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사막으로 납치된 꿈
마닐라 외곽의 판자촌은 7월의 열기 속에서 썩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골판지와 함석 조각을 덧대어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길바닥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고여 악취를 풍겼다. 하수구에서는 썩은 생선 비린내와 설익은 망고 껍질 냄새가 뒤섞여 올라왔고, 그 냄새는 밤이 되어도 빠지지 않았다.
리자 산토스는 골판지 지붕 아래서 잠든 동생 미겔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8살짜리 남동생의 피부는 그녀의 손바닥을 통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열은 사흘째 내리지 않았다. 미겔은 얇은 면 시트 위에서 뒤척이며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땀방울이 그의 관자놀이에서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리자는 찬물에 적신 수건을 꺼내 동생의 이마에 올려두었다. 수건은 금세 미지근해졌다.
병원에 데려가야 했다. 진료비 500페소. 그녀의 주머니에는 지금 80페소밖에 없었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월급 6,000페소는 집세 2,000페소와 어머니 혈압약 값 1,500페소를 빼면 생활비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녀는 동생의 붉게 달아오른 볼을 바라보며 손톱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눌렀다. 통증은 그녀가 지금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었다.
어머니는 부엌이라기보다 싱크대 하나와 가스버너 한 개가 전부인 구석에서 카사바를 삶고 있었다. 삶아진 카사바의 눅눅한 김이 좁은 공간을 채웠다. 어머니의 손은 거칠게 갈라져 있었고, 손가락 마디는 오래된 관절염으로 굽어 있었다. 그녀의 허리는 50대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휘어 있었다.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한 뒤, 그녀는 세탁소와 식당을 전전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그 대가로 그녀의 몸은 남들보다 10년은 더 늙었다.
리자는 어머니의 굽은 등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26년. 그녀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죽던 해에 모든 꿈은 접어야 했다. 편의점, 세탁소, 시장 잡화점. 그녀가 거친 일자리들은 모두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주었고, 그마저도 항상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금이 간 저가형 스마트폰 화면에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리자 산토스 씨 맞나요? 저는 마닐라 에이전시의 마리벨이라고 합니다. 혹시 두바이 가사도우미 일자리에 관심 있으세요?”
두바이. 리자는 그 이름을 듣자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두바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저 텔레비전에서 본 높은 빌딩과 화려한 쇼핑몰, 그리고 분수대가 있는 호텔 로비의 이미지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을에서는 이미 여러 여성들이 중동으로 일하러 떠났고,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소식이 끊긴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일인데요?”
“부유한 현지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거예요. 월급은 2,000디르함, 우리 돈으로 3만 페소 정도예요. 숙식은 제공되고, 계약은 2년이에요. 고용주 쪽에서 항공료랑 비자 비용도 다 내주고요. 계약 끝나면 필리핀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표도 줘요.”
3만 페소. 리자의 손가락이 핸드폰을 더 꽉 움켜잡았다. 그녀의 현재 월급 6,000페소와 비교하면 정확히 5배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숫자들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3만 페소면 미겔의 병원비를 내고도 남고, 어머니의 허리 치료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미겔의 학교 등록금까지 낼 수 있었다. 어쩌면 판자촌을 떠나 조금 더 나은 동네로 이사할 수도 있을지 몰랐다.
“왜 저한테 연락을…? 제가 구직 신청서를 낸 적이 있었나요.”
“산토스 씨가 예전에 마닐라 시청에 제출한 해외 취업 지원서를 저희가 봤거든요. 영어도 하시고, 어린 동생도 돌봤으니까 가사 경험도 있으시고. 조건에 딱 맞아요.”
리자는 기억을 더듬었다. 1년쯤 전, 마을 회관에서 해외 취업 설명회가 열렸을 때 작성한 서류가 있었다. 그때는 아무 연락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전화가 온 것이다.
“관심 있으시면 내일 사무실로 한 번 와주세요. 자리가 금방 차니까 빨리 결정하시는 게 좋아요.”
전화가 끊기고, 리자는 어두워진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슴속에서는 희망과 불안이 뒤엉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3만 페소라는 숫자가 그녀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머니는 말없이 카사바를 접시에 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엄마, 두바이에서 일하는 건 어때.”
어머니는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오래된 피로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외국은 위험하다.”
“하지만 마을에서도 몇 명 갔잖아. 다들 돈 보내고 있고.”
“몇 명은 돌아오지도 못했어.”
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곳에 남아 있는 것도 또 다른 종류의 위험이었다. 미겔이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삶. 어머니가 허리를 움켜잡고 신음해도 약 한 봉지 제대로 사지 못하는 삶. 그 삶이 과연 안전한 삶인가.
그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밤새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오후, 리자는 마닐라 시내의 낡은 상가 건물 앞에 섰다. 건물 외벽은 때가 낀 회색 타일로 덮여 있었고, 1층에는 문을 닫은 지 오래된 빵집이 있었다. 그녀는 좁은 계단을 올라 3층으로 향했다. 복도에는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고, 벽에는 곰팡이 자국이 번져 있었다.
‘마리벨 인터내셔널 리크루트먼트’라는 간판이 붙은 사무실 문을 열자, 예상보다 더 초라한 광경이 펼쳐졌다. 책상 세 개와 낡은 플라스틱 의자 몇 개, 그리고 벽면 가득 붙은 사진들이 전부였다. 사진들은 두바이의 호텔, 쇼핑몰, 해변, 그리고 밝게 웃는 필리핀 여성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 사진들 아래에는 “당신의 꿈을 이루세요!”라는 문구가 무지개색 글씨로 인쇄되어 있었다.
마리벨은 40대 중반의 필리핀 여성이었다. 그녀는 반짝이는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고, 목에는 인조 진주 목걸이가 세 겹이나 걸려 있었다. 그녀는 리자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미소에는 영업 사원 특유의 과장된 친밀감이 배어 있었다.
“리자 씨, 와줘서 고마워요! 커피 한 잔 할래요? 여기 필리핀 원두예요.”
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벨은 플라스틱 컵에 인스턴트 커피를 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말솜씨는 능숙했다. 두바이의 안전한 환경, 높은 임금, 가족을 필리핀에서 초청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그녀는 마치 여행사 직원처럼 두바이의 장점들을 나열했다.
“고용주는 아주 좋은 분이에요. 알 막툼 가문의 먼 친척인데, 대저택에서 살고 있어요. 가족은 네 명이고, 집은 정말 아름다워요. 수영장도 있고, 정원도 있고, 리자 씨는 거기서 자기 방도 따로 쓰게 될 거예요.”
“알 막툼 가문이면… 그 유명한 지배 가문 말이에요?”
“맞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믿을 만한 집안이에요. 리자 씨 같은 착한 분이 가면 분명히 잘 될 거예요.”
리자는 마리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미소는 완벽했고, 그녀의 말은 매끄러웠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말을 할 때면 그녀의 시선이 리자의 눈이 아니라 이마나 코끝을 스치듯 지나갔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시선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리자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생각을 애써 무시했다.
“계약서는 언제 쓰나요?”
“출국 직전에 써요. 일단 서류 준비부터 해야 하니까, 오늘 신청서랑 여권만 맡겨주세요. 비자 신청에 필요하거든요.”
마리벨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가락에는 반짝이는 큐빅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리자는 가방에서 여권을 꺼냈다. 필리핀 공화국 문장이 박힌 부르고뉴색 여권이었다. 그녀는 여권을 손에 쥐고 잠시 망설였다. 이것은 그녀가 가진 유일한 신분증명서였다. 이것 없이는 그녀는 누구도 될 수 없었다.
마리벨의 손이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재촉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리자는 여권을 마리벨의 손에 올려두었다. 여권이 그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마치 다리 위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강물에 떨어뜨린 듯한 상실감이 그녀를 스쳤다. 그러나 마리벨은 그 여권을 자연스럽게 서류 봉투에 넣으며 말했다.
“현명한 선택이에요, 리자 씨. 두바이는 당신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요.”
보름 후,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출국장 앞은 인파로 붐볐다. 리자는 작은 여행 가방 하나를 손에 쥐고 서 있었다. 가방 안에는 옷가지 몇 벌, 어머니와 미겔의 사진이 담긴 봉투, 그리고 성모 마리아 상본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마리벨이 건넨 서류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그 안에는 비자와 항공권, 그리고 고용 계약서 사본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 그 서류들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따라왔다. 그녀의 굽은 허리가 출국장 형광등 아래서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리자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거칠었고, 손바닥에는 오래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몸 조심하고, 돈 보내지 않아도 되니까 건강하게 있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 안에는 슬픔도, 걱정도 담겨 있었지만, 그 감정들을 표현할 여유조차 그녀에게는 없어 보였다. 가난은 사람에게서 눈물을 흘릴 힘마저 앗아가는 법이었다.
“걱정하지 마요, 엄마. 두 달만 일하면 미겔 병원에도 보낼 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 허리도 치료하고.”
리자는 어머니를 한 번 더 끌어안았다. 어머니의 체취는 낡은 비누와 카사바 냄새가 뒤섞인 익숙한 향이었다. 그녀는 그 냄새를 오래 기억하려 애쓰며 어머니를 놓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출국장으로 걸어갔다. 돌아보면, 그녀는 아마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옆자리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통통한 볼과 동그란 눈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연방 한숨을 쉬고 있었다.
“혹시… 두바이로 일하러 가시는 거예요?”
리자가 물었다. 젊은 여성은 반가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이름은 조이예요. 23살이에요. 언니도 가사도우미로 가는 거예요?”
“응. 나는 리자야. 조이 씨는 어떤 집으로 가는데?”
“나도 정확히는 몰라요. 에이전시에서 부유한 집이라고만 했어요. 알 막툼 가문이랑 연결된 곳이래요.”
알 막툼 가문. 리자는 그 이름을 마리벨에게서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조이도 같은 에이전시를 통해 가는 것일까. 그녀가 물으려는 순간, 조이가 먼저 말을 이었다.
“저는 약간 무서워요. 인터넷에서 두바이로 간 사람들 이야기를 좀 찾아봤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진짜 좋은 집에서 일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별로 안 좋은 이야기도 있고.”
“어떤 이야기인데.”
“여권을 빼앗겼다든지, 월급을 못 받았다든지, 밖에 못 나가게 했다든지… 근데 그건 나쁜 에이전시를 통해서 간 사람들 이야기고, 저는 검증된 에이전시라서 괜찮을 거예요.”
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필리핀에서 중동으로 간 여성들 중 일부는 실제로 노예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뉴스가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법이었다.
9시간 후, 비행기는 두바이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리자는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뻗은 사막의 황금빛 모래, 그리고 그 위로 솟아오른 유리 마천루들. 그 풍경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낯설고,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출국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마리벨이 말한 고용주가 아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아랍 남성이 그녀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은 덩치가 컸고,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리자가 다가가자, 그들 중 한 명이 짧게 말했다.
“리자 산토스? 차 이쪽입니다. 따라오세요.”
그들은 리자의 가방을 받아들고 앞장섰다. 리자는 조이와 마지막 눈인사를 나누고 그들을 따라갔다. 조이는 다른 팻말을 들고 서 있는 다른 남성들에게 안내되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검은색 SUV가 대기하고 있었다. 뒷좌석 문이 열렸고, 리자는 차에 올랐다.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무겁게 들렸다. ‘철컥.’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리자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문 손잡이를 만져보았다. 잠금 장치가 걸려 있었다.
차는 두바이 시내를 빠져나와 외곽으로 향했다. 번쩍이는 마천루들이 점점 멀어지고, 길 양옆으로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저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는 보행자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직 고급 세단과 SUV만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가 멈춘 곳은 그중에서도 특히 큰 대저택 앞이었다. 하얀 대리석 외벽이 오후의 햇빛을 반사해 눈이 부셨다. 3층 높이의 본채와 양옆의 별채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둘러싼 3미터 높이의 담장. 정원에는 야자수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중앙에는 대리석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화려했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리자는 그 화려함 속에서 이상한 냉기를 느꼈다. 담장이 너무 높았다. 창문에는 모두 철제 격자가 붙어 있었다. 정원과 외부를 연결하는 대문은 두꺼운 철제였고, 그 옆에는 보안 카메라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은 저택이라기보다 요새에 가까웠다.
현관문이 열리고 인도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리자를 훑어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너, 새로 온 필리핀 애지? 따라와. 마담이 기다리고 있어.”
리자는 그 여성을 따라 대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더욱 화려했다. 광택이 나는 대리석 바닥에 무게가 수백 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크리스털 샹들리에, 벽에는 아랍어 서예가 금박으로 새겨진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에어컨이 실내를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그 차가움은 어딘지 모르게 인공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가 안내된 곳은 이 화려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부엌 옆 작은 복도를 지나 직원용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계단은 좁고 가팔랐으며, 벽에는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져 있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눅눅해졌고, 곰팡이 냄새가 점점 진해졌다.
지하 1층 복도 끝에는 작은 방 하나가 있었다. 방은 협소했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창문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삐걱거리는 녹슨 철제 침대와 얼룩진 나무 서랍장이 가구의 전부였다. 벽 한쪽에는 곰팡이 자국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고, 에어컨은 설치되어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공기는 눅눅하고 무거워서 숨 쉬기가 어려웠다. 방 안에는 오래된 땀 냄새와 소독약 비슷한 화학 약품 냄새가 뒤섞여 배어 있었다.
“여기가 네 방이야. 짐 풀고 10분 후에 부엌으로 와. 마담이 오실 거야.”
인도인 여성은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리자는 침대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랍장 위에는 이전에 이 방을 썼던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낡은 머리끈 하나, 그리고 영어로 적힌 성경 구절이 적힌 쪽지 한 장이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리자는 그 쪽지를 손에 쥐고 잠시 바라보았다. 글씨는 여성의 것으로 보였고, 연필로 여러 번 덧쓴 흔적이 있었다. 이 방을 썼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왜 자신의 성경 구절을 이 방에 두고 갔을까.
그녀는 쪽지를 조심스럽게 접어 자신의 가방 속 성모 마리아 상본 옆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10분 후, 부엌으로 올라갔다.
부엌은 넓었고, 최신식 주방 기구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대리석 조리대 위에는 수입산 식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랍 여성이었다. 마담 파티마. 그녀는 화려한 디자이너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손가락에는 여러 개의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으며, 손목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그녀의 눈은 날카로웠고, 그녀의 입술은 얇았다.
마담 파티마는 리자를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시장에서 물건의 품질을 확인하는 구매자의 눈빛과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리자의 얼굴, 어깨, 허리, 다리를 차례로 스치며 내려갔다. 리자는 그 시선 속에서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평가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네가 리자? 나는 마담 파티마라고 해.”
그녀의 영어는 악센트가 강했지만 분명했다.
“네 여권은 내가 보관할 거야. 안전하게 금고에 넣어둘 테니까 걱정하지 마. 계약서는 내일 줄게. 오늘은 일단 부엌 청소부터 시작해.”
“죄송하지만, 계약서를 먼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리자의 질문에 마담 파티마의 눈매가 살짝 좁아졌다. 그녀는 잠시 리자를 응시하다가 입술을 올렸다. 그 미소는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마치 말을 안 듣는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주인의 표정이었다.
“계약서는 준비되는 대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한 가지 더.”
마담 파티마는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의 키는 리자보다 작았지만, 그녀가 풍기는 권위는 공간을 압도했다. 그녀의 향수 냄새가 리자의 코를 찔렀다. 진하고 달콤한 향이었다.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밖에 나갈 일이 없어. 필요한 건 우리가 다 제공해. 쇼핑도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고, 외출이 필요하면 먼저 나한테 허락을 받아야 해. 네가 일하는 동안 바깥출입은 잊어버리는 게 좋아. 여기는 네가 알던 세상이 아니니까.”
그 말을 남기고 마담 파티마는 부엌을 떠났다. 그녀의 구두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리며 점점 멀어졌다.
리자는 그 말의 무게를 천천히 음미했다. 바깥출입은 없다. 여권은 그녀의 손에 없다. 외출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녀는 이제 이 대저택 안에 갇혀 있었다. 마리벨이 말했던 ‘자기 방’도, ‘자유로운 생활’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날 밤, 리자는 지하 방의 침대에 걸터앉아 사방의 콘크리트 벽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벽은 차갑고 축축했다.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거친 시멘트 알갱이들이 만져졌다. 환풍구는 천장 근처에 작게 나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공기는 전혀 순환되지 않았다. 방 안의 온도는 섭씨 30도를 훌쩍 넘는 듯했다. 그녀의 등에서는 땀이 줄줄이 흘러내려 얇은 면 셔츠를 흠뻑 적셨다.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 이 집에서 만난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마담 파티마. 그녀의 남편인 알리 씨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들의 두 자녀인 10대 소년과 소녀는 계단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리자를 보자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 인도인 요리사인 수니타, 스리랑카 출신의 청소부 두 명, 방글라데시 출신의 정원사 한 명. 그들 모두가 이 지하 층의 작은 방들에서 살고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그녀는 수니타와 짧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수니타는 이곳에서 2년째 일하고 있었다. 리자가 월급에 대해 묻자, 수니타는 피곤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월급은 계약 끝날 때 한꺼번에 준대. 그 전에는 필요한 것만 달라고 해야 해. 신발이 떨어지면 신발을 사달라고 하고, 비누가 떨어지면 비누를 사달라고 하고. 그렇게 살아.”
“그럼 지금까지 월급을 하나도 못 받은 거예요?”
“받긴 받았는데… 정확히 얼만지 모르겠어. 그들은 장부를 보여주지 않아. ‘빚’이라는 게 있대. 우리가 여기 오는 데 든 비행기 값, 비자 값, 소개료. 그걸 갚기 전까지는 월급에서 공제된대. 그게 언제 다 갚히는지도 몰라.”
리자는 그 말을 들으며 속이 메스꺼워졌다. 마리벨은 항공료와 비자 비용을 고용주가 부담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비용이 리자의 ‘빚’으로 둔갑해 있었다. 그녀는 이 함정의 구조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자, 리자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시트 위에 엎드렸다.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방 안의 공기는 갈수록 후텁지근해졌고, 곰팡이 냄새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서랍장 위의 성모 마리아 상본을 집어들었다. 어머니가 선물한 작은 나무 조각상이었다. 그녀는 상본을 가슴에 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바깥에서는 사막의 밤바람이 대저택의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바람 소리는 낯설었고, 공기는 건조했다. 그녀는 필리핀의 눅눅한 열기와 코코넛 냄새가 나는 바람을 떠올렸다. 어머니와 미겔이 잠들어 있을 작은 판잣집을 떠올렸다. 그곳은 가난했지만, 적어도 그녀는 거기서 자유로웠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고,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리자는 숨을 멈추었다. 발소리는 복도를 따라 천천히 다가왔다. 무거운 남성의 발소리였다. 발소리는 그녀의 방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리자는 손에 쥔 성모 마리아 상본을 더 꽉 움켜잡았다. 그녀의 심장은 귀에 들릴 만큼 크게 뛰고 있었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발소리는 다시 멀어졌다.
리자는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문을 바라보았다. 문에는 안쪽에서 잠글 수 있는 자물쇠가 없었다. 그녀는 이제 알았다. 이 방은 그녀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대저택 안에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고, 그녀의 신변은 전적으로 고용주 가족의 자비에 달려 있었다.
그녀는 상본을 베개 옆에 두고 다시 누웠다. 지하 방의 공기는 여전히 눅눅했고, 환풍구 너머로는 고용주 가족의 저녁 식사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접시 부딪히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마담 파티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벽을 타고 내려왔다. 그 소리들은 그녀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녀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세계, 그녀에게는 오직 이 지하 방만이 허락된 세계였다.
리자는 손바닥으로 땀에 젖은 시트를 움켜잡았다. 그녀는 내일이면 마주하게 될 계약서를 생각했다. 마담 파티마가 보여줄 계약서는 마리벨이 약속했던 그것과 완전히 다른 내용일 가능성이 컸다. 그녀의 직감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여권도 없고, 돈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는 이 낯선 사막의 땅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