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피의 서약
햇볕이 작렬하는 3월의 오후였다. 아코수아는 마을 우물가에서 물통을 머리에 이고 천천히 걸었다. 스물세 살의 그녀는 또래보다 어깨가 좀 더 좁았고, 손가락 마디는 카사바 농사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허벅지에 달라붙은 것은 낡은 왁스 프린트 천이었다. 땀에 젖은 천이 걸을 때마다 살갗에 들러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아코수아, 또 네가 물을 길어?”
옆집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아코수아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보이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답할 기운조차 아꼈다. 어머니는 지난달부터 허리 통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여덟 살 난 여동생 에시는 학교에 갈 돈이 없어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학교라면 에시가 유일하게 반짝이던 장소였다. 담임 선생은 에시가 수학에 재능이 있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들은 날 밤, 아코수아는 에시 몰래 눈물을 닦았다. 등록금을 낼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코코아 농장에서 쓰러진 건 4년 전이었다. 우기 직전, 가장 무더운 오후였다. 아버지가 코코아 나무 아래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왼쪽 팔을 가슴에 붙인 채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졌다. 동료들이 달려갔을 때 아버지의 입술은 이미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을 보건소에는 혈압계조차 고장 나 있었고, 진통제라고 달랑 준 것은 유통기한이 3년 지난 아스피린이었다. 아크라 병원까지 가는 구급차 비용은 그들 가족의 6개월 수입과 맞먹었다. 어머니가 마을 이장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그날 밤, 아버지는 거실에 깔아둔 매트리스 위에서 사흘째 의식 없이 숨만 가쁘게 쉬다가 새벽 4시경에 조용히 숨을 거뒀다. 마지막 숨을 내쉬는 소리는 마치 낡은 풀무가 마지막 바람을 뱉어내는 것 같았다.
이후 가족의 무게는 조용히 아코수아의 어깨를 짓눌렀다. 스물셋의 어깨뼈는 그 무게를 견디느라 밤마다 쑤셨다. 그녀는 그것에 익숙해졌다. 통증조차 일상이 되면 더 이상 불평할 대상이 아니었다.
낡은 판잣집에 도착하자 에시가 현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배고픔으로 눈두덩이 퀭했다. 눈꺼풀 밑으로 푸르스름한 실핏줄이 비쳤다. 아코수아는 말없이 물통을 내려놓고, 아침에 삶아둔 얌 조각을 건넸다. 에시의 작은 손이 음식을 움켜쥐었다. 손톱 밑에 흙이 껴 있었다.
“언니, 오늘 아주머니가 찾아왔었어.”
아코수아의 눈썹이 움직였다. 손가락으로 에시의 땋은 머리를 정리해주며 조용히 물었다. 땋은 머리 사이로 비듬이 보였다. 에시는 비듬약을 살 돈조차 없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삶이었다.
“어떤 아주머니?”
“잘 모르겠어. 엄마랑 이야기했어. 향수 냄새가 진짜 진했어. 꽃향기 같았어.”
아코수아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담요를 허리까지 덮은 채 누워 있었다.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통증 때문에 밤새 뒤척인 흔적이 눈 밑에 어둡게 깔려 있었다. 방 안에는 오줌통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아코수아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바싹 말라 있었다. 입술 가장자리에 하얀 침이 말라붙어 있었다.
“아베나라는 여자가 왔었단다. 아크라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래. 유럽으로 일하러 갈 젊은 여자들을 구한대.”
아코수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을 벽에 기대어 어머니를 내려다봤다. 벽의 진흙이 말라서 갈라진 틈 사이로 바깥의 빛이 한 줄기 새어 들어왔다.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목소리에 기대라고 부르기엔 너무 지친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식당 일이래. 이탈리아라고 했던가. 거기서 2년만 일하면 집도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대. 에시도 학교에 보낼 수 있고.”
이탈리아. 아코수아에게 그 단어는 먼 옛날 학교에서 보았던 지도책 속 한 점에 불과했다. 그 지도책은 도서관에 단 한 권뿐이었고,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아이들이 돌려봤다. 지중해의 푸른 물, 깔끔한 식당에서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일하는 자신의 모습. 머릿속에 그림이 스치자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은 사치였다. 사치는 희망보다 빨리 사람을 무너뜨리는 법이었다.
“그런 돈을 쉽게 벌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아베나는 마을 사람이야. 우리 사촌 마웨나도 2년 전에 같은 방식으로 독일에 갔대. 지금은 돈을 잘 벌어서 집도 새로 지었다더라.”
어머니의 손가락이 담요 가장자리를 잡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면서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 긴장은 희망인지 불안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아코수아는 깨달았다. 어머니는 이미 마음속으로 허락했다는 것을. 단지 딸의 입에서 동의를 받아내고 싶을 뿐이라는 것을. 그것은 허락이 아니라, 죄책감을 반으로 나누려는 행위였다.
그날 밤, 아코수아는 잠들지 못했다. 옆에 누운 에시가 잠꼬대를 했다. “학교… 학교…”라는 말이었다. 모기장 밖에서 날벌레들이 날았다. 낡은 매트리스는 눅눅했고, 땀이 스며든 자리에서 곰팡이 냄새가 올라왔다. 어둠 속에서 에시의 숨소리만 가쁘게 방 안을 맴돌았다. 아코수아는 어둠을 응시했다. 눈앞에 펼쳐진 암흑은 어떤 가능성도, 어떤 미래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직 지금 이 가난만이 실재했다. 카사바 농사로는 하루 3세디도 벌기 어려웠다.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장작 패기와 물 긷기뿐이었다. 에시가 자신처럼 굳은살을 키우며 자라는 건 원치 않았다. 그 생각이 밤새 그녀의 가슴뼈 안쪽을 긁었다.
다음 날 정오, 아베나가 찾아왔다.
아베나는 4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짙은 보라색 프린트 원피스를 입고, 손목에는 금팔찌가 번쩍였다. 금은 진짜였다. 도금한 가짜와는 광택이 달랐다. 손톱은 길고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고, 젤 네일 마감이 반들거렸다. 그녀의 몸에서는 코코아 버터 향이 났지만, 그 아래로 값비싼 유럽산 향수의 흔적이 숨어 있었다.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 전체가 바뀌었다. 마치 가난한 공간이 스스로 움츠러드는 듯했다.
아베나는 아코수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시선은 이마에서 시작해 가슴, 허리, 다리 순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마치 무게를 달듯이. 치아가 드러났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그 시선의 무언가가 아코수아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얘가 아코수아로군. 마웨나가 말한 대로 참 단단해 보이는구나. 엉덩이도 실하고.”
단단하다는 말이 아코수아의 귀에 박혔다. 그것은 상품을 평가하는 단어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말이 적은 사람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생존 방식이었다. 아베나는 앉아서 얌을 한 입 베어 물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식사 중에 손가락을 핥는 버릇이 있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식당이야. 팔레르모라는 항구 도시인데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지. 가나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대. 특별한 기술은 필요 없어. 카사바 반죽할 줄 알고, 푸푸 만들 줄 알면 충분해. 네가 하는 그 정도면 최고 수준이야.”
아코수아는 어머니를 흘끗 보았다. 어머니는 벽에 기대앉아 아베나의 말을 숨죽여 듣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빛이 낯설었다. 평소의 지치고 무기력한 눈이 아니라, 무언가에 홀린 듯 반짝이고 있었다. 아베나가 건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았다. 그 모습은 아코수아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월급은 얼마나 되나요?”
아코수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베나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이가 드러났다.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입술에 바른 립글로스가 번들거렸다.
“한 달에 800유로야. 가나 세디로 환산하면… 지금 환율로 계산하기도 어렵겠다. 네가 평생 여기서 카사바 심어서 벌 돈보다 훨씬 많을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1년이면 네 가족이 평생 벌 돈을 버는 거야.”
800유로라는 숫자가 공기 중에 떠올랐다. 아코수아는 무의식적으로 속으로 계산했다. 에시의 학비 1년에 200세디, 어머니의 약값 한 달에 50세디, 지붕 수리비 300세디. 800유로면 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도 남았다. 그녀의 침묵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베나는 그 침묵의 균열을 보았다. 그 균열 사이로 자신의 손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아코수아가 입을 열자 아베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마치 수백 번 해본 대사처럼.
“말하기 전에 알아둘 게 있어. 이동하는 데 드는 비용, 서류 처리 비용, 숙소 비용. 이 모든 게 빚이야. 총 4,000유로 정도. 네가 이탈리아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하면 월급에서 조금씩 갚아나가면 돼. 보통 2년이면 충분히 청산할 수 있어. 이건 모든 해외 취업이 다 그런 거야. 특별한 게 아니라고. 우리 마웨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갔고, 지금은 독일에서 차도 한 대 뽑았어.”
4,000유로.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돈의 무게가 방 안을 압도했다. 공기가 달라졌다. 아코수아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계약서도, 비자 절차도, 그 어떤 법적 보호 장치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무지가 아베나의 손에서 카드로 바뀌고 있었다.
“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아베나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아코수아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시선의 거리가 좁혀졌다. 코코아 버터 냄새가 더 진해졌다.
“의식을 치러야 해. 마을의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했어. 마웨나도 그랬고.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방식이니까.”
아코수아의 등줄기 근육이 경직됐다. 척추를 타고 무언가 차가운 것이 올라갔다.
“어떤 의식인데요?”
“우리 조상들의 방식이야. 길을 떠나기 전에 몸과 영혼을 지키는 거지. 주술사님이 직접 집전하셔. 네가 약속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는 거야.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도망치지도 않고,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겠다는 약속. 약속을 지키면 아무 문제 없어. 축복이 따라오지. 하지만 약속을 어기면…”
아베나는 말을 끊었다. 그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했다. 아코수아의 머릿속에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약속을 어긴 자의 혀가 검게 변했다는 이야기, 밤마다 조상의 영혼이 나타나 가슴을 누르는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 온 가족이 원인 모를 열병으로 차례로 죽어갔다는 이야기. 그 모든 것이 엄마의 목소리로 전해졌고, 할머니의 목소리로 확증되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자. 오늘 밤은 푹 쉬어.”
아베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의 원피스가 바닥을 스치며 먼지를 일으켰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아코수아는 아베나가 건넨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 안에는 아크라까지 가는 버스 티켓과 약간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봉투를 만지는 그녀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작은 떨림이 손목까지 전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종이봉투가 아니었다. 동생의 학비이자 어머니의 약값이었고, 동시에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서는 입장권이었다.
떠나기 전날 밤, 아코수아는 마을 뒤편 바오밥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저녁노을이 코코아 농장 너머로 붉게 번지고 있었다. 바오밥나무는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할머니의 할머니도 이 나무 아래에서 놀았다고 했다. 그 거대한 나무껍질을 손으로 만지며 아코수아는 생각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스물세 해를 살았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아크라는 기껏해야 버스로 세 시간 거리였지만, 그녀에게는 지구 반대편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뒤에서 다가왔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였다. 걸음걸이마다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아코수아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늙음을 실감했다. 마흔일곱이었지만, 이미 일흔처럼 걷고 있었다.
“에시 걱정은 하지 마라. 내가 어떻게든 돌볼 테니까.”
아코수아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올려다봤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이미 작별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 속에는 슬픔보다 더 많은 무언가가 있었다. 딸을 떠나보내는 죄책감, 그러나 동시에 그 죄책감을 덮을 정도로 절실한 생존의 갈망. 그 두 가지가 얼굴에 뒤섞여 있었다.
“의식… 꼭 해야 하는 거예요?”
어머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건 우리를 지키는 거야. 네 아버지도 살아계실 때 항상 조상들에게 기도드렸어. 그게 우리의 방식이란다. 무시하면 안 돼. 절대로.”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동시에 공포가 담겨 있었다. 아코수아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Juju는 종교이자 법이었고, 때로는 경찰보다 더 강력한 구속력이었다. 어길 경우 닥칠 저주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었다. 그 믿음은 모유처럼 체내에 스며들어 있었다. 어머니도 그 믿음 속에서 자랐고, 아코수아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가 Juju에 대해 품었던 의심은 아직 씨앗조차 되지 못했다. 그것은 기껏해야 불편한 기분일 뿐이었다.
새벽 5시, 아베나의 낡은 세단이 마을 입구에 멈췄다. 아코수아는 작은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차에 올랐다. 배낭 안에는 옷가지 두 벌, 에시가 그린 그림 한 장, 그리고 어머니가 손수 싸준 카사바 빵이 들어 있었다. 에시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아코수아는 동생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깨우지 않았다. 울면 떠나기 더 힘들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울지 않더라도 충분히 힘들었다.
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창밖으로 카사바 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붉은 흙먼지가 차량 뒤로 솟구쳤다. 아베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말을 걸었다. 차 안에는 고음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스펠 음악이 울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찬송가 가사는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의식 장소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야. 아크라로 가기 전에 들를 거야. 복잡한 건 없어. 주술사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무서워할 것도 없어. 우리 마웨나도 다 겪은 일이니까.”
아코수아는 손바닥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깍지를 꼈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그녀는 유년 시절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조상의 영혼, 부서진 약속에 대한 징벌, 맹세를 어긴 자의 몸을 갉아먹는 병, 밤에 찾아오는 그림자. 그 이야기들은 단순한 무서운 동화가 아니라 그녀가 자란 세계의 실제 규칙이었다. 누구도 그 규칙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마치 중력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차는 좁은 샛길로 접어들었다. 밀림이 양옆에서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나뭇가지가 차 지붕을 스치며 갈퀴처럼 긁는 소리를 냈다. 길은 점점 더 좁아졌고, 하늘도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침내 작은 공터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나무와 진흙으로 지은 낮은 건물이 서 있었다. 벽에는 동물의 뼈와 깃털이 매달려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뼈들이 서로 부딪혀 건조한 소리를 냈다. 땅에는 붉은 액체가 흩뿌려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바짝 마른 핏자국이었다. 그 위로 개미들이 줄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아베나는 시동을 끄며 말했다. 차 열쇠를 빼는 손놀림이 무심했다.
“도착했어. 긴장 풀어. 아무것도 두려워할 일 없으니까.”
건물 안은 어두웠다. 작은 창문 하나로만 빛이 들어와 바닥의 흙먼지를 비췄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공기 중에는 타고 남은 허브 냄새가 진동했다. 어떤 것은 달콤했고, 어떤 것은 썩은 고기 같았다. 두 냄새가 뒤섞여 구역질을 불러일으켰다. 어딘가에서는 쥐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천장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내려앉았다.
주술사는 중앙에 앉아 있었다. 예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얼굴에는 부족 문양의 흉터가 깊게 패여 있었다. 뺨에서 이마까지 이어지는 켈로이드 흉터는 어린 시절 의례적으로 새겨진 것이 분명했다. 눈동자는 탁한 회색으로 흐릿했지만, 초점은 정확히 아코수아에게 맞춰졌다. 머리에는 독수리 깃털로 만든 관을 쓰고 있었고, 깃털 끝은 닳아서 앙상했다. 목에는 조그만 가죽 주머니 여러 개를 엮은 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주머니마다 무언가가 들어 있어 불룩했다. 가죽 냄새와 함께 썩은 내장 냄새가 풍겼다. 그의 앞에는 나무로 조각된 형상들, 양철 그릇에 담긴 검은 액체, 뼈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뼈 조각들 중 하나는 사람의 손가락뼈처럼 가늘었다.
“무릎을 꿇어라.”
목소리는 바닥을 기어오는 듯 낮고 느렸다. 아코수아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흙바닥의 냉기가 무릎뼈를 통해 올라왔다. 바닥은 눅눅했다. 그 차가운 습기가 얇은 천을 뚫고 살갗에 닿았다. 그녀의 호흡이 짧아졌다.
주술사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살피더니, 작은 칼을 집어 들었다. 날이 빛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칼날에는 오래된 녹과 말라붙은 검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아코수아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어깨가 귀 쪽으로 올라붙었다.
“손을 내밀어라.”
아코수아가 오른손을 내밀자 주술사는 재빠르게 그녀의 검지 끝을 찔렀다. 바늘에 찔린 듯한 통증이 아니라, 더 깊고 서늘한 감각이었다. 칼날이 살을 가르자 진홍색 피가 방울져 나왔다. 피는 생각보다 빨리 솟아올랐고, 주술사는 그 피를 양철 그릇에 받았다. 피가 그릇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이어서 작은 가위로 그녀의 머리카락 한 줌을 잘랐다. 잘린 머리카락이 그릇 속으로 떨어졌다. 검은 곱슬머리가 피에 잠겼다.
“손톱도.”
아코수아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베어진 손톱 조각들이 그릇에 추가되었다. 살갗과 손톱이 분리되는 감각이 소름을 돋게 했다. 주술사는 그 모든 것을 검은 액체와 섞으며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트위어로 추정되는 언어였다. 단어들이 빠르게 이어지면서 하나의 음악처럼 변했다. 섬뜩한 음악이었다. 아코수아는 단어 몇 개만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피’, ‘맹세’, ‘죽음’, ‘영혼’, ‘저주’.
혼합물이 준비되자 주술사는 그것을 작은 나무 인형의 머리에 부었다. 검은 액체가 인형의 얼굴을 타고 내려가 가슴까지 적셨다. 인형은 사람 형상이었고, 가슴 부분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아코수아는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날카로운 도구로 파낸 글자였다. 그 인형은 이제 더 이상 나무 조각이 아니었다. 자신의 피와 머리카락과 손톱이 스며든 존재, 자신의 생명 일부가 저 안에 갇혀 있었다.
“이제 맹세해라.”
주술사의 탁한 눈동자가 아코수아를 응시했다. 그 눈은 거의 보이지 않을 텐데도 정확히 그녀의 눈을 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뒤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네가 받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너는 도망치지 않는다. 신고하지 않는다. 배신하지 않는다. 이 맹세를 어기면, 네 영혼이 마르고 네 육신이 썩을 것이다. 병이 네 몸을 안에서부터 갉아먹을 것이다. 네 어머니와 네 동생에게도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들의 피가 물처럼 쏟아질 것이다.”
아코수아의 입술이 바싹 말랐다. 목구멍이 조여왔다. 침을 삼키려 했지만 입 안이 모래처럼 말라 있었다. 방 안의 공기가 숨통을 조여왔다. 그녀의 갈비뼈 안쪽에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반드시 따라야 한다. 말해라. 맹세한다고. 네 목소리로 직접.”
아코수아는 주술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바닥에 놓인 자신의 피와 머리카락과 손톱이 섞인 인형으로 향했다. 검은 액체가 천천히 흙바닥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제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자신의 일부가 빠져나갔고, 그 일부는 낯선 노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맹세합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목 안쪽에서 긁어낸 소리였다. 이어서 더 크게 반복해야 했다. 주술사가 고개를 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도망치지 않고, 신고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맹세합니다.”
주술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은 닭 한 마리를 들어 올렸다. 닭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날개를 퍼덕이며 발버둥 쳤다. 깃털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닭의 울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한 번의 빠른 손놀림으로 닭의 목이 잘렸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아코수아의 인형 위로 쏟아졌다. 따뜻한 피였다. 그 온기가 인형을 적시고 흙바닥으로 번져갔다. 피가 그녀의 맨발에도 튀었다. 발가락 사이로 따뜻하고 끈적한 액체가 스며들었다. 비릿한 냄새가 확 올라왔다. 피 비린내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구역질이 목까지 치밀었지만 그녀는 참았다. 닭은 몇 초 동안 다리를 경련시킨 뒤 움직임을 멈췄다.
“의식은 끝났다. 너는 이제 맹세의 사슬에 묶였다. 어기지 마라. 저주가 너를 찾을 것이다.”
주술사는 인형을 조심스럽게 천으로 감싸 자신의 옆에 놓았다. 인형은 그의 소유가 되었다. 아코수아의 일부는 이제 그 어두운 방에 영원히 갇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태양이 눈부셨다. 아코수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몇 시간 동안 어둠 속에 있었던 사람처럼 빛이 낯설었다. 눈이 따가웠다. 눈물이 찔끔 고였다. 아베나는 차 옆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가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휴대폰 액정 화면에 번호만 저장된 연락처가 떠 있었다.
“끝났어? 별거 아니지?”
아코수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자신의 검지 끝에 난 작은 상처를 내려다봤다. 피는 이미 말라붙어 검붉은 딱지가 생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 무언가가 남았다.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자신의 몸 일부가 저 어두운 방 안에 남겨졌다는 느낌, 이제 자신이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이 내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그 감각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차는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려 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풍경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진흙 오두막 대신 시멘트 건물이 들어서고, 카사바 밭 대신 간판이 늘어선 상가들이 나타났다. 길가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중국산 플라스틱 제품들을 쌓아놓은 노점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크라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베나는 핸들에서 한 손을 떼어 아코수아의 무릎을 가볍게 두드렸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어 축축했다.
“긴장하지 마. 이제 시작일 뿐이야. 처음에는 좀 낯설고 힘들겠지만, 적응하면 괜찮을 거야. 다른 여자들도 다 그렇게 했어.”
“다른 사람들은… 몇 명이나 있나요?”
아코수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그녀는 창밖을 보며 물었다.
“아크라에 지금 열 명 정도 있어. 너처럼 유럽으로 갈 준비를 하는 중이지. 일부는 벌써 몇 달째 기다리고 있어. 서류 절차라는 게 좀 까다로워서 말이야.”
몇 달째. 아코수아는 창밖을 응시했다. 아크라 외곽의 슬럼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골판지와 함석으로 만든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길가에는 고인 물이 검게 썩어가고 있었다.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가 공기 중에 자욱했고, 아이들은 신발도 없이 진흙 바닥을 뛰어다녔다. 도시의 빈민가는 그녀의 마을보다 훨씬 더 처절해 보였다. 익명성 속에서 가난은 더 잔인해 보였다.
차는 슬럼가를 지나 상업지구로 접어들었다. 높은 빌딩, 네온사인, 길거리 음식 노점들. 모든 것이 분주했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로 벤츠와 도요타가 지나다녔고, 길거리에서는 케밥과 졸로프 라이스를 파는 행상인들이 고객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마침내 차는 주택가의 낡은 2층 건물 앞에 멈췄다. 이 지역은 상업지구에서 조금 벗어난, 한때 중산층이 살았으나 지금은 방치된 동네였다. 창문에는 철창이 쳐져 있었고, 녹슨 철창 틈으로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현관문은 두꺼운 철제였고, 문틀은 페인트가 벗겨져 나무가 드러나 있었다.
“여기야. 네가 있을 숙소.”
아베나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아코수아는 작은 배낭을 가슴에 안고 따라 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랜 차 이동 탓인지, 의식의 충격 탓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건물의 철문이 안에서 열렸다.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에서는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30대 중반, 덩치가 좋고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어깨가 문틀에 닿을 듯 넓었고, 목 근육이 두꺼웠다. 하얀 민소매 셔츠에는 땀 얼룩이 번져 있었다. 그는 아코수아를 훑어보았다. 그 시선은 이마에서 시작해 입술, 가슴, 허리, 그리고 다리로 내려갔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평가의 시선이었다. 가축 시장에서 소의 치아와 옆구리를 살피는 상인과 같은 눈빛이었지만, 더 노골적이고 더 개인적이었다. 입꼬리가 한쪽만 살짝 올라갔다.
“새로 온 아코수아야. 방 안내해줘.”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옆으로 비켰다. 아코수아는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는 좁고 어두웠다. 바닥 타일은 금이 가 있었고,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벽에는 곰팡이가 검게 피어 있었다. 어디선가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울음소리였다. 2층에서 나는 것 같았다. 소리는 작고 억눌려 있었지만, 절망이라는 단어를 소리로 바꾸면 바로 그런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아코수아는 2층 창문 너머로 어떤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2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볼이 홀쭉했다. 그녀는 아코수아를 잠시 응시했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 눈에는 더 이상 호기심도, 동정도, 연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 남은 눈이었다. 아코수아는 그 눈을 오래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사내는 복도 끝 방문을 열었다. 작은 방이었다. 침대 하나와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침대 시트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베개에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몇 올 붙어 있었다. 벽에는 이전에 이 방에 머물렀던 누군가가 남긴 손톱자국이 여러 개 나 있었다. 창문에는 방충망도 없이 녹슨 철창만이 덧대어져 있었다.
“짐 풀어. 내일부터 일이야.”
사내는 그 말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아코수아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스프링이 오래되어 몸이 푹 꺼졌다. 배낭을 끌어안은 채 그녀는 방 안을 둘러봤다. 벽지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고, 천장 모서리에는 거미줄이 쳐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쓰레기 더미와 타이어를 태우는 연기, 그리고 전선에 걸린 낡은 신발 한 짝이 보였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렸다. 둔탁하고 무거운 소리였다. 이어서 자물쇠가 채워지는 기계음이 복도를 타고 전해졌다. 쇠가 쇠에 맞물리는 소리,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사내가 현관문을 밖에서 한 번 더 당겨 확인하는 소리까지. 그 모든 소리가 벽을 타고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크라의 첫날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방 안의 전구는 깜빡였고, 전압이 불안정했다. 깜빡일 때마다 방 안의 어둠이 더 짙어졌다. 철창 너머로 길거리 노점의 불빛이 간신히 새어 들어왔고, 그 빛이 벽에 누런 그림자를 드리웠다. 바깥에서는 오토바이 경적 소리, 어딘가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하이라이프 음악, 술 취한 남자들의 고성이 뒤섞여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음들은 철창을 통과하면서 희미해졌다. 방 안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더 컸다. 아코수아는 배낭을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검지 끝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피의 맹세는 이미 그녀의 몸 안에 뿌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