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완성의 방
그날 이후, 채원의 눈동자에는 희미한 불씨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쿠로사와 레이는 그것을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확인했다. 그녀는 며칠 동안 본당과 별관을 오가며 촬영을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채원의 미세한 변화를 관찰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손가락이 바이올린 현을 누를 때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그다음에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조금 더 빠르고 목적지향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백현오의 초상화를 바라볼 때, 그 눈동자 속에 이전에는 없던 무언가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산이었다.
4-2화에서 채원이 레이와 협력하기로 결정한 이후, 그녀는 매일 밤 처소로 향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단순히 의식을 받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과 귀를 열고,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가 쪽지에 적어 전달한 정보들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정밀해져 갔다. 레이는 그 정보들을 수집하며 지하 구역의 구조도를 거의 완성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레이가 본당 복도에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채원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걸음은 가벼웠고,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레이 씨, 오늘 촬영 있으세요?”
“아니, 그냥 준비 중이야.”
“그럼……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요?”
레이가 주변을 살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여기서 하자.”
채원이 레이의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 완성의 방 문을 봤어요. 마스터가 열쇠로 여는 걸 직접 목격했어요. 그런데…… 그 문이 열릴 때,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어떤 냄새?”
“약 냄새였어요. 그리고…… 썩는 냄새도 조금 섞여 있었어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갇혀 있다는 증거예요.”
레이가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문의 구조는?”
“두꺼운 철문이에요. 겉은 나무로 위장되어 있지만, 안은 철판으로 되어 있어요. 자물쇠는 전자식이 아니라 기계식 열쇠였어요. 마스터가 항상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그 열쇠요.”
“그 열쇠를 복제할 수 있을까?”
“……아마도요. 하지만 그걸 빼내는 게 문제예요. 마스터는 절대 열쇠를 몸에서 떼지 않아요. 잠잘 때도 옆에 두고 자요.”
레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수첩에 무언가를 더 적었다.
“좋아.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그 문 말고, 지하로 통하는 다른 경로는 없어?”
“……있어요. 그런데 위험해요.”
“말해 봐.”
채원이 주변을 다시 한번 살피고,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소 뒤쪽에 있는 숲이 있어요. 거기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는데, 그 우물이 지하 통로와 연결되어 있어요. 예전에 교단이 세워지기 전에 그 자리에 있던 가옥의 지하실로 통한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막혀 있지만…… 제가 어릴 때 그 우물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어요. 깊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 우물 바닥에 철제 해치가 있었어요. 그게 지하로 통하는 문이었던 것 같아요.”
레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우물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줄 수 있어?”
“네. 제가 직접 데려다줄 수 있어요. 하지만…… 밤에만 가능해요.”
“좋아. 오늘 밤, 자정에 숲 입구에서 만나.”
“알겠어요.”
채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녀가 걸어갈 때, 그녀의 어깨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날 밤, 레이는 자정 정각에 숲 입구에 도착했다. 그녀는 검은색 스웨터와 카고 팬츠를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강선과 소형 손전등이 걸려 있었다. 카메라는 이번에는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소형 녹음기와 휴대폰만을 지참했다. 그녀는 그림자처럼 숲속으로 들어섰다. 나무들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달빛은 나뭇잎 사이로 간신히 뚫고 들어왔다. 레이는 그 미약한 빛을 따라 걸었다.
몇 분 후, 그녀는 채원을 발견했다. 채원은 우물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하얀 드레스 대신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교단 밖에서 입는 옷이 아니었다. 레이는 그 옷이 어디서 났는지 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우물로 다가갔다.
“여기예요.”
채원이 우물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우물은 돌로 쌓여 있었고, 이끼가 가득 끼어 있었다. 오래된 흔적이 역력했다. 레이는 손전등을 켜서 우물 안으로 비추었다. 깊이는 약 4미터. 바닥에는 낙엽과 흙이 쌓여 있었지만, 그중에 철제 해치의 손잡이가 보였다.
“내가 내려가 볼게.”
“조심하세요. 해치가 녹슬었을 수도 있어요.”
“걱정 마.”
레이가 우물 가장자리에 앉아 다리를 내리고,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녀의 손은 돌 틈새를 잡았고, 그녀의 발은 우물 벽을 타고 내려갔다. 그녀가 바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해치의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녹슬어서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의 강선을 꺼내 손잡이에 끼우고, 온 힘을 다해 당겼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해치가 열렸다. 그 아래로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열렸어.”
“……들어갈 거예요?”
“응.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올라올 때까지 절대 움직이지 마.”
“알겠어요.”
레이가 손전등을 해치 아래로 비추었다. 그 아래는 좁은 통로였다. 벽은 흙과 돌로 되어 있었고, 천장은 낮았다. 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통로로 들어갔다. 공기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그녀는 몇 분간 걸어가다가, 드디어 끝에 도달했다. 그곳은 철문이었다. 그러나 그 문은 완성의 방의 그 문과 달랐다. 그것은 오래된 나무 문이었고, 자물쇠도 걸려 있지 않았다. 레이는 천천히 문을 밀었다. 삐걱. 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그녀는 낮은 목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여자의 울음소리였다. 그것은 일본어였다.
“도와줘…… 제발…… 누군가 나를 여기서 꺼내줘……”
레이가 손전등을 그 방향으로 비추었다. 그곳에는 세 명의 여성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고, 그들의 손목과 발목에는 묶인 흔적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레이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머리는 짧았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 뺨에는 작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의뢰인이 건네준 사진 속의 여성이었다.
“당신…… 일본인이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레이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쿠로사와 레이야. 네 남편이 보냈어.”
그 순간, 그 여성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두 팔을 레이에게 내밀며 말했다.
“제발…… 제발 저를 여기서 꺼내주세요. 제 딸도…… 제 딸도 여기 있어요……”
레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레이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딸은 어디 있어?”
“저기…… 저기 구석에……”
레이가 손전등을 그 방향으로 비추었다. 그곳에는 소녀가 누워 있었다. 그녀는 열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 있었다.
“걱정 마. 다 데리고 나갈 거야.”
레이가 소녀를 안아 일으켰다. 그녀는 가벼웠다. 마치 깃털처럼. 레이는 그녀를 등에 업고, 다시 일본인 여성의 손을 잡았다.
“여기서 나가자.”
그들이 통로를 향해 걸어갈 때, 레이는 뒤에서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저희도…… 저희도 데려가 주세요…… 제발……”
그들은 한국인 여성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공포와 절망이 가득 차 있었다. 레이는 잠시 멈추었다. 그녀의 계약은 일본인 모녀만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결정했다.
“따라와. 하지만 소리 내지 마.”
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는 그들을 이끌고 통로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빠르고 정확했다. 그들이 우물 아래에 도착했을 때, 레이는 위를 올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한채원 씨.”
위에서 채원의 얼굴이 나타났다.
“레이 씨! 다 찾으셨어요?”
“응. 그런데 네가 위에서 줄을 내려줘야 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올라갈 수 없어.”
“알겠어요. 잠시만요.”
채원이 사라졌다가, 잠시 후 밧줄을 가지고 나타났다. 곧 두꺼운 밧줄을 내려보냈다. 레이는 먼저 일본인 여성을 올려보냈다. 그다음에 소녀를. 그리고 한국인 여성들을 차례로 올려보냈다. 마지막으로 그녀 자신이 올라갔다. 그들이 모두 우물 밖으로 나왔을 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감격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이동하자. 여기서 멀리 떨어져야 해.”
레이가 그들을 이끌고 숲속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달빛을 따라 걸으며, 본당을 등지고 있었다. 그들이 숲을 빠져나와 작은 오솔길에 도착했을 때, 일본인 여성이 레이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 딸이…… 약에 중독되었어요. 그들이 매일 주사를 놓았어요……”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 내가 차를 준비할게.”
레이가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입력했다. 그녀는 이미 대피 경로를 계획해 두고 있었다. 그들이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던 중, 채원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본당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불빛이 하나 켜지고 있었다.
“……레이 씨.”
“알아. 그들이 눈치챘어.”
“어떡하죠?”
“상관하지 마. 너는 우리와 함께 가.”
“하지만 제 엄마가……”
“네 엄마는 그곳에 남기로 선택했어. 너는 선택할 수 있어. 지금.”
채원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본당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그녀의 엄마가 깨어나고 있었다. 조유정은 딸이 사라진 것을 알고, 곧 경보를 울릴 것이다. 채원은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못 가요. 엄마가…… 엄마가 나를 찾을 거예요.”
“그럼 너는 여기서 그들과 함께 싸울 거야?”
“아니요. 하지만…… 적어도 엄마에게 제 선택을 말해야 해요. 그녀가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걸 알려줘야 해요.”
레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씨는 더 이상 희미하지 않았다.
“알았어. 하지만 네가 위험해지면,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채원이 뒤돌아서 본당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은 단단했다. 레이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일본인 모녀와 한국인 여성들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걸음은 빨랐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밤, 레이는 모든 피해자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켰다. 그들은 작은 모텔 방에 모여 있었다. 일본인 여성은 딸을 안고 울고 있었고, 한국인 여성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레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노트북을 열었다.
“타깃(일본인 모녀) 구출 완료. 추가 피해자 2명(한국인)도 함께 구출함. 현재 모두 안전한 장소에 대피 완료. 피사체 A(한채원)는 교단으로 복귀를 선택함.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이전의 굴복과 다름.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진실을 전하기로 결정함. 이는 피사체 A의 심리적 성장으로 판단됨. 차후 그녀의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음.”
그녀는 보고서를 저장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동이 트고 있었다. 본당의 첨탑이 새벽 하늘에 검은 실루엣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 첨탑 아래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자신의 전쟁을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전쟁을 기록하고 있었다. 레이는 그 사실을 기록했다. 그게 그녀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몰랐다. 채원이 본당으로 돌아간 그 순간,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분기점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분기점은 그녀의 선택에 따라 또 다른 결말을 맞을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