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그림자 키르기스스탄편 #001] 천산의 핏빛 방주 – 5-2화: 어둠 속의 기록

5-2화: 어둠 속의 기록

갇힌 지 아흐레째 아침, 아이게림은 환기구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가 바뀐 것을 알아챘다. 해가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녀는 벽에 난 금 간 틈에 손톱으로 새긴 눈금을 매일 아침 확인하며 날짜를 세었다. 아홉 개의 눈금. 그녀가 이 지하 창고에 갇힌 지 9일째였다.

무라트가 다녀간 후, 그녀의 감금 생활에는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배식구로 들어오는 음식이 조금 나아졌다. 찬 흐렙 대신, 가끔은 식은 수프와 마른 빵이 들어왔다. 물도 하루에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늘었다. 그들은 그녀를 죽이지 않으려 했다. 쓸모가 있어야 할 이유를 남겨두려는 것처럼.

그러나 대화는 여전히 없었다. 경비원들은 배식구를 열고 쟁반을 밀어 넣을 때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가 말을 걸어도, 그들은 기계처럼 움직일 뿐이었다. 고립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매일 밤, 연필심으로 벽에 글씨를 썼다. 오늘은 무엇을 기억해 냈는지, 어제는 어떤 증거를 떠올렸는지. 그리고 아침이 오기 전에 침으로 적셔 손바닥으로 지웠다. 손바닥은 이제 항상 시커먼 연필 가루로 얼룩져 있었다. 손금 깊숙이 박힌 검은 가루는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의 검은 선들은 마치 이곳에서 살아남은 모든 날들을 지도처럼 새겨놓은 것 같았다.

열하루째 되는 날 밤, 그녀가 거의 잠들 무렵, 문 아래 틈으로 또 한 장의 종이가 밀려 들어왔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종이를 집어 들었다. 환기구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글씨를 읽었다.

“감사관 방문 닷새 전입니다. 경비가 더 강화됐지만, 감사관이 오는 날은 외부 차량과 인원이 많아 혼란스러울 겁니다. 그날 아침이 기회입니다. 준비하고 있겠소. B.”

바키트였다. 그녀는 종이를 접어 매트리스 밑에 숨겼다. 이제 그녀의 매트리스 밑에는 바키트가 보낸 쪽지 두 장이 쌓여 있었다.

다음 날 밤, 그녀는 답장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배식구에 종이를 대놓고 끼워두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경비원들은 배식구 주변을 항상 살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배식으로 들어온 마른 빵을 집어 들었다.

빵의 딱딱한 껍질을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파내자, 속이 드러났다. 그녀는 빵 속 푸석한 부분을 조금 떼어내고, 그 빈 공간에 작게 접은 기름종이 쪽지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떼어낸 빵 조각으로 다시 구멍을 막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한입 베어 문 흔적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녀는 쟁반 위에 빵을 올려두고 배식구 근처 바닥에 내려놓았다. 회수되기를 기다리며.

그리고 안전장치를 하나 더 마련했다. 쟁반 바닥의 기름때 위에, 연필심 끝으로 미세한 흠집을 냈다. ‘CALC. B1_F2’—지하 1층(옛 사무실) 책상 서랍 안 계산기. 무라트 일당이 본다면 아무 의미 없는 얼룩으로 보일 은행식 약어였다. 바키트라면 알아볼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쟁반은 회수되었고 빵도 함께 사라졌다.

열사흘째 되는 날, 아이게림은 더 이상 단순히 날짜만 세지 않았다. 그녀는 벽을 하나의 장부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그동안 봐 왔던 모든 장부의 주요 항목들을 벽에 재구성했다. TS-7 코드의 거래 내역. 소급 위조된 서명이 있는 날짜와 금액. 카디르의 사택 금고 위치와 비밀번호를 암시하는 힌트—무라트가 무심코 흘린 말이었다. 경비 교대 시간. 협곡 동쪽 오솔길의 지형.

연필심이 닳아 없어질까 두려워, 그녀는 아주 작은 글씨로 벽 구석구석을 채웠다. 벽은 점점 그녀의 기억으로 덮여 갔다. 마치 회계 장부의 페이지처럼, 벽에는 그녀가 이곳에서 모은 모든 진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그녀는 그것들을 지웠다. 그러나 지울 때마다, 그 정보들은 그녀의 뇌리에 더욱 깊이 각인되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특별히 중요한 사실 하나를 벽에 적었다.

“카디르, 개인 명의 스위스 계좌. IBAN 앞 8자리 CH15 0028 9. 나머지는 무라트만 알고 있음.”

이것은 무라트가 한 번 실수로 그녀 앞에서 서류를 넘기다가 흘린 정보였다. 그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열나흘째 되는 날, 복도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아이게림은 문 너머로 들려오는 발소리와 목소리로 그 변화를 감지했다. 평소에는 없던 움직임이었다. 구두 소리, 서류 뭉치를 옮기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소리.

그녀는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였다.

“감사관 일행이 모레 도착한다. 1층 회의실과 2층 특별 회계실을 정리해. 선지자님 사택 주변은 더욱 철저히.”

무라트의 목소리였다. 그는 평소보다 더 빠르고 날카로운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긴장감을 느꼈다. 그들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외부의 눈. 바로 그 외부의 눈이 이틀 후에 이곳을 들여다볼 것이었다.

그날 밤 늦게, 배식구로 또 한 장의 쪽지가 들어왔다.

“내일 아침, 감사관 차량들이 위병소를 통과해 본관으로 진입하는 순간 10분간 경비 교대의 틈이 생깁니다. 그때 움직이세요. B.”

그녀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기회였다. 그러나 동시에 함정일 수도 있었다. 만약 이것이 무라트가 그녀를 시험하기 위해 꾸민 덫이라면. 그녀가 탈출을 시도하는 순간, 그들은 그녀를 가차 없이 처리할 것이다.

그녀는 쪽지를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의 검은 연필 가루 사이로, 희미한 글씨가 보였다. 그녀는 바키트를 믿기로 했다. 그에게는 3년 동안 기다려 온 복수의 이유가 있었다.

열닷새째 날 밤. 감사관 방문 전날.

아이게림은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 누워 있었다. 그녀의 호흡은 차분했고, 손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15일간의 감금은 그녀를 더 단단하게,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벽에 마지막으로 글씨를 썼다.

“내일 아침. 감사관 차량 진입. 10분 틈. 계산기 회수. 협곡 동쪽 오솔길. 경비견 두 마리. 바위 틈.”

그리고 그녀는 그 글씨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웠다. 손바닥이 다시 한 번 검게 물들었다.

새벽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매트리스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섰다. 발소리를 죽이고, 숨을 고르며. 그녀의 손에는 연필심과, 바키트의 쪽지 두 장이 쥐여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15일 동안 씻어도 지워지지 않았던 연필 가루가 손금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녀는 그 손을 바지에 거칠게 문질렀다. 검은 얼룩이 바짓자락에 번졌지만, 손금의 가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밖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천산의 밤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매서웠다. 그녀는 그 바람 소리 속에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복도에서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빗장이 천천히 풀리는 소리.

그녀는 숨을 들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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