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감금과 고립
아이게림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펜 끝이 두 장의 서류 사이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왼쪽은 임명장, 오른쪽은 경찰 고발장. 무라트의 시선이 그녀의 손등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탁. 플라스틱 펜이 나무 책상에 닿는 가벼운 소리가, 그 순간만큼은 총성보다 더 크게 울렸다.
무라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천천히, 마치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러더니 그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책상을 한 번, 두 번, 세 번 두드렸다. 규칙적인 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억누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지.”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차분했지만, 그 차분함은 이제 칼날처럼 서늘했다.
아이게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둔 양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침묵 속에서 무라트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냈다. 말로 맞서지 않았다. 그저 서명을 거부한다는 사실 하나만을, 단단한 침묵으로 내보였다.
무라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일어나, 임명장과 고발장을 모두 챙겨 들었다.
“네가 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똑똑히 보게 될 거야.”
그가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아이게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위조한 작년 장부 도장을, 경찰이 정말 진짜라고 믿을까요? 내가 은행에서 매일 쓰던 서명과, 당신들이 흉내 낸 서명의 획 각도가 다르다는 것쯤은 필적 감정에서 바로 나올 텐데.”
무라트의 등이 멈추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그녀의 말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문이 닫혔다. 열쇠가 잠기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였다.
그날 밤, 경비원 두 명이 들이닥쳐 그녀를 끌어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녀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고, 거의 질질 끌듯이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는 어둡고 눅눅했다. 벽에서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그녀가 끌려간 곳은 지하 제일 안쪽, 처음 왔을 때보다도 더 깊은 곳에 위치한 창고였다. 정확히 말하면, 창고로 쓰다가 버려진 방이었다. 벽에는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천장에서는 단열재가 축 처져 있었다. 창문은 없었다. 오직 천장 가까이에 손바닥만 한 환기구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바닥에는 얇은 매트리스 하나만 던져져 있었다.
“여기가 네 새 방이다. 마음에 들길 바라.”
경비원 중 한 명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문을 쾅 닫았고, 바깥에서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게림은 그 어둠 속에 혼자 남겨졌다. 환기구로 스며드는 공기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해발 2,500m의 밤공기가 여과 없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녀는 매트리스 위에 웅크리고 앉아, 양손으로 자신의 팔을 감쌌다. 손톱 밑이 아려왔다. 뼛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에,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본관 2층의 따뜻한 방, 창문으로 보이던 천산의 풍경.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자신이 누렸던 그 안락함은, 이제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추위 속에서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라트가 준 달콤한 차와 부드러운 침대는 그녀를 무디게 만들었지만, 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은 그녀의 감각을 송곳처럼 뾰족하게 만들었다.
갇힌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이게림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지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할 상대가 없으니, 입을 열 일 자체가 사라졌다. 그녀는 벽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쓰던 회계 기호들, 어머니의 이름, 동생 누르술탄의 이름. 글씨를 쓰지 않으면, 생각마저도 느려지고 무뎌질 것 같았다.
닷새째 되는 날, 그녀는 벽에 기대어 앉아 환기구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바라보았다. 빛은 아침과 저녁에 따라 각도가 변했다. 그녀는 그 빛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쯤이면 빛이 북쪽 벽의 금이 간 부분을 비추었고, 오후 3시쯤이면 빛이 사라졌다. 그녀는 그 금 간 틈에 손톱으로 작은 눈금을 새겼다. 해시계와 같은 원시적인 시간 측정법이었다.
엿새째 되는 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울었다. 소리 없는 눈물이었다. 가족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지금쯤 자신이 실종되었다고 경찰에 신고했을까. 동생의 병은 조금 나아졌을까. 은행 동료들은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나 울음을 그치고 나자, 그녀의 숨통은 오히려 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앉아, 어둠 속에서 바키트가 알려준 협곡 동쪽 오솔길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아직 증거는 부족했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감금은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버틸 것이다. 반드시.
갇힌 지 이레째 되던 날 밤, 무언가 달라졌다.
배식구로 들어온 쟁반 위에는 평소와 같은 찬 빵과 물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쟁반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녀는 쟁반 밑면에 테이프로 붙여진 작은 종이를 발견했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종이를 떼어 냈다. 거기에는 키르기스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버티고 있어요. 신뢰를 잃지 않았소. 증거는 계속 모으고 있소. 때가 오면 신호를 보내겠소.”
바키트의 글씨였다.
그녀는 종이를 가슴에 품고 어둠 속에 웅크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가슴속에 희미한 온기가 번졌다. 그녀는 그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어 매트리스 밑에 숨겼다.
이틀 뒤, 또 한 번 변화가 찾아왔다. 배식 시간이 아닌 새벽녘,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문 아래 틈으로 작은 물건이 밀려 들어왔다.
그녀가 집어 들자, 그것은 낡은 연필심 하나였다.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작은 연필심. 누군가가 몰래 그녀에게 건넨, 사고와 기록을 위한 도구였다.
아이게림은 연필심을 손에 쥐고 어둠 속에서 미소 지었다. 이제 그녀는 벽에 금을 긋는 대신,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증거를 벽에 적을 수 있었다. 비록 누군가 보기 전에 지워야 했지만,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그녀의 정신을 붙잡아 주었다.
그녀는 매일 밤, 환기구로 들어오는 달빛이 가장 밝을 때, 연필심으로 벽에 작은 글씨를 썼다. TS-7. 소급 위조. 카디르 사택 금고 위치. 경비 교대 시간. 그리고 다 쓰고 나면, 아침이 밝기 전에 손바닥에 침을 묻혀 벽을 문질렀다. 연필 가루가 번지고 뭉쳐, 그녀의 손날과 손바닥은 금세 시커먼 진흙으로 엉망이 되었다. 그녀는 매트리스 밑에 손을 비볐지만, 손금 사이에 박힌 검은 가루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 정보들은 그녀의 뇌리에 더욱 깊이 새겨졌다.
갇힌 지 아흐레째 되는 날 아침, 문이 열렸다.
빗장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오랜만에 들어오는 복도의 불빛에 그녀는 눈이 부셨다. 문간에 서 있는 것은 무라트였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입술 주변에 옅은 주름이 더 깊어져 있었다. 9일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열흘 동안 생각은 정리됐나.”
그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아이게림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녀는 매트리스 위에 앉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9일간의 어둠과 침묵은 그녀의 눈빛을 오히려 더 차갑고 고요하게 만들었다.
“당신들 앞에서 할 말은 이미 다 했어요. 더 드릴 말씀 없습니다.”
무라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네가 협조를 거부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그동안 네가 가진 증거라는 게 우리를 전혀 위협하지 못했다는 건 스스로도 느끼겠지. 만약 네 증거가 진짜 강력했다면, 우린 이미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거야.”
그는 한 걸음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구두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버티는 걸 보니, 한 가지는 인정해야겠군. 넌 생각보다 훨씬 질긴 여자야.”
그는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눈높이를 맞췄다. 그의 눈동자는 가까이서 보니 더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일주일 후, 주정부 감사관이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야. 네가 협조한다면, 나는 네 감금을 풀어줄 수 있어. 감사관 앞에서 정해진 대로 대답만 하면, 그 후엔 어느 정도 자유를 주지.”
그의 제안은 또 다른 덫이었다. 그녀는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깨달았다. 감사관의 방문은 그녀에게도 기회였다. 외부인의 눈이 이곳에 닿는 단 하루. 그날이 바로 그녀가 움직여야 할 때였다.
“생각해 볼게요.”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무라트는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일주일이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때까지 결정해.”
문이 다시 닫혔다. 빗장이 걸렸다. 어둠이 다시 방을 채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일주일 앞으로 달려가 있었다. 감사관 방문. 바키트의 신호. 협곡 동쪽 오솔길. 그리고 그녀가 계산기 안에 숨겨둔 증거.
일주일. 그 시간이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준비 기간이었다. 그녀는 연필심을 꺼내 벽에 새로운 글씨를 썼다.
‘감사관 방문 D-7. 대비 시작.’
그리고 그 글씨를 지우며, 그녀의 손바닥은 다시 한 번 시커먼 연필 가루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