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용오름의 파편
박살 난 조타실 전면 유리창의 잔해들이 민우가 움직일 때마다 작업화 밑창 아래에서 서늘한 비명을 질렀다. 사각, 사각거리는 그 날카로운 마찰음은 사방을 에워싼 어둠을 뚫고 조타실 벽면에 부딪혀 기괴한 파동으로 퍼져나갔다.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밀폐된 선교 내부의 공기는 이제 열기를 넘어 생지옥의 아궁이처럼 타오르고 있었고, 창문이 깨진 틈새로 사정없이 들이치는 호르무즈 해협의 끈적한 소금 바람은 민우의 찢어진 작업복 사이로 스며들어 등과 어깨에 박힌 유리 파편의 통증을 더욱 극렬하게 부채질했다. 하지만 민우는 신음 한 자락조차 내뱉지 않았다. 그의 신경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 오직 생존과 파멸이라는 두 가지 기계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정교하게 작동하는 독종의 상태로 동결되어 있었다.
그의 발밑에 엎드린 채 목덜미를 조타륜 프레임에 짓눌린 선장은 얼굴 전면에 유리 파편이 박혀 검붉은 피를 흘리면서도, 어둠 속에서 민우의 틈을 노리기 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근육을 미세하게 틀어댔다. 수십 년간 공해상의 무법지대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난민들의 고혈을 짜내며 카르텔의 포식자로 군림해 왔던 거구의 야수였지만, 지금 자신의 등덜미를 가차 없이 짓누르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의 손길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살기 앞에서는 그저 도살을 앞둔 가축처럼 무기력하게 헐떡일 뿐이었다. 민우는 탈취한 자동소총의 크롬 개판을 선장의 척추 중심부에 단단히 박아 넣은 채, 우현 창밖으로 펼쳐지는 피비린내 나는 전황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집요하게 응시했다.
카스피호의 우현 舷側(현측)은 이미 지옥의 입구로 변해 있었다. 무전이 끊기고 배가 암흑에 잠기자 반란을 확신한 상대방 카르텔 물류선의 브로커들이 마침내 정예 무장 침투조(Boarding Party)를 카스피호의 갑판 위로 진입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두 거대한 고철 선박을 연결하고 있던 두꺼운 계류 로프를 타고, 야간 투시경(NVG)과 군용 특수 화기로 무장한 괴한들이 거미처럼 유연하게 카스피호의 난간을 넘어왔다. 저편 선박의 상부에 장착된 대구경 중기관총은 선교 조타실을 향해 여전히 간헐적인 위협 사격을 퍼붓고 있었고, 탄환이 철판 격벽을 뚫고 들어올 때마다 불꽃과 함께 날카로운 도탄음이 조타실 내부의 부서진 계기판들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민우의 비상 방송을 듣고 사슬을 끊기 위해 맨손으로 감시원들을 덮쳤던 외국인 선원들은, 이제 어둠 속에서 최첨달 야간 장비를 갖춘 채 조직적으로 진격해 오는 진짜 도살자들의 군용 부츠 소리 앞에 다시 한번 거대한 공포의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암흑 속에서 적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소음기가 장착된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불꽃과 함께 동료들이 픽픽 쓰러지는 소리가 갑판 전역을 무겁게 짓눌렀다. 유선 인터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늙은 기관장의 거친 숨소리는 이미 절망의 끝에 닿아 있었다.
“유학생! 저놈들은 단순한 선박 감시원 수준이 아니야! 페르시아만 내전에서 사람을 전문으로 죽이던 사설 군사 기업 출신의 브로커들이다! 선원들이 창고 철봉과 스패너를 들고 대항하고 있지만, 빛이 없는 상태에서 야간 고글을 쓴 저놈들의 표적이 되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어! 이대로 3분이 지나면 갑판은 완전한 도살장이 될 거고, 그놈들이 선교 계단을 타고 올라가 네놈의 목을 딸 거다! 당장 결단을 내려야 해!”
기관장의 다급한 호통은 민우의 뇌리를 송곳처럼 찔러왔다. 약속했던 20분의 초침은 이미 무의미해진 지 오래였고, 이제 매 초마다 동료인 찬우의 목숨과 수십 명 선원들의 생사가 지옥의 저울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민우는 흘러내리는 핏빛 땀방울을 거칠게 훔쳐내며 조타실 내부의 부서진 배전반 라인과 바닥에 흐트러진 장비들을 머릿속의 역학 시뮬레이션으로 빠르게 돌렸다. 가해자들이 완벽하게 구축해 놓은 이 무법의 제국을 내부에서부터 송두리째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저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가장 극단적이고 잔혹한 전술적 장기말을 던져야만 했다.
그때 조타실 입구의 두꺼운 철문 너머로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군용 부츠의 둔탁한 압착음이 민우의 예민해진 청각에 걸려들었다. 우현 갑판을 장악한 침투조의 일부가 선교의 심장부인 조타실을 확보하고 선장을 구출하기 위해 상층 데크로 진입한 것이 분명했다. 전술 장갑이 철제 문고리를 부드럽게 감싸 쥐며 돌리는 서늘한 마찰음이 암흑의 정적을 깨고 조타실 내부에 유령처럼 울려 퍼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숨을 사각지대도 없었다. 민우는 선장의 멱살을 움켜잡아 강제로 일으켜 세우며 자신의 소총 노리쇠를 뒤로 끝까지 후퇴 고정했다. 철컥,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깨진 유리창 너머 호르무즈 해협의 검은 바다를 향해 마지막 결전의 서막을 알리는 총성을 예고하고 있었다.
민우는 바닥에 떨어진 감시원의 무전기 채널을 상대 선박의 주파수에 강제로 맞춘 뒤, 송신 버튼을 가물거리는 손가락으로 꽉 눌렀다. 그리고 깨진 조타실 창틀 너머로 선장의 거구를 반쯤 밀어내어 우현의 서치라이트 불빛 아래 과녁처럼 노출시켰다.
“우현의 물류선 브로커들은 똑똑히 봐라. 지금 네놈들이 쏘아대는 중기관총 탄환과 침투조의 총구 앞에 가장 먼저 뚫리게 될 것은 내 몸뚱이가 아니라, 이 배의 소유주이자 네놈들의 거대한 거래 파트너인 선장의 대가리다. 살고 싶다면 당장 사격을 멈추고 갑판 위로 진입한 침투조를 정지시켜라. 만약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단 한 발의 총성이라도 더 들린다면, 나는 이 배의 배수 밸브를 열어 여권 가방과 진짜 항해 일지, 그리고 선장의 심장을 이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깊은 심연 속으로 영원히 수장시켜 버릴 테니까.”
민우의 서늘한 선언이 무전기 스피커와 깨진 유리창 틈새를 타고 페르시아만의 검은 파도 위로 무겁게 퍼져나갔다. 선장은 자신의 가슴을 겨눈 소총의 묵직한 감촉과 창밖의 중기관총 사이에서 극단적인 파멸의 공포를
느끼며, 무전기를 향해 핏대를 세우며 비명을 질렀다. 가해자가 짜놓은 잔혹한 게임의 규칙은, 이제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 독종 유학생 민우의 손에 의해 완벽하게 전장 전체를 집어삼킬 거대한 용오름의 파편이 되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신의 선택은? (최종 분기점)
민우의 선택 – 당신은 어떤 길을 안내하겠습니까?
(※ 선택하신 분기점의 다음 화를 결제하시면, 민우의 잔혹한 운명의 최종장 엔딩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