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붉은 우물의 비밀
1795년 5월 13일, 새벽 3시. 자바 서부 해안, 카윈 어촌.
붉은 액체가 그들의 발목까지 차올랐다. 안토니오 데 라 크루즈(003)는 우물 바닥에 서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위로는 달빛이 들어오는 우물 입구가 보였다. 작았다. 동전 크기만 한. 그 달빛이 붉은 액체 표면에 부서져 내렸다.
소피아 데 라 크루즈(004)가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녀의 바하이 치마는 붉은 액체에 흠뻑 젖어 있었다. 원래는 흰색이었는데, 지금은 짙은 적갈색. 마치 피에 담근 듯한.
“이 액체… 움직이고 있어.”
소피아가 작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우물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녀가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붉은 액체는 고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천히,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어디로? 우물 바닥에 있는 철문 쪽으로.
안토니오는 철문을 발로 찼다. 녹슨 소리. 문이 안 열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찼을 때,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붉은 액체가 그 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용돌이. 그 소용돌이 속에서 무언가 떠올랐다.
손가락.
잘린 손가락.
소피아가 입을 가렸다. 그녀는 이미 많은 것을 보았다. 르메트르의 기억 속에서 단두대, 잘린 머리, 피바다. 그러나 그것은 기억이었다. 지금 이 순간은 현실이었다. 붉은 액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쇠 냄새, 부패한 내음, 그리고 — 달콤한 향. 방부제? 아니면 다른 것?
“들어가자.”
안토니오가 먼저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붉은 액체가 그를 삼켰다. 소피아가 뒤를 따랐다.
그 안은 좁은 통로였다. 높이는 1.5미터. 그들은 허리를 굽혀야 했다. 벽은 돌로 쌓여 있었고, 돌 틈에서는 붉은 액체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바닥에는 얇은 액체가 깔려 있었고, 그 액체 속에는 — 여러 가지 것들이 떠 있었다.
머리카락. 긴 생머리. 아마도 여자의.
치아. 작은 이. 아마도 아이의.
뼈 조각. 손가락 뼈, 발가락 뼈, 갈비뼈.
소피아는 그것들을 밟으며 걸었다. 뼈가 바닥에서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삭. 마치 가을 낙엽을 밟는 소리. 그러나 낙엽과는 달랐다. 이 소리는 더 깊고, 더 축축했다. 살점이 아직 붙어 있는 뼈.
“여기는… 폐기장이야.”
안토니오가 중얼거렸다.
“네덜란드인들이 실패한 복제품들을 버리는 곳.”
“실패작?”
“응. 001과 002도 아마 여기에 있을 거야. 내 형, 그리고 내 어머니. 그들의 실패작.”
소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걸었다. 앞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통로는 계속되었다. 10분, 20분, 30분. 시간 감각을 잃을 정도로.
벽에는 이상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네덜란드어, 포르투갈어, 자와어, 산스크리트어. 여러 언어가 섞여 있었다. 어떤 글자는 선명했고, 어떤 글자는 시간에 마모되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안토니오는 벽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글자의 감촉. 깊게 파인 것도 있었고, 얕게 스치는 것도 있었다.
“여기 뭐라고 써 있어?”
소피아가 물었다.
“‘호문쿨루스의 탄생.’ 네덜란드어야.”
“호문쿨루스?”
“연금술에서 말하는 인공 인간. 16세기부터 유럽에서 연구된 개념이지. 파라켈수스 같은 연금술사들이 인간을 인공적으로 창조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어. 당연히 실패했지만.”
“그런데 여기서는 성공했어. 우리가 그 증거지.”
“응. 그런데 그 대가는…”
안토니오가 벽에서 손을 떼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붉은 액체가 묻어 있었다. 그 액체는 그냥 액체가 아니었다. 무언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마치 작은 벌레 떼.
그가 손을 털어내려 했지만, 액체는 피부에 달라붙었다. 스며들었다. 그의 손등에 빨간 점이 생겼다. 점점 퍼져나갔다. 정맥을 따라.
“이게… 뭐지?”
“흡수하고 있어. 네 몸에.”
소피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도 같은 상태였다. 붉은 점들이 그녀의 손목을 타고 팔뚝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빨리 가자. 여기에 오래 있으면… 우리도 저렇게 될 거야.”
그녀가 고개를 돌려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 저번에 본 그 손가락들이 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손가락뿐만이 아니었다. 손바닥. 팔. 몸통. 여러 개의 실패작들이 붉은 액체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것은 아직 팔이 자라지 않은 태아. 어떤 것은 눈이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인 기형. 어떤 것은 머리는 인간인데 몸은 개구리처럼 뒤틀린 괴물.
그들은 모두 — 살아 있었다. 숨 쉬고 있었다. 가슴이 움직이고 있었다. 찰싹, 찰싹, 붉은 액체를 뒤집어쓰며.
“움직이고 있어…”
소피아가 뒤로 물러섰다.
“응. 움직여. 그리고 자라.”
“도망쳐.”
그들은 달렸다. 붉은 액체 속을 퍼덕이며. 뒤에서는 찰싹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여러 개의 소리. 수십 개, 수백 개.
언제나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소리.
통로 끝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거대한 철문 앞에 서 있었다. 앞서 3화 마지막에 본 그 문이 아니었다. 다른 문. 더 작고, 더 낡은 문.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안토니오는 자물쇠를 들여다보았다. 녹슬었지만, 튼튼해 보였다. 망치로 내리치면 깨질 것 같지 않았다.
“열쇠는?”
소피아가 물었다.
“없어. 라덴이 안 줬어.”
“그럼 어떻게 들어가?”
안토니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또 다른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번에는 프랑스어.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가 이미 본 문구. 그런데 그 아래에 더 작은 글자가 있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리는 순간, 너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 피에르 르메트르, 1790년.’
“르메트르. 너의 기억을 준 사람.”
“응. 그런데 이 문구… 나는 기억하지 못해. 르메트르의 기억 속에 없었어.”
“그럼 누가 쓴 거지?”
알 수 없었다.
안토니오는 자물쇠를 내려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째에 자물쇠가 부서졌다. 쇳가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철문을 밀었다. 문은 생각보다 가볍게 열렸다.
그 안에는 — 방이 하나 있었다. 작은 방. 석유램프 하나가 켜져 있었다. 방 중앙에는 책상. 책상 위에는 낡은 편지 한 통.
안토니오가 편지를 집어 들었다. 봉투에는 ‘003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것. 프랑스어로.
그가 편지를 펼쳤다. 내용은 이랬다.
“003에게.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네가 선택 B(반항)를 택했다는 뜻이다. 축하한다. 너는 스스로의 규칙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라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준 기술로 딸을 되살리려 할 것이다. 그 결과는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하다.
네가 이 통로를 통과하면, 공장에 도달할 것이다. 그곳에서 너는 005(반 데르 발크)와 마주칠 것이다. 그를 죽이지 마라. 그는 너의 거울이다. 그를 죽이는 것은 네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다.
대신, 그와 대화하라. 네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 소피아를 믿지 마라. 그녀의 기억은 르메트르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
여기서 글자가 끊겼다. 편지의 나머지 절반은 찢겨져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 같았다.
“누가 쓴 거지?”
소피아가 물었다.
“몰라. 하지만 나를 ‘003’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리고 네가 르메트르의 기억을 가진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
“그건 거짓말이야. 내 기억은 진짜야.”
“확신해?”
소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왼쪽 어깨를 만졌다. 세 개의 점. 004. 그녀도 누군가의 복제품. 그녀의 기억도 누군가가 이식한 것.
“어쨌든, 여기 더 있어.”
안토니오가 편지 아래에서 또 다른 종이를 발견했다. 그것은 지도였다. 공장의 내부 구조도. 복제 인간 생산 라인, 기억 이식실, 폐기장, 그리고 — 지휘관 집무실.
“이 지도만 있으면 길을 잃지 않겠어.”
“그런데 이 편지… ‘소피아를 믿지 마라’는 내용은 어떻게 할 거야?”
안토니오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자신이 누군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두려움.
“나는 너를 믿기로 선택했어. 그게 내 규칙이야.”
그가 손을 내밀었다. 소피아가 그 손을 잡았다.
“고마워.”
그들은 방을 나와 다시 통로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더 넓은 길. 높이는 2미터. 그들은 더 이상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 그들이 찾던 것.
통로가 끝나는 지점에, 또 하나의 철문이 있었다. 이번에는 거대했다. 높이 4미터. 너비 3미터. 문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사자와 용이 서로를 물어뜯는 형상.
안토니오가 문을 밀었다. 이번에는 쉽게 열렸다.
그 안에서 그들이 본 것은 — 지옥이었다.
거대한 지하 공간. 천장 높이는 10미터. 천장에는 형광석이 빛나고 있었다. 인공적인 빛. 그러나 18세기 기술로는 불가능한 빛. 네덜란드인들이 어디서这种东西을 얻었는지 알 수 없었다.
바닥에는 수백 개의 유리관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각 유리관 안에는 인간의 형체가 떠 있었다. 붉은 액체 속에 잠긴 채.
어떤 것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남자, 여자, 아이. 눈을 감은 채. 마치 잠든 듯.
어떤 것은 불완전했다. 팔이 두 개가 아니라 세 개. 다리가 뒤집힌 채. 머리가 두 개.
어떤 것은 — 이미 썩고 있었다. 살점이 녹아내리고, 뼈가 드러나고, 그 뼈 위를 붉은 액체 속의 벌레들이 기어다녔다.
소피아가 토할 듯이 몸을 구부렸다. 그녀는 많은 것을 보았지만,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기억 속의 단두대는 깔끔했다. 한 번에 목이 잘렸다.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그러나 여기는 달랐다. 여기는 — 천천히, 고통스럽게, 반복적으로. 실패하면 다시. 다시 실패하면 또 다시.
“이게… 네덜란드인들이 하는 일이야.”
안토니오가 중얼거렸다.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복제 인간을… 실험하는 거야.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딜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 얼마나 잘 복종하는지.”
“왜?”
“글쎄. 아마도… 인간이 신이 되려고 하니까. 아니면 신이 인간을 버렸으니까.”
그들은 유리관 사이로 걸어갔다. 각 유리관 앞에는 작은 명판이 붙어 있었다. 번호와 제조일자, 그리고 실험 결과.
‘001. 1792년 3월 12일 제조. 48시간 후 사망. 원인: 심장 마비.’
‘002. 1792년 6월 5일 제조. 12시간 후 사망. 원인: 정체성 혼란으로 인한 자살.’
‘003. 1792년 9월 1일 제조. 성공. 현재 요새 외부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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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로 그 003이었다. 그는 자신의 유리관을 찾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어 있었다. 그러나 명판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003. 안토니오 데 라 크루즈. 현상태: 활동 중. 주의 필요. 반항 성향 있음.’
“반항 성향 있음.”
소피아가 읽고 비웃었다.
“그들이 너를 이렇게 평가했어.”
“나는 그들의 평가 따위 신경 쓰지 않아.”
안토니오가 유리관을 지나쳤다. 그의 발소리가 텅 빈 공간에 메아리쳤다. 유리관 속의 복제품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부러움? 절망? 아니면 — 구원에 대한 기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지휘관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집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반 데르 발크(005)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안토니오와 똑같았다. 똑같은 눈, 똑같은 코, 똑같은 입. 다른 점이라면 그의 왼쪽 어깨에 세 개의 점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 005.
“들어와, 003. 그리고 004.”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러나 그 차가움 속에는 무언가 있었다. 지친 듯한, 포기한 듯한 어조.
안토니오와 소피아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편지를 봤나?”
“봤어.”
“그렇다면 내가 누군지 알겠지. 나는 005. 너의 복제품.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의 다음 버전. 003 이후에 만들어진 복제 인간.”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네덜란드인들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반 데르 발크가 씁쓸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그랬어. 명령을 따랐지.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아이들을 실험 재료로 바쳤어. 그게 내 임무였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 나는 그들의 도구일 뿐이라는 걸. 그리고 도구는 필요 없어지면 버려진다는 걸.”
그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의 팔에는 수많은 주사 바늘 자국이 있었다. 그 위로 붉은 점들이 퍼져 있었다. 안토니오와 같은.
“그들은 나를 천천히 죽이고 있어. 내 몸에 이식된 기억들을 조작해서,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게 만들고 있어. 곧 나는 006이 될 거야. 아니, 006에게 대체될 거야.”
“그럼 왜 나를 도우려는 거지?”
“나는 너를 돕는 게 아냐. 나는 나 자신을 돕는 거야. 네가 선택 B(반항)를 택했다는 것은, 네가 아직 자유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어.”
반 데르 발크가 서랍에서 열쇠를 꺼냈다.
“이 열쇠는 공장의 모든 문을 열 수 있어. 그리고 여기 지도. 공장의 비상 탈출구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
“대가는?”
“소피아.”
반 데르 발크가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르메트르의 기억을 가진 게 아니야. 그녀는… 네 원본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000. 최초의 인간. 네가 복제된 그 사람.”
안토니오가 소피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게 무슨 뜻이야?”
“뜻? 003, 너는 네 자신의 기억을 복제한 여자를 데리고 다닌 거야. 그녀는 네 어머니도, 네 연인도, 네 누나도 아니야. 그녀는… 너야. 여성 버전의 너.”
안토니오의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그게 사실이야, 소피아?”
소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대답해.”
“몰라…”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몰라. 내 기억은…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르겠어.”
반 데르 발크가 일어났다.
“이제 선택할 시간이야, 003. 나를 믿고 이 열쇠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나를 의심하고 직접 길을 찾을 것인가?”
안토니오는 침묵했다. 그는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반 데르 발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소피아를.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무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거기 서 있는 사람은 — 라덴이었다. 그의 손에는 칼. 그의 옷은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내 딸이… 내 딸이 괴물이 되었어. 네가 준 기술 때문에!”
그가 안토니오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