에서 존칭을 제거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사회적 경계를 허물고 사적인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선언하는 행위다. 안토니오는 그 선언을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듯한 연기로 포장했다. 이네스는 그 변화를 알아챘지만, 이미 그에게서 받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항의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는 그 호칭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며 또 다른 층위의 불편함을 느꼈다.

두 번째 의식은 저녁 아홉 시에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거실 바닥에 분필 문양 대신, 붉은 벨벳 천이 깔려 있었다. 천의 가장자리는 황금색 실로 수놓아져 있었고, 그 위에 놓인 촛불들은 모두 짙은 붉은색이었다. 촛농이 천 위로 떨어지면 붉은 얼룩을 남겼다. 전에는 없던 커다란 거울 하나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거울 앞에는 작은 은색 그릇이 놓여 있었다. 거울의 표면은 오래되어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었고, 그 얼룩 사이로 방 안의 촛불들이 일그러져 비쳤다.

“오늘은 당신의 어머니께서 실제로 겪으신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의식입니다.”

안토니오는 이네스에게 붉은 천 위에 앉으라고 지시했다. 그녀가 앉자 벨벳 천이 몸의 무게에 눌려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그는 그녀의 맞은편에 똑같이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은색 그릇과 촛불 하나가 놓였다. 촛불이 은색 그릇에 반사되어, 그릇 전체가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손을 내미세요.”

이네스가 손을 내밀자 안토니오는 작은 칼을 꺼냈다. 칼날이 촛불에 반짝였다. 칼은 의식용 단도처럼 손잡이에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움찔하며 손을 거두려 했지만, 안토니오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피를 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작은 상징이 필요할 뿐입니다. 피는 생명의 상징이고, 그 생명을 통해 우리는 저주와 연결됩니다. 하지만 오늘은 피를 흘릴 필요는 없어요. 오늘 필요한 것은 접촉입니다.”

그는 칼끝으로 그녀의 집게손가락 끝을 살짝 눌렀다. 칼끝은 차가웠고, 피부가 눌리는 감각이 손가락 끝에서 손목까지 타고 올라왔다.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 안토니오는 그런 다음 자신의 손가락에도 같은 행위를 하고, 두 사람의 손가락을 은색 그릇 위에서 맞닿게 했다. 그의 손가락 끝도 차가웠다. 마치 칼끝의 온도가 그의 체온까지 빼앗아간 것처럼.

“이제……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 특히 당신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젊었을 때 있었던 모든 일들을. 세부적인 것 하나까지도 숨기지 마십시오.”

이네스는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단편적인 사실들만 나열했다. 어머니가 스물다섯이었을 때 외할아버지가 폐렴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 그다음 해에 첫아이를 임신했지만 다섯 달 만에 유산했다는 것. 그 후로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고, 우울증으로 몇 년을 거의 집 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 삼 년 뒤에야 이네스를 가졌지만, 임신 기간 내내 불안에 시달렸다는 것.

안토니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에 닿은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네스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녀가 말하지 않은 세부사항들을 안토니오가 먼저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안토니오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다. 목소리는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울림을 띠고 있었다.

“비가 왔지요. 여름 폭풍이었어요. 천둥이 치고,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던 그런 날. 맞습니까.”

이네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일순간 숨을 쉬는 법을 잊은 듯한 질식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안토니오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조차 그날의 날씨를 그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한 적은 없었다. 단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안토니오는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여름 폭풍을 정확히 집어내고 있었다.

“어떻게…….”

이네스의 입술이 떨렸다. 안토니오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계속했다.

“그리고 유산하신 아이는…… 딸이었어요. 다섯 달째였고요. 어머니께서는 그 딸의 이름을 지어주지도 못한 채 보내셨어야 했지요.”

이제 이네스는 숨을 완전히 멈추었다. 이 사실 또한 안토니오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유산한 아이의 성별에 대해 단 한 번도 명확히 말한 적이 없었다. 이네스가 어렸을 때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흐릿한 눈빛으로 “그냥…… 아기였어”라고만 대답했을 뿐이다. 그런데 안토니오는 이토록 구체적으로 그 아이가 딸이었고, 임신 다섯 달째에 유산되었다는 사실까지 말하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일까.

이네스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지만, 동시에 그 혼란 속에서 어떤 확신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남자는 진짜다. 이 남자는 정말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이렇게 정확한 사실들을 알아낼 리가 없었다. 평범한 사기꾼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과거를 이 남자는 꿰뚫어 보고 있었다.

사실 안토니오는 지난 며칠 동안 이 동네에서 이네스 가족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해왔다. 파티마 할머니를 비롯한 이웃들을 상대로,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아는 노인들을 상대로, 그리고 동네 성당의 세례 기록과 묘지의 비석까지 샅샅이 뒤지며 가족사를 재구성했다. 하지만 이네스는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단지, 자신이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진실을 투시하는 영적 능력자였다.

안토니오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네스의 반응을 눈치채고서, 비로소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리를 확신한 자만이 낼 수 있는 미세한 안도감이 배어 있었다.

“유산…….”

그가 그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 촛불 하나가 갑자기 크게 일렁였다. 불꽃이 평소의 두 배 높이로 솟아올랐다가, 이내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이네스는 그 타이밍이 너무 정확해서 눈을 의심했다.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붉은 벨벳 천 아래, 바닥의 작은 틈 사이로 안토니오의 발이 조용히 밟고 있던 페달이 촛불 근처의 작은 풀무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바로 그것입니다.”

안토니오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장악한 사냥꾼의 그것처럼 낮고 단호했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긴 상실감. 그리고 그 상실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아이의 죽음. 이 두 사건이 어머니의 몸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상처가 수십 년 동안 아물지 않고 썩어서…… 지금의 저주가 되었습니다.”

그의 설명은 논리적으로 들렸다. 적어도 이네스의 귀에는 그랬다.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유산이라는 두 비극이 시간적으로 맞닿아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어머니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안토니오는 그 역사적 사실들을 가져다가 ‘저주’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정확한 세부들이 실려 있었기에, 이네스로서는 그 이야기를 의심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저주를 풀려면…… 단순한 의식으로는 부족합니다.”

안토니오는 그녀의 손가락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떼며 말했다. 접촉이 끊어지자 이네스의 손가락 끝은 갑자기 허전해졌다.

“어머니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오늘 의식으로 더 분명해졌습니다. 오백 유로로는…… 첫 번째 층만 건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첫 번째 층이요?”

이네스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이제 이 남자의 말을 의심하는 대신, 그가 제시하는 단계들을 이해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저주에는 층이 있습니다. 양파처럼 겹겹이 쌓여 있지요. 오늘 우리는 가장 바깥쪽 껍질을 벗겨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더 단단하고 더 검은 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층들은 바깥층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박혀 있어서, 벗겨내는 데에 더 큰 힘과 더 큰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는 일어나서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에 그의 얼굴과, 붉은 천 위에 앉아 있는 이네스의 뒷모습이 비쳤다. 그는 거울을 통해 이네스와 시선을 마주한 채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층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천 유로가 필요합니다.”

그가 거울 속에서 던진 시선은 더 이상 이네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영혼을 해부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안토니오의 시선이 거울을 통해 굴절되어 이네스의 목덜미에 닿았다. 그녀는 등 뒤에 아무도 없는데도, 마치 식칼의 등 부분이 목덜미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듯한 환각적 공포를 느꼈다. 그 공포는 너무 생생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리고 그 의식은…… 단순히 돈만으로는 진행할 수 없습니다.”

안토니오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그는 이네스가 질문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질문이 나오는 순간, 그는 그녀를 다음 단계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뜻이에요?”

이네스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안토니오는 거울 속 그녀를 응시한 채로, 대답을 한 박자 늦추었다. 그 지연 속에서 이네스의 불안은 증폭되어 갔다.

“곧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늘 의식을 마무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는 은색 그릇에 무언가를 부었다. 투명한 액체가 그릇 바닥을 채우자, 알코올 비슷한 자극적인 냄새가 유향 냄새를 뚫고 올라왔다. 그는 촛불을 들어 그 액체에 불을 붙였다. 푸른 불꽃이 그릇 위로 솟아올랐고, 그 불꽃이 그릇을 완전히 집어삼킬 때까지 타올랐다. 불꽃은 푸른색에서 주황색으로, 그리고 다시 보라색으로 변하며 춤추듯 일렁였다. 이네스는 그 불꽃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불꽃 속에서, 그녀는 마치 자신의 두려움과 죄책감이 함께 타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불꽃이 꺼지자 그릇 바닥에는 검은 그을음만 남아 있었다. 안토니오는 그 재를 작은 유리병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그의 손놀림은 극도로 의식적이었고, 재 한 톨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저주의 첫 번째 층입니다. 보셨습니까? 이제 이 검은 재는 당신의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의식이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병을 이네스에게 건넸다. 병은 아직 따뜻했다. 유리 너머로 검은 재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을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십시오. 강물이 가장 좋습니다. 흐르는 물은 정화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층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이네스는 작은 유리병을 받아들었다. 병의 온기가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그 병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병이 동전 몇 닢과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가까웠다. 거실 불은 꺼져 있었고, 페드루는 침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네스는 소리를 내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코트는 의자에 걸어두었고, 유리병은 여전히 코트 주머니 안에 있었다.

옆에서 페드루가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숨을 죽였다. 몇 초 뒤, 남편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네스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일어나 코트 주머니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병은 여전히 미열을 품고 있었다. 검은 재가 병 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마치 살아 있는 무언가가 그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병을 손에 쥔 채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푸른 불꽃이 떠올랐고, 거울 속 자신의 뒷모습이 떠올랐으며, 안토니오의 마지막 말들이 떠올랐다. ‘두 번째 층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천 유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의식은 단순히 돈만으로는 진행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돈만으로는 진행할 수 없는 의식이란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네스는 그 답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짐작을 완성된 생각으로 만들 용기가 없었다. 생각이 완성되는 순간, 그녀는 거기서 도망칠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녀는 손에 쥔 유리병을 가슴께로 끌어올렸다. 병의 온기가 잠옷을 통과해 가슴팍에 닿았다.

다음 날 새벽, 해가 뜨기 전에 그녀는 일어났다. 페드루가 깨지 않도록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빠져나와, 코트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바깥 공기는 차갑고 촉촉했다.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안개 속에서 희뿌옇게 번지고 있었다. 길가의 잔디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고, 신발이 금세 젖어들었다.

차를 몰고 십 분쯤 가자 작은 강이 나왔다. 이네스는 차에서 내려 강둑으로 걸어 내려갔다. 강물은 어둡고 천천히 흐르고 있었고, 물소리가 안개 속에서 이상하게 증폭되어 들렸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한 번 들렸고, 그 소리는 안개에 흡수되어 금세 사라졌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병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났다. 불에 탄 무언가의 냄새와, 그보다 더 오래되고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온 듯한 흙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병을 거꾸로 들어 검은 재를 강물에 쏟았다. 재는 물 위에 잠시 떠서 검은 막을 이루었다가, 이내 물살에 흩어지며 흘러갔다. 검은 점들이 점점 작아지고 옅어지며, 마침내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네스는 강둑에 한동안 서 있었다. 해가 동쪽 하늘을 밝히기 시작했고,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강물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었고, 수면 위로 아침 빛이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의식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 생각했다. 어머니의 저주는 정말로 이 검은 재와 함께 강물 속으로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이것은 단지 상징일 뿐이고, 진짜 저주는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기 전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페드루에게서 메시지 한 통이 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네가 없더라. 또 친정이야?’

이네스는 답장을 쓰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엄지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어떤 문장도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 ‘응’이라고 쓰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고, 그렇다고 사실을 말할 용기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곧 들어갈게’라는 네 글자만 보내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는 안토니오가 했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천 유로. 돈만으로는 부족한 의식. 두 번째 층. 그가 어떻게 어머니의 과거를 그렇게 정확히 알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잠시 떠올랐지만, 그 의문은 더 큰 불안에 밀려 구석으로 사라졌다. 의문을 품는 것은 이제 그녀에게 사치였다. 이미 오백 유로를 건넸고, 두 번의 의식을 치렀으며, 남편에게는 거짓말을 쌓아가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있었다. 이른 아침 햇살이 거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고, 그 빛 속에서 먼지들이 반짝이며 떠다녔다. 이네스는 식탁에 앉아 통장을 다시 한 번 펼쳐 보았다. 통장 표지의 비닐이 아침 빛에 반사되어 그녀의 손가락 위에 작은 빛의 조각들을 드리웠다. 그 빛의 조각들은 그녀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위치를 바꾸며 반짝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통장의 숫자들을 하나씩 짚어갔다. 잔액: 1,500유로. 천 유로를 빼면 500유로가 남는다. 그리고 안토니오는 그다음 의식이 또 더 비쌀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통장의 숫자들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숫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잉크로 찍힌 활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통장 표지의 비닐을 천천히 긁었다. 비닐이 손톱에 눌려 미세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텅 빈 아침의 거실에서 선명하게 울렸고,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천 유로를 인출할 날짜를 계산하고 있었다.

3화 보러 가기 (클릭)

목록으로 (클릭)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