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자 포르투갈편 #001] 영매 – 1화: 불안의 뿌리

1화: 불안의 뿌리

부엌 창 너머로 오후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빛은 창틀에 앉은 미세한 먼지 알갱이들 위에 닿아 희뿌옇게 부서졌고, 그 부서진 빛이 식탁 위에 놓인 빈 접시를 비추고 있었다.

이네스는 손가락 끝으로 접시 가장자리에 말라붙은 빵 부스러기를 떼어내고 있었다. 아침에 꺼내놓은 빵은 이미 몇 시간 전에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녀는 엄지손톱으로 굳은 빵의 표면을 긁었다. 미세한 가루가 손톱 밑에 끼었다. 그 가루를 털어내지도 않은 채, 그녀는 다시 냉장고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냉장고 모터가 낮게 웅웅대고 있었다. 이 소리는 이제 이 집의 숨소리 같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때로는 밤새도록 같은 주파수로 울렸다가 멈추고, 다시 울렸다. 이네스는 가끔 이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귀를 막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텔레비전도 켜지 않은 부엌에서, 냉장고 소리는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내는 신호였다.

결혼하고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지금, 이네스는 스물넷이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한 지 이 년째 되던 해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페드루가 권했기 때문이었다.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그 말에 동의했다. 연애 삼 년 동안 약속했던 것들이 있었고, 주말마다 어디론가 떠나겠다던 계획들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둔 지 두어 달쯤 지났을 때부터, 아침에 눈을 뜨는 일 자체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개수대에 쌓이는 빈 접시들, 욕실 타일 사이에 끼는 곰팡이,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불러일으키는 적막 같은 것들이 하루의 전부가 되어갔다. 그녀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름 붙이지 못했다. 그저 매일매일이 이전보다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페드루는 일곱 시 반이면 집을 나섰다. 그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나고 나면, 이네스는 침대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십 분, 이십 분을 더 누워 있었다. 베개에 밴 페드루의 체취가 아직 남아 있었고, 그 냄새가 그녀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 냄새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어머니에게서 온 메시지 두 통이 전화기에 쌓여 있었다. “잘 지내니?” 그리고 “요즘 기운이 좀 없어 보이던데 괜찮은 거니.” 이네스는 그 문자들을 읽고 또 읽었다. 답장을 쓰려다가 멈추었다. ‘괜찮아요’라고 쓰기에는 지금 자신의 상태를 거짓말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사실은 요즘 좀 힘들어요’라고 적기에는, 그 힘듦이라는 것이 너무 구체적이지 않아서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부엌 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처럼 자질구레하고, 냉장고 소리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언가를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그녀는 전화기를 뒤집어 화면을 식탁에 닿게 내려놓았다. 이렇게 엎어놓으면 메시지가 와도 진동 소리만 들릴 뿐, 내용을 확인하려면 다시 뒤집어야 했다. 그 지연이 그녀에게는 어떤 안도감을 주었다.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핑곗거리였다.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 욕실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목에 두른 수건이 물기를 머금어 축축했고,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달라붙어 찬 감촉을 남기고 있었다. 이모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욕실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타일 바닥에 부딪히는 그 소리가 마치 속도가 느려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지금 병원이야. 큰 병은 아니래. 그런데…….”

이모의 목소리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망설임이 배어 있었다. 큰 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왠지 그렇게 말하는 이모 자신도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한 어조였다. 이네스는 그 뉘앙스를 놓치지 않았다.

병원은 리스본에서 차로 사십 분쯤 떨어진, 이네스가 자란 소도시에 있었다. 차를 몰고 가는 내내 그녀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이로 물고 있었다. 입술이 붓고 쓰라려질 때까지 물고 나서야 잠깐 멈추고, 몇 분 뒤 또 물었다. 그 반복이 그녀에게는 불안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인 듯했다.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생각보다 얼굴색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네스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토록 평온해 보이는 얼굴을 한 사람이 왜 갑자기 쓰러졌는지, 그 원인을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느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왼쪽 팔에 꽂힌 링거 줄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고, 침대 옆 모니터에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숫자와 파형이 일정한 간격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별일 아니래. 그냥 좀 어지러워서 넘어진 거야.”

어머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이네스는 그 미소 아래 무언가 다른 것이 숨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손등의 피부는 얇았고, 손가락 마디에 끼워진 반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해준 것이었다. 반지의 금속 부분이 닳아서 은빛 바탕이 드러나 있었다.

이네스는 병원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심각하지 않았다. 경미한 빈혈과 스트레스성 어지럼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네스는 그 진단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직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마치 두꺼운 장막 뒤에 진짜 원인이 숨어 있고, 의사들은 장막 앞에 놓인 작은 먼지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그녀는 병원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간이침대의 매트리스는 얇았고, 용수철 몇 개가 허리를 찔렀다. 그 불편함 속에서도 결국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어머니가 다시 쓰러지고 있었다. 이네스가 손을 뻗어 어머니를 붙잡으려는 순간, 어머니의 몸이 모래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 알갱이들이 바닥에 쌓여 작은 언덕을 이루었고, 언덕 위에는 어머니의 반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네스는 그 반지를 집어 들었고, 반지가 손바닥 안에서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 차가움이 손목을 타고 팔 전체로 퍼져나갔고, 마침내 심장까지 닿았다. 심장이 얼어붙는 감각에 그녀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손은 여전히 간이침대 시트를 꽉 쥐고 있었다. 손바닥에는 땀이 배어 있었고, 시트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로 가서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은 푸석했고, 눈 밑에는 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한동안 물소리만 들었다. 물소리가 꿈의 잔상을 조금씩 씻어내기를 바라면서.

어머니가 퇴원한 뒤에도 이네스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한 무언가로 응고되어 가슴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돌멩이 같기도 했고, 얼음덩어리 같기도 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무게가 폐를 눌렀고, 내쉴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식도로 역류하는 듯했다.

그녀는 페드루에게 전화로 친정에 더 머물겠다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 남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차분함 속에서 이네스는 미세한 거리감을 감지했다. 최근 몇 달 사이 그들 사이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막이 한 겹씩 생겨나고 있었다. 그 막은 투명해서 존재를 인지하기 어려웠지만, 막이 생길 때마다 목소리는 조금씩 더 멀어졌다.

어머니가 쓰러진 지 열흘쯤 지난 오후, 이웃에 사는 파티마 할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칠십 대 초반의 이 노인은 손에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직접 구운 쿠키와 작은 성모상이 담겨 있었고, 성모상의 얼굴 부분은 오래되어 빛이 바랬다.

“네 엄마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파티마 할머니는 거실 테이블에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방 안에 누군가 엿듣기라도 하는 듯 주위를 한 번 살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네 엄마, 그냥 몸이 아픈 게 아닐 수도 있어.”

이네스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그 떨림을 숨기려고 손을 무릎 아래로 내리며 그녀가 물었다.

“무슨 뜻이세요?”

“저주.”

파티마 할머니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릴 때 눈썹이 깊게 찌푸려졌다. 평생 교회에 다닌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스스로도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그녀는 바구니 안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이네스 앞으로 밀어놓았다. 종이에는 볼펜으로 적은 이름과 전화번호가 삐뚤빼뚤하게 쓰여 있었다. 마지막 숫자 하나는 두 번 덧쓰여 있어서 번호인지 얼룩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안토니오라는 분이야. 영적인 문제를 다루는 분인데…… 네 엄마를 보니까 예전에 우리 동네에 살던 마리아라는 여자가 생각나더라. 그 여자도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는데,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못 찾았어. 그러다가 이분을 만나고 나서야 원인을 알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

이네스는 종이쪽지를 집어 들었다. 종이의 질감이 거칠었다. 그녀는 이 순간 ‘저주’라는 단어가 자신의 가슴속에 조그만 불씨를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대학에서 배운 논리적인 사고방식은 그 불씨를 당장에 꺼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병원에서 아무도 설명해주지 못한 어머니의 증상, 자신을 갉아먹는 이 불안, 그리고 얼마 전 페드루가 감기로 사흘 동안 열에 시달리던 모습 같은 것들이 그 불씨에 산소를 불어넣고 있었다.

파티마 할머니가 돌아간 뒤, 이네스는 오랫동안 그 종이쪽지를 손에 들고 앉아 있었다. 종이의 한쪽 귀퉁이가 손톱에 눌려 접히고, 그 접힌 자국이 하얗게 빛을 반사했다. 그녀는 그것을 지갑 안쪽 칸에 집어넣었다. 신용카드와 신분증 사이에 끼워진 종이쪽지는 지갑을 열 때마다 살짝 모서리를 드러냈다. 그 모서리가 그녀의 손가락 끝에 닿을 때마다, 파티마 할머니의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마치 지갑 속에 작은 스피커가 들어 있는 것처럼, 그 목소리는 지갑을 열 때마다 더 크게 울렸다.

사흘 동안 그녀는 그 종이를 꺼내고, 접고,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한 번은 전화번호를 입력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가, 열한 자리 번호 중 여섯 자리를 입력한 채로 전화기를 내려놓기도 했다. 그녀는 그 여섯 자리가 화면에 남아 있는 것을 몇 분 동안 바라보았다. 여섯 개의 숫자가 마치 어떤 문을 여는 암호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다시 한 번 어지럼증을 호소한 날,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병원 응급실에서 돌아오는 길, 차를 갓길에 세운 채로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낮고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정확히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무게감 있는 목소리였다.

“안토니오입니다.”

안토니오의 집은 도시 외곽, 주택가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네스는 차를 몰고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 양옆으로 코르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나무껍질을 벗겨낸 지 오래되어 거무스름하게 변한 줄기들이 차창 밖으로 흘러갔다. 길은 포장이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고, 타이어가 그 균열을 밟을 때마다 둔탁한 진동이 운전대를 타고 올라왔다.

집은 오르막길 끝에 서 있었다. 이층 건물이었지만, 건물의 노후도는 눈에 띄게 심각했다. 한때 흰색이었을 외벽은 세월과 습기에 누렇게 변색되었고, 창문에는 어두운 색의 커튼이 쳐져 있어 내부를 전혀 들여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현관문 옆에 놓인 몇 개의 화분 속 식물들은 놀랄 만큼 싱싱했다. 잎사귀 하나하나에 윤기가 흘렀고, 흙은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 푸르름과 건물의 음산함 사이의 괴리는 이네스의 뇌리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안토니오는 현관문을 열고 그녀를 맞았다. 그는 쉰다섯 살이라고 들었지만, 실제 나이보다 조금 젊어 보이기도 하고, 각도에 따라서는 더 늙어 보이기도 하는 얼굴이었다. 보통보다 약간 큰 키에 마른 체격이었지만, 어깨가 넓어서 왜소한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의 눈이었다. 옅은 갈색 눈동자가 움직이는 속도는 현저히 느렸다.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눈동자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데에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는 이네스를 거실로 안내했다. 방 안은 예상보다 어두웠고, 공기는 두껍고 정체되어 있었다. 구석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서 촛불 두 개가 타고 있었는데, 그 불빛만으로는 넓은 거실 전체를 밝히기에 역부족이었다. 불빛이 닿지 않는 구석은 칠흑에 가까운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그 경계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공기 중에는 유향 비슷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그 냄새는 코를 통해 폐로 들어와, 폐포 하나하나에 들러붙는 듯한 끈적임을 가지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오래된 성경 한 권, 나무로 만든 작은 십자가, 그리고 이네스가 본 적 없는 기하학적 무늬가 수놓인 천 조각이 깔려 있었다. 천의 가장자리는 실이 풀려 있었고, 중앙에 그려진 원형 문양은 촛불에 비쳐 희미하게 반짝였다.

“앉으세요.”

안토니오가 손짓한 소파는 낡았고, 앉자마자 이네스의 몸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용수철이 허벅지 뒤쪽을 눌렀고, 천의 질감은 오래 사용되어 마모된 느낌이었다. 그녀는 소파에 몸을 맡기며, 자신이 지금 이 장소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눈을 감았다. 침묵이 길어졌다. 십 초, 이십 초, 삼십 초. 이네스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귀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그가 눈을 떴다.

“손을 내밀어 보시겠습니까.”

이네스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안토니오는 그녀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그의 손바닥은 건조했고 따뜻했지만, 손가락 끝은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그녀의 손목 맥박이 뛰는 지점을 정확히 누르고 있었다.

그는 눈을 반쯤 감은 채로 그렇게 이 분 가까이를 앉아 있었다. 이네스의 손바닥에는 땀이 배기 시작했고, 등줄기에는 미세한 전율이 흘렀다. 방 안의 유향 냄새는 점점 더 진해지는 듯했고, 촛불은 아무런 바람도 없는데도 불규칙하게 일렁였다.

마침내 그가 손을 놓았다. 그의 표정은 방금 전보다 무거워져 있었다. 눈썹 사이에는 깊은 주름이 패였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이네스 씨.”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어머니에게는 저주가 내려와 있습니다. 오래된 저주입니다. 적어도…… 수십 년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촛농이 탁자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그 정적을 깼다.

“아마 당신 어머니께서 스물다섯이나 스물여섯쯤……. 그 무렵에 무슨 일이 있었을 겁니다. 그때 심어진 부정적인 에너지가 수십 년 동안 땅속에서 썩지 않고 버티다가, 이제 와서 꽃을 피운 것이지요. 씨앗이 땅속에서 오래 묵을수록, 그 뿌리는 더 깊고 더 단단하게 박히는 법입니다.”

이네스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스물다섯이었던 해. 그해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다음 해, 어머니는 첫아이를 유산했다. 이네스가 태어나기 삼 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안토니오에게 꺼낸 적이 없었다. 전화 통화에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도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가족사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안토니오는 놓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 표면을 더듬는 듯 천천히 움직이며, 모든 미세한 변화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저주는 지금…… 번지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말을 끊었다. 이네스의 호흡이 빨라지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찼다.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남편에게도.”

페드루의 얼굴이 이네스의 뇌리에 떠올랐다. 요즘 들어 유난히 피곤해하던 모습. 저녁 식사 후 소파에서 깜빡 졸던 얼굴. 얼마 전 사흘 동안 열에 시달리며 잠꼬대를 하던 그 모습들. 단순한 스트레스나 과로라고 생각했던 모든 증상들이 갑자기 다른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안토니오는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정확히 그 타이밍에 다시 입을 열었다.

“최근에 남편분이 특별히 피곤해하거나, 감기 같은 것에 걸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저주의 뿌리가 이미 그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다만 아직 완전히 닿지는 않았어요. 아직은…….”

‘아직은’이라는 단어가 이네스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 말은 곧 시간이 더 지나면 완전히 닿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안토니오는 그녀가 그 의미를 충분히 음미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저주일수록 풀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정성을 돈으로 환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은 제게도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니까요.”

그의 말투는 이제 완전히 사무적이었다. 영적인 이야기를 할 때의 엄숙함과는 다른 층위의 목소리였다. 이네스는 그 전환이 불러일으키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 위화감은 ‘방법이 있다’는 말이 가져온 안도감에 금세 묻혔다.

“삼백 유로. 첫 번째 의식에 필요한 재료와, 제 에너지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저주가 얼마나 깊게 박혀 있는지는 의식을 진행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삼백 유로. 이네스는 페드루의 한 달 월급을 떠올렸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명보다 비싼가. 남편의 건강보다 값진가.’

안토니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위의 나무 십자가를 집어 들었다. 그는 이네스의 이마에 가볍게 그 십자가를 대었다. 나무의 차가움이 이마에서 시작해 두개골 전체로 스며들었다. 그 차가움은 냉장고 소리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더 오래되고, 더 의도적인 차가움이었다.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저주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망설이는 사이에도 뿌리는 더 깊게 자라납니다. 어머니의 다음 발작이 언제일지…… 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남편에게까지 완전히 번지는 순간이 언제일지도 마찬가지고요.”

이네스는 지갑을 열어 현금 이백 유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가지고 있던 전부였다. 지폐는 그녀의 손바닥 땀에 약간 눅눅해져 있었다. 안토니오는 돈을 세지 않고 집어서 조용히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나머지 백 유로는 다음에 오기로 약속했다.

그가 현관문까지 그녀를 배웅했다. 문이 열리자 바깥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유향 냄새에 절어 있던 그녀의 폐가 신선한 공기를 만나자 잠시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코르크 나무들이 길가에서 검은 실루엣으로 변해 있었다.

차에 올라탄 이네스는 시동을 걸고 잠시 앉아 있었다. 백미러로 안토니오의 집을 바라보았다. 창문의 커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고,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커튼의 아래쪽 가장자리가 살짝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는 안토니오가 했던 말들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오래된 저주’, ‘스물다섯이나 스물여섯’, ‘남편에게도 번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들이 하나의 단단한 매듭으로 엉켜 그녀의 생각을 지배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페드루에게서 부재중 전화 세 통이 와 있었다. 그녀는 전화기를 손에 쥔 채로 한동안 서 있었다. 남편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삼백 유로의 지출. 저주라는 단어. 안토니오라는 낯선 남자의 존재.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페드루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녀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대신 안토니오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나머지 백 유로에 대한 확인증입니다. 의식은 모레 저녁 여덟 시에 시작합니다. 혼자 오십시오. 남편분께는 아직 말하지 마십시오. 저주가 그 사실을 알아채고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 문자를 세 번 읽었다. 그리고 삭제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삭제하시겠습니까?’라는 확인 창이 떴을 때,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그 일 초의 망설임 사이로, 자신이 지금 무언가의 경계선 위에 서 있다는 직감이 스쳤다. 이 문자를 삭제하는 순간, 남편과의 사이에 첫 번째 비밀이 생긴다. 그리고 그 비밀은 앞으로 더 많은 비밀을 낳을 것이다.

그녀는 버튼을 눌렀다. 문자가 사라졌다.

그날 밤, 이네스는 침대에 누워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옆에서 페드루가 깊은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평온해 보였다. 이네스는 손을 뻗어 남편의 손을 살짝 잡아보았다. 손바닥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안토니오의 말대로라면, 바로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바닥 아래에서 자라나며 그들의 생활을 침범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손을 거두고 천장을 향해 몸을 똑바로 눕혔다. 어둠 속에서 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냉장고 모터가 다시 웅웅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이제 단순한 가전기기의 소음이 아니라, 무언가 살아서 그녀를 감시하는 것 같은 기척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안토니오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주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 목소리는 이제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그녀의 의식 안에 똬리를 틀고 사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오전, 그녀는 안토니오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머지 백 유로, 오늘 오후에 입금하겠습니다. 모레 저녁 여덟 시, 잊지 않았습니다.’

답장은 곧바로 왔다.

‘현금으로 가져오십시오. 계좌 이체는 흔적이 남습니다. 저주는 모든 흔적을 추적합니다. 조심하십시오.’

이네스는 그 답장을 읽고, 이번에도 삭제 버튼을 눌렀다. 이제 그녀는 남편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하나둘 쌓아가고 있었다. 지갑 속에는 신용카드와 신분증 사이에 여전히 파티마 할머니의 종이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 종이는 이제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그녀를 이 모든 시작점으로 이끈 증거물처럼 느껴졌다.

부엌에서는 여전히 냉장고가 웅웅대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어제 굳었던 빵 접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네스는 그 접시를 개수대로 가져가 씻었다. 수돗물이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부엌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냉장고 소리보다 컸지만, 더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수도꼭지를 잠그자 다시 냉장고 소리만이 남았다.

그녀는 물기를 닦은 접시를 건조대에 올려놓으며 생각했다. 모레 저녁 여덟 시. 그 시간부터 무언가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어디로 향할지,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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