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결전의 화요일, 거꾸로 흐르는 시간
화요일 오전 11시 정각, 아웃백의 지평선 끝에서 거대한 붉은 먼지 폭풍이 일어났다. 연우는 본채 주방의 창문을 닦으며 그 먼지 구름을 응시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나올 것처럼 가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다리던 외부 물류 회사의 춤추는 듯한 대형 보급 트럭이었다. 거대한 바퀴가 농장의 거친 비포장마당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며 육중한 브레이크 파열음을 토해냈다. 농장 전체를 뒤흔드는 그 소음은 연우에게 있어 거사의 시작을 알리는 묵시록의 종소리와도 같았다.
“트럭 왔다! 전부 마당으로 집결해!”
행동대장 헨리의 거친 고함소리와 함께 컨테이너 숙소에서 유령 같은 워커들이 기어 나왔다. 대만인 린과 일본인 타쿠야도 뜨거운 태양 아래로 끌려 나와 트럭 뒷바닥에 실린 무거운 비료 포대와 사료 상자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연우는 걸레를 쥔 채 마당의 동태를 살폈다. 농장주 마크는 선글라스를 낀 채 담배를 입에 물고 트럭 운전사와 함께 송장을 확인하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정확히 30분의 하차 시간이 주어질 것이고, 그 직후 경비원들이 교대 식사를 위해 본채 식당으로 향하는 ’15분의 사각지대’가 열릴 터였다. 연우는 주머니 속에 넣어둔 철제 송곳을 손가락 끝으로 꽉 쥐었다. 손바닥에 배어 나온 식은땀 때문에 송곳의 차가운 촉감이 미끄러웠다. 그녀는 결코 특수 요원이 아니었기에, 경비원을 물리적으로 쓰러뜨리거나 철조망을 넘을 수 없었다. 오직 사흘 동안 머릿속으로 수백 번도 넘게 그린 이 현실적인 시간의 틈새만이 생존의 유일한 열쇠였다. 연우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오전 11시 20분, 연우의 계산대로 경비초소의 감시원들이 점심 배급을 받기 위해 본채 식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당에는 하차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하는 보급 트럭의 거대한 엔진 공회전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시선이 분산된 단 15분의 공백기. 연우는 고양잇과 동물처럼 소리 없이 주방을 빠져나와 마크의 개인 서재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특유의 시가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연우는 곧바로 책상 밑에 숨겨진 철제 금고 앞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은 그녀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다이얼을 돌리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크게 들렸다. 마크가 평소 비밀번호를 누를 때의 기계음 횟수와 손가락 궤적을 조합한 숫자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오, 이, 팔, 사.’ 다이얼을 맞춘 뒤, 주머니에서 꺼낸 철제 송곳을 금고 손잡이 틈새에 깊숙이 찔러 넣고 온 체중을 실어 아래로 내리눌렀다. 가죽처럼 굳어버린 연우의 손바닥 살점이 찢어지며 핏방울이 배어 나왔지만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틱, 하는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금고의 두꺼운 철문이 마침내 유격(틈새)을 보이며 열렸다. 금고 안에는 수십 개의 외국인 여권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연우는 미친 듯이 서류미를 뒤졌다. 타 버린 손가락 끝으로 종이를 넘기던 중, 마침내 초록색 대한민국 여권이 눈에 들어왔다. ‘한연우’.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박힌 신분증을 손에 쥐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연우는 자신의 여권과 함께 옆 칸에 있던 대만인 린과 타쿠야의 여권까지 한꺼번에 챙겨 유니폼 셔츠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시간은 이미 7분이 지나고 있었다. 사각지대의 절반이 연기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여권을 품에 넣고 일어서려는 순간, 거실 복도 너머로 육중한 가죽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마크의 발소리였다. 쿵, 쿵, 하는 발소리가 서재 문을 향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연우의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지금 나간다면 문 앞에서 마크와 정면으로 마주칠 것이 뻔했다. 도망칠 곳이 없는 밀폐된 서재 안에서 연우는 본능적으로 책상 옆에 드리워진 두꺼운 벨벳 커튼 뒤의 좁은 공간으로 몸을 구겼다.
문이 열리고 마크가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알코올 향취가 커튼 틈새를 넘어 연우의 코끝에 닿았다. 마크는 무언가를 찾는 듯 책상 서랍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투덜거렸다.
“이 빌어먹을 담배갑을 어디다 둔 거야…”
마크의 구두가 연우가 숨어 있는 커튼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커튼 천 너머로 그의 거대한 실루엣이 연우의 몸을 집어삼킬 듯이 서 있었다. 성인 독자들의 숨통을 조여버릴 강렬하고 가학적인 성적 위압감과 공포가 방 안을 지배했다. 마크가 만약 커튼을 한 젖히기만 한다면, 연우의 셔츠 속에 숨겨진 여권들이 드러날 것이고 그녀의 인생은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도살당할 터였다.
연우는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은 채 숨을 완전히 멈추었다. 허벅지의 물집이 터져 진물이 흘러내렸지만, 미세한 미동조차 허용되지 않는 지옥 같은 대치였다. 마크는 책상 위를 서성이며 담배갑을 찾아 주머니에 넣더니, 다행히 금고가 미세하게 열려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서재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에도 연우는 몇 초간 움직이지 못했다. 등줄기는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다리는 힘이 풀려 주저앉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단 4분뿐이었다.
연우는 서재를 빠져나와 웅크린 채 본채 뒷문을 통해 마당으로 향했다. 정문 초소의 경비원들은 여전히 식당에서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사각지대의 마지막 공백기. 마당 한구석에는 보급 트럭의 엔진이 시끄러운 시동음을 내며 당장이라도 출발할 듯 바퀴를 들썩이고 있었다. 트럭 운전사는 운전석에 앉아 백미러를 보지 않은 채 라디오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연우는 낮은 관목 숲과 오렌지 상자 더미 뒤를 기어가듯 이동했다. 전력질주를 했다간 먼지가 피어올라 멀리서 감시하는 헨리의 눈에 띄기 십상이었다. 평범한 유학생의 신체적 한계를 정신력으로 쥐어짜며, 연우는 트럭 뒷바닥의 거대한 화물칸 천막 아래로 슬금슬금 접근했다. 트럭 화물칸 내부에는 하차하고 남은 빈 목재 상자들과 거대한 캔버스 천막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연우는 숨을 죽인 채 트럭 뒷바퀴를 딛고 화물칸 내부로 몸을 밀어 넣었다. 퀴퀴한 비료 냄새와 기름때 냄새가 가득한 화물칸 구석, 거대한 천막 더미 사이의 좁은 공백 구역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주머니 속의 철제 송곳을 손에 쥐고, 가슴속에 품은 세 개의 여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조금만 더… 이 트럭이 정문을 통과해 아웃백의 무법지대를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트럭의 클러치가 걸리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차체가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지옥 같던 농장의 경계선이 시야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운명은 연우의 편이 아니었다. 트럭이 농장 정문 초소 앞에 도달했을 때, 날카로운 호각 소리와 함께 거대한 급정거의 충격이 화물칸을 덮쳤다. 연우의 몸이 목재 상자 더미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외부에서 마크의 심복 헨리의 사나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트럭 멈춰! 이봐, 운전사! 금방 본채 서재 금고가 열려 있는 게 확인됐다! 여권 몇 개가 사라졌어! 농장 내부 단속할 테니까 경비원들 전부 정문 닫고 트럭 수색해!”
농장의 대형 철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는 쇳소리가 화물칸 내부까지 찌르듯 들어왔다. 곧이어 가죽 부츠를 신은 감시원들이 트럭 화물칸 주변을 에워싸는 발소리가 들렸다. 사냥개들의 사나운 으르렁거림이 천막 너머로 가깝게 다가왔다.
그때, 마크의 확성기 목소리가 정문 광장 전체를 울렸다.
“한연우! 네가 금고에 손을 대고 트럭에 숨어든 거 다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네 발로 트럭에서 걸어 내려와 내 앞에 무릎 꿇어라! 그러면 저번처럼 가벼운 체벌로 끝내고 목숨은 살려주지! 하지만 만약 끝까지 숨어 있다가 내 사냥개들에게 머리칼이 뜯긴 채 끌려 나오면… 오늘 밤 네 살점을 사막의 들개들에게 전부 던져버릴 거다! 당장 나와!”
마크의 가스라이팅 섞인 협박과 위압적인 음성이 연우의 뇌리를 강타했다. 천막 틈새로 감시원들이 장총을 든 채 화물칸 천막을 하나씩 걷어내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연우는 심리적 벼랑 끝에 섰다. 여기서 마크의 위협에 굴복해 스스로 걸어 내려가 안위를 구걸할 것인가 (선택 C), 아니면 이것이 가해자의 마지막 허세이자 덫임을 간파하고 끝까지 천막 깊숙한 곳에 숨죽인 채 트럭의 강제 돌파나 다음 타이밍을 노리는 목숨을 건 반항을 이어갈 것인가 (선택 D).
액션 영화처럼 저들을 쓰러뜨릴 무기는 없었다. 오직 사방이 가로막힌 아웃백의 정문 앞에서, 가해자의 비열한 통제에 맞서 자신의 영혼과 신체의 생존을 건 마지막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 냉혹한 현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연우의 손에 쥐어진 철제 송곳이 땀과 피로 얼룩진 채 가늘게 떨렸다. 오세아니아의 잔혹한 대지 위로, 유학생 한연우의 운명을 송두리째 결정지을 2차 최종 선택지의 막이 무겁게 내리앉고 있었다.
당신의 선택은? (최종 분기점)
연우의 운명을 결정할 선택의 기로입니다. 당신은 어떤 길을 걷겠습니까?
[선택 1] 마크의 위협에 굴복해 스스로 걸어 내려가 안위를 구걸한다.
[선택 2] 끝까지 천막 깊숙한 곳에 숨죽인 채 트럭의 강제 돌파나 다음 타이밍을 노리는 목숨을 건 반항한다. (무료)
(※ 선택하신 분기점의 다음 화를 결제하시면 연우의 잔혹한 운명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