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그림자 헝가리편 #001] 부다페스트의 잔혹한 온천 – 2화: 밀실의 지배자

2화: 밀실의 지배자

아침 9시 50분. 부다페스트 7구역, 옛 유대인 지구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귀족의 사저였을 법한 이 건물은, 지금은 ‘코바치 부티크 스파 & 웰니스’라는 간판을 황동으로 정교하게 새겨 달고 있었다.

채은은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들었다. 외관만 보면 분명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 목덜미를 스쳤다. 창문은 너무 좁았고, 출입구 옆에는 지나치게 덩치 좋은 남성이 대기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드나드는 일반 스파 호텔의 입구라고 보기에는, 경비원의 눈빛이 너무 날카로웠다.

“한채은 씨?”

어제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이슈트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리석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낮에 보는 그는 밤에 보던 모습보다 훨씬 더 품위 있어 보였다. 짙은 남색 수제 양복에, 목에는 실크 스카프를 느슨하게 둘렀고, 손에는 흑단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누가 봐도 중후한 유럽의 노신사였다.

“10분이나 일찍 오다니. 역시 성실한 학생이구먼.”
이슈트반은 채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구로 이끌었다.
“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추운데 오래 밖에 있을 거 없어.”

로비는 고요하고 우아했다. 벽난로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낡은 피아노 위에는 프란츠 리스트의 흉상이 올려져 있었다. 리셉션에는 단정한 제복을 입은 헝가리 여성이 앉아 있었고, 벽에는 합법적인 스파 운영 허가증들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다. 겉보기에는 완벽했다. 지나치게 완벽했다.

“차 한잔 하고 이야기합시다. 내 사무실이 지하 1층에 있어요.”
이슈트반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채은은 순간 망설였다. 지하라는 단어가 왠지 모르게 신경을 건드렸다. 그러나 그녀가 거절할 틈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이슈트반은 이미 안으로 들어서며 손짓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멈추자, 문이 열리며 드러난 풍경은 로비와 완전히 달랐다. 벽은 두꺼운 석재로 되어 있었고, 복도는 좁고 길었으며, 조명은 형광등이 아니라 간접 조명뿐이었다. 복도 양옆으로는 두꺼운 철제 문들이 보였고, 문틈 사이로 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온천의 열기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공기는 후텁지근하면서도 축축했다.

이슈트반의 사무실은 복도 맨 끝에 있었다. 그가 무거운 나무 문을 열자, 내부는 의외로 고풍스러운 서재 분위기였다. 벽난로 위에는 사슴 박제가 걸려 있었고, 책장에는 헝가리어와 독일어로 된 고서들이 빼곡했다.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서류 뭉치가 정돈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은쟁반에 담긴 커피 두 잔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앉아요.”
이슈트반은 책상 반대편 가죽 의자를 가리켰다.

채은은 자리에 앉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진하고 쌉쌀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월세에 쫓기던 자신이, 오늘은 고급 스파 호텔 사장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VIP 의전 알바 면접을 보고 있다니.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이슈트반은 서류 뭉치에서 계약서 한 부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기본 고용 계약서요. 시급 5,000포린트. 주 3일 근무. 하는 일은 VIP 고객님들 대상 통역과 접대 보조. 별거 아니야.”

채은은 계약서를 훑어보았다. 헝가리어와 영어가 병기된 문서였는데, 법률 용어가 많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시급 5,000포린트라는 숫자는 명확했다. 한화로 약 19,000원. 주 3일이면 한 달에 60만 원 가까이 벌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생활비를 충당하고 조금씩 빚도 갚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이슈트반은 두 번째 서류를 꺼냈다.
“이건 내가 어제 말했던 그 채무 관계에 대한 계약서요. 내가 당신 기존 빚을 오늘 전부 변제해 주고, 당신은 나한테 5년 동안 매달 20만 포린트씩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야. 이율은 연 3%. 불법 사채 치고는 파격적이지?”

채은은 두 번째 계약서를 바라보며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월 20만 포린트. 지금 그녀의 생활비로는 버거운 금액이었지만, 만약 여기서 일하면 충분히 갚을 수 있었다. 계약서에는 분명히 ‘연 이자율 3%’라고 명기되어 있었고, 조기 상환 수수료도 없다고 적혀 있었다. 합법적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슈트반이 갑자기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웃었다.
“사실 이런 고급 스파는 VIP 고객님들 사생활 보호가 가장 중요하거든. 그래서 우리는 모든 직원한테 ‘보안 서약’을 받고 있어요. 당신, 혹시 지금 여권이랑 핸드폰 가지고 있나?”

채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백에서 여권과 스마트폰을 꺼냈다.

“좋아요. 이건 근무 시간 동안만 우리가 보관할 거요. VIP들이 혹시 몰래 사진 찍히거나 도청당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거든. 근무 끝나면 당연히 돌려주고. 이해되죠?”

그 말과 함께 이슈트반은 손을 내밀었다. 노인의 손은 정중했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무언의 압력을 담고 있었다. 채은은 망설이다가 결국 여권과 핸드폰을 건넸다. 그가 말하는 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고급 스파나 리조트에서는 VIP 사생활 보호가 중요했다. 게다가 근무 끝나면 돌려준다고 하니,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이슈트반은 여권과 핸드폰을 책상 서랍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쇠로 된 열쇠로 서랍을 잠갔다. 그 열쇠가 자신의 양복 안주머니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채은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이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할까요? 내가 직접 지하 온천을 구경시켜 줄 테니 따라와요.”

이슈트반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자, 사무실 문이 열리며 아까 입구에서 보았던 덩치 큰 경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190센티미터는 될 듯한 그는, 양복 안에 단단한 근육을 숨기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아, 이 친구는 아틸라요. 이 건물의 보안 책임자고. 앞으로 당신을 지켜줄 거요.”

지켜준다는 말이 묘하게 귀에 거슬렸지만, 채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녀는 이슈트반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었고, 아틸라는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세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지하 복도에 울려 퍼졌다.

복도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온도는 점점 올라갔고, 공기 중 습기도 짙어졌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간간이 낮은 신음 소리 같은 것도 섞여 들리는 듯했다. 채은이 걸음을 늦추자, 이슈트반이 뒤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걱정 마요. 이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진 귀족 전용 목욕탕이었어요. 천연 온천수가 지하 150미터에서 솟아오르지. 그래서 소리가 좀 울려요.”

마침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지하 온천 공간이었다. 천장은 적어도 10미터는 되어 보였고, 고딕 양식의 아치형 기둥들이 늘어서 있었다. 바닥과 벽은 오래된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석조 욕조가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조명은 일부러 어둡게 조정되어 있었고, 벽에는 쇠사슬과 수갑 같은 것들이 ‘장식’처럼 걸려 있었다.

“이건… 스파인가요?”
채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지. 다만 역사적인 분위기를 살리느라 조금 클래식할 뿐이야. 이제 곧 VIP 고객님들이 오실 시간이라, 오늘은 간단히 둘러보고 끝내자고.”

그때였다. 이슈트반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켰다. 액자 안에는 헝가리어로 빼곡히 쓰인 문서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작은 붉은 글씨로 한국어 번역문이 덧붙여 있었다.

『본 시설 내 모든 직원은 고용 기간 중 다음 사항을 준수할 것을 서약합니다.

  1. 여권 및 신분증은 고용주가 보관하며, 근무 종료 시까지 반환하지 않는다.

  2. 고용주의 사전 허가 없이 외부와의 연락을 금지한다.

  3. 건물 외부로의 무단 이동은 즉시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며, 이에 따른 위약금은 원금의 300%로 한다.』

채은의 눈이 마지막 줄에 멈췄다. 위약금. 원금의 300%라는 숫자가 뇌리에 박혔다. 그녀가 이슈트반에게 진 빚은 현재 800만 포린트. 300%면 2,400만 포린트. 한국 돈으로 9,00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아, 그건 그냥 표준 서류 양식이에요. 신경 쓸 거 없어. 우리가 당신 가둬 두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이슈트반이 웃으며 채은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자, 이제 당신 작업 공간을 보여줄게.”

그가 밀고 들어간 공간은, 온천 중앙에서 좁은 복도로 연결된 별실이었다. 방문을 열자, 내부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벨벳 소파가 놓여 있고, 샹들리에가 드리워진 응접실 형태의 방이었다. 벽에는 베네치아풍의 대형 거울이 걸려 있었고, 탁자 위에는 크리스털 글라스와 고급 위스키 병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 한쪽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진 침대가 있었다. 명백히 일반적인 ‘VIP 라운지’라고 부르기에는 섬뜩한 구조였다.

“이 방은… 왜 침대가 있죠?”
채은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 이건 VIP 고객님들이 온천 후에 마사지를 받거나 간단히 눈을 붙이는 공간이야. 헝가리 목욕 문화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거요.”
이슈트반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한 가지, 당신은 한국인이니까 이해하겠지만… 가끔 VIP 고객님들 중에 특별한 서비스를 원하는 분들이 계셔요.”

채은의 몸이 굳었다.

“무… 무슨 뜻이죠?”

“내가 나쁜 뜻으로 말하는 거 아니에요. 지극히 개인적인 접대 서비스 말이야. 물론 당신이 거부할 수도 있고. 하지만…”
이슈트반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그런 경우에는 당신이 우리한테 진 계약금 전액을 일시 상환해야 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있어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문이 열리고 아틸라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채은이 아까 이슈트반에게 건넸던 그녀의 여권이 들려 있었다.

“이슈트반 선생님, 잠시 서류 확인 때문에요.”
아틸라가 헝가리어로 낮게 말했다.

“아, 그래요. 채은 씨, 잠시만 기다려요. 내가 금방 올게.”
이슈트반은 지팡이를 짚고 방을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철컥.

밖에서 열쇠가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채은은 문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그녀는 이 거대한 지하 미궁 속으로 완전히 고립되었다.

채은은 문 앞에서 몇 분 동안 손잡이를 붙잡고 서 있었다. 심장이 귀에서 울릴 만큼 크게 뛰고 있었다. 벽에 걸린 쇠사슬 ‘장식’이 이제는 전혀 장식처럼 보이지 않았다. 탁자 위의 위스키 병들, 침대 옆에 놓인 수갑처럼 생긴 금속 장식, 그리고 벽에 걸린 거울. 그 거울이 단순한 거울인지, 아니면 반대편에서 누군가 이 방을 들여다보고 있는 편면경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때, 방 안쪽 구석에서 작은 경고음과 함께 붉은 불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채은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는 눈에 잘 띄지 않게 설치된 CCTV 카메라가 벽 모서리에 붙어 있었다. 렌즈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회전했다.

“여기서… 나가야 해.”

채은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노크했지만,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결국 주먹으로 문을 치기 시작했다.

“여기 사람 없어요? 나 나가야 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슈트반 씨! 계약서 다시 보고 싶어요! 내 여권 돌려줘요!”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그녀가 지쳐서 문 앞 바닥에 주저앉으려던 순간,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이슈트반이 아니었다. 아틸라와 또 다른 경비원 하나가 서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채은을 일으켜 세우고, 복도로 끌고 나갔다.

채은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들의 손아귀는 바이스처럼 단단했다. 그녀는 다시 그 좁고 축축한 복도를 따라 끌려갔고, 마침내 아까 보았던 이슈트반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사무실 문이 열리자, 이슈트반은 여전히 그 우아한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아까와 전혀 다른 서류 뭉치가 놓여 있었다. 계약서였다. 하지만 아까 채은이 사인하기 전에 보았던 그 계약서가 아니었다. 용지의 두께도 더 두꺼웠고, 글씨도 더 작았으며, 페이지 수도 훨씬 많았다.

“채은 씨. 앉아요.”
이슈트반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이 이제는 오히려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아까… 아까 그 계약서는 뭐였죠? 나한테 보여준 것과 다른 것 같은데요.”

“아, 그거?”
이슈트반이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건 그냥 요약본이었고, 이게 법적 효력이 있는 정식 계약서요. 당신이 아까 사인한 건 이걸 사인한 거랑 똑같아요. 걱정 마요. 헝가리 법상, 요약본에 사인해도 이 정식 계약서에 묶여요. 그리고 여기 23페이지 조항을 읽어봐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을, 채은은 떨리는 눈으로 읽었다.

『제23조 (채무 변제 의무)
갑(이슈트반 코바치)은 을(한채은)의 기존 채무 총액 12,000,000포린트를 대위 변제한다. 을은 이에 대한 상환으로 본 시설에서 갑이 지정하는 VIP 의전 업무를 수행하며, 위약 시 배상금은 변제 원금의 500%로 한다.』

“1,200만 포린트요?”
채은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서류를 다시 들여다봤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어떻게 제 빚이…”

“아, 그건 당신이 말하지 않은 빚까지 내가 다 조사해서 합산한 거요. 교통 범칙금, 신용카드 연체, 한국에 있는 소액 대출… 다 합치니까 1,200만이더라고. 꽤 많이 빌렸더라? 학생.”
이슈트반은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그리고 위약금 500%. 이건 표준이야. 당신이 계약을 파기하면 6,000만 포린트를 물어야 해요.”

6,000만 포린트. 한국 돈으로 약 2억 2,500만 원.

채은은 그 자리에서 숨이 막혔다. 그녀의 부모님이 평생 모은 전 재산보다도 더 큰 금액이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숫자였다. 그녀는 이슈트반을 향해 떨리는 시선을 보냈고, 노인은 그런 그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꼭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요.”
이슈트반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이곳에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5년 안에 모든 빚이 청산돼요. 추가 수당도 받을 수 있고. 그리고 내가 아는 VIP 고객님들 중에는 한국 문화에 관심 많은 분들이 많아서, 당신 같은 교양 있는 유학생을 아주 좋아하셔요.”

“내가… 그 VIP 접대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거부할 수는 있지. 물론 자유니까.”
이슈트반이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만 그 순간 계약은 파기고, 위약금 6,000만 포린트가 발생해요. 그리고 당신 여권은 현재 내 서랍에 있고, 당신 체류 비자도 우리 회사 스폰서십으로 갱신된 상태라서… 만약 지금 계약이 파기되면, 당신은 내일 당장 불법 체류자가 되는 거요.”

채은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불법 체류. 그 말은 곧 경찰 신고, 강제 추방, 그리고 다시는 유럽에 돌아올 수 없음을 의미했다. 유학 생활은 끝장이고, 부모님께 돌아갈 얼굴도 없었다.

“아… 아저씨는…”
채은이 떨리는 입술로 겨우 말을 꺼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요? 나한테 50만 포린트 빌려줄 때부터?”

이슈트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담배를 끄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벽난로 속에서 장작이 탁 하고 터지며 불꽃을 튀겼다. 그 순간,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가 열두 번 울렸다. 정오였다. 그녀가 이 지옥에 발을 들인 지 정확히 두 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다.

3화 보러가기 (클릭)

목록으로 (클릭)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