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잔혹사 이집트편 #001] 카이로의 검은 나일 (The Digital Shackles) — 7-3화: 명예의 무게 (실제 사건 파일 기반 각색)

 7-3화: 명예의 무게

경찰이 파하드를 체포한 지 일주일 후, 나디아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라.”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냉랭했다. 나디아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파하드는 잡혔고, 증거는 확보되었다. 언론에는 그녀의 실명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안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안전’이란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거실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고모부가 앉아 있었다. 고모부의 얼굴은 평소처럼 온화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차가운 단호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앉아라.”

나디아는 그들 앞에 앉았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이게 사실이냐?”

고모부가 휴대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화면 속에는 나디아의 얼굴이 있었다. 그녀가 요트에서 찍힌 사진들이었다. 알몸은 아니었다. 하지만 목줄을 차고 네 발로 기어 있는 모습. 그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건… 합성이에요.”

“거짓말. 경찰 조사 결과, 이건 합성이 아니라고 하더라. 진짜야.”

나디아의 입이 닫혔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이웃들은 우리 집을 손가락질한다. 너의 대학교수도 너를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고모부, 하지만 저는 피해자예요. 제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에요.”

“피해자? 중요한 건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고모부는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그 위에는 아랍어로 쓰여진 글씨들이 있었다.

“이 서류에 서명하면, 너는 이 가문에서 제명된다. 네 이름은 가족 기록에서 말소된다. 너는 더 이상 우리의 딸이 아니야.”

나디아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그녀의 눈을 마주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깍지 껴고 있었다.

“아버지…”

“미안하다, 나디아.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녀는 펜을 들었다.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나디아는 집을 나섰다.

그녀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거리를 걸었다. 카이로의 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북적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속에서 혼자였다.

그녀는 레일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일라는 경찰 조력자로서 보호받고 있었다.

“레일라, 나 집에서 쫓겨났어.”

“뭐? 왜?”

“가문에서 나를 제명했어. 내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당신은 피해자잖아!”

“그래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이제 ‘그런 여자’일 뿐이야.”

레일라는 그녀에게 자신이 머물고 있는 쉼터로 오라고 했다. 나디아는 그곳으로 향했다.

쉼터는 카이로 외곽의 작은 건물이었다. 그곳에는 나디아와 같은 피해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디아를 반겼다.

“여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만 있어. 여기서는 안전해.”

레일라가 말했다. 나디아는 그녀를 안았다. 그녀에게는 레일라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안전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후, 나디아의 신상 정보가 인터넷에 유포되었다.

누가 한 짓인지 알 수 없었다. 파하드의 잔당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녀를 싫어하는 이웃들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의 이름, 얼굴, 학교, 가족 관계가 모두 인터넷에 떴다.

‘카이로 대학 엘리트 여대생의 충격적 이중생활’

‘나디아, 파하드의 요트에서 성매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딸’

댓글들은 그녀를 향한 증오로 가득했다.

‘이런 여자는 죽어야 한다.’

‘가문에서 쫓아낸 게 다행이다.’

‘그래도 부모님은 불쌍하네.’

‘나는 저런 딸을 낳았으면 목을 꺾었을 텐데.’

나디아는 댓글들을 읽으며 손을 떨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레일라가 그녀를 안았다.

“읽지 마, 언니.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

“그래도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는 건 사실이잖아. 나는 부끄러워. 너무 부끄러워.”

“부끄러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피해자야. 가해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 말은 나디아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녀는 쉼터에 갇혀 지냈다. 마치 또 다른 감옥에 갇힌 것처럼.

몇 주 후, 레일라가 사라졌다.

그녀의 짐은 그대로였다. 휴대폰도, 지갑도,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나디아는 그녀를 찾으러 나섰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며칠 후, 레일라의 시신이 나일강에서 발견되었다.

익사체였다. 그녀의 몸에는 폭행당한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나디아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죽임을 당했다. 파하드의 잔당들이, 아니면 그녀를 부끄러워하는 가족들이.

나디아는 장례식에 갔다. 레일라의 가족들은 그녀를 보자 침을 뱉았다.

“네가 내 딸을 망쳤어! 네가!”

레일라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나디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레일라의 무덤 앞에 서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

“미안해, 레일라. 내가 너를 지키지 못해서.”

그녀는 무덤 위에 작은 꽃을 놓았다. 그리고 돌아섰다.

그녀는 이제 혼자였다.

레일라의 죽음 이후, 나디아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녀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쉼터의 방에 갇혀 지냈다.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밤새도록.

‘내가 레일라를 구했더라면. 내가 그녀를 파하드에게서 데려왔더라면. 그녀는 아직 살아있을 텐데.’

그녀는 자신을 자책했다. 하지만 그 자책은 그녀를 더 깊은 늪으로 빠뜨렸다.

어느 날, 그녀는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다. 뺨은 패였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디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었다.

그녀는 욕조에 물을 받았다. 뜨거운 물이었다. 그녀는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갔다. 물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녀는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흉터가 있었다. 파하드의 지하실에서 쇠고랑에 묶였던 자국. 그 흉터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레일라, 나는 곧 너에게 갈게. 조금만 기다려.’

그녀는 욕조 속으로 몸을 가라앉혔다. 물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그녀는 숨을 참았다.

그녀는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

‘죽으면 파하드의 승리야. 나는 살아서 그를 증언해야 해.’

그녀는 욕조에서 나왔다. 물은 이미 식어 있었다.

그녀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입었다. 거울 속 자신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려움도, 슬픔도, 분노도. 그냥 텅 빈 공간.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살아남을 거야. 어떻게든. 그것이 레일라가 바라는 전부일 테니까.’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조차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END —————————————-목록으로 (클릭)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