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갈라진 틈
수바의 우기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샬리니는 USP 도서관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비에 젖은 캠퍼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자수 잎사귀에서 빗방울이 굵게 떨어지고, 학생들은 책가방을 머리 위에 이고 뛰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경영학 원론 교재가 펼쳐져 있었지만, 시선은 교재가 아니라 탁자 위에 나란히 놓인 두 장의 플라스틱 카드에 가 있었다.
Westpac 은행 카드. 그리고 USP 학생증.
그녀는 왼손으로 은행 카드를 집어 들었다. 마그네틱 띠 부분은 손때가 끼어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카드 앞면의 은행 로고는 이미 절반쯤 벗겨져 있었다. 그녀는 엄지손톱으로 벗겨진 코팅의 가장자리를 긁었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손톱 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그 조각을 빼내 탁자 위에 떨어뜨렸다.
이제 오른손으로 학생증을 집어 들었다.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지만, 그 밝음은 이제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표정처럼 느껴졌다. 사진 아래에는 그녀의 학번과 전공, 그리고 ‘2025년 졸업 예정’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그 문구를 따라 쓸었다. 졸업까지는 아직 18개월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라면, 그 18개월을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두 카드를 겹쳐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두 장의 플라스틱은 똑같은 크기였고, 똑같은 무게였다. 하나는 그녀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다른 하나는 그 정체성을 저당 잡고 있었다. 그녀는 두 카드를 맞대고 천천히 비볐다. 플라스틱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 작은 마찰음만이 도서관의 적막을 깨뜨렸다.
빗소리는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샬리니는 항구 배후지의 마사지숍으로 향하기 전에 평소 들르지 않던 작은 찻집에 들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찻집 안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구석 자리에 앉아 홍차 한 잔을 시켰다. 찻잔에서 올라오는 김이 비에 젖은 손을 데웠다.
문이 열리고 아카시가 들어왔다. 그는 평소의 배낭을 메고 있지 않았다. 대신 손에는 작은 비닐봉지 하나만 들려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고는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여긴 웬일이야?” 그녀가 물었다.
“잠깐 들렀어. 오늘 수금은 없어. 목요일도 아니고.”
아카시는 비닐봉지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려다 멈추고, 대신 주머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샬리니, 너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그녀는 찻잔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네가 더 잘 알잖아.”
“나는…” 아카시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의 시선이 찻집 안을 한 번 더 훑었다. 다른 손님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있었고, 카운터의 점원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나는 곧 떠날 거야.”
샬리니의 손이 찻잔 위에서 멈췄다. “어디로?”
“라우토카. 거기서 배를 타고 더 먼 곳으로 갈 생각이야. 피지를 벗어나는 게 유일한 방법이야. 디네시에게서도, 이 모든 것에서도.”
“디네시가 널 가만히 놔둘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준비를 하고 있어.” 아카시는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디네시의 금고 말이야. 내가 복사한 열쇠가 있어.”
샬리니는 찻잔을 내려놓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카시의 눈빛은 평소와 달랐다. 그곳에는 더 이상 체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려움과 결심이 뒤섞인, 더 복잡한 무언가가 있었다.
“왜 나한테 이 얘기를 하는 거야?”
“네 여권이 그 금고 안에 있으니까. 네 Westpac 카드도, 네 학생증도. 네 모든 것이 거기 있어. 나 혼자 떠나면, 너는 영원히 여기 갇히는 거야.”
찻집 밖으로 빗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샬리니는 탁자 위에 놓인 동전들을 바라봤다. 피지 20센트 동전과 50센트 동전이 테이블의 나뭇결 사이로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시간을 줘. 생각할 시간.”
“일주일이야. 나는 다음 주 목요일 밤에 떠날 거야. 수금이 끝난 후에, 디네시가 모든 현금을 금고에 넣고 잠든 사이에. 그때가 유일한 기회야.”
아카시는 동전을 탁자 위에 남겨둔 채 일어섰다. 그리고 문을 열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찻집 안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고, 샬리니는 홍차가 식을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흘 후, 샬리니는 디네시의 사무실로 불려갔다.
사무실은 수바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낡은 상가 건물 3층에 있었다. 건물 1층에는 선박 부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 2층은 비어 있었으며, 3층은 디네시의 사무실과 그의 개인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샬리니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며 벽에 걸린 가짜 금융 인가증 액자를 지나쳤다. 그 액자는 그녀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와 똑같은 자리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이제 그 액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 안에는 디네시 혼자 있었다. 그는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뒤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방 한구석에는 커다란 철제 금고가 놓여 있었고, 금고 위에는 작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선풍기 바람에 서류 몇 장이 바닥으로 날렸다.
“앉아요, 샬리니.”
그녀는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디네시는 서류를 덮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일주일을 줬는데, 벌써 사흘이 지났어요. 결정은 했나요?”
“아직이요.”
“아직? 샬리니,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만,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요.” 디네시는 서랍에서 작은 장부를 꺼내 펼쳤다. “현재 당신의 총 채무는 4,800피지달러예요. 지난달에 비해 600달러나 늘었어요. 당신이 갚는 속도로는 원금이 줄어들どころか, 오히려 계속 불어나고 있어요.”
“그건 당신이 이자율을…”
“이자율은 당신이 서명한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예요. 나는 그 계약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 뿐이고요.”
샬리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서명한 계약서. 그때는 그것이 합법적인 대출 계약인 줄 알았다. 지금은 그 계약서 자체가 덫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서명은 진짜였다.
“그래서 새로운 제안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 거예요. 더 나은 곳에서 일하면, 당신의 수입은 지금의 두 배가 될 거예요. 이자 상환도 빨라지고, 원금도 줄어들 거고. 졸업할 때쯤이면 빚을 거의 다 갚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디네시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당신 아버지께서 아직 이 일을 모르신다는 사실을, 나는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분이 아신다면, 많이 상심하실 테니까.”
샬리니의 손이 의자 팔걸이를 움켜잡았다. 디네시는 지금 협박하고 있었다. 가장 부드러운 말로, 가장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아직 나흘 남았어요. 그때까지 결정해 주세요.”
방으로 돌아온 샬리니는 책상 앞에 앉지도 않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비는 그친 모양이었지만, 창밖에서는 여전히 빗물이 홈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가방에서 Westpac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학생증을 꺼냈다. 두 장의 플라스틱을 나란히 침대 위에 올려놓고, 그녀는 두 카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학생증의 사진은 밝았다. Westpac 카드의 사진은 무표정했다. 같은 얼굴인데도, 두 사진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두 사진을 동시에 문질렀다. 사진 속 얼굴들이 손때에 번져갔다.
아카시의 제안. 디네시의 금고를 열고 여권과 카드를 되찾아 도망치는 것. 성공한다면 그녀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빚도 없고 사슬도 없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디네시의 보복은 잔인할 것이었다.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가족에게까지.
디네시의 제안. 더 나은 곳에서 더 많은 손님을 받는 것. 겉으로는 더 빨리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이었지만, 실은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한 번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녀는 두 번 다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었다. 합법적인 직업을 가질 기회는 영원히 사라지고, 졸업장은 아무 의미 없는 종이 조각이 될 것이었다.
그녀는 Westpac 카드를 집어 들고, 카드의 모서리를 엄지손톱으로 눌렀다. 플라스틱이 휘어지며 하얗게 변색되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힘을 가했다. 카드가 더 깊게 휘어졌다.
탁, 하고 작은 소리가 났다. Westpac 카드의 한쪽 귀퉁이가 부러져 나갔다.
샬리니는 부러진 플라스틱 조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삼각형 모양의 조각이었다. 은행 로고의 일부가 그 위에 인쇄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 조각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부러진 카드를 다시 손에 쥐었다. 카드 한쪽이 부러졌지만, 마그네틱 띠는 여전히 온전했다. 이 카드는 여전히 작동할 것이었다. 그녀의 사슬은 이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부러진 카드와 학생증을 함께 집어 들었다. 두 장의 플라스틱을 겹쳐 가방 안쪽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가방 지퍼를 닫았다.
목요일 전날 밤, 샬리니는 마사지숍에서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방 안에 혼자 남았다.
에어컨 실외기의 웅웅거림이 여전히 벽을 타고 진동해 왔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지폐 뭉치를 세었다. 180피지달러. 내일이면 아카시가 이 돈을 수금하러 올 것이고, 그중 170은 디네시의 금고로 들어갈 것이며, 그녀의 손에는 10달러만 남을 것이었다. 아니, 내일은 아카시가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내일은 그가 떠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는 지폐를 가방에 넣고, 가방 안쪽 주머니에서 두 장의 카드를 꺼냈다. 부러진 Westpac 카드와 빛바랜 학생증. 그녀는 두 카드를 탁자 위에 나란히 놓고, 그 위에 손을 얹었다.
내일 밤, 그녀는 선택해야 했다.
첫 번째 선택은 아카시를 믿는 것이었다. 그의 복사된 열쇠로 금고를 열고, 여권과 서류를 되찾아, 그와 함께 라우토카로 향하는 야간 버스에 오르는 것. 도망치는 것. 자유를 향해 달리는 것. 그러나 디네시의 정보망은 넓고 깊었다. 만약 그들이 버스 터미널에서 붙잡힌다면,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었다.
두 번째 선택은 디네시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 더 많은 손님을 받고, 더 많은 돈을 벌어,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는 것. 졸업할 때까지 버티고, 그 후에도 계속 갚아나가는 것. 그것은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적어도 육체적 안전은 보장받는 길이었다.
세 번째 선택은—그리고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선택은—아카시를 밀고하는 것이었다. 그의 계획을 디네시에게 알리고, 신뢰의 대가로 더 나은 조건을 얻어내는 것. 그것은 아카시를 희생시키는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그녀가 가진 유일한 협상 카드이기도 했다.
그녀는 Westpac 카드의 부러진 단면을 손톱으로 문질렀다. 거기에는 여전히 은행 로고의 일부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 로고의 글자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따라 썼다. W-E-S-T-P-A-C. 그녀의 모든 돈이 흘러 들어갔다 사라지는 은행. 그녀의 모든 가능성이 갇혀 있는 사슬.
내일 밤이면, 그 사슬을 끊을 기회가 올 것이었다. 혹은 그 사슬에 영원히 묶일 기회가.
에어컨 실외기의 굉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정적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 정적 속에서, 샬리니는 손에 쥔 부러진 카드를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당신의 선택은? (1차 분기점)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샬리니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선택 1] 샬리니가 아카시를 믿고 금고를 털어 도망치는 위험을 감수합니다.
[선택 2] 샬리니가 도망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합니다. (무료)
(※ 선택하신 분기점의 다음 화를 결제하시면 살리의 잔혹한 운명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