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관찰자의 기록
살로메가 메이크업 박스를 닫으며 말했다.
“다 됐어요. 옷만 갈아입으면 바로 출발할 수 있어요.”
기오르기가 차 키를 집어 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무거운 발소리가 거실 바닥을 울렸다.
“내려가자.”
마리암은 검은 원피스를 손에 쥔 채로 서 있었다. 옷감은 어제보다 더 얇았고, 어깨 끈은 손가락 하나로 비틀어질 만큼 가늘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원피스의 천을 접었다 폈다 했다. 네 시간 전, 다비드는 이 옷을 건네며 말했었다. “오늘은 단둘이에요.” 그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단둘이. 지난번 지하 바에서는 여러 사람이 있었고, 그녀는 그중 하나의 시선을 견디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모든 시선이, 모든 기대가, 모든 압력이 오직 그녀 한 사람에게 집중될 터였다.
타티아가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말로 하지 않은 질문이 담겨 있었다. 마리암은 타티아의 그 눈빛을 똑바로 받았다. 타티아는 내일이면 떠난다. 두바이로. 그녀는 3주 동안 버텼고, 굴복했고, 그리고 그 결과는 ‘배정 완료’라는 도장이 찍힌 서류 한 장이었다. 그녀의 여정은 이미 결정되었지만, 마리암의 여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마리암은 손에 쥔 검은 원피스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천이 식탁보에 닿으며 작은 소리를 냈다. 살로메가 눈을 크게 떴다. 기오르기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뭐 하는 거야.”
기오르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짜증이 실려 있었다.
“오늘 밤은 가지 않겠다고 전해줘요.”
마리암의 목소리는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그 고요함은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움은 여전히 가슴속에서 차가운 덩어리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덮는 무언가가 그녀의 목소리를 붙들고 있었다. 체념도, 용기도 아니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인식이었다.
기오르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눈매가 좁아지고, 턱 근육이 경직되었다. 그는 마리암을 몇 초간 응시하다가, 손에 쥔 차 키를 식탁 위에 던졌다. 금속이 나무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타마르가 소파 구석에서 몸을 움츠렸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거냐.”
기오르기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체구가 가까워지자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듯했다. 마리암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손은 식탁 가장자리를 잡고 있었고, 손가락 끝이 하얘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그 무표정은 그녀가 이곳에서 8일 동안 배운 가장 값진 생존 기술이었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내 결정은 변하지 않아요.”
살로메는 메이크업 박스를 챙기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기오르기와 마리암 사이를 오갔고, 입술은 무언가 말하려다 닫혔다. 그녀가 이런 상황을 전에도 본 적이 있을까. 마리암은 살로메의 표정에서 답을 읽을 수 없었다.
기오르기는 핸드폰을 꺼내 복도로 나갔다. 문이 닫히기 전, 그가 다비드에게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러시아어는 평소보다 더 거칠고 빨랐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비드가 도착했다. 그의 등장은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정장 상의는 입고 있었지만, 넥타이 매듭이 평소처럼 반듯하지 않고 약간 느슨했다. 그가 서둘렀다는 증거였다. 그의 미소는 여전히 얼굴에 붙어 있었지만, 그 미소는 이제 한 꺼풀 얇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 아래로 다른 무언가가 비치고 있었다.
“마리암 씨, 무슨 일인가요. 기오르기가 좀 흥분해서 전화를 했더라고요.”
그는 식탁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마리암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그의 제스처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러나 마리암은 그 부드러움 뒤에 숨은 짜증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오늘 접대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다비드의 손이 식탁 위에 놓였다. 손가락이 테이블보를 가볍게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단둘이라는 조건이 부담스러워요. 그리고 이 방식으로 빚을 갚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다비드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그 침묵 속에서 부엌 싱크대의 배수관이 낡은 소리를 내며 떨렸다. 타티아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타마르는 그녀의 옆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기오르기는 문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마리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리암 씨, 솔직히 말해서… 저도 이해하는 부분이 있어요. 처음 하는 일이 쉽지는 않죠.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잘 해오지 않았나요? 첫 접대도 잘 마쳤고, 빚도 줄었고요.”
“첫 접대는 그룹이었어요. 오늘은 달라요. 자자 씨라는 분은 저를 다비드 씨에게서 분리시키려는 제안까지 했어요. 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저는 점점 더 알게 되고 있어요.”
다비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자자의 이름이 나오자 그의 미소는 더 이상 미소가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아직 웃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가의 주름은 완전히 사라졌다.
“자자 씨가 뭐라고 하던가요.”
“다비드 씨를 건너뛰고 직접 계약하자고 했어요. 자신이 다비드 씨보다 상위 거래처라고 했고요.”
다비드는 마리암을 한동안 응시했다. 그의 눈 속에서는 여러 가지 감정이 빠르게 교차하고 있었다. 분노, 경계, 그리고 무언가를 계산하는 기색. 그는 손가락 두드리기를 멈추고 손을 깍지 꼈다.
“마리암 씨. 자자 씨는 좋은 분이에요. 하지만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이에요. 그분이 뭐라고 했든, 결국 서류를 처리하고 항공권을 준비하는 사람은 저예요. 자자 씨가 그런 권한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마리암 씨가 오늘 밤을 거부하면, 자자 씨는 우리에게 화를 낼 거예요. 그럼 서류 진행은 더 늦어지고, 빚은 쌓이고, 마리암 씨 어머니한테도 안 좋은 소식이 갈 수 있어요. 그런데도 거부하시겠어요.”
어머니. 그 단어가 다시 나왔다. 마리암은 손끝에서 체온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다비드는 그녀의 가장 약한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지점을 노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마리암은 그 협박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다비드가 협박을 반복할수록, 그가 가진 카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설득할 새로운 논리를 찾지 못하고, 같은 위협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어머니한테 정확히 어떤 일이 생기는 건가요.”
마리암의 반문에 다비드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구체적인 위협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녀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쿠타이시에 있는 노파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는 그도 명확히 알지 못할 터였다.
다비드는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더니, 미소를 완전히 지웠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더 이상 친절한 고용주가 아니었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그의 표정은 건조하고 사무적인 것으로 변했다.
“좋아요. 마리암 씨가 거부한다면, 저도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마리암 씨의 빚은 여전히 6,800달러예요. 오늘 접대를 하면 1,500달러가 깎였을 텐데, 그 기회는 사라진 거고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올 거라고 장담할 수 없어요.”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타티아 씨는 내일 떠나고, 타마르 씨도 곧 일정이 잡힐 거예요. 마리암 씨 혼자 남아서 어떻게 버틸지, 한번 지켜볼게요.”
그의 말은 위협이면서 동시에 철수였다. 다비드는 마리암을 당장 제압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이미 조직의 패턴을 파악하고 있고, 자자라는 또 다른 플레이어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두려움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다비드가 떠나고 난 후, 아파트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기오르기는 더 이상 해바라기 씨를 까먹지 않았다. 그는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TV는 켜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거의 항상 마리암을 향해 있었다. 그 감시는 이제 은밀하지도, 점잖지도 않았다. 노골적이고 지속적인 시선이었다.
마리암은 그 시선을 의식하며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에 기오르기의 눈이 꽂혀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받았다. 물줄기가 컵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녀는 물을 마시며 기오르기의 감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했다. 거부는 그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리게 만들었다. ‘이 여자는 관리가 필요하다.’ 그게 다비드가 기오르기에게 남긴 메시지였을 터였다.
타티아가 부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마리암의 옆에 서서 함께 물컵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방금 한 일, 나는 한 번도 못 했던 거야.”
“무모한 짓일지도 몰라요.”
“무모한 건 맞아. 하지만 틀린 건 아니야. 나는 매번 그들이 던지는 선을 받아들였어.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받아들이는 게 당연해졌고, 거부한다는 선택지 자체가 사라졌어.”
타티아는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방금 네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어. 거부는 가능한 거였어. 나는 그냥 그걸 몰랐을 뿐이야.”
“하지만 다비드가 말했듯이, 언니는 내일 떠나고 저는 혼자 남아요. 감시는 더 심해질 거고, 기회는 더 줄어들 거예요.”
타티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손가락이 컵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혼자 남겨지는 건 나쁜 점만 있는 게 아니야. 나랑 타마르가 없으면, 기오르기의 감시는 너 하나에게만 집중될 거야.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인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아파트에는 관리해야 할 대상이 너뿐이야. 그 말은, 그들의 자원이 분산되지 않고 하나의 지점에 집중된다는 뜻이기도 해.”
“그게 어떻게 기회가 되나요.”
“집중된 감시는 예측 가능해져. 기오르기가 언제 자리를 비우고, 언제 전화 통화를 하고, 언제 잠드는지. 그 패턴을 알면, 그 집중 속에서도 틈은 생겨.”
마리암은 타티아의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타티아는 이곳에서 3주 동안 살아남으며 관찰한 모든 것을 그녀에게 전수하고 있었다. 그녀가 두바이로 떠나는 것은 이미 막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녀가 남기는 정보는 마리암에게 유일한 무기였다.
거실에서 기오르기가 일어났다. 그는 냉장고로 걸어가 물병을 꺼내 마시며, 그 틈에도 마리암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더 이상 해바라기 씨 봉지가 쥐어져 있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가락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보고 태세. 마리암은 그 단어를 떠올렸다. 그녀의 거부는 기오르기의 역할을 ‘관리인’에서 ‘보고자’로 바꾸어놓았다.
다음 날 오후, 타티아를 데리러 온 사람은 다비드도 기오르기도 아닌, 처음 보는 남자였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는 문 앞에서 타티아의 이름만 짧게 부르고는 복도에서 기다렸다.
타티아는 자신의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녀는 3주 전 이곳에 왔을 때와 똑같은 가방을 들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리암에게 다가가 두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내 동생 전화번호. 아직 가지고 있어.”
“네.”
“그리고 내가 말한 패턴들. 다비드의 방문 시간, 기오르기의 통화 시간, 서류 가방이 방치되는 시간. 그걸 잊지 마.”
“잊지 않을게요.”
타티아는 잠시 마리암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체념이 있었지만, 동시에 작은 불씨 같은 무언가도 남아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은 이 시스템을 바꾸지 못했어. 하지만 너는… 너는 아직 시스템이 두려워하는 걸 할 수 있어. 바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그건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타티아는 돌아섰다. 그녀는 문 앞에서 기다리던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복도로 사라졌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무겁게 들렸다.
마리암은 식탁에 앉아 타티아가 앉아 있던 소파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소파 쿠션에는 그녀가 오래 앉아 있었던 자국이 움푹 패여 있었다. 그 자국은 금방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마리암은 그 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그녀가 남긴 모든 정보를 자신의 머릿속에 완전히 정착시키기로 했다.
타마르는 소파 구석에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작았지만, 빈 아파트에서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리암은 타마르의 옆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타마르의 어깨는 생각보다 더 작고 연약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언니.”
“아직은 여기 있어. 그리고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에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마리암의 말은 타마르를 위한 위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을 위한 확인이기도 했다. 그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빚은 여전히 존재했고, 여권은 다비드의 서류 가방 속에 있었으며, 감시는 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의 거부를 통해, 그들이 제시하는 선택지가 유일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타티아가 떠난 지 이틀째. 아파트는 더 조용해졌다. 타마르는 대부분의 시간을 소파에서 잠으로 보냈고, 마리암은 부엌 식탁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있었다.
기오르기의 행동 패턴은 타티아가 예측한 대로 변했다.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거실 의자에 앉아 마리암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는 여전히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오전 10시쯤 복도로 전화 통화를 하러 나가는 시간. 오후 2시쯤 화장실에서 오래 머무는 시간. 그리고 저녁 8시쯤 TV에 집중하는 시간.
마리암은 그 시간들을 조용히 기록했다. 종이에 적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기오르기의 통화 시간은 보통 8분에서 12분 사이였다. 화장실 체류 시간은 15분 정도. TV에 집중할 때는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 패턴들은 완벽한 빈틈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사용할 수 있는 정보 조각들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다비드의 방문 패턴이었다. 타티아가 떠난 후 다비드는 이틀에 한 번꼴로 아파트를 찾았다. 그는 여전히 서류 가방을 들고 왔고, 여전히 친절한 미소를 유지했다. 그러나 마리암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변했다.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접대를 제안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방문은 짧고 사무적이었다. 빚의 현황을 보고하고, 식량을 보충하고, 그리고 떠났다. 마치 그녀를 잠시 ‘냉각기’에 두기로 결정한 것처럼.
셋째 날 오후. 마리암은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물을 받고 있었다. 그때 기오르기가 또 한 번 전화 통화를 위해 복도로 나갔다. 그의 목소리가 문 틈새로 희미하게 들려왔다. 러시아어였다. 마리암은 귀를 기울였다. 러시아어 단어를 몇 개밖에 몰랐지만, 타티아가 가르쳐준 대로 억양과 강세, 반복되는 단어에 주목했다.
‘마리암’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들렸다. 그리고 ‘자자’라는 이름도 들렸다. 그다음으로 들린 표현은 ‘아직’이나 ‘기다리다’ 같은 의미로 짐작되었다. 그들은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자자의 제안과 마리암의 거부 사이에서, 조직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듯했다.
기오르기가 전화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마리암은 여전히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물컵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기오르기는 그녀를 한 번 흘겨보더니 TV를 켰다. 오늘은 스포츠 채널이었다. 축구 경기 중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리암은 소파에 앉아 TV 화면을 바라보는 척하며 생각했다. 조직 내부에는 균열이 있었다. 자자는 다비드를 건너뛰려 했고, 다비드는 자자를 견제했다. 그 균열이 지금 당장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 균열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정보였다. 조직은 하나의 단단한 블록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엮인 느슨한 결합체였다. 그 느슨함이, 언젠가 그녀가 빠져나갈 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주머니 속의 종이 조각을 다시 한 번 만져보았다. 타티아의 동생 전화번호. 여성지원단체 전화번호. 그녀는 아직 이 번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기오르기의 감시는 여전히 빈틈이 없었고, 그녀는 핸드폰조차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알고 있었다. 다비드의 접대는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며, 그녀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있고, 그 거부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저녁, 다비드가 예정에 없던 방문을 했다. 그는 평소보다 피곤해 보였고, 정장 와이셔츠의 소매는 걷어 올려져 있었다. 그는 마리암을 식탁으로 불러 앉혔다.
“마리암 씨, 생각을 좀 바꾸셨나요.”
“아직 같은 생각이에요.”
다비드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는 짜증보다도, 무언가를 계산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자자 씨가 아직 마리암 씨에게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마리암 씨가 계속 거부하면, 자자 씨도 곧 흥미를 잃을 거예요. 그러면 마리암 씨에게 남는 건 빚뿐이에요. 그것도 아주 오래 갚아야 하는 빚.”
마리암은 다비드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그가 설득을 계속하는 한, 그녀의 거부는 유효한 상태였다. 그녀는 아직 완전히 꺾이지 않았고, 다비드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빚은 갚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방식으로요.”
다비드는 마리암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그녀를 평가하는 구매자의 시선이 아니었다. 그건 골칫거리를 바라보는 관리자의 눈이었다.
“마리암 씨가 그렇게 나온다면, 저도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마리암 씨가 이곳을 떠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우리를 통하는 것뿐이에요. 다른 길은 없어요.”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기오르기가 문을 잠그는 소리가 났다. 철문이 닫히는 무거운 금속음. 마리암은 그 소리를 들으며, 다비드의 마지막 말을 반추했다. 다른 길은 없어요. 그 말은 협박이었지만, 동시에 그 말을 입 밖에 내뱉었다는 것 자체가 다비드의 불안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정말 다른 길이 없었다면, 그는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어둑해진 거실에서 타마르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우리 진짜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요.”
마리암은 타마르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고, 손가락은 앙상했다. 마리암은 그 손을 잠시 감싸 쥐고는, 자신의 주머니 속 종이 조각을 다시 한 번 만져보았다. 닳아가는 종이 가장자리가 손끝에 닿았다. 그녀는 이제 기오르기의 통화 시간과 화장실 체류 시간을 초 단위까지 외고 있었고, 다비드의 방문 패턴을 일기예보처럼 예측할 수 있었다. 거실에서는 축구 중계의 함성 소리가 벽에 부딪혀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