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기름때 묻은 사각지대
페르시아만의 아침은 서서히 타오르는 용광로의 뚜껑이 열리는 것처럼 시작되었다. 지평선 언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태양광선은 카스피호의 거대한 녹슨 선체를 가차 없이 달구기 시작했다. 선실 내부의 온도는 간밤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다시 섭씨 45도를 향해 수직으로 치솟았다. 쇠창살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서는 시큼한 소금기와 함께 배 밑바닥에서 유출된 벙커C유의 지독한 악취가 섞여 있었다. 민우는 소금기가 가득 가라앉은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렸다. 온몸의 근육이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고, 갈라진 입술에서는 침 대신 마른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어제 찬우가 당했던 잔혹한 구타의 잔상이 여전히 갑판 위의 핏자국처럼 선명하게 뇌리를 맴돌았다. 격리 선실 방향에서 가끔 들려오는 찬우의 희미한 신음은 이 배의 모든 노동자에게 내려진 침묵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선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작업복을 꿰어 입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분노 대신 오직 서로를 향한 깊은 의심과 포식자의 눈치를 보는 비굴함만이 박제되어 있었다. 민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지 주머니 속을 가만히 더듬었다. 간밤에 엔진룸 구석에서 손가락이 터져라 날을 벼려두었던, 대가리가 부러진 가스 렌치의 단단한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척추로 차가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 철붙이가 발각되는 순간, 자신 역시 찬우처럼 피떡이 되어 바다로 던져질 터였다.
오전 7시, 조타실 아래층의 좁은 복도에 선원들이 다시 일렬로 늘어섰다. 하루 중 가장 잔인한 시간인 식수 배급이었다. 1등 항해사는 권총집에 손을 얹은 채 오만방자한 눈빛으로 선원들을 내려다보았고, 그 뒤로 인도네시아 선원 아구스가 어제 밀고의 대가로 얻어낸 얼음물 병을 과시하듯 쥐고 서 있었다. 선원들의 시선이 아구스의 물병에 꽂히며 침을 삼키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선장은 가죽 의자에 기댄 채 그 풍경을 즐기듯 시가를 태우고 있었다. 민우의 차례가 되었을 때, 선장은 찌는 듯한 시가 연기를 민우의 얼굴에 대고 뿜어냈다.
“유학생, 네 동기 녀석은 창고에서 아주 쥐새끼처럼 굴더군. 너는 그 유약한 대가리로 딴생각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이 배에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던져주는 물을 마시며 닥치고 일하는 것뿐이니까.”
민우는 고개를 숙였다. 가슴속에서는 당장이라도 품 안의 철붙이를 꺼내 선장의 목덜미를 찍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끓었지만, 그는 철저하게 나약하고 겁에 질린 대학생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설픈 반항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찬우의 피가 증명했다. 포식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감시망 아래로 완벽하게 기어 들어가 숨은 사각지대를 찾아내야 했다. 민우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장은 비열한 웃음을 터뜨리며 먼지가 낀 500mL 생수 한 병을 바닥으로 툭 던졌다. 민우는 무릎을 꿇고 그 물병을 주워 올렸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먹잇감을 노리는 독종의 전율이었다.
배 밑바닥의 엔진룸은 지옥의 가장 깊은 구렁텅이였다. 주기관은 멈췄지만, 최소한의 선내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돌아가는 보조 발전기의 굉음과 진동이 사방의 철벽을 흔들고 있었다. 내부 온도는 섭씨 50도를 훌쩍 넘어섰고, 사방에서 분출되는 뜨거운 증기와 기계 오일 탄내가 폐부를 숨 막히게 짓눌렀다. 민우의 임무는 발전기 하부의 거대한 오일 필터를 탈거하고 녹과 찌꺼기를 수작업으로 긁어내는 일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작업복이 살갗에 가죽처럼 들러붙었고, 렌치를 쥔 손등에는 붉은 열반점이 돋아났다.
조타실의 감시원들은 이 덥고 퀴퀴한 지하 엔진룸까지 직접 내려와 감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들은 계단 위 초소에서 가끔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민우는 그 짧은 감시의 공백을 집요하게 계산했다. 발전기가 내뿜는 거대한 소음은 철판을 긁는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해 주는 훌륭한 방음벽이었다. 민우는 필터를 청소하는 척하며 바닥의 배수 밸브 파이프 뒤편에 숨겨두었던 부러진 렌치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발전기 크랭크축의 단단한 회전 플랜지에 렌치의 부러진 단면을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기계의 육중한 진동을 이용해 철과 철을 마찰시키는 작업이었다. 사각거리는 날카로운 비명이 엔진 소리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찰 열로 인해 손가락 끝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민우는 이빨을 악물고 버텼다. 시간이 지날수록 뭉툭했던 철붙이의 끝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번뜩이는 형태로 벼려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복학생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이 어두운 지하에서 스스로 갈아내어 무서운 흉기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정오쯤, 우크라이나 출신의 노련한 기관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엔진룸으로 내려왔다. 그는 배의 부실한 정비 상태와 선장의 무모한 운항 방식에 대해 깊은 불만을 품고 있는 인물이었다. 기관장은 발전기 게이지를 확인하더니 신경질적으로 스패너를 바닥에 던졌다. 필터가 완전히 막혀 보조 발전기마저 조만간 멈출 위기였다. 발전기가 꺼지면 배의 최소한의 환기 장치와 식수 펌프마저 완전히 마비되어 배 안의 모든 인간이 서서히 말라 죽게 될 터였다. 기관장은 머리를 감싸 쥐며 러시아어로 연신 욕설을 뱉어냈다.
민우는 청소하던 필터 뭉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기관장에게 다가갔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 시절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다루었던 밸브 압력 제어 지식을 떠올렸다. 민우는 서툰 영어로 발전기의 냉각수 바이패스 밸브를 조절해 압력을 분산시키면 필터의 과부하를 늦출 수 있다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기관장은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민우를 바라보다가, 이내 그의 말대로 밸브를 조작했다. 이윽고 터질 듯이 불타오르던 발전기의 진동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지며 정상 압력 범위를 회복했다. 기관장의 얼굴에 경악과 함께 묘한 안도감이 스쳤다. 그는 민우의 어깨를 거칠게 툭 치며 주머니에서 자신이 아껴두었던 깨끗한 캔 음료 하나를 건넸다. 이 무법지대에서 민우가 자신의 현실적인 가치와 레버리지를 증명해 낸 첫 번째 순간이었다.
오후 3시, 평온하던 카스피호에 다시 한번 거친 폭풍이 몰아쳤다. 1등 항해사와 무장한 감시원 두 명이 군용 부츠로 철문을 걷어차며 선원들의 공동 숙소로 들이닥친 것이다. 찬우의 무전기 부품 도난 사건 이후, 선박 내부에 또 다른 반항의 불씨나 숨겨진 도구가 있는지 샅샅이 찾아내라는 선장의 엄명이 떨어진 결과였다. 선원들은 모두 복도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감싸 쥐어야 했다.
감시원들은 선원들의 낡은 매트리스를 칼로 찢고, 개인 사물함을 발로 차서 부수며 난폭한 수색을 시작했다. 옷가지와 가족들의 사진, 낡은 수첩들이 먼지 구덩이 바닥으로 사정없이 팽개쳐졌다. 복도 바닥에 엎드린 민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에 있던 부러진 렌치는 다행히 엔진룸 파이프 뒤에 숨겨두었지만, 그의 매트리스 밑바닥 틈새에는 찬우가 잡히기 직전 민우에게 다급하게 넘겨주었던 ‘선교 구역의 통행 시간표’가 적힌 작은 종이쪽지가 숨겨져 있었다. 만약 그것이 발각된다면 찬우의 공범으로 몰려 즉시 격리 선실로 끌려갈 게 뻔했다.
감시원들의 거친 발소리가 점점 민우의 침대 앞으로 다가왔다. 1등 항해사는 민우의 사물함을 뒤엎으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민우의 옆자리에 엎드려 있던 아구스가 미세하게 몸을 떨며 바닥의 먼지를 손으로 긁는 모습이 민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구스의 주머니 끝에 어제 선장에게 밀고의 대가로 받은 위성 전화 카드 모서리가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다른 외국인 선원들은 이미 밀고자인 아구스를 향해 살기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민우는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 이성을 얼음처럼 가라앉혔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1등 항해사의 부츠 끝을 바라보며 나약한 목소리로 빠르게 속삭였다.
“항해사님, 제 침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기 아구스가 오늘 아침부터 선교 창고 주변을 기웃거리며 무언가를 주머니에 숨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제 찬우가 숨겨둔 다른 부품이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동료를 밀고하여 가해자의 신임을 얻는 선장의 악질적인 규칙을, 역으로 가해자의 사냥개에게 적용해 버린 것이다. 항해사의 눈이 번뜩이며 고개를 돌렸다. 아구스는 당황하여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의심의 칼날은 그를 향해 있었다. 감시원들이 아구스를 거칠게 일으켜 세워 주머니를 털어내자 위성 전화 카드와 함께 그가 따로 숨겨두었던 여분의 생수 뚜껑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원들 사이에서 배신자를 향한 거친 비난의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항해사는 아구스의 뺨을 거칠게 후려치며 그를 복도 끝으로 끌고 갔다. 수색의 초점이 완벽하게 분산된 순간이었다. 민우는 다시 바닥에 이마를 대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손을럽히지 않고도 내부의 적을 제거하고 위기를 넘기는, 진짜 독종으로서의 차가운 심리전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새벽 1시, 발전기의 거친 신음소리만이 카스피호를 지배하는 차가운 밤이 찾아왔다. 선원들은 낮 동안의 살인적인 노동과 갈증에 지쳐 마치 시체처럼 침상에 뻗어 있었다. 민우는 조용히 눈을 떴다. 이제 선박의 대략적인 순찰 주기와 사각지대는 그의 머릿속에 완벽한 지도로 각인되어 있었다. 항해사들이 교대하는 새벽 1시 15분부터 30분까지의 단 15분, 그 짧은 공백기가 유일한 기회였다.
민우는 품 안에 벼려둔 렌치를 단단히 고정하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어두운 선체 복도는 유압 파이프에서 흐른 기름 때문에 미끄러웠고, 사방에서 정체 모를 기계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적지는 선교 뒤편에 위치한 선장의 개인 집무실 구역이었다. 찬우가 넘겨주었던 메모에 따르면, 선장은 매일 밤 독한 양주를 마시고 잠들며, 그 방의 대형 목제 금고 안에 선원들에게서 빼앗은 여권들과 선박의 진짜 운항 일지가 들어 있는 가죽 가방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확보해야만 이 배가 공해상을 벗어나 어느 항구에 정박할 때 진짜 공권력에 고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단서가 생기는 것이었다.
그림자처럼 어둠을 틈타 선교 계단을 오르던 민우는 갑자기 상층 데크 초소 모퉁이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손걸레와 기름통이 어지럽게 널린 사각지대 그늘 속에 누군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낮에 수색 소동으로 항해사에게 두들겨 맞고 선원들에게 완벽하게 왕따를 당한 밀고자 아구스였다. 그는 증오와 공포가 가득 찬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었다.
민우가 멈춰 선 순간, 아구스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눈동자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구스의 눈이 경악으로 커지며 소리를 지르기 위해 입을 벌리려는 찰나, 민우의 몸이 먼저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유약했던 대학생의 망설임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민우는 아구스의 입을 왼손으로 거칠게 틀어막고, 오른손에 쥔 날카로운 렌치 끝을 그의 목덜미 정맥 바짝 앞에 들이밀었다. 차가운 철붙이의 촉감이 살갗을 파고들자 아구스의 온몸이 얼어붙듯 굳어졌다.
“소리 지르면 이 배가 가라앉기 전에 네 목구멍부터 뚫릴 거야. 알겠어?”
민우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으며, 거기에는 한 치의 거짓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아구스는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해자의 규칙에 기생해 동료를 배신하던 나약한 밀고자는, 자신보다 더 지독한 독기를 품고 괴물로 변해버린 민우의 압도적인 기세 앞에 완전히 제압당했다. 민우는 아구스의 주머니를 뒤져 그가 선장실 주변을 청소하며 훔쳐두었던 선교 구역의 마스터 키 뭉치를 찾아내어 자신의 손에 쥐었다.
민우는 아구스를 어두운 창고 구석으로 밀어 넣은 뒤, 문을 밖에서 걸어 잠갔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손에 쥔 키 뭉치의 쇳소리가 새벽의 소금 바람을 타고 나지막하게 울렸다. 민우는 렌치를 다시 움켜쥐고 선장의 방을 향해 어두운 복도 깊숙한 곳으로 구두굽 소리 없이 발을 내디뎠다.
선장의 가학적인 통제 제국을 내부에서부터 송두리째 폭파하고 여권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반항의 첫 번째 도박이, 호르무즈 해협의 검은 바다를 배경으로 마침내 그 피비린내 나는 막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