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선택의 기로
클로에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새벽 4시, 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알렉스가 던진 폭탄들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폭발했다.
’35만 파운드의 빚. 매일 1,750파운드씩 불어나는 이자. 호텔 방에서 찍힌 영상. UCL 게시판. 부모님. 로펌 전체.’
그녀는 손가락으로 이불 가장자리를 비볐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내가?’
그녀는 지난 몇 달을 되짚었다. 달콤했던 첫 만남. 알렉스의 완벽한 미소. 하로즈에서 산 첫 명품 코트. 그 코트를 입고 거울 앞에서 돌던 그날의 설렘. 그 모든 것이 지금은 독이 된 듯 목을 조여왔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었다. 오전 4시 37분. 알렉스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욕망과, 그를 영원히 차단하고 싶은 욕망이 동시에 그녀를 덮쳤다.
‘차단하면 어떻게 되지? 빚은 어떻게 하고? 영상은?’
그녀는 알렉스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내일까지 연락 줘.”
‘내일’이라는 시간은 이미 몇 시간 남지 않았다.
그녀는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거울 속의 자신은 초라했다. 붓기가 낀 눈, 핼쑥한 얼굴, 갈라진 입술. 그녀는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인지 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과 마주했다.
“어떻게 할 거야, 클로에. 어떻게?”
거울은 답하지 않았다. 오직 그녀의 숨결만이 거울에 뿌옇게 깔렸다가 사라졌다.
아침 7시, 그녀는 강의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오늘은 계량경제학 특강이 있는 날이었다. 교수는 해외 학회 참석 때문에 이번 한 번 못 들으면 보충 과제를 내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클로에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다. 블라우스 단추를 채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일단 강의부터 가자. 생각은 하면서.’
그녀는 집을 나서면서 다시 한 번 알렉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만 길게 울리고, 역시 받지 않았다.
UCL 캠퍼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찼다. 학생들은 커피를 들고, 웃고, 떠들며 강의실로 향했다. 클로에는 그 풍경 속에서 혼자만 다른 세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플로렌스가 그녀를 발견했다.
“클로에! 여기! 자리 맡아놨어.”
클로에는 무표정으로 그녀 옆에 앉았다. 플로렌스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야, 너 요즘 완전 안 좋아 보여.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잠을 좀 설쳤어.”
“프로젝트 때문에? 걱정 마, 나도 아직 반도 못 했어.”
플로렌스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아무 걱정 없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녀는 학비 걱정, 빚 걱정, 인생이 무너질 걱정 같은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터였다.
강의가 시작됐다. 교수는 회귀분석과 최소자승법에 대해 설명했다. 클로에는 노트를 펼쳐 들었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숫자와 공식이 아니라 알렉스의 얼굴이었다.
“UCL 게시판에 이 계약서가 올라가는 게 좋아?”
그녀는 펜을 꽉 쥐었다. 펜촉이 노트북 종이를 찢었다.
점심시간, 그녀는 플로렌스와 함께 학생 식당에 갔다. 평소 같으면 플로렌스의 귀족적인 이야기에 조금씩 질투를 느꼈겠지만, 오늘은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녀의 감정은 이미 한계를 넘어 ‘무감각’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클로에, 너 진짜 이상해. 말이라도 해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 없어?”
플로렌스의 진심 어린 말에 클로에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플로렌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야. 플로렌스한테 말하면? 그녀 아버지는 로펌과도 연이 닿아 있을 거야. 변호사를 소개해줄 수도 있고…’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접혔다. 플로렌스의 아버지가 알게 되면, 그 사실은 곧 상류층 전체에 퍼질 것이다. ‘UCL 여학생, 성착취 클럽 연루 의혹’ 같은 소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앞으로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일이었다.
“정말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할 뿐이야.”
플로렌스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그날 오후, 클로에는 도서관에 앉아 휴대폰을 응시했다. 알렉스의 전화번호. 그녀는 전화를 걸기 직전까지 갔다가 끊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두 번의 신호음. 그리고 알렉스의 목소리.
“클로에, 결정했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마치 그녀에게 커피 한 잔을 권유하는 것처럼 가볍게.
“…”
“말해봐. 나는 하루 종일 기다렸어.”
클로에는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냘팠다.
“알렉스… 그 파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건데?”
“걱정 마. 처음엔 그냥 와인 따르고, 손님들과 가벼운 대화 나누는 정도야. 너 같은 엘리트 대학생이 필요한 이유가 그거야. 지적인 대화를 원하는 손님들이 많아.”
“그런데… 왜 그걸 나한테 시키는 거야? 웨이터를 고용하면 되잖아.”
알렉스는 짧게 웃었다.
“웨이터? 클로에, 너는 자신의 가치를 너무 모른다. 손님들이 원하는 건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야. 그들은 UCL, KCL, LSE 같은 명문대생과의 대화를 원해. 그게 바로 ‘프리미엄’의 의미다.”
“…”
“그리고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절대 없어. 나는 사업가일 뿐이야.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아. 다만… 손님들의 취향을 맞춰줄 뿐이지.”
클로에는 그의 말 중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아’라는 부분에 귀가 솔깃했다.
‘만약 정말 그냥 서비스 수준이라면…’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이건 분명히 이상해.’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생각이 그녀를 붙잡았다. ‘하지만 빚은? 영상은? 이대로 가면 내 인생은 끝이야.’
그녀는 알렉스에게 말했다.
“시간… 좀 더 주면 안 될까?”
“며칠?”
“일주일만.”
알렉스는 잠시 침묵했다.
“좋아. 일주일. 하지만 그동안 이자는 계속 붙는다는 거 잊지 마. 그리고 클로에, 너는 이미 내일 당장이라도 영상이 유포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내가 막아주는 동안에 말이야.”
전화가 끊어졌다.
클로에는 도서관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그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일주일 안에 35만 파운드를 마련할 방법은 없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기로 했다.
첫째, 경찰. 그녀는 런던 경찰청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사기 신고, 협박 신고. 하지만 그녀는 곧 벽에 부딪혔다. 신고하려면 범죄자의 신상 정보가 필요했다. 그녀가 아는 알렉스의 정보는 대부분 가짜였다. 가짜 이름, 가짜 회사, 가짜 주소.
‘신고하면 어떻게 되지? 경찰이 조사에 들어가면, 그 과정에서 내 이름이 공개될 수도 있어. 언론에 ‘UCL 여대생, 사기 및 성착취 연루’ 같은 기사가 나면…’
그녀는 상상만으로도 손이 떨렸다.
둘째, 로펌. 그녀는 인터넷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검색했다. 몇 군데 전화를 걸었지만, 상담은 일주일 뒤나 가능했다. 일주일. 그녀에게 일주일은 너무 길었다. 게다가 그녀는 변호사 비용을 낼 돈도 없었다.
셋째, 부모님. 그녀는 전화번호부에서 아버지의 번호를 찾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작년에 심장 수술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그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퇴를 2년이나 미루셨다.
’35만 파운드. 부모님은 평생 모은 연금을 다 털어도 그 돈을 못 구할 거야.’
그녀는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순간, 아버지의 심장이 다시 나빠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전화를 걸 수 없었다.
넷째, 학교. 그녀는 학생처의 상담 센터를 떠올렸다. 심리 상담, 학업 상담. 하지만 이런 문제를 상담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35만 파운드 빚에 성착취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는 상담사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하세요.’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밤이 되었다. 그녀는 싱글룸에 혼자 누워 있었다. 인터넷에는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줄 어떤 마법의 해결책도 없었다. 그녀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낯선 번호에서 온 문자였다.
“클로에 씨, A 캐피탈입니다. 담보 가치가 추가로 하락했습니다. 현재 채무는 38만 파운드입니다. 내일까지 5만 파운드를 입금하지 않으시면, 법원에 소장을 접수하겠습니다.”
38만 파운드. 단 이틀 만에 3만 파운드가 늘어났다.
클로에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무릎을 감싸 안고 몸을 웅크렸다. 그녀의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울 힘조차 없었다.
‘이건 게임이 아니야. 이건 현실이야.’
그녀는 처음으로 ‘내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알렉스가 직접 찾아왔다.
그는 그녀의 싱글룸 문 앞에 서 있었다. 수트는 항상 그렇듯 완벽하게 다림질되어 있었다. 그는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찾아온 것처럼 편안한 표정이었다.
“들어가도 돼?”
클로에는 말없이 몸을 비켰다. 알렉스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좁은 싱글룸, IKEA 가구들, 책상 위에 쌓인 경제학 논문들.
“참 겸손하게 살았구나.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 없어.”
그는 커피를 그녀에게 건넸다.
“생각해봤어? 일주일이 지나면 상황은 더 나빠져. 오늘 아침에 A 캐피탈에서 연락 왔더라. 네 빚이 40만 파운드에 근접하고 있다고.”
클로에는 커피잔을 받아 들었지만, 마실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너무 떨렸다.
“알렉스… 그 파티에 가면… 나는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알렉스는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살아서? 클로에, 너무 드라마틱하게 생각하지 마. 거기는 살인 현장이 아니야. 그냥… 어른들의 사교 모임일 뿐이지. 손님들은 영국의 상류층 인사들이야. 정치인, 기업인, 유명 인사들. 그들이 불법적인 일을 하겠어?”
“그런데 왜… 왜 나 같은 학생이 필요한 거야?”
“이미 말했잖아. ‘신선함’이 필요해. 그들은 매일 같은 사람들, 같은 대화에 지루해해. 그래서 너 같은 지적이고 신선한 사람이 필요한 거야. 그리고 그 대가로 너는 빚을 청산할 수 있어. 영상도 삭제해주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
‘모든 것이 원래대로.’
그 말이 클로에의 가슴을 깊이 찔렀다. 그녀는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웃고, 졸업 후 취업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런 삶으로.
“클로에, 내가 약속할게. 6개월만 해. 6개월 후에는 모든 빚이 청산되고, 너는 자유야. 그동안 나는 너를 철저히 보호할 거야. 아무도 너에게 손대지 못하게.”
6개월.
클로에는 숫자를 계산했다. 6개월은 길어 보이지만, 인생 전체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었다. 참을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안 된다고 하면?”
알렉스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그럼 네가 감당해야 할 일이 생기지. A 캐피탈은 너를 파산 신청할 거야. 평생 신용 불량자로 살아야 해. 그리고 영상은… 음, UCL 게시판뿐 아니라 네 부모님이 사는 브리스톨 지역 커뮤니티에도 올라갈 거야. 네 아버지, 얼마나 아프셨다고? 그 소식을 듣고 심장이 어떻게 될까?”
“너… 나쁜 놈.”
“응, 나는 사업가일 뿐이야. 클로에, 이 세상은 의외로 단순해.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지금 너는 내가 필요해. 나도 네가 필요하고. 우리는 서로 필요한 관계야.”
그는 일어섰다.
“내일까지 알려줘. 그리고 기억해, 선택은 네 몫이야.”
알렉스가 문을 나서자, 클로에는 커피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그날 밤, 클로에는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두 가지 길 앞에 서 있었다.
하나는 알렉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길.
알렉스의 VIP 파티에 참석하여 ‘의전 접대’를 하는 것. 빚을 청산하고, 영상을 삭제하고, 6개월 후에 ‘원래대로’ 돌아오는 길.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한번 그런 세계에 발을 들이면, 나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녀는 이미 그 ‘달콤한 미끼’를 물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는 미끼가 아니라 집게였다.
다른 하나는 거부하고 반항하는 길.
알렉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 경찰에 신고하거나, 로펌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부모님께 털어놓는 것.
하지만 그 길은 위험했다. 알렉스는 분명히 협박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영상이 유포되면 그녀의 인생은 끝이었다. UCL에서 퇴학당할지도 모르고, 부모님은 충격으로 쓰러지실지도 모른다.
클로에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다. 이미 다 말라버렸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안전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안전은 이미 사라졌다.
‘명예를 지키고 싶다.’ 하지만 명예는 이미 그녀가 알렉스의 미끼를 물었을 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살아남고 싶다.’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당신의 선택은? (1차 분기점)
당신의 선택이 클로에의 운명을 바꿉니다.
[선택 1] 알렉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VIP 파티에 참석한다. 빚을 청산하는 대신, 알 수 없는 어둠의 세계로 한 발 더 들어간다.
[선택 2] 알렉스의 제안을 거부하고, 경찰이나 로펌에 도움을 요청한다. 모든 것을 걸고 맞서지만, 그 대가가 무엇일지 아무도 모른다.
(※ 선택하신 분기점의 다음 화를 결제하시면, 클로에의 잔혹한 운명의 대단원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