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구덩이의 선택
손목시계 초침이 12를 지나고 있었다. 3분 남았다.
조셉은 의자에 묶인 채 눈을 떴다. 컨테이너 벽에 걸린 등유 램프가 그림자를 흔들었다. 문 옆에 선 두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삽과 곡괭이는 바닥에 내려져 있었지만, 그들의 손은 이미 새로운 밧줄을 꼬고 있었다.
재킷 안은 비어 있었다. 바인더는 엘리야가 가져갔다. 주머니 속 신도 명단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손목시계와, 헛간 베개 밑에 숨겨둔 수첩뿐이었다.
2분.
‘굴복하면 살 수 있다.’ 엘리야의 말이 고막에 맴돌았다. 에스더도 살 수 있다고 했다. 로다도. 이곳을 떠날 수는 없겠지만, 목숨은 붙어 있을 거라고.
조셉은 손목을 비틀어 밧줄의 강도를 시험했다. 삼베가 살을 파고들었다. 피가 배어나왔다. 빠져나갈 수 없었다.
1분.
기도실 쪽에서 희미한 합창이 들려왔다. 입회식이 아직 진행 중이었다. 신도들은 침묵 속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입을 열지 않고 목울대만 울리는 그들의 노래는 바람 소리 같았다.
30초.
눈을 감았다. 에스더의 얼굴이 떠올랐다. 간호사 유니폼. 사진 속 미소. 그리고 로다의 떨리는 손. 바오밥나무 아래서 분필로 썼던 글씨. ‘나도 언니가 있었다. 사고라고 들었다. 하지만 사고가 아니었다.’
눈을 떴다. 10초.
입을 열었다. “엘리야를 불러.”
문 옆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첫 번째 남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두 번째 남자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빗소리가 잠시 컸다가 작아졌다.
문이 다시 열렸다. 엘리야의 흰 로브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결정했습니까.”
조셉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손목에서 피가 났지만, 목소리는 단단했다.
“거절한다. 나는 네 서약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엘리야의 입매가 비틀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웃음이 아니었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놀라움인지, 분노인지 분간할 수 없는 표정이 1초간 유지되다가 사라졌다.
“그래. 그것이 당신의 선택이라면.”
엘리야가 손가락을 튕겼다. 두 남자가 조셉의 밧줄을 풀었다. 풀어준 것이 아니었다. 의자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였다. 조셉은 바닥에 쓰러졌고, 남자들은 그의 양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두 번째 선택은 이렇습니다. 지하 벌방으로 끌려가서, 멸망의 날까지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것.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동생도, 로다도 거기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가 함께하니 외롭지는 않겠군요.”
엘리야가 돌아섰다. 그의 발소리가 컨테이너 바닥을 울렸다. 문 앞에서 멈추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마지막으로 말했다.
“데려가라.”
남자들은 조셉을 컨테이너 밖으로 끌고 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진흙 바닥이 미끄러웠다. 발이 바닥에 끌리며 고랑을 만들었다.
기도실 입구를 지나갔다. 천막 안에서는 여전히 입회식이 진행 중이었다. 엘리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우리는 한 명의 배교자를 처단합니다.” 신도들의 고개가 숙여지는 소리가 공기 중에 느껴졌다. 박수도, 환호도 없었다. 오직 침묵 속의 복종만이 있었다.
농장 뒤편. 바오밥나무가 어둠 속에서 뼈처럼 서 있었다. 그 너머로 땅을 파서 만든 계단이 보였다. 지하 벌방. 구덩이.
쇠문이 열렸다. 녹슨 철제 경첩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계단 아래서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올라왔다. 흙내음과 배설물 냄새가 뒤섞인 악취.
남자 하나가 조셉의 등을 밀었다. 계단을 굴러떨어졌다. 진흙 바닥에 어깨가 부딪혔다. 쇠문이 닫혔다. 빛이 사라졌다.
어둠. 완전한 어둠.
숨소리만 들렸다. 자신의 숨소리.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숨소리.
“조셉?”
목소리였다. 말이었다. 침묵의 서약이 깨진 공간. 로다의 목소리였다.
“여기야.”
조셉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손을 뻗자 차가운 벽이 닿았다. 흙벽이었다. 손바닥으로 더듬어가자 누군가의 어깨에 닿았다. 가늘었다. 로다였다.
“에스더는?”
“에스더는 여기 없어. 그녀는 벌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갔어. 이제 나 혼자야.”
눈이 서서히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환기구 하나가 천장 가까이 뚫려 있었고, 그 틈으로 희미한 달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벙공간은 작았다. 가로 세로 2미터 남짓. 높이는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바닥에는 짚이 깔려 있었고, 구석에는 물통 하나와 나무 팻말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벽에는 분필로 무언가 쓰여 있었다. 글씨였다. 여러 사람의 글씨. 서로 다른 필체.
‘나는 살아 있다.’
‘순종.’
‘엄마.’
‘숨 쉬는 것이 죄인가.’
조셉은 벽에 쓰인 글씨들을 더듬어 읽었다. 분필 가루가 손끝에 묻어났다. 어떤 글씨는 크고 또렷했고, 어떤 글씨는 거의 지워져 가고 있었다. 오래된 것과 최근의 것이 겹쳐 있었다.
로다가 말했다. “여기 갇혔던 사람들이 쓴 거야. 몇 달 동안 갇힌 사람도 있었어. 어떤 사람은… 여기서 죽었어.”
“어떻게.”
“굶어서. 아니면 연기 때문에. 환기구를 막고 밖에서 불을 피우면 연기가 여기로 들어와. 벌의 방식이야.”
로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너무 오래 갇혀 있었기에, 이제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를 붙들고 있는 듯했다.
“내 언니도 이 벽에 글을 썼어. 저기… 저 구석에. ‘미안하다’라고. 나한테 한 말인지, 자기 자신한테 한 말인지… 아직도 몰라.”
조셉은 로다의 어깨를 잡았다. 가늘었지만, 떨리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이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더 두려웠다.
“로다, 들어줘. 우리는 여기서 나가야 해.”
“나갈 수 없어. 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어. 환기구는 쇠창살이 박혀 있고.”
“내가 방법을 찾을게. 하지만 네가 도와줘야 해.”
로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벽에 쓰인 글씨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희미한 글씨였다. 거의 지워져 가고 있었다.
‘구덩이에서도 별은 보인다.’
누군가 이곳을 지나가며 남긴 문장이었다. 조셉은 그 글씨를 한참 응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팻말을 집어 들었다. 분필로 한 줄을 썼다.
‘별을 기다리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손목시계는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았다. 빗소리가 그쳤다 다시 시작되기를 두 번. 어쩌면 하루가 지났을 수도 있고, 이틀일 수도 있었다.
조셉은 환기구를 조사했다. 천장 가까이 뚫린 작은 구멍. 쇠창살이 네 개 박혀 있었고, 그 너머로 하늘 조각이 보였다. 밤에는 별 하나가 보였다. 로다가 말한 대로였다.
쇠창살은 녹슬어 있었다. 조셉은 물통을 집어 들었다. 양철로 만든 낡은 물통이었다. 가장자리를 쇠창살 사이에 끼워 넣고 지렛대처럼 힘을 주었다. 쇠창살이 삐걱거렸다.
“움직였어.”
로다가 숨을 들이켰다. 조셉은 다시 힘을 주었다. 어깨가 아팠다. 손목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쇠창살이 1센티미터쯤 휘었다.
“조금 더.”
두 번째 시도. 세 번째 시도. 쇠창살이 천천히 휘어졌다. 네 번째 시도 만에, 창살 하나가 뽑혔다. 녹슨 철근이 바닥에 떨어졌다.
구멍이 넓어졌다. 충분하지는 않았다. 어깨가 통과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바깥이 보였다. 하늘. 별. 바람.
“로다, 내일 밤까지 기다리자. 창살을 하나 더 뽑으면 나갈 수 있을 거야.”
“나가서 어디로 갈 건데.”
“엘리야의 컨테이너. 거기 증거가 있어. 아니면 최소한 전화라도.”
로다는 고개를 저었다. “전화는 없어. 농장 전체에 전화가 없어. 엘리야만 위성 전화를 가지고 있어. 통신은 모두 그가 통제해.”
“그럼 차를 훔치자. 농장 입구에 도요타가 한 대 있었어. 열쇠는 아마 부엌에 있을 거야.”
“운전수는. 운전수가 항상 차 옆에서 자.”
“처리해야 해.”
로다는 침묵했다. 그녀의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두려움인지, 결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줄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무엇이든.”
“에스더도 데려가. 그녀를 여기 두고 가지 마.”
조셉은 대답 대신 로다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지만,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두 번째 밤. 혹은 세 번째 밤.
조셉과 로다는 번갈아 가며 쇠창살을 젖혔다. 두 번째 창살이 첫 번째보다 더 단단히 박혀 있었다. 양철 물통이 찌그러졌다. 조셉은 맨손으로 창살을 잡아당겼다. 녹이 손바닥을 찢었다. 피가 났다.
“쉬어. 내가 할게.”
로다가 물통을 대신 잡았다. 그녀의 팔은 가늘었지만, 힘은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힘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새벽 무렵, 두 번째 창살이 뽑혔다. 구멍은 이제 사람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크기였다. 조셉이 먼저 올라갔다. 환기구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어깨가 걸렸다. 숨을 들이마시고, 뼈가 으스러질 듯한 고통을 참으며 밀어붙였다. 어깨가 빠져나갔다. 상체가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를 채웠다. 비는 그쳐 있었다. 별이 보였다.
조셉은 완전히 빠져나와 진흙 바닥에 쓰러졌다. 숨을 몰아쉬었다. 하늘은 넓었다. 2일 만에 보는 하늘이었다. 아니, 2일인지 3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로다가 뒤따라 나왔다. 그녀는 조셉보다 더 수월하게 빠져나왔다. 체구가 작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진흙 바닥에 나란히 누워 숨을 골랐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로다가 물었다. 조셉은 일어나 앉았다. 농장은 어두웠다. 천막도, 컨테이너도, 기도실도 모두 잠들어 있었다. 오직 바오밥나무만이 거대한 그림자로 서 있었다.
“먼저 헛간으로 가자. 거기에 내 수첩이 있어. 거기에 모든 증거를 기록해뒀어.”
“증거는 이미 엘리야가 가져갔잖아. 바인더도, 명단도.”
“수첩에는 통화 내용을 기록해뒀어. 날짜와 시간, 그리고 엘리야가 말한 유럽 계좌 이야기. 법정에서는 부족할지 몰라도, 언론에는 충분할 거야. 나는 기자였어. 어디에 던져야 파장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어.”
조셉은 일어서서 로다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몸을 숙이고 어둠을 따라 헛간으로 향했다. 발소리를 죽였다. 진흙 바닥이 발걸음을 삼켜주었다.
헛간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조셉이 베개 밑에서 수첩을 꺼냈다.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기록은 모두 남아 있었다.
‘엘리야의 통화 내용. 멸망의 날은 3주 후. 유럽 계좌 존재. 보험 서류 완료. 집단 살해 의도 명확.’
“이걸로 끝이 아니야. 시작이야.”
로다가 팻말을 꺼내 무언가 썼다. 그리고 조셉에게 보여주었다.
‘에스더를 데리러 가자.’
조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다시 어둠 속으로 나갔다. 에스더가 잠들어 있을 천막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