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균열의 복사본
새벽 1시 45분. 사무실에는 자이드 혼자였다.
그는 관료와의 대면을 마치고 접견실을 나온 뒤, 곧장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모니터만 켠 채 두 시간째 앉아 있었다. 야간조 직원들은 그가 야근하는 모습을 익숙하게 보아왔기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자이드에게 야근은 일상이었다. 오늘도 그저 평소와 같은 야근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자이드는 관료가 제시한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고 있었다. 첫 번째 선택.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고, 종이를 묻고, 감독관을 입막음하고, 내일까지 경로를 수정하는 것. 두 번째 선택. 무언가 다른 행동을 하는 것.
그는 접견실에서 ‘내일까지 경로 수정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경로를 수정할 것이다. 서류를 조작할 것이다. 관료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 ‘순종’의 기록을 모두 수집하기 시작했다.
모니터에는 물류 추적 시스템과 별개로, 또 다른 창이 열려 있었다. 그가 지난 3년간 조용히 구축해온 개인 데이터베이스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업무 백업용이었다. 중요한 서류가 회사 서버에서 삭제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었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관료가 처음 접견실에 나타난 이후로 이 데이터베이스의 성격은 달라졌다.
오늘 그는 관료와의 모든 통화 기록을 타임라인으로 정리했다. 첫 접견실 면담 날짜. 금요일 선적 강요. X-ray 검사관 하산과의 통화 후 보낸 문자. 미확인 석판의 감정 없는 출고 지시. 그리고 오늘 접견실에서 받은 협박.
그는 이 모든 사건을 날짜별로, 시간별로, 관련자와 함께 기록했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아직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기록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이 기록이 자신을 지켜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계산이 그의 손을 움직이게 했다.
금고에서 박물관 메모를 꺼냈다. 낡은 종이 한 장. 노인의 연필 필체. ‘이 상자 속 유물들은 카라즈 국립 박물관 소장품이다.’
자이드는 스마트폰으로 종이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정면. 측면. 접힌 자국이 선명한 뒷면. 그리고 그 사진을 개인 클라우드 계정에 업로드했다. 계정은 카라즈가 아닌 해외 서버에 등록된 것이었다.
그런 다음, 원본 종이를 다시 금고에 넣어 잠갔다. 태우지 않았다. 이 종이는 이제 그의 보험 증권이었다. 관료가 자신을 버리기로 결정하는 순간, 이 종이는 그 결정을 조금 더 어렵게 만들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다음 날 오전 8시 22분. 자이드는 출근하자마자 현장 감독관을 불렀다.
감독관은 어제보다 더욱 수척해진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눈 밑 다크서클이 선명했다. 자이드는 그가 하룻밤 사이에 몇 시간이나 잤을지 무의식적으로 계산했다. 아마 세 시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문 닫고 앉으세요.”
감독관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손이 무릎 위에서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이드는 그 손을 보며 말을 꺼냈다.
“어제 발견한 종이에 대해, 앞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은 유효합니다.”
“네, 네. 물론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부탁할 게 있습니다.”
감독관의 목이 움찔하며 뒤로 당겨졌다. 더 많은 것을 요구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몸짓이었다.
“앞으로 C-3 구역뿐 아니라, 다른 보관 구역에서도 비슷한 메모가 발견되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주십시오. 발견하시면 저에게만 알려주시고요.”
“다른 구역에서도… 그런 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가능성은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에 대비해야죠.”
자이드는 감독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명령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발견하시면, 저에게 오기 전에 먼저 사진을 찍어두십시오. 개인 휴대폰으로요. 증거 보존 차원입니다.”
“증거…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 화물들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까요. 만약 나중에라도 누군가 우리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려 한다면, 그 사진들이 우리를 지켜줄 겁니다.”
감독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 외의 감정이 스쳤다. 이해였다. 이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자이드가 조용히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저는… 저는 그냥 평범하게 일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런 준비가 필요한 거고요.”
자이드는 일어서서 감독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처음으로 보이는 신체 접촉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둘만 아는 것으로 합시다. 그리고 앞으로 당신이 찍은 사진들도, 안전한 곳에 보관하십시오.”
감독관이 사무실을 나간 후, 자이드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검은 세단이 여전히 주차되어 있었다. 선글라스의 남자는 오늘도 로비에 앉아 있었다.
자이드는 이제 한 명의 조력자를 만들었다. 감독관은 겁먹은 상태였지만,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각성시키고 있었다. 그 본능이야말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기였다.
오전 10시 15분. 자이드는 개인 휴대폰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들어가 가장 안쪽 칸에 들어갔다. 산업용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대화를 덮어줄 것이었다.
그는 지난주 걸려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세관 검사과 하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산입니다.”
“자이드입니다. 지난번 X-ray 검사 건으로 잠시 여쭤볼 게 있어서요.”
“아, 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저희 컨테이너 중에 이상 징후가 더 발견된 건 없습니까. 내부 품질 관리 차원에서 확인하고 싶어서요.”
하산은 잠시 침묵했다. 이 질문이 단순한 품질 관리 문의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듯했다.
“자이드 씨,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 컨테이너 건이 마음에 걸립니다. 밀도 편차도 그렇고, 그 후에 서류가 수정된 점도 그렇고요.”
“서류 수정이요?”
“네. 제가 알기로는 원래 목적지와 다른 항구로 변경된 것으로 시스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이드 씨는 이 사실을 모르십니까.”
자이드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산은 이미 서류 수정 정황을 포착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유능한 검사관이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 공식적으로 들은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내부적으로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공식 채널로 확인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개인적인 확인입니다.”
또 한 번의 침묵. 하산이 이 말의 의미를 해석하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인 확인. 공식 채널이 아닌 경로. 이는 자이드가 무언가를 은밀하게 공유할 의사가 있다는 신호였다.
“알겠습니다. 제 개인 번호는 아실 테니, 그걸로 연락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자이드는 화장실을 나와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에 손을 씻었다.
하산은 이제 그의 편이 될 가능성이 생겼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산이 단순히 규정대로 일하는 성실한 공무원일 수도 있었고, 자이드의 접근을 윗선에 보고할 인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이드는 그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시스템에 저항하려면, 시스템 외부의 눈이 필요했다.
오후 2시. 자이드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물류 추적 시스템을 열었다.
컨테이너 KGLU-7702-842.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키보드 위에 멈춰 있었다. 관료가 지시한 대로 목적지를 제네바에서 아테네로 수정해야 했다. 내일까지였다. 하지만 그는 서류를 수정하기 전에, 먼저 이 모든 과정을 스크린샷으로 남겼다.
원본 적재 명세서. 수정 전 목적지: 제네바. 수정 후 목적지: 아테네. 변경 시간. 변경자 IP. 모든 화면을 한 장씩 캡처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개인 클라우드에 업로드했다.
그런 다음에야 서류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적재 명세서의 목적지 코드를 변경했다. 통관 서류의 품목 코드를 석재로 위조했다. 가상의 보험 증권 번호를 생성했다. 시스템이 업로드 완료 메시지를 반환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7분이었다.
이제 컨테이너 KGLU-7702-842는 공식적으로 아테네로 향하고 있었다. 관료의 지시는 이행되었다. 동시에, 그 지시를 이행한 모든 증거가 자이드의 개인 서버에 저장되었다.
그는 추가로 회사 서버에 접근하여 지난 1년간의 그레이 라인 선적 기록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분량이 방대했다. 다운로드에는 40분 이상이 걸렸다. 그동안 그는 태블릿을 꺼내 오늘 입고될 화물 리스트를 검토하는 척했다.
오후 3시 7분. 다운로드가 완료되었다. 그는 파일을 암호화하여 외장 하드에 저장했다. 이 하드는 이제 그의 개인 금고에 보관될 것이었다.
사무실 문이 노크되었다. 자이드는 재빨리 모니터 화면을 업무용 장부로 전환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선글라스의 남자가 들어왔다. 오늘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자이드 씨, 관료님께서 경로 수정이 완료되었는지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완료되었습니다. 방금 전에 시스템 업로드까지 마쳤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남자가 자이드의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물류 추적 시스템이 떠 있었다. 컨테이너 KGLU-7702-842의 목적지는 아테네로 표시되어 있었다.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남자는 짧게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나갔다. 자이드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만약 남자가 5분만 일찍 들어왔다면, 다운로드 중인 화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 위험은 5분 차이로 빗나갔다.
오후 6시 52분. 퇴근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자이드는 오늘도 사무실을 나서며 셔터 앞에 서지 않았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대신 곧장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는 오늘 점심시간에 구매한 작은 방수 팩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 외장 하드와, 박물관 메모의 복사본이 들어 있었다.
퇴근길은 평소와 같았다. 7km. 18분. 국립 박물관 앞을 지날 때, 그는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텅 빈 박물관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그는 그 건물에 대해 생각했다. 기둥의 금. 텅 빈 전시대. 박물관에서 사라진 유물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C-3 구역의 코드 9-0A 화물들. 아테네로 향하는 석판. 마르세유로 향한 수메르 인장들. 모든 것이 그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어차피 돈도 안 되는 걸 왜 전시하나.’
지난주 그가 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다른 생각을 했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수집하고 있는 증거들이 언젠가 세상에 공개된다면, 이 박물관의 빈 전시대는 다시 채워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매장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관료는 자신의 라이벌을 처리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평소처럼 저녁을 차려놓고 있었다. 양고기 스튜와 바스마티 쌀밥. 자이드는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았다.
“오늘도 야근이었어요?”
“조금만.”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요. 주말에는 좀 쉬어요.”
“그래.”
자이드는 스튜를 한 숟가락 떠먹으며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남편이 매일 무슨 서류를 만지고, 어떤 화물을 추적하고, 누구와 은밀한 통화를 나누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이 세계로부터 차단해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만약 자신이 사라진다면 그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도 생각했다.
저녁 식사 후, 그는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작은 방수 팩을 열어 외장 하드를 꺼냈다. 노트북에 연결하자 암호 입력창이 떴다. 그는 열여섯 자리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폴더가 열렸다. 지난 3년간의 그레이 라인 선적 기록. 관료와의 통화 녹음 파일. 박물관 메모의 스캔본. 그리고 오늘 수집한 서류 수정 증거. 그는 이 데이터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이것들이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갈 경우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상상했다.
아마 거대할 것이다. 카라즈 정부 고위 관료가 연루된 국제 유물 밀매 스캔들. K-Global Logistics의 그레이 라인 운영 실태. 국립 박물관의 조직적 유출. 기사 하나로 끝날 규모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파장 속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는 계산하지 않았다. 계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는 노트북을 종료하고 외장 하드를 다시 방수 팩에 넣었다. 팩은 서재 책장 뒤쪽의 빈 공간에 숨겼다. 아내는 이곳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
잠들기 전, 그는 스마트폰을 열어 물류 추적 시스템을 확인했다. 컨테이너 KGLU-7702-842는 순조롭게 항해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개인 데이터베이스에는 오늘 하루 동안 추가된 새로운 파일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와는 다른 이유였다. 어제는 두려움이 그를 깨어 있게 했다면, 오늘은 계획이 그를 깨어 있게 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위태롭고 조악한 계획이었지만, 적어도 그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굴복하지 않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자이드가 출근했을 때 사무실에는 새로운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본사에서 보낸 감사 일정 통보였다. 다음 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감사 인원 3명. C-3 구역의 재고를 포함한 전체 물류 센터 실사 예정.
자이드는 이메일을 읽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감사팀은 900점의 숨겨진 재고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에 대한 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감독관에게도 지시를 내렸고, 장부 조작의 증거도 수집하고 있었다.
검은 세단은 오늘도 주차되어 있었다. 선글라스의 남자는 여전히 로비에 앉아 있었다. 관료의 눈은 자이드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자이드도 그 눈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관료가 자신을 감시하는 만큼, 자신도 관료의 흔적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 균형은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것이었지만, 적어도 일방적인 굴복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