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니아의 그림자 호주편 #002] 아웃백의 붉은 덫 – 2화: 밀폐된 합숙소, 무너지는 경계

2화: 밀폐된 합숙소, 무너지는 경계

핏빛처럼 붉은 아웃백의 태양이 지평선 위로 고개를 들기도 전, 컨테이너 숙소의 함석판 지붕이 깨질 듯한 굉음과 함께 흔들렸다. 마크의 심복이자 농장의 행동대장인 헨리가 커다란 오렌지 플라스틱 상자로 숙소 외벽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음이 고막을 찢고 들어오자, 연우는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전날 밤, 마크가 남기고 간 끈적한 위압감과 알코올 냄새가 여전히 좁고 밀폐된 방 안의 공기 중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연우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셔츠 깃을 확인했다. 단추가 뜯겨 나간 자리를 간신히 쥐어짜듯 여미며 신음했다.

“전부 일어나! 5분 내로 작업장으로 안 나오면 오늘 일당은 전부 몰수다! 움직여, 이 기생충들아!” 헨리의 거친 고함에 좁은 이층 침대 칸마다 숨어 있던 동양인 워커들이 유령처럼 기어 나왔다. 대만에서 왔다는 린과 일본인 학생 타쿠야는 연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 누구도 전날 밤 연우의 숙소 방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방관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줄 역시 마크의 손에 쥐여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자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연우는 수돗물마저 누런 흙물이 섞여 나오는 세면대에서 대충 얼굴을 훔쳤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은 이틀 만에 초점을 잃고 흐려져 있었다. 시드니에서 밤낮으로 설거지를 할 때도 이토록 비참하지는 않았다. 최소한 그곳에서는 일이 끝나면 돌아갈 나만의 작은 방이 있었고, 거리를 걸을 자유가 있었으며, 위험하면 000을 눌러 경찰을 부를 수 있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곳은 사방이 수백 킬로미터의 황무지로 둘러싸인 거대한 사막의 고도였다. 연우는 마른 침을 삼키며 흙먼지가 가득한 작업화에 발을 밀어 넣었다. 발뒤꿈치가 이미 까져 진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가슴을 짓누르는 공포가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낮의 아웃백은 인간의 육체를 가장 효율적으로 부수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가마솥 같았다. 오전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온도가 섭씨 42도까지 치솟았다. 대기 중에 습기라곤 전혀 없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포가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연우에게 주어진 임무는 거대한 농장 구획 중에서도 가장 외진 제4구역의 오렌지 채취 및 상자 적재 작업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수확용 가방에 오렌지가 가득 찰 때마다 척추가 부러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연우를 더 미치게 만드는 것은 육체적 피로가 아니었다. 오렌지 나무 사이사이마다 서서 까맣게 선글라스를 낀 채 장총이나 사냥용 칼을 허리에 찬 마크의 감시원들이 워커들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워커들이 허리를 펴거나 물을 마시기 위해 몇 초만 멈춰 서도 사납게 사냥개를 풀거나 채찍 같은 폭언을 퍼부었다.

“빨리 움직여, 연우! 네가 시드니에서 하던 짓거리대로 굴면 여기서 국물도 없어!” 멀리서 트럭을 타고 나타난 마크가 확성기를 대고 연우의 이름을 불렀다. 연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떨며 다시 허리를 숙였다. 마크는 트럭 보닛에 기대어 앉아 연우가 뜨거운 볓 아래에서 허덕이는 모습을 마치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보듯 즐기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연우의 땀에 젖어 살갗에 달라붙은 셔츠와 바지선을 노골적으로 훑고 지나갔다.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러다간 정말 인간으로서의 형태마저 잃어버릴지 모른다.’ 연우는 오렌지를 따는 척하며 서서히 제4구역의 경계면인 철조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조망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보였다. 하지만 그 지평선은 자유의 통로가 아니었다. 도로도 없고, 물도 없는 붉은 모래의 바다. 차편이 없고 여권이 없는 상태에서 저 철조망을 넘는다는 것은 곧 아웃백의 야생동물이나 갈증에게 스스로 목숨을 바치는 자살 행위와 다름없었다. 마크가 왜 여권을 빼앗으면서 “걸어서 나가봐라”고 비웃었는지, 연우는 붉은 대지의 압도적인 광활함 앞에서 절망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 워커들에게 제공된 것은 곰팡이 냄새가 나는 딱딱한 빵 두 조각과 미지근한 물 한 컵이 전부였다. 연우가 숙소 그늘에 주저앉아 빵을 씹지도 못하고 삼키고 있을 때, 마크의 그림자가 연우의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마크는 연우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더니, 주머니에서 얼음이 가득 담긴 깨끗한 생수 한 병을 꺼내 연우의 뺨에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차가운 감각에 연우가 놀라 고개를 돌리자, 마크는 다정한 아저씨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많이 힘들지, 연우 양? 시티에서 고생만 하던 애가 이런 거친 일을 하려니 몸이 안 따라주는 게 당연해.” 마크는 생수병을 연우의 손에 쥐여주며 친근하게 어깨를 토닥였다. 그 손길은 전날 밤의 폭력적인 통제와는 완전히 다른, 마치 구원자라도 된 듯한 위선적인 따뜻함이었다. 연우는 소름이 돋았지만, 타는 듯한 갈증에 생수병을 거부하지 못했다. 마크는 연우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내가 연우 양을 특별히 챙기는 거야. 다른 애들은 독종들이라 신경 안 쓰지만, 연우 양은 순진해서 걱정이 돼서 말이지. 잘 생각해 봐. 네가 한국에서 대학 다니다 휴학하고 여기 와서 버신 돈이 얼마야? 시드니에서 불법 캐시 잡 뛰면서 시급 15불 받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거기선 집세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잖아. 하지만 여기선 내 말만 잘 들으면 석 달 뒤에 네 통장에 이만 불이 꽂혀서 나갈 수 있어. 널 이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연우 양.” 마크의 목소리는 정교한 최면과 같았다. 그는 연우가 처한 경제적 취약성과 고립감을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외부 세계는 너를 착취하는 차가운 곳이며, 오직 이 농장 안에서 마크의 규칙을 따를 때만 안전과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기만적인 논리.

“하지만… 여권이랑 핸드폰을 돌려주셔야…” 연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반박하자, 마크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여권? 너 같은 불법 체류 직전의 유학생이 아웃백에서 여권 들고 다니다가 이민국 단속에 걸리면 바로 수용소행이야. 내가 널 보호해 주려고 보관하는 건데, 내 호의를 의심하는 거야?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반항적으로 나오면, 계약 위반으로 그동안 일한 일당 한 푼도 없이 당장 이 정문 밖으로 쫓아낼 줄 알아. 네가 호주 땅에서 나 없이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크는 연우의 턱을 세게 쥐어 흔들었다. 물리적인 폭력보다, “너는 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존재론적 부정과 가스라이팅이 연우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연우는 자신이 정말 무력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깊은 굴욕감과 심리적 마비 상태에 빠져들었다.

해가 지고 다시 찾아온 밤은 낮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마크의 가스라이팅은 낮에 끝나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는 아예 연우의 컨테이너 방 문을 잠그고, 연우를 자신의 전용 집무실 겸 숙소가 있는 본채 건물로 불러들였다. “농장 장부 정리를 도우라”는 명목이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연우를 제외한 농장 안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본채 건물 내부의 서재는 두꺼운 목제 문으로 차단되어 있어, 안에서 어떤 비명이 터져 나와도 외부의 워커들이 지내는 컨테이너까지 전달되지 않는 구조였다.

방 안에는 붉은 조명과 함께 가죽 소파, 그리고 마크가 마시다 남은 양주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마크는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어헤친 채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연우를 바라보았다. “이리 와서 내 어깨 좀 주물러봐. 오늘 하루 종일 트럭 몰았더니 삭신이 쑤시는군.” 연우는 문가에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방 안의 밀폐된 공기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연우의 목을 조여왔다.

“싫습니다. 제 방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연우가 용기를 내어 거부하자, 마크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거구의 그림자가 연우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마크는 연우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소파 위로 거칠게 던졌다. 쿵 소리와 함께 소파에 처박힌 연우의 위로 마크의 육중한 몸이 엎어지듯 다가왔다. “돌아가? 어디로? 네 발로 걸어서 시드니까지 갈래? 아니면 내 금고를 털어서 도망갈래? 내가 좋게 말할 때 들었어야지, 연우 양.” 마크는 연우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제압해 머리 위로 누르고, 다른 손으로 연우의 겉옷을 거칠게 찢어내듯 들추었다. 성인 독자층을 겨냥한 자극적이고 강압적인 지배 행위가 밀폐된 방 안에서 노골적으로 자행되었다. 마크는 연우의 귀에 대고 잔인하게 속삭였다.

“네 육체도, 네 미래도 다 내 손아귀에 있어. 여기서 네가 살아서 나갈 방법은 딱 하나뿐이야. 내 마음에 드는 인형이 되는 것.” 연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저항하려 했지만, 압도적인 신체적 차이와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의 고립감 앞에서 비명조차 사치였다. 웅크린 채 눈물을 흘리는 연우의 귓가에 마크의 가학적인 웃음소리가 밤새도록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연우는 간신히 본채 건물에서 풀려나 낡은 컨테이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찢겨진 옷가지를 대충 걸친 채, 연우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없는 오열을 터뜨렸다. 몸의 상처보다 더 끔찍한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돌이킬 수 없이 부서져 내렸다는 감각이었다. 마크의 말대로 자신은 정말 이 거대한 아웃백의 붉은 사막 한가운데서 먼지처럼 사라져도 아무도 알지 못할 존재라는 공포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침대 이층에서 숨죽이고 있던 대만인 워커 린이 조심스럽게 내려와 연우의 어깨에 낡은 담요를 덮어주었다. 린의 눈에도 과거에 똑같은 일을 겪었을 자의 깊은 절망과 체념이 서려 있었다. “연우… 울지 마. 여기서 살려면… 그냥 마크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편해. 반항하면 정말 저 사막에 버려져. 작년에 한 중국인 애도 도망치다가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몰라.” 린의 건조한 경고는 연우의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았다. 탈출의 기회도, 구원의 손길도 없는 완벽한 밀폐. 농장주 카르텔이 쳐놓은 촘촘한 정신적, 육체적 올가미는 이미 연우의 목을 완벽하게 조르고 있었다.

연우는 밤하늘의 십자가 자리를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핏방울이 맺혔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이 농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닌, 생존을 건 거대한 심리적 전쟁터였다. 마크의 비열한 통제 속에서 존엄성을 짓밟힌 연우는, 과연 이 지옥 같은 굴레를 끊어내고 신체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오세아니아의 붉은 대지 위로, 또다시 잔혹한 세 번째 날의 새벽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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