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마지막 문턱
나빌의 집에서의 한 달이 끝나고, 리자는 다시 알리 씨의 대저택으로 돌아왔다. 검은색 세단이 대저택 정문 앞에 멈추었을 때, 그녀는 차창 너머로 하얀 대리석 외벽을 올려다보았다. 3미터 높이의 담장, 철제 격자가 붙은 창문들, 그리고 현관 위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을 이루는 철창처럼 시야에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어준 것은 수니타였다. 그녀는 리자의 얼굴을 보자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리자의 얼굴은 한 달 전보다 더 수척해졌고,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수니타는 그 눈빛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가방을 받아들었다.
마담 파티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리자를 맞이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장부가 들려 있었고, 그녀의 입술에는 익숙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리자, 돌아온 걸 환영해. 나빌 씨가 네 일에 아주 만족해하셨어. 그래서 우리가 특별히 네 빚을 조금 줄여주기로 했어.”
마담 파티마는 장부를 펼쳐 리자에게 보여주었다. 손가락이 숫자들을 하나씩 짚으며 내려갔다. 21,700디르함에서 1,500디르함이 공제되었지만, ‘재배치 수수료’ 1,200디르함이 추가되어 최종 남은 빚은 21,400디르함이었다. 한 달 동안 나빌의 집에서 견뎌낸 모든 순간들이 불과 300디르함을 줄였을 뿐이었다.
리자는 장부의 숫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굴복할 때마다, 그녀가 다른 집으로 보내질 때마다, 빚은 줄어드는 척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항목을 통해 다시 불어났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어. 나빌 씨가 아예 스폰서십을 자기 명의로 이전하고 싶어 하셔. 그러니까… 네가 그 집으로 완전히 가는 거야.”
마담 파티마의 말은 리자의 귀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스폰서십 이전. 그녀가 나빌의 서재에서 보았던 바로 그 문서의 내용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나빌에게 ‘팔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담 파티마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제가 여기서 더 이상 일하지 않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나빌 씨가 네 남은 빚을 전부 인수하고, 대신 네 스폰서십을 자기 명의로 옮기는 거야. 너한테는 나쁠 게 없어. 새 고용주 밑에서 새 출발하는 거지.”
리자는 마담 파티마의 말을 곱씹었다. 그녀의 빚이 다른 사람에게 ‘인수’된다는 것은, 그녀가 빚과 함께 하나의 상품으로 팔려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이제 알리 씨의 소유도, 마담 파티마의 감시 아래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주인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었다.
“거절할 수 있나요.”
마담 파티마의 미소가 한 꺼풀 사라졌다. 그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거절? 리자,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거야? 너는 우리가 필리핀에서 데려올 때부터 이 모든 비용을 부담했어. 네 빚은 아직 20,000디르함이 넘게 남아 있고, 그 빚을 갚을 능력도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겠어.”
“하지만 나빌 씨 집에서의 한 달은…”
“그 한 달은 네가 빚을 갚는 과정의 일부였을 뿐이야. 그리고 나빌 씨가 네 빚을 인수하겠다고 하는 건 오히려 네게 기회야. 새 집에서 더 잘 대우받을 수도 있고, 빚도 더 빨리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마담 파티마는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Sponsorship Transfer Agreement’라는 제목의 문서였다. 나빌의 서재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문서였다.
“여기 사인만 하면 돼. 복잡할 거 없어. 네가 사인하면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되는 거야.”
리자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서류 양식 틈새에 빽빽하게 박힌 검은 아랍어와 영어 활자들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녀의 손가락은 식탁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마담 파티마는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그녀는 서류를 식탁 위에 남겨둔 채로 거실을 나서며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야. 그때까지 사인 안 하면… 우리도 더 이상 널 보호해줄 수 없어.”
그날 밤, 리자는 자신의 방에 앉아 마담 파티마가 남기고 간 서류를 바라보았다. ‘Sponsorship Transfer Agreement’. 그녀의 이름, 그녀의 여권 번호, 그리고 그녀의 빚 21,400디르함이 거기에 적혀 있었다. 이전 비용은 15,000디르함이었고, 나빌이 알리 씨에게 지불할 금액이었다.
그녀는 서류를 접어 침대 옆 서랍에 밀어 넣었다. 방 안의 공기는 무거웠고, 격자창 틈새로 사막의 건조한 바람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머릿속에서는 수니타가 속삭였던 말들이 깨진 유리 파편처럼 떠돌고 있었다. 오후 3시. 경비 교대 시간. 10분의 빈틈. 그리고 라힘이 구해줬다는 필리핀 대사관의 번호. 그 모든 정보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맴돌며 숨통을 조여왔다.
그때,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리자는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그녀의 방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문고리가 살짝 움직였다.
“리자, 잠깐 얘기 좀 하자.”
알리 씨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알리 씨는 복도에 서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이전과 다른 종류의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주인님, 무슨 일이신지.”
“내일이면 네가 이 집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오늘 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그는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리자는 물러서며 문을 완전히 열어두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와 단둘이 있는 공간을 원하지 않았다. 알리 씨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빌 씨 집에 가면… 여기보다 더 힘들 거야.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거든. 네가 나한테 잘해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말 속에서 위협과 후회가 뒤섞인 무언가를 감지했다. 그는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 했지만, 이제 그 소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만 기억해. 네가 어디에 있든, 너는 여기에 빚을 지고 있어. 그 빚을 갚기 전까지 너는 자유로울 수 없어.”
알리 씨는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리자는 문을 닫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손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잡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리자는 부엌에서 수니타를 만났다. 수니타는 그녀를 보자마자 식료품 저장실로 이끌었다. 좁은 공간 안에서, 그녀는 리자의 손을 꼭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리자, 내가 어제 밤새 생각했어. 너를 이대로 보낼 수 없어.”
“무슨 뜻이에요.”
“내가 전에 말했던 정보, 기억나? 뒷문 경비가 교대하는 금요일 오후. 10분 동안의 빈틈. 그게 오늘이야.”
리자는 수니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동시에 단호함도 있었다.
“수니타 씨, 같이 가요.”
“나는… 나는 아직 안 돼. 나는 여기 빚이 너무 많아. 그리고 내 가족들이 인도에 있어. 나까지 사라지면 그들은…”
“하지만 여기 계속 있으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알아. 하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너라도 가. 오늘 오후 3시. 마담이 외출하고, 경비가 교대하는 시간이야.”
수니타는 리자의 손에 작은 종이 쪽지를 쥐여주었다. 그 쪽지에는 두바이에 있는 필리핀 대사관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 번호는 라힘이 구해줬어. 정원사가 외부인하고 접촉할 기회가 우리보다 많거든. 대사관에 연락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리자는 쪽지를 손에 꼭 쥐었다. 종이는 얇았고, 수니타의 손에서 전해진 땀으로 약간 눅눅했다.
“고마워요, 수니타 씨.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기도할게. 하지만 제발 조심해. 실패하면 지하실 이상의 벌이 기다리고 있어.”
두 사람은 저장실을 나서며 각자의 일터로 흩어졌다. 리자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과 희망이 뒤엉켜 요동치고 있었다.
오후 2시, 마담 파티마는 예정대로 외출했다. 그녀의 검은색 세단이 정원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알리 씨는 서재에 있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 있었다. 대저택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리자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2시 30분. 3시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손은 물속에서 천천히 움직였고, 그녀의 머릿속은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친 그녀는 식탁 앞에 섰다. 마담 파티마가 남겨둔 서류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Sponsorship Transfer Agreement’. 그녀는 의자에 앉아 서류를 바라보았다. 볼펜 한 자루가 서류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시계는 2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5분 후면 경비가 교대하는 시간이었다. 뒷문이 열리는 10분의 빈틈. 그리고 그 후에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다.
그녀는 볼펜을 집어 들었다. 플라스틱 표면은 차가웠고,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세하게 미끄러졌다. 그녀는 서류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고, 사인란에 볼펜 끝을 가져다 댔다. 손끝에 피가 통하지 않아 손톱 밑의 살점이 허옇게 죽어 있었다.
사인을 하면, 그녀는 나빌의 집으로 가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감시 카메라의 붉은 불빛이 깜빡이는 방이 있었고, 문은 안쪽에서 잠글 수 없었다. 나빌의 손은 알리 씨보다 더 무거웠고, 그의 목소리는 더 노골적이었다. 그녀는 그 집에서의 한 달을 통해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인을 하지 않으면, 그녀는 15분 후 뒷문으로 달려가야 했다. 사막의 한복판으로, 맨발로, 아무런 보장도 없이. 실패하면 지하실이 기다리고 있었고, 안젤라처럼 사라질 수도 있었다.
볼펜 끝이 종이에 닿았다. 푸른 잉크가 종이 섬유 위에서 미세하게 번졌다. 그녀의 목구멍은 바짝 말라붙어 침조차 삼키기 어려웠다. 시계 초침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당신의 선택은? (최종 분기점)
대저택으로 돌아왔지만, 완전히 새로운 주인에게 팔려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녀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남아 있습니다.
선택 1: 리자는 결국 가난과 현실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무릎 꿇고 서명한다
선택 2: 리자는 철저히 계산해 둔 10분의 사각지대를 뚫고 사막 밖으로 탈출한다.
(※ 선택하신 분기점의 다음 화를 결제하시면, 리자의 잔혹한 운명의 최종장 엔딩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