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정글의 유령
1994년 3월, 인도네시아 동칼리만탄.
마이클 드 구즈만은 삼발리(Sambali)라는 작은 항구 마을에 도착했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다시 배로 여섯 시간을 흔들려 온 터였다. 그의 피부는 이미 열대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등에는 시추 코어 샘플을 보관할 금속 케이스가 매달려 있었다.
부상(Busang)은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항구에서 다시 모터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현지인들이 ‘데이악(Dayak)’이라 부르는 원주민 마을을 지나, 울창한 정글 속으로 들어가는 길. 마이클은 보트 안에서 낡은 지질도를 펼쳐 들었다.
“여기, 강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 그 근처야.”
보트를 모는 현지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여러 광산 탐사팀을 태워본 경험이 있는 사내였다. 하지만 그가 본 대부분의 탐사팀은 몇 달 만에 자취를 감췄다. 부상은 접근성도 나쁘고, 시추 조건도 까다로웠다. 게다가 지금까지 아무도 상업적 매장량을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서 내려요.”
마이클은 보트에서 뛰어내렸다. 진흙이 발목까지 푹 빠졌다. 모기가 떼 지어 얼굴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글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숨 막히는 침묵.
‘여기야.’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질학적 단층선이 교차하는 지점. 뉴몬트가 간과한 바로 그곳.
마이클은 현지 인부들을 고용해 임시 캠프를 세웠다. 천막 두 동, 시추기를 싣은 작은 트럭 한 대. 전기는 발전기로 충당했다. 밤이 되면 정글은 더욱 짙은 어둠으로 변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울음소리들이 캠프를 감쌌다.
첫 번째 시추공은 깊이 30미터.
시추기가 돌아가는 굉음이 정글을 갈랐다. 인부들이 진흙 속에서 시추 코어를 꺼내자, 마이클은 루페(확대경)를 들고 직접 샘플을 들여다보았다.
‘…없어.’
그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샘플을 케이스에 넣었다.
두 번째 시추공. 45미터.
세 번째. 60미터.
결과는 계속해서 ‘상업적 가치 없음’이었다.
인부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마이클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미 이런 패턴을 알고 있었다. 돈이 떨어지면 탐사는 중단되고, 임금은 밀린 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던 중, 네 번째 시추공.
깊이 52미터. 코어 샘플에서 육안으로도 반짝이는 작은 금 입자가 보였다.
마이클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다시 루페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금 입자는 작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기록해. 깊이 52미터, 톤당 1.2그램.”
인부가 수첩에 적었다. 그날 밤, 마이클은 천막 안에서 혼자 샘플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1.2그램… 이걸로는 부족해.’
그는 다른 지역에서 채취한 고품위 샘플을 떠올렸다. 만약… 그 샘플을 이곳에 섞는다면?
생각은 현실이 되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다.
며칠 후, 마이클은 캘거리로 샘플을 보냈다. 배송 전, 그는 가장 금 함량이 높았던 네 번째 시추공의 샘플을 다른 지역의 샘플과 선별적으로 혼합했다.
‘이건 조작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질학은 확률이다. 이 지역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시범 샘플일 뿐이다.’
칼가리에 도착한 샘플은 분석소로 보내졌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톤당 7.5그램. 데이비드는 분석 보고서를 손에 쥐고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이게… 말이 돼?”
존 펠더가 어깨 너머로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마이클이 한 거라면 믿을 만해. 그는 광산 탐사계의 기적을 여러 번 만들어 낸 사내야.”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광산보다 높아.”
“그래서 ‘잠재적’이라고 표현하는 거야. 우리는 아직 시추를 끝낸 게 아니야.”
존은 데이비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데이브, 이제 이 데이터를 시장에 공개할 때야. 칼가리는 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
며칠 후, 브리-엑스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부상 광산, 탐사 결과 고품위 금맥 확인. 톤당 최대 7.5그램.”
캐나다 벤처 거래소는 즉각 반응했다. 주당 15센트였던 브리-엑스의 주가는 단 이틀 만에 35센트로 폭등했다. 주식 중개인들이 브리-엑스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데이비드는 아직 시추 중이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성공에 도취되어 있었다.
“더 시추해야 해. 최소 20개 홀 이상.”
마이클은 칼가리로 돌아와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10개 홀만 뚫어도 데이터는 충분히 설득력 있어.”
“아니, 20개 홀. 그리고 그중 일부는 고품위 샘플이 나와야 해.”
데이비드는 마이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품위? 지금 데이터도 충분히 높은데.”
“투자자들은 높은 수치에 열광하지. 더 높은 수치에 더 열광해. 우리는 시장이 원하는 걸 줘야 해.”
마이클의 말에 존이 끼어들었다.
“그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하지만 그건…”
“위험이 따르는 건 알지만, 우리는 이미 시작했어. 멈출 수 없어.”
마이클은 단호하게 말했다.
1994년 여름, 브리-엑스는 추가 시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유상 증자를 단행했다. 투자자들은 몰려들었다.
캐나다의 유명한 광산 투자자였던 ‘네드 굿맨(Ned Goodman)’은 데이비드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데이브, 네 데이터가 사실이라면, 이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이 될 거야.”
“데이터는 사실입니다. 다만 아직 시추가 진행 중이에요.”
“진행 중? 좋아. 내가 투자할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내가 보내는 지질학자가 현장을 직접 방문하게 해줘.”
데이비드는 잠시 망설였다.
“물론입니다.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전화를 끊은 후, 데이비드는 마이클에게 연락했다.
“네드 굿맨이 자파를 보낸대. 현장 검증을 원해.”
“언제?”
“아마 다음 달.”
마이클은 짧게 생각했다.
“알겠어. 준비할게.”
그날 밤, 마이클은 부상 캠프에서 현장 관리인을 불렀다.
“다음 달, 캐나다에서 손님이 와. 그때까지 시추 코어 샘플 중 고품위 부분만 따로 모아둬.”
“나머지는요?”
“나머지는… 다른 곳에 보관해.”
현장 관리인은 마이클의 의도를 눈치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마이클과 함께 몇 년째 일해온 터라, 그의 작업 방식을 알고 있었다.
며칠 후, 마이클은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내려와 전화를 걸었다. 칼가리, 데이비드의 사무실.
“데이브, 우리가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거야.”
“어떤 소식?”
“투자자들이 기절할 만한 소식.”
마이클은 특별한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1994년 가을, 네드 굿맨이 보낸 지질학자 ‘딕 피어슨(Dick Pearson)’이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마이클은 직접 그를 마중 나갔다. 피어슨은 캐나다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 지질학자였다. 그는 마이클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었다.
“마이클, 우리는 예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지?”
“네, 파푸아뉴기니에서요. 기억합니다.”
“그때 네가 발견한 광산은 아직도 운영 중이야. 하지만 이번 건… 솔직히 말하면 너무 좋아서 의심스러워.”
마이클은 웃었다.
“의심은 전문가의 자세죠. 직접 확인하시면 됩니다.”
부상 캠프. 피어슨은 시추 코어 샘플을 하나하나 직접 살펴보았다. 루페로 들여다보고, 산을 부어 금 입자를 확인하고, 현장 인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며칠 후, 피어슨은 데이비드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현장 검증 결과, 해당 광산은 세계적 수준의 금맥으로 확인됨. 시추 데이터는 신뢰할 만함. 단, 추가 시추가 필요함.”
데이비드는 보고서를 받아들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됐다.”
존이 물었다.
“딕이 확인해줬어?”
“그래. 그가 OK 사인을 줬으니 이제 투자자들이 몰려들 거야.”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피어슨의 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브리-엑스의 주가는 1달러를 돌파했다. 캐나다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온타리오 교사 연금(Ontario Teachers’ Pension Plan)’을 비롯한 기관 투자자들이 뛰어들었다.
1995년 초, 브리-엑스의 시가총액은 10억 캐나다 달러를 넘어섰다.
데이비드는 칼가리 최고급 펜트하우스로 이사했다. 존은 스포츠카를 샀다. 마이클은 여전히 정글을 오갔지만, 그의 계좌 잔고는 이미 수백만 달러를 기록 중이었다.
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모든 데이터는 조작이었다. 마이클은 자신이 조작한 샘플을 피어슨에게 보여주며, 그가 원하는 수치만을 제공했다. 피어슨도 모르는 사이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피어슨의 보고서는 브리-엑스를 ‘검증된 기적’으로 만들어주는 도장 역할을 했다.
1996년, 브리-엑스의 주가는 200달러를 돌파했다. 시가총액 60억 캐나다 달러.
데이비드는 칼가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업가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그는 경영 잡지 표지를 장식했고, 각종 투자 설명회에 초청받았다. 그의 연설은 항상 같은 내용이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금광을 발견했습니다. 캐나다의 자부심입니다.”
청중들은 열광했다.
존 펠더는 전 세계 광산 탐사 현장을 누볐다. 그는 브리-엑스의 성공을 발판 삼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탐사 회사를 설립했다. 모두가 그에게 투자하고 싶어 했다.
마이클 드 구즈만은 부상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더 많은 조작, 더 많은 허위 데이터를 만들어내야 했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건 ‘더 높은 수치’였고, 그는 그걸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조작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부상 광산의 실제 금 매장량은 미미했다. 마이클은 시추 코어 샘플을 조작하며 버텼지만, 누군가 그 틈을 건드릴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1996년 겨울, 데이비드는 대규모 유상 증자를 단행했다. 투자자들은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브리-엑스는 부상 광산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땅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해 크리스마스, 칼가리는 눈으로 뒤덮였다. 데이비드는 펜트하우스 창가에 서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데이브.”
존이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일이야?”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부상 광산에 대한 기획 기사를 준비 중이래. 우리한테 인터뷰 요청이 왔어.”
“거절해. 아직 준비 안 됐어.”
“데이브, 우리는 세계 최대 금광을 가진 회사야. 숨을 이유가 없어.”
데이비드는 잠시 침묵했다.
“알겠어. 인터뷰는 다음 달로 미뤄.”
전화를 끊은 후, 그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칼가리의 불빛은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 빛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