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영원한 방랑
로안나는 브라쇼브의 쉼터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계속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다.
마르가레타는 그녀의 결정을 듣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정말 가야겠니? 여기는 안전해. 너를 지켜줄 수 있어.”
“안전하지 않아요. 그들이 여기까지 올 거예요. 언젠가는.”
“그럼 어디로 갈 건데?”
“남쪽으로 갈 거예요. 불가리아 국경 근처로.”
마르가레타는 한숨을 쉬며 로안나의 손을 잡았다.
“조심해. 그리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돌아와. 문은 항상 열려 있을 거야.”
로안나는 가방을 쌌다. 옷 몇 벌, 핸드폰 충전기, 그리고 남은 돈 400 RON.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브라쇼브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 루세. 불가리아 국경 바로 앞의 도시였다. 버스 안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카르파티아 산맥이 점점 멀어졌다.
몇 시간 후, 버스는 루세에 도착했다. 도시는 낡고 허름했다. 소련 시절의 건물들이 즐비했고, 거리엔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로안나는 싸구려 여관을 찾아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하루에 50 RON. 방은 좁았지만, 깨끗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렇게 계속 도망칠 수 있을까? 불가리아로 가면 안전할까? 아니면 세르비아로? 헝가리로? 그녀는 갈수록 지쳐갔다.
로안나는 다음 날 불가리아로 건너가기로 했다. 국경은 루세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였다. 그녀는 여권을 꼭 쥐고 걸어갔다.
국경 검문소는 생각보다 허술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모두 EU 회원국이라 자유 이동이 가능했다. 그녀는 여권을 제시했고, 경찰관은 간단히 확인 후 통과시켰다.
불가리아, 루세의 맞은편 도시는 지우르지우였다. 이름은 달랐지만, 풍경은 비슷했다. 낡은 건물, 좁은 길, 그리고 무표정한 사람들.
로안나는 지우르지우의 버스 터미널로 갔다. 그녀는 소피아로 가는 버스를 탔다. 수도가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소피아는 부쿠레슈티보다 컸다. 하지만 더 지저분했다. 그녀는 시내 중심가의 싸구려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주인은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친절했다.
“얼마나 있을 거야?”
“글쎄요… 며칠 maybe.”
“하루에 30 레바. 약 60 RON이야.”
로안나는 방을 잡았다. 그녀는 이제 돈이 300 RON 남짓이었다. 일주일도 버티기 어려웠다.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불가리아어를 못 했다. 영어는 조금 할 수 있었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소용없었다. 그녀는 구걸할 수도 없었다. 너무 눈에 띄었다.
며칠 후, 그녀는 한 한국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을 찾았다. 시급은 2 레바(약 4 RON). 터무니없이 낮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그 일을 시작했다.
로안나는 소피아에서 한 달을 살았다.
식당 일은 힘들었지만, 적어도 굶지는 않았다. 주인은 저녁 식사를 제공해주었다. 그녀는 그 식사로 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불안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거리를 걸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색 세단이 보이면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문이 잠겨 있는지 수십 번 확인했다.
어느 날, 식당에 루마니아어를 하는 남자가 들어왔다. 로안나는 그를 보고 숨을 죽였다. 남자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루마니아 사람이지?”
“…네.”
“여기서 뭐 해?”
“일해요.”
남자는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네. 나도 루마니아 사람이야. 부쿠레슈티 출신.”
로안나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그녀는 여관으로 돌아와서 결심했다. 여기도 안전하지 않다. 다시 도망쳐야 한다.
그녀는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세르비아. 니스. 소피아에서 서쪽으로 약 150킬로미터. 다시 도망이다.
몇 년이 지났다.
로안나는 더 이상 자신이 몇 개국을 거쳐왔는지 세지 않았다. 불가리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가끔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헷갈렸다.
그녀는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식당 접시 닦기, 청소부, 공장 조립 라인, 과수원에서 사과 따기, 호텔 침대 정리. 그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 새로운 이름을 사용했다. 마리아. 안카. 이리나. 가끔은 로안나. 하지만 진짜 이름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친절한 사람도 있었고, 악의적인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도와주었고, 어떤 이들은 이용하려 들었다. 그녀는 그런 경험을 통해 점점 더 냉소적이 되었다.
도망치는 삶은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누구도 믿지 않았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았다. 그냥 떠돌아다녔다.
어느 날, 그녀는 오스트리아 빈의 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노숙자들이 몇 명 있었다. 그녀도 그중 하나였다. 오늘은 잠잘 곳이 없었다. 여관비가 없었다.
하늘에는 별이 보였다. 그녀는 그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마니아에 있었다.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쉼터가 있었고, 마르가레타가 있었고, 안드레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치기로 선택했다. 모든 걸 뒤로하고.
그 선택이 옳았을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여기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한 공원 벤치에서. 아무것도 없이.
오스트리아에서 1년. 로안나는 노숙자 생활에 익숙해졌다.
어떤 날은 구호 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다. 어떤 날은 쓰레기통에서 남은 음식을 주워 먹었다. 겨울은 특히 힘들었다. 빈의 겨울은 혹독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얼어 죽을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루마니아 커뮤니티 센터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루마니아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도와주고 있었다.
로안나는 센터에 들어갔다. 운영자는 5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로안나를 보고 놀랐다. 너무 야윈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름이 뭐니?”
“로안나예요.”
“루마니아 어디서 왔어?”
“부쿠레슈티.”
“가족은? 여기서 뭐 해?”
로안나는 말문이 막혔다. 가족. 그녀는 가족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그들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그녀가 죽은 줄 알 것이다.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가족은 없어요. 혼자예요.”
운영자는 로안나를 측은히 여겨 한 끼 식사를 제공했다. 그리고 잠잘 곳도 마련해주었다. 작은 방이었지만, 적어도 길거리보다는 나았다.
그날 밤, 로안나는 방에 혼자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빈의 불빛이 보였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몇 년을 더 도망쳐야 할까? 몇십 년? 평생? 그녀는 이미 지쳤다. 더 이상 갈 힘이 없었다.
그녀는 마르가레타의 말이 떠올랐다.
“문은 항상 열려 있을 거야.”
브라쇼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너무 멀었다. 너무 늦었다. 그녀는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몇 년 동안 도망만 다녔는데, 이제 와서 돌아간다는 것은 실패를 인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도망치는 것도 인생이 아니었다.
로안나는 눈을 감았다.
내일도 또 다른 하루가 온다. 그녀는 다시 길을 나설 것이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언제 멈출지도 모르고.
그녀는 영원히 방랑자로 살 것이다.
돌아갈 집도, 기댈 곳도, 희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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