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그림자 한국편 #004] 욕망의 대가 – 1화: 균열

1화: 균열

서아는 도산공원 앞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옆에는 방금 전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사온 종이백이 놓여 있었다. 단단한 광택의 쇼핑백은 그 자체로 하나의 트로피였다. 이탈리안 레더 특유의 은은한 향이 테라스의 봄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그 냄새만으로도 취할 것 같았다.

커피보다 먼저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새로 산 샤넬 클래식 플랩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각도를 열 장은 찍은 모양이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고르는 데만 15분을 썼다. 필터는 네 가지를 거쳤다. 자연광을 살리는 베이지 톤, 그리고 화사함을 강조하는 약간의 채도 보정. 마지막으로 손톱 끝에 바른 네일 폴리시 컬러가 핸드백 가죽과 조화를 이루는지 여덟 번은 확대해서 확인했다.

“토요일 오후의 작은 선물. 요즘 일한 나에게 보상이란 이런 것.”

해시태그를 다는 손가락이 신중했다. #샤넬 #클래식백 #데일리명품 #자기계발 #보상소비. 열여섯 개를 달고 나서야 게시 버튼을 눌렀다. 30초도 지나지 않아 ‘좋아요’ 알림이 하나둘 울리기 시작했다. 짧은 진동 하나하나가 그녀의 척추를 타고 오르는 작은 전율이었다.

“와, 언니 진짜 부자다. 나도 저 가방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서아야 요즘 완전 잘 사는 느낌이야. 부럽다.”

댓글을 읽는 서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커피잔을 입술 가까이 가져가며 아메리카노의 쌉싸름함을 음미했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지켜보고 부러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댓글에 짧게 답장을 남기며 마치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카페 한편 벽면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몽클레르의 봄 신상 재킷,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를 허리에 두른 독특한 스타일링, 그리고 전월에 할부로 장만한 까르띠에 시계까지. 서아의 몸에는 신용카드 결제 알림음이 옷처럼 걸쳐져 있었다. 하지만 거울 속 그녀는 그 어떤 잡지 모델보다 빛나 보였다. 적어도 그녀 자신의 눈에는 그랬다.

그녀의 휴대폰이 다시 한번 울렸다. 이번에는 카드사에서 온 문자였다. “이번 달 일시불 이용금액 870만 원, 할부 잔여 금액 1,200만 원입니다.” 서아는 메시지를 읽자마자 밀어서 삭제했다. 그리고 이내 카페 직원을 불러 말했다.

“저기, 여기 티라미수도 하나 추가할게요. 그리고 옆 테이블 친구들 주문 제가 계산할게요.”

우연히 마주친 대학 동기 두 명이 그녀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서아는 그들에게 가장 환한 미소를 보내며 손을 흔들어 답했다. 그녀의 손목에서 까르띠에 시계가 봄 햇살에 반짝였다. 동기들의 시선이 그 반짝임에 머무는 것을 확인하며, 그녀는 만족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바로 이런 순간, 이런 인정받는 순간을 위해 그녀는 돈을 쓰는 것이었다.

서아의 하루는 소비로 시작해서 소비로 끝났다. 아침에는 압구정로데오에서 신상 지갑을 샀고, 점심에는 한남동의 핫한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저녁에는 지인들을 모아 강남의 한 고급 와인바를 통째로 예약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소비의 기록으로 가득 채워졌다.

“오늘은 내가 쏠게. 다들 편하게 마셔.”

친구 여섯 명과 함께한 자리에서 서아는 와인 리스트를 펼쳐들며 가장 비싼 글라스 와인을 서슴없이 골랐다. 병당 30만 원이 넘는 와인을 시키며 그녀는 말했다. “이 와인이 지금 소믈리에들 사이에서 진짜 핫하대.” 그녀는 와인 맛을 잘 몰랐다. 단지 이 와인의 가격과 희소성이, 이 순간 그녀의 가치를 가장 잘 증명해 줄 거라고 믿었을 뿐이다.

“야, 서아 너 요즘 진짜 잘나간다. 무슨 일 했길래?”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질문에 서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사실 그녀의 수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견 기업 마케팅팀에서 근무한 지는 3년 차. 월급은 세금을 제하면 230만 원 정도였다. 부모님이 생활비를 조금 보태주고 있었지만, 그녀의 소비 규모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계산은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서아가 미리 준비해 둔 고급 초콜릿이 개인당 하나씩 놓여 있었다. 하나에 4만 원짜리, 벨기에 왕실 인증을 받았다는 수제 초콜릿이었다. 친구 한 명이 초콜릿을 한입 베어 물며 감탄했다.

“와, 이거 진짜 부드럽다. 서아야 너 진짜 센스 있다.”
“너네 다음 주에 내 생일 파티 오는 거지? 장소는 내가 잡을게.”

서아는 와인잔을 살짝 기울이며 여유 있게 말했다. 생일 파티 장소로 이미 강남의 한 럭셔리 풀빌라 대관을 알아보고 있었다. 대관료만 300만 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통장 잔고는 이미 마이너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녀의 지갑 속에는 세 장의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고, 그중 두 장은 이미 한도에 도달해 더 이상 긁을 수 없는 상태였다. 마지막 한 장만이 그녀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끈이었다.

“어, 잠깐만. 나 지금 전화 좀.”

와인바를 나온 서아는 건물 뒷편 좁은 골목에 서서 휴대폰을 들었다. 인스타그램 알림은 끊임없이 울려댔지만, 그녀가 지금 응시하고 있는 것은 은행 앱이었다. 잔액 14만 7천 원. 그리고 오늘 저녁 계산해야 할 금액은 대략 50만 원이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녀는 저장된 연락처 중 하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 가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지난번에 광고 봤는데요. 소액대출 가능한가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사무적으로 답했다. “네, 고객님.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서아는 2초 정도의 뜸을 들였다가 대답했다. “일단… 200만 원만요.” 그녀의 목소리는 애써 평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전화를 쥔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출은 예상보다 훨씬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신용등급은 나쁘지 않았고, 직장도 안정적이었다. 사채업자는 서류 몇 장을 확인하고는 바로 다음 날 200만 원을 입금해 주었다. 연이율은 30%. 서아는 계약서의 세부 항목을 거의 읽지 않았다. 지금 당장의 현금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입금 알림을 확인한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또 다른 지출을 계획했다. 생일 파티 풀빌라 예약금 100만 원, 파티에서 입을 드레스 구매 80만 원, 헤어와 메이크업 예약까지. 200만 원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리고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또 하나의 화려한 예고 포스트가 올라왔다.

“다음 주 토요일, 나의 날. 기대해도 좋아.”

좋아요는 빠르게 쌓여갔다. 서아는 그 숫자들을 바라보며 마치 자신이 어떤 특별한 존재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 것은 그녀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그녀가 쏟아낸 돈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생일 파티 당일이 되었다. 풀빌라의 야외 수영장은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되었고, 케이터링으로 준비한 음식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서아는 한 달 전에 맞춰둔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손님들을 맞았다. 드레스의 등 라인이 깊게 파여 있었고, 귀걸이는 스와로브스키의 한정판이었다. 그녀는 완벽했다.

“서아야 생일 축하해! 와, 대박. 진짜 예쁘다.”
“이 풀빌라는 어떻게 알았어? 대박 비쌀 것 같은데.”

칠십 명 가까이 되는 지인들이 그녀의 주위를 에워쌌다. 모두들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며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서아는 그 중심에서 여왕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그녀가 춤을 출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환호성의 이면에는 아무도 모르는 숫자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파티 비용 총합 620만 원. 그중 400만 원은 세 번째 사채업자를 통해 빌린 돈이었다. 처음 빌린 200만 원의 이자는 한 달 만에 60만 원이 붙었고, 그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다른 곳에서 300만 원을 빌렸다. 그리고 이번 파티를 위해 다시 400만 원을 추가했다. 이제 그녀의 총부채는 900만 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서아는 이런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춤추고 웃으며 샴페인을 마셨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수많은 생일 축하 메시지가, 마치 진짜 사랑을 받는 듯한 착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파티가 끝난 후 새벽녘, 그녀는 텅 빈 풀빌라에 홀로 남아 있었다. 조명이 꺼진 수영장은 어둡고 차가운 물만 담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열어 오늘 올라온 자신의 사진들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드레스를 입고 웃고 있는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적어도 그 사진 속에서는. 그런데 그 사진들을 보는 지금 그녀의 눈빛은 공허했다. 그녀는 900만 원이라는 빚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앞으로 조금만 아끼면 돼. 카드값이야 뭐 회사 다니면서 갚으면 된다고.”

그녀는 여전히 합리화하고 있었다. 자신의 소비가 통제 불능의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한 달 후, 서아의 휴대폰이 처음으로 다른 종류의 진동을 울렸다. 발신번호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처음에는 무시했다. 하지만 같은 번호로 일주일 동안 열세 번의 부재중 전화가 쌓였다. 그리고 마침내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서아 씨, 김 실장입니다. 만나서 이야기 좀 해야겠네요. 이자 연체된 지 보름째입니다.”

서아는 그제야 자신이 두 달째 이자를 갚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첫 번째 대출의 이자는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대출까지 겹치면서 한 달 이자만 200만 원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월급으로는 이자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다음 주 월급날에 일부라도 입금하겠습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일부요? 지금 총 연체액이 380만 원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전액 입금해 주시죠. 아니면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서아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시선이 거실 한켠에 쌓여 있는 명품 쇼핑백들로 향했다. 샤넬, 구찌, 루이비통, 프라다. 하나하나가 그녀의 자존심을 증명하기 위해 구매한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화려한 쇼핑백들은 하나의 봉인된 고발장처럼 보였다. 그녀가 무책임하게 휘두른 카드의 결제일이, 드디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금요일, 그녀는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친구들 중 누구에게도 빌릴 수 없었다. 화려한 서아의 이미지가 무너지는 순간,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빚 독촉이 아니라 지인들의 시선이었다. 오후 6시, 회사 건물 앞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뒷좌석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며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서아 씨, 잠시 타시죠.”

남자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옅은 향수 냄새가 났다. 그가 바로 김 실장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그가 불법 사채업자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인상이었다. 서아는 두려움에 몸이 굳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어떤 압도적인 힘을 느끼며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 김 실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아 씨, 우리도 사업입니다. 돈 빌려드리면 갚으셔야죠.” 서아는 고개를 숙이며 간신히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다음 달에는 꼭….” 김 실장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조용히 웃었다. “서아 씨 인스타그램 잘 보고 있습니다. 꽤 화려하게 사시더군요. 그런데 왜 우리 돈은 못 갚는 거죠? 우선순위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그의 말투는 친절했지만, 그 안에는 서늘한 협박이 숨어 있었다. 김 실장은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며 덧붙였다. “아, 그리고 서아 씨 부모님 분당에 사시죠? 부모님 잘 계시던가요? 조만간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려야겠습니다.”

서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님은… 제발… 제가 어떻게든 갚을게요. 제발….” 김 실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핸들을 돌렸다. “다행이네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차는 어두운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차는 강남의 번화가를 지나 점점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가로등 빛이 드문드문한 주택가를 지나자, 낡은 오피스텔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서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녀가 아는 강남의 모습은 화려한 쇼핑몰과 카페뿐이었다. 이런 어두운 뒷골목은 처음이었다.

김 실장은 차를 멈추고 그녀를 4층으로 안내했다. 사무실처럼 꾸며진 작은 공간에는 이미 두 명의 남자가 더 앉아 있었다. 모두 검은 옷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 안에는 커피 냄새와 함께 묘한 화장품 냄새가 섞여 있었다. 침대가 있다는 사실을 서아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방 한편에 놓인 침대는 시트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침대 옆 탁자 위에는 조명과 몇 가지 낯선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자, 앉으세요.”

김 실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서아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소파에 걸터앉자 김 실장은 서류 한 장을 그녀 앞으로 밀며 말했다.

“이자 380만 원, 원금 포함 총채무액은 1,250만 원입니다. 서아 씨가 지금 당장 전액을 갚을 수 있나요?”

서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김 실장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마치 비즈니스 미팅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사업가처럼 말을 이었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서아 씨, 외모 괜찮으시고 몸매도 좋으시네요. 우리 VIP 고객 중에 서아 씨 같은 분을 원하는 분이 계십니다. 한 번 만나는 데 100만 원씩, 이자를 깎아드리죠.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어려운 일 아닙니다. 그냥 저녁 식사하고, 와인 한잔하면서 대화 좀 나누고, 좀 더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에요.”

서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게 무슨… 그런 일은 못 해요. 저는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 김 실장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 그는 소파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천천히 말했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든가. 부모님 집에 찾아가서 이야기해도 되고요. 아니면 서아 씨 회사 대표님께 연락해 볼까요? 마케팅팀 서아 씨가 불법 사채 썼다고 하면 재미있어질 텐데. 아니면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에게 공개할까요? 명품 자랑하던 그 언니의 진짜 모습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교한 독이 되어 서아의 호흡을 조여왔다. 그녀는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며 흐느꼈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김 실장은 그녀에게 티슈를 한 장 건네며 마지막 한 방울의 독을 떨어뜨렸다.

“생각할 시간을 드리죠. 3일입니다. 3일 후에 여기로 다시 오세요. 그때까지 돈을 못 구해 오면… 알죠? 그리고 기억하세요, 서아 씨. 이건 다 서아 씨가 선택한 거예요. 내가 강요한 적 없습니다. 명품 백 살 때 그 카드 긁는 순간, 이미 당신이 선택한 미래예요.”

그 말은 비수처럼 서아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녀는 정신없이 오피스텔을 뛰쳐나와 택시에 올랐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강남의 화려한 불빛들이 이제는 전부 가짜처럼 보였다. 그녀가 그렇게 사랑했던 그 거리, 그 쇼핑몰, 그 카페들이 전부 그녀를 이 낭떠러지로 밀어 넣은 덫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서아는 현관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여전히 그녀의 생일 파티 사진에 ‘좋아요’가 찍히고 있었다. 그 알림들이 이제는 조롱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자신의 피드를 내려보았다. 명품, 레스토랑, 카페, 와인, 호텔, 드레스, 구두, 가방. 모든 사진이 그녀가 저지른 욕망의 증거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통의 문자가 다시 도착했다. 김 실장이었다.
“참, 서아 씨. 혹시 경찰에 신고하거나 도망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누구랑 연결되어 있는지 아직 모르시는 모양인데, 서아 씨 사는 곳하고 부모님 주소 정도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명심하세요.”

서아는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화면에 금이 갔다.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공포는 이미 그녀의 온몸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사랑했던 명품 백 하나가 거실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그 가방을 살 때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여성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가방은 그저 짐승의 덫을 덮고 있던 달콤한 미끼처럼 보일 뿐이었다.

눈을 감자 김 실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3일 후에 다시 오세요. 그리고 이건 다 서아 씨가 선택한 거예요.”

서아는 어둠 속에서 홀로 떨며, 자신의 선택이 불러온 대가의 시작을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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