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반항의 대가
클로에는 선택했다. 반항.
알렉스의 전화가 오던 그날 밤, 그녀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클로에, 결정했어?”
“응.”
“말해봐.”
“안 할래. 그 파티, 가지 않을 거야.”
전화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알렉스는 아마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길들여온 피해자들은 대부분 이 순간에 굴복했다. 하지만 클로에는 달랐다. 그녀는 UCL 경제학과 수석 입학생이었다. 그녀는 머리로 승부하는 사람이었다.
“클로에,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어?”
“알아. 나는 변호사를 찾을 거야. 경찰에 신고할 거야. 당신이 한 일은 불법이야.”
알렉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네가 선택한 거야. 하지만 기억해, 내가 경고했어.”
전화가 끊어졌다.
클로에는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가슴 한가운데는 의외로 평온했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알렉스에게 완전히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즉시 행동에 나섰다.
첫 번째, 모든 증거를 모았다. 그녀는 알렉스와 나눈 문자 메시지, 이메일, 통화 녹음(영국은 일당제 녹음이 법적으로 허용된다), 그리고 그가 보낸 계약서 사본을 모두 저장했다. 그녀는 구글 드라이브와 USB에 각각 백업했다.
두 번째, 그녀는 변호사를 찾기 시작했다. 수소문 끝에 성범죄 및 금융 사기 전문 변호사인 ‘엘리너 그레이’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녀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상담을 예약했다.
세 번째, 그녀는 플로렌스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그녀의 자존심에 가장 큰 타격이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밤, 클로에는 플로렌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플로렌스, 나 지금 네가 필요해. 부탁인데, 내일 만날 수 있을까?”
플로렌스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감지했다.
“무슨 일이야? 지금 당장 갈까?”
“아니, 내일이면 돼. 그런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제발.”
“알겠어. 내일 보자.”
전화를 끊고, 클로에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플로렌스는 그녀의 편이었다.
다음 날, 그들은 브루윅의 한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플로렌스는 평소처럼 완벽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클로에가 도착하자 그녀는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클로에, 너 완전 안 좋아 보여. 대체 무슨 일이야?”
클로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렉스를 처음 만난 날, 후원금 제안, 명품에 중독된 과정, 암호화폐 계정, 35만 파운드의 빚, 호텔 방에서 찍힌 영상, 그리고 VIP 파티의 실체.
플로렌스는 듣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클로에… 이게 다 사실이야? 농담하는 거지?”
“나도 농담이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왜… 왜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부끄러워서. 그리고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봐.”
플로렌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클로에, 너 바보야. 나는 네 친구야. 네가 무슨 일을 겪든, 나는 네 편이야.”
그 말에 클로에는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플로렌스의 어깨에 기대어 오랫동안 울었다. 카페의 다른 손님들이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플로렌스가 물었다.
“변호사를 만나기로 했어. 엘리너 그레이. 성범죄 전문 변호사야.”
“내 아버지가 잘 아는 로펌이 있어. 거기도 알아볼까?”
“고마워, 하지만 일단은 내가 알아볼게. 너무 많은 사람이 알면 위험할 것 같아.”
플로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하지만 어떤 도움이 필요하면, 바로 말해. 돈이라도…”
“고마워, 플로렌스. 정말로.”
그들은 카페에서 3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플로렌스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증거를 더 확보할 방법, 안전하게 지내는 방법, 그리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 연락망.
카페를 나서며, 클로에는 조금이나마 힘이 났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이틀 후, 클로에는 엘리너 그레이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런던 템플 역 근처의 오래된 건물에 있었다. 건물은 낡았지만, 그 안은 정돈되어 있었다. 엘리너는 5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짧은 머리에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서류로 가득 찬 책상.
“클로에 씨, 앉으세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클로에는 모든 것을 다시 이야기했다. 알렉스, 암호화폐 계정, 빚, 협박, VIP 파티. 엘리너는 듣는 내내 메모를 했다.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끔 눈썹을 찌푸리기도 했다.
클로에의 이야기가 끝나자, 엘리너는 펜을 내려놓았다.
“클로에 씨,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
“첫째, 당신이 서명한 계약서는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암호화폐 사채는 영국에서 합법적인 금융 상품은 아니지만, 당신이 자발적으로 서명했다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알렉스가 속였어요! 그는 제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을 뿐…”
“법정에서는 ‘속았다’는 주장을 증명해야 합니다. 당신이 서명할 당시 계약서를 읽었습니까?”
클로에는 침묵했다. 그녀는 읽지 않았다. 알렉스를 믿었기 때문에.
“둘째, 협박 영상. 이것은 분명히 불법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영상을 촬영당할 당시, 의식이 없었다고요?”
“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렇다면 그것은 성범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필요합니다. 호텔 영수증,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 아니면 다른 어떤 증거라도.”
클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알렉스를 믿었고, 그래서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겼다.
“셋째, 경찰에 신고하면 당신의 신상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론에서 ‘UCL 여대생 성착취 피해’ 같은 제목으로 기사를 낼 수도 있어요. 당신은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클로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그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그렇다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가요?”
엘리너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요,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첫째, 알렉스의 신원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가 사용하는 가짜 신분 뒤에 숨겨진 진짜 정체를 찾는 겁니다. 둘째,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만 이런 일을 겪은 것이 아니라면, 집단 소송의 형태로 갈 수 있습니다. 셋째, 언론을 활용하는 겁니다. 당신의 신분을 보호하면서, 이 사건을 공론화하는 거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네, 위험합니다. 알렉스가 더 강하게 반격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영상을 유포하거나, 더 심한 협박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습니다.”
클로에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해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하세요. 절대 혼자 행동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저에게 연락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변호사를 만난 다음 날, 알렉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UCL 게시판에 첫 번째 영상을 게시했다. 24시간 안에 내 연락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두 번째 영상은 네 부모님께 보낼 거야.”
클로에는 링크를 클릭했다. 그것은 익명의 파일 공유 사이트였다. 영상은 그녀가 호텔 방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알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의식 없이 누워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치욕적이었다.
그녀는 엘리너에게 바로 전화했다.
“영상이 올라갔어요.”
“주소 보내주세요. 내가 조치를 취할게요. 당장 삭제 요청을 넣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상을 봤을까? 클로에는 상상만으로도 손이 떨렸다.
두 번째, 그녀의 UCL 이메일로 낯선 메일이 도착했다.
“클로에 씨, A 캐피탈에서 연락이 늦어 안타깝습니다. 귀하의 채무는 현재 42만 파운드로 증가했습니다. 오늘까지 5만 파운드를 입금하지 않으시면, 법원에 소장을 접수하겠습니다.”
그녀는 엘리너에게 그 메일도 전달했다.
“소장 접수는 협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법원에 가려면, 그들 자신의 불법적인 대출 관행이 드러날 테니까요.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 그녀의 집 앞에 낯선 남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그녀의 집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가 나가면 따라오고, 그녀가 들어오면 건너편 길가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클로에는 플로렌스에게 전화했다.
“내 집 앞에 누군가 있어.”
“집에 있어. 내가 바로 데리러 갈게.”
플로렌스는 20분 만에 도착했다. 그녀의 차에는 아버지 회사의 경호원 한 명이 동승하고 있었다.
“클로에, 당분간 내 집에서 지내. 네 집은 위험해.”
“하지만…”
“내 아버지가 허락했어. 걱정 마.”
클로에는 플로렌스의 집으로 피신했다. 체어시의 고급 아파트. 그곳은 안전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하지만 플로렌스의 집이 영원한 피난처는 아니었다.
며칠 후, 클로에는 UCL 캠퍼스에서 낯선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그녀를 보면 작게 소곤거렸다. 어떤 이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그녀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했다. 영상이 유포된 것이다. 아마도 익명의 게시판을 통해.
그녀는 강의실에 들어갔다. 평소 그녀 옆에 앉던 학생들이 다른 자리로 옮겨 앉았다. 플로렌스만이 그녀 옆을 지켰다.
“클로에, 신경 쓰지 마. 그런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클로에는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공부하러 온 것이지, 이렇게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강의가 끝난 후, 교수가 그녀를 불렀다.
“클로에 씨,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교수의 방에는 그녀와 교수 단둘이었다. 교수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클로에 씨, 솔직히 말씀드리죠. 학교 당국에 당신에 대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내용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불법적인 활동에 연루되었다는…”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저는 피해자예요.”
“저도 당신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학교로서는 조사가 필요합니다. 당분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은 자제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말이죠.”
클로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수의 방을 나왔다.
복도에서 그녀는 휴대폰을 보았다. 알렉스의 메시지.
‘어떻게 됐어? 학교에서 잘렸어? 내 말 들었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아직 기회는 있어. 오늘 밤 파티, 올래?’
클로에는 휴대폰을 꽉 쥐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선택해야 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반항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빚은 늘어났고, 영상은 유포되었고, 학교에서는 조사받게 되었고, 그녀의 명예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알렉스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했다. 파티에 참석하면 빚을 청산하고, 영상을 삭제하며,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원래대로’란 없다. 이미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녀는 다시 선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