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갈림길에 서다 (실제 사건 파일 기반 각색)
2주가 지났다.
유진의 계좌 잔액은 다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토니에게 빌린 5천 달러 중 절반은 학비로 빠져나갔고, 나머지는 월세와 생활비로 사라졌다. 남은 돈은 고작 800달러. 다음 달까지 갚아야 할 빚은 5천 달러 전액이었다. 이자는 없다고 했지만, 토니는 최근 들어 자꾸만 ‘이자’라는 단어를 꺼내기 시작했다.
“유진아, 내가 사람 좋아서 이자 안 받는다고 했지? 그런데 말이야…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야. 너도 이해할 거야.”
토니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처음과 달랐다. 뭔가 날카로운 것이 숨어 있었다.
유진은 더 많은 파티에 참석했다. 일주일에 세 번, 때로는 네 번. 그럴수록 피로는 쌓여 갔다.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파티에 나가야 했다.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그런데도 버는 돈은 한 번에 200~300달러가 전부였다. 다음 달까지 5천 달러를 갚으려면 하루에 200달러씩 25일을 일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숫자였다.
지민은 달랐다. 그녀는 최근 들어 더 화려해졌다. 새로운 명품 가방, 새 신발, 새 옷. 그녀는 파티에 나갈 때마다 돈을 벌어왔다. 유진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버는 것 같았다.
“지민아, 너는 얼마나 버는데?”
유진이 물었다. 지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글쎄… 많을 때는 하루에 천 달러. 적을 때는 오백 달러.”
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는 거지?
“그게… 방법이 있어. 그런데 유진아, 너는 아직…”
지민은 말을 흐렸다. 하지만 유진은 그 ‘방법’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다니엘의 알약.
그 알약을 먹으면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고 했다. 기분이 좋아지고, 억제력이 풀리고, 더 화려해진다고. 그렇게 되면 팁도 더 많이 받는다고.
유진은 갈등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날 밤, 파티가 끝난 후였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돌아가고, 클럽에는 소라와 유진만 남았다. 직원들이 정리를 하는 동안, 둘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소라는 평소와 달리 말이 없었다. 그녀는 샴페인 잔을 손에 쥐고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라 언니, 괜찮아요?”
유진이 물었다. 소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화장에 가려져 있지만,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유진아, 나 얘기 좀 하자.”
소라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무거웠다. 그동안의 밝고 경쾌한 말투는 온데간데없었다.
“무슨 얘기인데요?”
“너… 토니한테 돈 빌렸지?”
“네.”
“얼마?”
“5천 달러.”
소라는 씁쓸하게 웃었다.
“5천 달러. 그걸로 시작하는 거야.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3천 달러. 학비가 모자란다고. 그런데…”
소라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 돈을 못 갚았어. 그런데 토니는 친절하게도 더 빌려줬지.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이제는 내가 빚진 돈이 얼마인지도 몰라. 몇만 달러는 될 거야.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유진은 소라의 말에 숨이 막혔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야. 토니는 빚을 갚는 대신… 다른 걸 요구해.”
“다른 거요?”
소라는 유진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유진아, 너는 아직 기회가 있어. 지금이라도 그만둬. 토니에게 돈 다 갚고, 여기서 도망가. 나처럼 되지 마.”
“언니는 왜 도망가지 않아요?”
“도망가? 내가 어디로? 토니는 내 모든 걸 알고 있어. 비자 정보, 학교 정보, 부모님 연락처. 그리고… 나를 찍은 사진과 영상도.”
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슨… 무슨 뜻이에요?”
소라는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USB 메모리. 그것을 유진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내가 찍힌 거야. 토니가… 그런 용도로 쓰고 있어. 나 같은 사람이 이 바닥에 한둘이 아니야. 지민이도 그래.”
“지민이가요?”
“응. 지민이는 아직 너에게 말 안 했겠지. 하지만 그녀도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어. 아니, 걷고 있었어. 이제는 너무 늦었을지도 몰라.”
유진은 손에 쥔 USB를 바라보았다. 이 작은 물건 속에 소라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수치심, 절망, 그리고 토니에게 종속된 삶.
“왜… 왜 나한테 이걸 주는 거예요?”
“너에게 경고하고 싶었어. 나는 이미 늦었지만, 너는 아직 늦지 않았어. 선택은 네 몫이야.”
소라는 일어나서 걸어갔다. 유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라의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유진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유진.”
돌아보니 다니엘이었다. 검은색 BMW 옆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익숙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다니엘 씨… 여기서 왜요?”
“지나가다 봤어. 태워다 줄까?”
“괜찮아요. 버스 타면 돼요.”
“왜 그래. 내가 무서워? 걱정 마, 나쁜 사람 아니야.”
유진은 망설였다. 하지만 다니엘은 이미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유진은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랐다.
차 안은 깔끔했다. 비싼 차 냄새가 났다. 다니엘은 조용히 운전하며 말을 꺼냈다.
“요즘 어떻게 지내? 힘들어 보이던데.”
“괜찮아요.”
“괜찮은 게 아니지. 나도 다 알아. 네가 돈 때문에 고민하는 거. 토니한테 빌린 거, 갚아야 하는 거. 그런데 그 돈, 어떻게 갚을 거야? 파티 알바로?”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말해줄게. 파티 알바로 한 달에 5천 달러 버는 건 불가능해. 아무리 많이 나가도 2천 달러가 한계야. 그런데 이자는 점점 늘어나. 토니가 사람 좋아 보여도, 그분은 사업가야. 손해 보는 장사 안 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유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다니엘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하루에 5백 달러, 많게는 1천 달러까지 벌 수 있어. 그렇게 하면 한 달 안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어.”
“그 제안이… 그 알약인가요?”
“응. MDMA. 기분 좋아지는 약. 중독성도 별로 없어. 마약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약일 뿐이야. 술보다 안전해.”
유진은 소라의 말을 떠올렸다.
“너는 아직 기회가 있어. 지금이라도 그만둬.”
그리고 지민의 말도.
“유진아, 너는 하지 마. 아직은.”
하지만 그녀들의 말은 모순되었다. 이미 늦었다고 말하면서,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생각해볼게요.”
유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녀에게 작은 비닐 봉지를 건넸다.
“생각했으면 연락해. 이건 샘플이야. 한 번 해보고 결정해도 돼.”
유진은 그 봉지를 받았다. 안에는 하얀색 알약 두 개가 들어 있었다.
그날 밤, 유진은 그 알약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고민했다.
며칠 후.
유진은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집 안이 이상했다. 불이 꺼져 있었고, 지민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유진은 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 하지만 받지 않았다.
새벽 2시. 지민이 돌아왔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했다. 눈이 풀렸고, 걸음걸이가 불안정했다. 입가에는 하얀 가루가 묻어 있었다.
“지민아! 너 어디 다녀온 거야?”
지민은 대신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은 평소의 것이 아니었다. 광기가 섞여 있었다.
“재밌었어… 정말 재밌었다고…”
그녀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유진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부축했다. 지민의 몸은 뜨거웠고,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지민아! 정신 차려! 지민아!”
지민은 눈을 뜨고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이성이 보이지 않았다.
“유진아… 나… 나 어떻게 해… 벌써 너무 늦었어…”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의식을 잃었다. 유진은 당황해서 111번(뉴질랜드 응급번호)을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토니였다.
“유진 씨, 지민이 상태 좀 봤어? 괜찮을 거야. 가끔 그런다. 병원에 데려가지 마. 만약에 데려가면… 우리 모두 위험해져. 너도, 지민이도, 소라도.”
“지민이가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죽지 않아. 내가 봤을 때는 그냥 기절한 거야. 내일이면 괜찮아져. 그리고 말이지, 유진 씨.”
“네?”
“네가 만약 병원에 데려가거나 경찰에 신고하면… 내가 가진 네 사진과 영상이 어디로 갈지 몰라. 너도 원하지 않겠지?”
전화가 끊겼다.
유진은 손에 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111번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그날 밤, 유진은 지민의 곁을 지켰다. 지민은 가끔 신음했고, 식은땀을 흘렸다. 유진은 그녀의 이마를 식혀주며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침, 지민은 간신히 눈을 떴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미 생기가 없었다. 빛이 꺼진 인형 같았다.
“미안해, 유진아. 또 내가 말썽을 부렸네.”
“괜찮아. 그런데 지민아, 너 약 얼마나 먹은 거야?”
“글쎄… 기억이 안 나. 세 알? 아니면 네 알? 그런데 그게 중요해? 어차피 나는 이미…”
지민은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그날 오후, 유진은 방에 혼자 있었다.
지민은 잠들어 있었다. 소라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다니엘은 계속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니엘: 생각해봤어? 지금이 기회야. 내가 도와줄게.]
[다니엘: 너도 봤잖아. 지민이처럼 될 필요 없어. 내 도움을 받으면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어.]
[다니엘: 오늘 밤 파티에 와.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유진은 침대에 앉아 두 개의 선택지를 두고 머리를 싸맸다.
하나는 소라의 말을 듣는 것. 지금이라도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는 것. 하지만 어떻게? 빚은 있는데 갚을 방법은 없다. 토니에게 맞서기에는 그가 가진 것들이 너무 많다. 사진, 영상, 그리고 소라와 지민이라는 인질.
다른 하나는 다니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마약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것. 그렇게 하면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이 무엇인지는 이미 소라와 지민이 보여주고 있다.
유진은 울고 싶었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녀는 그저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잃을 것이 많은 길.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토니였다.
“유진 씨, 오늘 밤에 중요한 파티가 있어. 꼭 와야 해. 올 수 있지?”
“…네.”
“그리고 다니엘 얘기 들었어? 좋은 제안인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유진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의 선택은? (1차 분기점)
당신의 선택에 따라 유진의 운명이 갈라집니다.
(※ 선택하신 분기점의 다음 화를 결제하시면 유진의 잔혹한 운명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