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그림자 인도네시아편 #001] 녹슨 구원 — 7-4화: 마지막 기록

7-4화: 마지막 기록

자카르타 중앙법원의 복도는 이른 아침부터 취재진과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안디는 증인 대기실의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수첩이 없었다. 석 달 동안 뼈에 새기듯 굴렸던 숫자들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관통당했던 왼쪽 어깨의 상처는 단단한 흉터로 굳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상처를 만지작거리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담당 검사가 피로 가득한 얼굴로 들어왔다.

“안디 씨, 준비되셨습니까?”

“네.”

“법정에 서는 순간, 당신이 저지른 자금 세탁 범죄도 빼도 박도 못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감옥에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안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발걸음은 눅눅한 자카르타의 열기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육중한 법정 문이 열리고 증인석에 서자, 수백 개의 시선이 그의 일그러진 얼굴 흉터로 쏟아졌다. 재판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증인, 성명과 피고인 디안과의 관계를 밝히십시오.”

“안디입니다. 패드포칸 수련원의 전직 재정 관리관이었습니다.”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저는 구루 디안의 지시로 마약 밀매 자금, 정재계 협박 비자금, 그리고 고위 관료들에게 흘러간 뇌물 장부를 관리했습니다.”

안디의 증언이 시작되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명감도, 떨림도 없었다. 시타의 숨통을 끊어놓은 아스파트 마약의 실체, 벽면 그림 뒤에 숨겨진 비밀 금고, 카르텔과의 은밀한 커넥션, 팍 바크리 의원의 대선 자금 세탁 경로까지 장부의 숫자대로 건조하게 읊조렸다. 자신의 손으로 시타의 사유 재산을 디안의 계좌로 밀어 넣었다는 범죄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피고인 디안 측의 변호인이 날카롭게 일어섰다.

“증인은 피고인과 범죄를 공모한 추악한 사냥개에 불과합니다. 법정이 이 자의 일방적인 진술을 신뢰해야 합니까?”

안디는 변호인을 똑바로 응시했다.

“내 말은 믿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검찰청 캐비닛에 들어간 내 자필 기록과 디안의 하드디스크 속 비자금 파일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숫자를 보십시오.”

변호인은 서류를 든 채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일주일 후, 최종 선고 재판이 열렸다. 피고석에 앉은 디안은 더 이상 고결한 흰색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 주황색 수감복을 입은 그의 뺨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고, 매끄럽던 손가락은 초조한 듯 수감복 바지를 거칠게 긁어대고 있었다. 평소의 오만한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검찰은 안디가 목숨 걸고 지켜낸 수첩 사본과 외장 하드의 금융 거래 내역을 결정적 증거로 제시했다. 뒤이어 아스파트 향에 중독되어 영혼을 빼앗겼던 피해 여성들이 차례로 증인석에 섰다. 그들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지만, 지옥의 실체를 분명히 고발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피고인 디안, 성착취 및 상습 마약 투여, 거액의 자금 세탁 혐의로 유죄를 인정함. 징역 20년을 선고한다.”

법정이 술렁이는 사이, 교도관들이 디안의 팔을 붙잡았다. 끌려나가는 디안의 동공에 증오와 분노가 가득 차 안디를 꿰뚫었지만, 안디는 시선을 교도소 버스가 그려진 법정 바닥에 고정했을 뿐이다.

한 달 이내에 패드포칸 수련원은 법적으로 완전히 해체되었다. 팍 바크리 의원을 포함해 장부에 이름이 적혔던 정재계 인사 유력자 12명이 줄줄이 수갑을 찼고, 디안의 방 옆에서 마약에 취해 뒹굴던 관할 경찰서장은 파면 후 구속되었다.

안디는 구치소 독방에서 그 기사가 실린 신문 모퉁이를 덤덤하게 찢어 냈다. 놀랍지도 않았다. 당연한 숫자의 결과였다.

담당 검사가 면회실 철창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디 씨, 공범 기소 절차가 끝났습니다. 결정적 제보와 증언이 참작되어 형량이 대폭 줄었습니다. 징역 1년 6개월입니다.”

“과분하군요.”

안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살 박인 손목을 교도관에게 내밀었다. 차가운 수갑이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채워졌다.

자카르타 외곽 교도소의 독방은 좁고 정적만이 감돌았다. 안디는 하루 대부분을 시멘트 바닥에 앉아 보냈다. 그의 앞에는 교도관이 넣어준 낡은 공책과 모나미 펜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부의 숫자가 아닌, 사람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기록이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여배우 시타가 어떻게 정서적으로 무너졌는지, 디안이라는 악마가 그녀의 약점을 어떻게 파고들어 영혼을 박제했는지,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인간으로서의 발악이 무엇이었는지 낱낱이 적어 내려갔다.

펜을 쥔 안디의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렸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지워져 가던 시타의 진짜 목소리와 멍든 뺨의 질감을 기어이 기억의 무덤에서 파내어 종이 위에 박아넣는 사냥개의 집요함이었다.

작은 철창 틈새로 열대의 서늘한 석양빛이 들어와 공책을 붉게 물들였다. 안디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펜을 멈추지 않았다.

이주일 후, 완성된 두꺼운 공책 뭉치가 봉투에 담겨 담당 검사에게 전달되었다. 시타의 유족에게 보내달라는 짤막한 메모와 함께였다. 안디는 비로소 펜을 내려놓고 장화 자국이 찍힌 독방 벽면에 기댔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끈적한 구정물이 조금씩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수감 생활은 건조하게 흘러갔다. 안디는 다른 죄수들과 말을 섞지 않았고, 운동 시간에도 홀로 교도소 담장 밑 그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장부 대신 책을 읽었고, 가끔 자신의 손바닥 흉터를 관찰했다.

출소를 석 달 앞둔 어느 날, 그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시타의 어머니였다. 삐뚤삐뚤한 자바어 글씨체로 적힌 종이에는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안디 씨, 보내주신 공책을 밤새 읽었습니다. 내 딸이 지옥 속에서도 나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가 그녀의 마지막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에 마른 눈물이 다시 흐릅니다. 죄값을 치르고 나오면, 부디 당신의 삶도 멈추지 마십시오. 고맙습니다.”

안디는 그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얇은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수십억 루피아의 비자금 장부보다 무겁게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접어 수감복 안쪽 주머니, 예전에 수첩을 숨기던 그 자리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주머니 부근이 은근하게 따뜻해졌다.

일년 수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자카르타의 콘크리트 바닥으로 돌아온 안디는 슬럼가 초입에 아주 작은 구멍가게 겸 상담 오피스를 열었다. 예전의 호화 아파트에 비하면 쥐구멍 같은 공간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사설 사회복지사이자 민간 조사관이 되었다. 국가가 외면하고 경찰이 뇌물을 받으며 고개를 돌리는 음지, 사이비 교단에 자식을 빼앗기거나 카르텔의 협박에 시달리는 슬럼가 사람들의 썩은 사연들이 매일 그의 낡은 책상 위로 배달되었다. 안디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이상 수첩을 책장 뒤에 숨기지 않았다.

검사를 통해 출판된 시타의 기록은 자카르타 서점가를 흔들었다. 화려한 여배우의 비극 뒤에 숨겨진 권력층의 추악한 민낯에 대중은 분노했고, 세상은 시타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게 되었다.

오후 가스레인지 위의 주전자가 삐 소리를 내며 끓어올랐다. 안디는 책상 위에 놓인 새 가죽 수첩을 펼쳤다. 첫 페이지의 빈 여백 위로 펜촉을 꾹 눌렀다.

“06/17 – 새로운 의뢰. 슬럼가 3구역, 사이비 단체에 납치된 딸 추적 시작.”

그는 수첩을 탁 소리가 나게 닫았다. 문을 열자 숨이 턱 막히는 자카르타의 매연과 강렬한 햇빛이 그의 일그러진 흉터를 정면으로 비추었다. 안디는 흉터 진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낮게 미소 지었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었다.

이제 진짜 그의 기록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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