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그림자 호르무즈편 #001] 무법의 철판, 멈춰선 카스피호 – 5-2화: 심연의 메아리

[중동의 그림자 호르무즈편 #001] 무법의 철판, 멈춰선 카스피호 – 5-2화: 심연의 메아리

조타실 벽면에 고정되어 있던 구형 비상 방송 시스템의 마이크는 민우의 오일 묻은 손안에서 차갑고 둔탁하게 굳어 있었다. 송신 스위치를 위로 밀어 올리자, 배 전체의 스피커 라인이 연결되며 지르르하는 날카로운 하울링 노이즈가 암흑에 잠긴 카스피호의 전 격실을 찢고 흘러나갔다. 이 기계적인 마찰음은 지하 엔진룸의 습한 열기 속에서 떨고 있던 하급 선원들과, 갑판 위에서 소총을 든 채 사방을 경계하던 무장 감시원들의 고개를 동시에 조타실 방향으로 치켜들게 만들었다. 선장은 민우가 마이크를 쥐어 잡는 모습을 보며 이빨을 보이며 가르릉거렸지만, 턱밑을 사정없이 파고든 소총 총구의 육중한 압박감 때문에 감히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독종 유학생을 노려볼 뿐이었다.

민우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폐부 가득 들어차는 끈적한 소금기와 기름 타는 냄새는 더 이상 그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이 무법의 바다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가 흡수해야만 했던 연옥의 공기였다. 그는 마이크를 입술 바짝 마주 대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 자 한 자를 고요하게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조타실 내부의 두꺼운 목재 패널을 타고 하강하여, 어두운 복도와 격리 선실, 그리고 녹슨 철판 제국의 가장 깊숙한 바닥까지 무겁게 메아리쳤다.

“전 선원과 인턴들은 똑똑히 들어라. 지금 조타실을 장악하고 있던 선장과 그의 무장 사냥개들은 완벽하게 무력화되었다. 1등 항해사는 이미 선교 복도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너희들의 신분증과 여권, 그리고 이 배의 불법 화물 거래 증거가 담긴 진짜 항해 일지는 전부 내 손안에 확보되어 있다. 선장은 조금 전 위성 무전기로 우현의 카르텔 선박에게 거짓 보고를 올렸다. 저들은 발전기 정비 불량으로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20분 뒤에 이 배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기 위해 무장 인원들을 진입시킬 계획이다. 너희가 지금까지 저 위선자들의 가스라이팅에 속아 하루 500mL의 썩은 물을 두고 서로를 밀고하며 버텨온 결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화물 이송이 끝나는 순간, 우리 모두는 호르무즈 해협의 상어 밥으로 수장되거나 사막의 무등록 노예 캠프로 매장되는 것뿐이다.”

민우의 냉철하고도 집요한 폭로는 암흑 속에서 굶주림과 갈증에 신음하던 외국인 선원들의 심장에 거대한 폭탄을 투하한 것과 같았다. 갑판 위에서 소총을 메고 서 있던 남은 두 명의 감시원은 조타실 방송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민우의 목소리를 듣고 경악하여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당황하여 조타실로 통하는 비상 해치를 향해 부츠 굽 소리를 내며 달려오려는 찰나, 민우는 방송 마이크의 송신 버튼을 꽉 쥔 채 다음 전술 명령을 내리쳤다. 가해자들이 심어놓은 공포의 사슬을 역으로 이용하여, 그들이 통제하던 가축들을 사냥개로 바꿔버리는 거대한 심리적 전복이었다.

“갑판 위의 선원들은 들어라. 지금 네 곁에 서 있는 감시원들의 숫자는 고작 둘뿐이다. 저들의 손에 쥔 총탄은 너희 수십 명의 생존을 향한 독기를 막아내지 못한다. 살고 싶다면, 당장 옆에 있는 해치 철봉과 청소용 렌치를 쥐고 저 사냥개들의 사각지대를 에워싸라. 그리고 지하 엔진룸의 기관장님은 들으십시오. 예정대로 보조 발전기의 메인 차단기를 그대로 고정해 두십시오. 저 우현의 카르텔 선박이 암흑 속에서 안달이 나 다가오는 순간이, 우리가 이 사슬을 완전히 끊어내고 육지로 진격할 유일한 기회입니다. 배신자 아구스처럼 살기 위해 동료를 파는 자가 있다면, 그 자 먼저 갑판 아래로 던져버려라.”

방송이 끝나고 민우가 마이크 스위치를 툭 내리자, 조타실 안은 다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암흑의 소용돌이 속으로 가라앉았다. 선장은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쇠파이프 같은 목소리로 저주를 퍼부었다.

“미친 자식… 유학생 네 놈이 선원들을 선동해서 이 배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면 뭐가 남을 것 같나? 우현에 있는 녀석들은 페르시아만 전역에서 사람을 도살하던 진짜 군 출신 브로커들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저들은 당장 이 조타실을 향해 기관총 소통을 퍼부을 거란 말이다! 너와 나, 그리고 저 멍청한 선원들까지 전부 걸레짝이 되어 바다에 처박힐 뿐이야!”

선장의 협박은 구구절절 사실에 기반한 묵직한 두려움이었다. 창밖을 보니 실제로 카르텔 선박의 갑판 위에서 불길한 금속성 마찰음과 함께 중기관총의 총열이 카스피호의 선교 유리창을 향해 수평으로 정렬되는 모습이 외해의 서치라이트 역광 속에서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제한 시간은 이제 고작 15분 남짓. 전력이 복구되지 않으면 상대 배의 포식자들은 주저 없이 파괴의 명령을 내릴 터였다. 그러나 민우는 권총을 쥔 왼손으로 선장의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잡아 유리창 바짝 밀어붙였다. 깨진 틈새로 들어오는 후텁지근한 바닷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선장, 네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어. 나는 이미 찬우가 피떡이 되어 갑판을 기어 다닐 때, 그리고 하루 한 모금의 물을 구걸하며 인간성을 갉아먹힐 때 이미 한 번 죽었어. 지금 내 몸을 움직이는 건 유약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너희 가해자들이 깔아놓은 이 잔혹한 제국을 내 손으로 직접 부수겠다는 지독한 독기뿐이다. 저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저들의 총구 앞에 방패로 서게 되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야. 그러니까 저들이 방당쇠를 당기기 전에, 네 그 오만한 대가리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짜내야 할 거다.”

민우의 목소리에는 단 0.1%의 망설임도 섞여 있지 않았다. 선장은 자신의 이마를 뚫을 듯이 박혀 있는 소총의 차가운 감촉과, 창밖에서 자신을 겨누고 있는 카르텔의 중기관총 사이에서 극단적인 진퇴양난의 공포를 맛보았다. 평범한 복학생의 껍데기를 완전히 찢고 나와 완벽한 포식자의 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민우의 기세 앞에, 이 무법천지를 지배하던 선장의 오만함은 완벽하게 거세되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아래층 갑판 구역에서 쿠당탕탕! 하는 거친 충돌음과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암흑을 뚫고 조타실까지 올라왔다. 민우의 비상 방송을 들은 외국인 선원들이 마침내 생존의 독기를 품고 남은 감시원들을 향해 떼를 지어 들이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서치라이트의 흐릿한 불빛 사이로 수십 명의 노동자가 철봉과 스패너를 치켜든 채 무장 감시원의 소총을 압도하며 어둠 속으로 엉겨 붙는 기괴한 실루엣이 흔들렸다. 탕! 하는 단 한 발의 총성이 허공을 찢었지만, 이내 감시원의 비명과 함께 소총이 철판 바닥을 구르는 둔탁한 소리가 뒤를 이었다. 사슬을 쥐고 흔들던 가해자들의 제국이, 아래에서부터 통째로 무너지며 피비린내 나는 폭주의 결말을 향해 톱니바퀴를 굴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선장의 멱살을 잡은 손에 더욱 단단하게 쇠줄 같은 힘을 주었다. 20분이라는 가혹한 타임라인의 초침은 이제 절반을 지나 파멸의 종착지를 향해 가차 없이 흐르고 있었다. 무법지대의 철판 위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 독종 유학생의 거대한 반격은, 이제 거친 페르시아만의 검은 파도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최종장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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