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명예의 족쇄와 지옥의 입구
두바이의 7월은 지옥의 문이 열린 듯 잔혹하다. 습도를 가득 머금은 공기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을 턱 막히게 만들고, 매년 이 시기가 되면 도시는 화씨 110도를 넘나드는 거대한 가마솥으로 변해버린다. 밖을 나서는 순간 폐부 깊숙이 뜨거운 모래바람과 열기가 박혀 통증을 유발하지만, 그 살인적인 더위조차 이 화려한 인공 도시의 위용을 가리지는 못한다. 아말은 팜 주메이라의 초고층 펜트하우스 발코니에 서서,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페르시아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어컨이 차갑게 가동되는 실내와 달리, 발코니의 유리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열기는 그녀가 처한 현실만큼이나 숨이 막혔다.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에 들린 최신형 스마트폰 화면에는 방금 전 업로드한 명품 브랜드의 비공개 런칭 파티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실시간으로 수천 개의 ‘좋아요’와 부러움 가득한 댓글이 찍히고 있었지만, 아말의 눈동자는 얼어붙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그녀는 에미리트 내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정계 유력 가문의 장녀였다. 두바이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전도유망한 엘리트로 꼽히며 모두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존재이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아말의 삶은 완벽하게 정제된 금빛 신기루 그 자체였다. 고급 슈퍼카를 타고 캠퍼스에 나타나며, 전 세계에 몇 점 없는 한정판 핸드백을 태연하게 들고 다니는 그녀의 일상은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 눈부신 황금색 외피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내부에서부터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대리석 바닥으로 마감된 펜트하우스 드레스룸 구석에는 그녀의 화려한 사치와 허영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해 온 그림자 금융의 영수증과 사채 차용증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아말의 가문은 명예를 중시하는 만큼 자식들의 경제적 지출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가문이 정해준 엄격한 용돈의 한계는 아말이 상류층 사교계에서 유지하고 싶었던 끝없는 사치벽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주인공이어야 했던 아말은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바로 두바이 지하 경제의 포식자이자, 양지의 권력자들과도 은밀하게 닿아 있는 사채업자 ‘바르다크’의 네트워크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아말은 그것이 단순히 고리의 이자를 내고 돈을 잠시 빌리는 행위일 뿐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문의 인장이 찍힌 서류와 자신의 신원 보증서가 첨부된 백지 서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그것은 돈을 빌리는 계약이 아니었다. 아말은 자신의 영혼과 존재 자체를 바르다크에게 통째로 양도하는 노예 계약서에 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그녀는 명문가 딸이라는 아름다움과 지위라는 가죽만 겨우 입고 있을 뿐, 실제로는 바르다크라는 주인의 손가락 끝에 매달려 움직이는 박제된 인형에 불과했다.
빚은 매달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다. 복리에 복리가 붙어 원래 빌린 돈의 몇 배가 처음에 청구되었을 때, 아말은 자신이 완전히 덫에 걸렸음을 깨달았다. 두바이의 화려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펜트하우스 안에서, 아말은 언제 이 화려한 유리 성이 깨져버릴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감에 휩싸여 매일 밤을 지새워야 했다. 겉으로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SNS에 사진을 올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내면은 이미 시커먼 잿더미가 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바르다크의 독촉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스마트폰의 진동음은 그녀의 심장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중동의 폐쇄적인 상류 사회에서 여성에게 ‘명예(Honor)’라는 단어는 단순한 자부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때로 육체적인 생명보다 더 무겁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여성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하는 것을 넘어, 가족들의 손에 의해 생을 마감해야 하는 잔혹한 관습이 여전히 공공연한 비밀로 존재했다. 명예는 곧 법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굴레였다. 지하 세계에서 온갖 인간의 탐욕을 받아먹으며 자라난 포식자 바르다크는 아말의 목을 죄어오는 이 거대한 굴레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말이 사치품을 사기 위해 빌린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한계에 다다르자, 바르다크는 거친 부하들을 보내 무식하게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삼류 방식을 쓰지 않았다. 그는 상류층 생태계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아말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놓을 수 있는 훨씬 더 정교하고 치명적인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느 날 아말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몇 개의 파일은 그녀의 세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아말이 가문의 눈을 피해 다른 남성과 은밀하게 주고받았던 사적인 대화 내역들과, 외국인들이 가득한 폐쇄적인 파티장에서 술잔을 든 채 무심코 찍혔던 아주 짧은 영상들이었다. 서구권 기준에서는 젊은 대학생의 평범하고 철없는 일탈에 불과한 모습이었지만, 이슬람 율법과 가문의 엄격한 도덕적 의무를 맹신하는 아말의 집안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이자 수치였다. 특히 정계 진출을 눈앞에 두고 평판에 목숨을 거는 그녀의 아버지와 숙부에게 이 영상이 들어가는 날에는, 아말의 인생은 그 자리에서 끝장날 것이 분명했다. 단순한 파문을 넘어 가문의 수치를 씻어내겠다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명예살인’의 완벽한 명분이 될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다.
아말은 바르다크가 지정한 두바이 외곽의 한적하고 은밀한 사무실로 불려 나갔다. 방 안의 공기는 에어컨 때문에 서늘했지만, 아말의 등 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책상 맞은편에 앉은 바르다크는 위협적인 표정을 짓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독할 정도로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아말, 네 아버지가 이 영상을 보신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네가 매달 받아 쓰던 그 엄청난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리고 그 돈으로 어떤 짓을 하고 다녔는지 알게 된다면 말이야.” 바르다크가 슬쩍 들이민 화면 속 아말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하고 즐거워 보였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잔인하게 다가왔다. 그 화면을 바라보는 아말의 입술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깊고 어두운 늪에 발을 들였는지 온몸으로 체감했다. 바르다크의 눈빛은 먹잇감을 앞에 둔 뱀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바르다크는 겁에 질린 아말을 잔인하게 몰아붙였다. 그는 당장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대신, 아말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제안을 건넸다. 아말의 가문이 주도하여 진행하고 있는 두바이 정부의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 그 수조 원대 입찰 정보와 내부 보안 문서를 빼내 오라는 요구였다. 밀린 이자와 원금을 전부 탕감해 주는 것은 물론, 영상까지 완벽하게 삭제해 주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아말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가문의 핵심 정보를 넘기는 것은 집안을 통째로 파멸로 몰고 가는 배신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말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바르다크는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의 손에 쥐어진 휴대폰을 거칠게 뺏어 들었다. 그리고 가문의 수장이자 가장 엄격한 성정의 소유자인 그녀의 숙부 메신저 창을 열고, 문제의 영상을 전송하기 직전의 화면을 아말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선택해. 당장 오늘 밤 네 가문에서 쫓겨나 모래바람 속에 묻힐 것인지, 아니면 영리하게 우리와 공생할 것인지.”
보내기 버튼 위에 올려진 바르다크의 거친 손가락을 본 순간, 아말의 이성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가문의 평판과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가문을 파멸시킬 내부 정보를 팔아넘겨야만 하는 모순적인 지옥의 입구. 아말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대가로 얻은 일시적인 안전은 구원이 아니라, 더 거대한 파멸을 향해 가는 급행열차 티켓이었다. 바르다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그녀가 쌓아 올린 화려한 인생의 탑은 이미 내부에서부터 처참하게 붕괴하고 있었다.
바르다크의 손아귀에 저당 잡힌 삶은 아말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혹독하고 잔인하게 전개되었다. 그녀가 가문의 서재와 숙부의 집무실을 몰래 뒤져 빼내 온 건설 프로젝트의 입찰 정보는 바르다크의 손을 거쳐 거대 지하 자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 대가로 아말의 숨통을 죄던 수억 원의 사채 빚 중 일부가 감면되었지만, 그것은 결코 영원한 자유를 의미하지 않았다. 바르다크는 아말이라는 고급 정보원을 단순한 일회성 끄나풀로 소모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아말의 도덕성과 인간성을 완벽하게 파괴하여, 자신에게서 절대로 도망칠 수 없는 영원한 공범이자 충실한 사냥개로 만들고자 하는 더 악랄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아말은 주메이라 해변에 위치한 최고급 레스토랑의 프라이빗 룸으로 호출되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아말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독한 시가 연기 너머로 바르다크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는 아말이 가져온 정보 덕분에 막대한 이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새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아말, 네가 가져오는 정보는 쓸만하지만, 네가 진 빚의 무게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해. 그래서 내가 아주 쉬운 빚 탕감 방법을 제안하려고 하지.” 바르다크는 테이블 위로 고급 양주를 따르며 낮게 읊조렸다. “네 대학교 친구들을 데려와라. 너처럼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돈이 필요한 상류층 여대생들 말이야.”
그의 요구는 단순한 동석이 아니었다. 바르다크가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베일에 싸인 권력자들과 자산가들을 위한 ‘프라이빗 디너 파티’에 아말의 동기들을 유인해 오라는 전형적인 덫이었다. 아말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친구들을 제 발로 도살장에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짓이었다. 아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자, 바르다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너 혼자 모든 짐을 지고 가문에서 매장당할 필요는 없잖아? 네 친구 한 명당 네 채무 계좌의 숫자가 아주 파격적으로 줄어들 거다. 잘 생각해 봐. 네가 살려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야 해.”
방 안을 채운 무거운 침묵 속에서 아말은 격렬한 심리적 붕괴를 겪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거울을 볼 때마다 매일같이 밀려들던 혐오감과 토악질의 기억이 소용돌이쳤다. 거울 앞에는 여전히 화려한 명품으로 치장한 명문가의 품격 있는 딸이 서 있었지만, 그 거울 속 눈동자에는 이미 영혼이 완전히 도려내진, 살아있는 좀비가 숨을 쉬고 있었다. 자신의 안위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타인의 인생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악마의 계약 앞에서,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도덕적 거부감은 생존을 향한 비겁한 본능 앞에서 서서히 마모되어 갔다.
아말은 결국 가장 먼저 희생시킬 제물로 자신의 캠퍼스 단짝인 ‘나디아’를 선택했다. 나디아는 평소 아말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진심으로 동경하고 부러워하던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상류층 사교계에 진입하고 싶어 했지만, 아말만큼의 경제적 배경이나 가문의 든든한 지원이 없었던 나디아는 언제나 기회에 굶주려 있었다. 아말은 나디아의 그 사소한 허영심과 결핍을 정확하게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아말은 태연하게 스마트폰을 들어 나디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새로 오픈하는 부티크 쇼핑몰의 VIP 비공개 런칭 파티가 있는데, 특별히 너를 파트너로 초대하겠다는 거짓 덫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디아는 아말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답장을 보냈다. 다음 날 캠퍼스에서 만난 나디아는 격하게 아말을 껴안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연발했다. “아말, 역시 나를 챙겨주는 건 너밖에 없어! 나 정말 열심히 꾸미고 갈게.” 나디아의 때 묻지 않은 진심 어린 포옹과 온기가 살죽을 파고들 때마다, 아말은 자신의 등 뒤를 날카로운 사시미 칼날이 사정없이 찌르는 듯한 극심한 환통을 느꼈다. 하지만 아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화사한 미소로 화답했다. 이미 그녀의 인간성은 돈과 생존이라는 계산기 앞에서 완벽하게 거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파티 당일 밤, 아말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나디아를 고급 세단에 태워 바르다크가 지정한 두바이 외곽의 삼엄한 저택 앞에 내려주었다. 저택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나디아가 설레는 발걸음으로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아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손으로 바르다크에게 짧은 신호 문자를 보냈다. [입장했음.] 저택의 육중한 문이 등 뒤에서 쾅 하고 닫히는 순간, 나디아의 잔인한 운명은 바르다크의 잔혹한 시스템 속 소유물로 전락했다. 아말은 자신의 안위와 빚을 탕감받기 위해 가장 소중한 친구를 팔아넘긴, 추악한 가해자가 되어 지옥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디아는 그날 밤 이후 캠퍼스에서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단짝 친구의 갑작스러운 증발에 학과 동기들과 교수들이 의아해하며 행방을 물을 때마다, 아말은 미리 준비해 둔 시나리오대로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나디아, 평소에 가고 싶어 했던 영국 런던의 예술대학으로 급하게 유학을 떠났어. 가문 사정상 조용히 출국해야 했다고 하더라고.” 아말의 입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매끄러운 거짓말을 뱉어냈지만, 그녀의 차가운 머릿속은 나디아가 처한 진짜 현실을 너무나도 잔인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나디아는 유학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두바이 화려한 도심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끝없는 모래바람과 이글거리는 태양만이 존재하는 사막 한복판의 은밀한 저택, 이른바 ‘그림자 하렘’이라 불리는 수용소로 보내진 것이었다.
그곳은 바르다크가 채무 관계에 얽힌 여성들이나 신원을 확보한 타깃들을 감금하고, 별장의 실제 소유주인 막강한 권력자들과 자산가들에게 그들을 ‘대여’하는 잔혹한 지하 요새였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가려진 그 거대한 별장 안에서 나디아를 비롯한 여성들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존엄성을 무참히 박탈당했다. 그곳의 여성들은 더 이상 성매매를 강요받는 평범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별장 주인의 기분과 취향에 따라 철저하게 통제되고 소비되는 ‘시간제 소유물’에 불과했다. 저택에 발을 들이는 순간 본래의 이름은 깨끗이 지워졌고, 오직 가슴팍에 달린 차가운 금속 번호표로만 불렸다. 주인의 변덕스러운 취향에 맞춰 지정된 화장품을 바르고, 그들이 원하는 옷을 입은 채 인형처럼 박제되어 숨을 쉬어야 했다.
이곳에서 자행되는 구속은 단순히 손목을 묶는 육체적 포박이 아니었다. 바르다크와 그의 수하들이 설계한 구속은 인간의 정신을 완벽하게 파멸시키는 정교한 심리적 고문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관리자들은 수용된 여성들에게 매일같이 지독한 공포와 죄책감을 주입했다. “너희 가문은 이미 너희가 저지른 일탈을 알고 너희를 버렸다. 만약 여기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간다면, 네 아버지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죄로 네 목을 가장 먼저 벨 것이다.”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회적 풍토에서 자라난 피해자들은 이 정교한 가스라이팅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자신들이 가문을 더럽혔다는 지독한 죄책감과 명예살인에 대한 극심한 공포가 결합하자, 피해자들은 세상과 소통할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채 가해자들의 지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노예로 정당화하는 비극적인 정신적 붕괴가 완성된 것이다.
그 완벽한 가스라이팅의 결과물은 바르다크의 차가운 사무실 데스크 위에서 증명되었다. 얼마 후 아말은 새로운 지시를 받기 위해 바르다크를 찾았고, 그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아말의 앞에 몇 장의 사진을 툭 던졌다. 사진 속에는 사막의 저택 안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나디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나디아의 영혼이 어떻게 파괴되었고, 그녀가 얼마나 철저하게 그 시스템에 복종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말은 순간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지만, 이내 잔인한 현실을 마주했다. 아말은 나디아의 멍한 눈빛을 바라보며, 자신이 바르다크에게 진 빚이 과연 얼마큼 차감되었는지를 머릿속으로 차갑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친구의 인생이 고작 장부상의 숫자로 환산되는 그 잔인한 순간, 아말은 거울 속의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존엄마저 완전히 거세되었음을 담담하게 인정해야만 했다.
사막의 지옥에서 돌아온 아말은 다시 팜 주메이라의 펜트하우스로 복귀했다. 거실의 통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두바이의 밤은 밤하늘의 별을 지상에 흩뿌려 놓은 것처럼 찬란하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최고급 빌딩들이 뿜어내는 수천, 수만 개의 인공적인 불빛들이 페르시아만의 검은 바다 위로 일렁였지만, 아말에게 그 눈부신 야경은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 순간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심장을 난도질하는 잔혹한 고문이자,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황금 감옥의 창살과도 같았다. 사방이 대리석과 명품으로 가득 찬 고요한 공간 속에서, 아말은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자신의 차가워진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나디아를 사막의 하렘으로 밀어 넣은 대가로 사채 장부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그녀의 가슴속에 들어찬 구역질과 죄책감은 그 어떤 명품 향수로도 지울 수 없는 악취가 되어 온몸을 맴돌았다.
그 무거운 침묵을 깨고 대리석 테이블 위에서 스마트폰이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말은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듯한 서늘한 감각을 느끼며 화면을 확인했다. 발신인의 이름은 뜨지 않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르다크였다. 침을 들이삼키며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지독할 정도로 건조하고 쇳소리가 섞인 바르다크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아말, 네가 보내준 나디아 덕분에 우리VIP들이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약속대로 네 채무 계좌의 상당 부분을 정리해 주지.” 바르다크는 잠시 말을 멈춘 뒤, 뱀이 혀를 름작이듯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면 곤란해. 비즈니스를 더 확장해야 하거든. 다음 타깃은 네 사촌동생이다. 그녀가 대학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가문에서 부여받은 내부 네트워크 보안 키, 그리고 그녀의 개인적인 동선 일정을 완벽하게 확보해서 가져와라.”
아말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사촌동생은 아직 사교계의 때가 묻지 않은, 가문에서 가장 순수하고 촉망받는 아이였다. 아말은 휴대폰을 쥔 손에 부르르 힘을 주며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그 애는 안 돼요…. 제발 그 애만큼은 손대지 말아 주세요.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러나 바르다크의 반응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냉혹했다. “아말, 착각하지 마라. 너한테는 거부권이 없어. 네가 여기서 멈추는 순간, 네가 지금까지 빼돌린 가문의 건설 프로젝트 정보와 네가 찍힌 그 더러운 영상들이 네 아버지의 집무실 팩스로 고스란히 전송될 테니까. 네 사촌동생을 지키려다 네가 가장 먼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죄로 사막 어딘가에 묻히고 싶나?” 바르다크의 마지막 경고는 차가운 칼날이 되어 아말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전화가 툭 끊기고 방 안에는 다시 지독한 정적이 찾아왔다. 아말은 온몸의 힘이 풀린 채 화장대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에는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눈동자의 생기가 완전히 죽어버린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슬픔도, 분노도, 최소한의 양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자신이 죽는다는 공포, 그리고 가문의 명예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난도질당할 것이라는 극심한 두려움만이 그녀의 전신을 지배했다. 살기 위해서라면, 이 지옥 같은 시스템에서 단 하루라도 더 숨을 붙이고 있으려면 타인을 짓밟고 파멸시켜야 한다는 기계적인 생존 본능만이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녀는 이미 바르다크가 설계한 잔혹한 사슬의 핵심 고리가 되어 있었고, 무고한 피해자들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가장 비참한 가해자로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아말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대 위에 놓인 화려한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귀걸이를 귓볼에 거칠게 밀어 넣었다. 살점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찌릿하게 퍼졌지만, 그녀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가슴속에 몰려오는 지옥의 고통에 비하면 육체의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말은 천천히 스마트폰을 켜고 사촌동생의 메신저 창을 열었다. 그리고 나디아를 파멸로 몰고 갔던 것과 똑같은 양식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거짓 초대장을 한 글자씩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화면 위로 찍히는 글자들은 마치 사촌동생의 목을 죌 사형 선고문처럼 차갑고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두바이의 밤은 잔인하도록 아름다웠고, 거대한 지하의 포식자는 새로운 제물이 덫에 걸리기를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잔혹한 악몽의 사슬은 결코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었다. 마지막 사냥감이 파멸의 도살장으로 완전히 걸어 들어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