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검은 물길
알베르트는 펜을 내려놓았다.
탁. 플라스틱 볼펜이 나무 책상에 닿는 가벼운 소리가, 그 순간만큼은 총성보다 더 크게 울렸다. 맥과이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책상 가장자리를 천천히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알베르트. 농담이지?”
“농담 아닙니다. 저는 이 서류에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맥과이어의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눈동자 속에서는 무언가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팔짱 낀 손가락 사이로, 그의 오른손 엄지가 왼쪽 소매 단추를 반복적으로 비볐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나. 내가 자네에게 준 기회는 이 캠프의 어떤 현지인 직원도 받지 못한 특별 대우였어. 그리고 지금 자네는 그걸 발로 차고 있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
알베르트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그러나 식은땀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셔츠가 등판에 달라붙는 감촉이 났지만, 그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서류에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로 사직하겠습니다.”
맥과이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이 알베르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후회할 거야, 알베르트. 자네뿐 아니라, 자네가 아끼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알베르트는 의자에 앉은 채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서명을 거부한 손. 그 손은 이제 떨리기 시작했다.
문이 닫히는 진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알베르트는 서랍을 열어 USB 메모리를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 안에는 지난 6개월 치의 하역 기록, TS-7B 인신매매 증거, 모바일 스쿼드 무기 지급 목록, 그리고 맥과이어가 투자자용으로 작성하라고 지시한 가짜 재무제표까지—모든 증거가 담겨 있었다. 그는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파일들을 암호화된 클라우드에 긴급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모니터 우측 하단에서 업로드 게이지가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그의 눈꼬리는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번갈아 쫓고 있었다. 게이지가 100%를 찍자마자 그는 노트북을 닫고 휴대폰으로 모세스 삼촌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 준비해 주세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알베르트는 알고 있었다. 모세스는 이미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사무실을 나서기 전, 책상 구석의 작은 기념품을 집어 들었다. 퀸즐랜드 대학의 학위 배지. 서랍 속에 밀어 넣었던 그것을 다시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그는 알았다. 이 배지는 자랑스러운 학위의 증표가 아니라, 그가 배신당한 문명의 상징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증오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랐다.
밤 10시. 캠프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알베르트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물류창고 뒤편의 어두운 길을 따라 강가로 향했다. 그의 발밑에서는 진흙이 질퍽거렸다.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방울, 그러다가 점점 굵어졌다. 우기의 밤하늘이 다시 한 번 입을 열고 있었다.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메리 스트릭랜드’의 디젤 엔진은 이미 예열되어 있었다.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선체의 녹슨 부분은 급하게 용접한 흔적으로 얼룩져 있었다. 모세스는 선실에서 항해도를 펼쳐놓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삼촌.”
“늦었구나. 무슨 일이 있었어.”
“서명을 거부했어요. 사직한다고 말했고요.”
모세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조카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과, 동시에 묘한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진짜 도망쳐야 하는구나.”
그가 항해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맥과이어는 분명히 모바일 스쿼드를 풀 거야. 아마 지금쯤이면 캠프 전체에 네 신변 확보 명령이 내려졌을 거야. 육로는 안 돼. 유일한 길은 이 강이야.”
알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문소는 어떻게 하죠.”
“옛 지류를 이용할 거야. 군용 지도에는 없는 옛 물길이야. 우기에는 물이 불어서 배가 지나갈 수 있어. 하지만 말했듯이, 위험한 길이야. 통나무가 득실거리고, 만약 배가 뒤집히면 우리는 정글 속에서 길을 잃을 거야.”
그때, 선착장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알베르트는 몸을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제이콥이었다.
라스콜의 번개 문신이 목덜미에서 쇄골까지 뻗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비에 젖은 셔츠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사제 파이프 총이 들려 있었다. 그의 얼굴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제이콥. 넌 왜 여기…”
“맥과이어가 방금 모바일 스쿼드를 불렀어. 트럭 두 대가 30분 안에 여기 도착할 거야. 그리고 라스콜들에게도 지령이 내려왔어. 너를 생포하거나, 사살하거나.”
알베르트의 손이 주머니 속 나이프를 움켜쥐었다. 제이콥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파이프 총을 내렸다.
“나는 네 편이야, 알베르트. 우리는 같은 완톡이니까. 하지만 다른 라스콜들은 아니야. 그들은 맥과이어의 돈을 받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당장 떠나.”
“너는.”
“나는 여기 남아서 시간을 벌게. 네가 강을 건널 때까지. 하지만 그 이상은 못 해. 내 목숨도 걸어야 하니까.”
알베르트는 제이콥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은 모두 비에 젖어 차가웠다.
“Em i orait, brata. 괜찮아, 형제여.”
제이콥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알베르트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모세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요. 지금 당장.”
‘메리 스트릭랜드’는 마침내 선착장을 떠났다.
디젤 엔진이 낮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선체를 밀어냈다. 강물은 우기로 인해 평소보다 두 배로 불어나 있었고, 진흙을 잔뜩 머금은 탁한 갈색 물줄기가 배의 양옆을 스치며 소용돌이쳤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져, 마치 누군가가 하늘에서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는 듯했다.
알베르트는 선실 안에서 항해도를 붙잡고 있었다. 손전등의 불빛이 항해도의 붉은 선을 비추었다. 그 선은 플라이 강의 주요 수로에서 갈라져 나와, 미로처럼 얽힌 옛 지류들을 따라 서쪽으로 뻗어 있었다.
“좌현 30도. 저 떠내려오는 통나무를 피해야 해.”
모세스가 조타실에서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빗소리와 엔진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알베르트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강물 위로 거대한 통나무들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물속에서 솟아오른 검은 짐승들처럼 보였다.
배가 점점 더 좁은 수로로 접어들었다. 양옆으로는 정글의 나무들이 물 위로 드리워져 있었고, 나뭇가지들이 배의 선체를 긁으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공기 중에는 썩은 나무와 진흙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갑자기 모세스가 엔진 스로틀을 낮추었다. 배의 속도가 급격히 줄었다.
“왜 그러세요?”
알베르트의 질문에 모세스는 대답 대신 손전등을 들어 수면을 비추었다. 빛줄기가 탁한 물 위를 쓸자, 알베르트의 숨이 멎었다.
수면 위로 수십 개의 붉은 점들이 번득이고 있었다. 악어의 눈이었다. 크고 작은 바다악어들이 강 양옆의 얕은 물에 몸을 담근 채, 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꼬리조차 흔들지 않았다. 그저 수백 개의 붉은 눈알이 어둠 속에서 ‘메리 스트릭랜드’를 에워싸고 있었다.
“조용히 해. 놈들은 시력이 나빠. 하지만 청력은 예민해.”
모세스는 엔진을 최대한 낮추고, 배를 천천히 전진시켰다. 붉은 눈들이 배의 움직임을 따라 미세하게 회전했다. 알베르트는 선실 바닥에 엎드려 숨을 죽였다. 손전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 더 깊은 어둠 속에서는 더 많은 눈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긴장된 15분이 흘렀다. 배가 좁은 수로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악어들의 눈은 하나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세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스로틀을 다시 올렸다.
“이제 놈들은 지나갔어.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어.”
그가 손전등을 선미 쪽으로 비추었다. 프로펠러 근처에 거대한 맹그로브 뿌리 더미가 감겨 있었다. 우기로 인해 떠내려온 흡착성 나무뿌리들이 스크루를 옭아매고 있었다. 엔진이 과열되기 시작했고, 배의 속도가 다시 떨어졌다.
“이대로는 못 가. 누군가 내려가서 뿌리를 잘라내야 해.”
알베르트는 주머니에서 모세스가 준 낡은 나이프를 꺼냈다. 녹슨 칼날이 손전등 불빛 아래서 흐릿하게 반짝였다.
“제가 할게요.”
“안 돼. 너는 물류 전문가잖아. 이건 내 일이야.”
모세스는 조카의 손에서 나이프를 빼앗아 자신의 허리띠에 꽂았다. 그리고 셔츠를 벗고, 선미로 걸어갔다.
“삼촌, 조심해요.”
“염려 마라. 나는 평생 이 강에서 살아온 사람이야.”
모세스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탁한 갈색 물이 그를 집어삼켰다. 알베르트는 선미 난간을 붙잡고 숨을 죽였다. 30초. 1분. 물속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모세스가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그의 입에서는 거친 숨이 터져 나왔고, 손에는 나이프가 쥐여 있었다. 칼날에는 나무뿌리 조각이 걸려 있었다.
“끝났어! 이제 가!”
알베르트가 손을 내밀어 모세스를 배 위로 끌어올렸다. 노인의 몸은 차가운 강물에 젖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조타실로 걸어가 스로틀을 올렸다. 엔진이 다시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배는 천천히 속도를 회복했다.
새벽 3시, 폭우가 마침내 잦아들었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새어 나왔다.
‘메리 스트릭랜드’는 간신히 옛 지류를 빠져나와, 플라이 강의 주요 수로로 다시 합류했다. 선체는 여러 군데가 손상되었고, 엔진은 과열되어 연기를 뿜고 있었다. 그러나 배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알베르트는 지친 몸으로 선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물을 막느라 긁히고 베여 피가 맺혀 있었다. USB는 여전히 그의 주머니 속에 안전하게 있었다. 모세스는 조타실에서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항해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루 섬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아직 멀었어. 이틀은 더 가야 해. 하지만 검문소는 피했어. 이제 가장 큰 위험은 지나갔어.”
알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선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강물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달빛 아래서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정글의 그림자들이 강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제이콥은 무사할까. 어머니와 한나는 안전할까. 맥과이어는 이미 그들에게 손을 썼을까. 수많은 의문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는 더 이상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였다. 이 USB를 다루 섬까지 가져가는 것. 그리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것.
모세스가 조타실에서 내려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찌그러진 담배 한 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려다가, 그만두었다.
“알베르트.”
“네.”
“네가 한 선택은 옳은 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비록 모든 것을 잃게 될지라도, 네 영혼은 살아남을 거야.”
알베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USB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 그러나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담겨 있었다. 키리나 북쪽에서 죽어간 원주민들. TS-7B 코드로 팔려간 여성들. 그리고 앞으로 죽게 될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
그는 USB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눈을 감았다. 강물은 묵묵히 배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플라이 강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