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그림자 호르무즈편 #001] 무법의 철판, 멈춰선 카스피호 – 7-2화: 심연의 올가미
박살 난 조타실 전면 유리창의 날카로운 잔해들이 민우의 거친 작업화 밑창 아래에서 서늘한 비명을 질렀다. 사각, 사각거리는 그 불길한 금속성 마찰음은 사방을 에워싼 칠흑 같은 암흑을 뚫고 조타실 벽면에 부딪혀 기괴한 파동으로 퍼져나갔다. 발전기가 차단된 선교 내부의 공기는 이제 섭씨 50도를 훌쩍 넘어 생지옥의 아궁이처럼 타오르고 있었고, 깨진 창문 틈새로 사정없이 들이치는 호르무즈 해협의 끈적한 소금 바람은 민우의 찢어진 셔츠 사이로 스며들어 등과 어깨에 박힌 유리 파편의 통증을 더욱 잔인하게 부채질했다. 하지만 민우는 단 한 자락의 신음도 내뱉지 않았다. 그의 모든 감각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 오직 생존과 파멸이라는 두 가지 정교한 목적을 위해서만 냉철하게 작동하는 독종의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왼손에 머리칼이 통째로 움켜잡힌 채 창틀 바짝 밀려난 선장은 얼굴 전면에 유리 파편이 박혀 검붉은 피를 흘리면서도, 어둠 속에서 민우의 틈을 노리기 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틀려 했다. 수십 년간 공해상의 무법지대에서 수많은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며 해상 카르텔의 절대적인 포식자로 군림해 왔던 거구의 야수였지만, 지금 자신의 목줄을 가차 없이 짓누르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의 손길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살기 앞에서는 그저 도살을 앞둔 가축처럼 무기력하게 헐떡일 뿐이었다. 민우는 탈취한 자동소총의 차가운 총구를 선장의 턱밑 살점에 깊숙이 박아 넣은 채, 외해에서 들이치는 카르텔 선박의 강렬한 백색 서치라이트 불빛 아래로 선장의 얼굴을 과녁처럼 완전히 노출시켰다.
우현 외해에 정박해 있던 상대방 카르텔 물류선의 브로커들은 카스피호의 선교 유리창이 박살 나며 자신들의 거대한 거래 파트너인 선장이 피투성이가 된 채 총구에 겨겨진 모습을 목도하자 완벽한 교란에 빠졌다. 거치되어 있던 대구경 중기관총의 포신이 서치라이트 광선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들이 방당쇠를 당기는 순간 자신들의 우두머리이자 카르텔의 핵심 라인인 선장의 대가리가 먼저 날아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민우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감시원의 사설 위성 무전기를 가물거리는 손가락으로 꽉 누른 채, 송신 스위치를 올려 저편 선박의 주파수를 향해 낮고 서늘한 목소리를 내리쳤다.
“우현의 물류선 브로커들은 똑똑히 들어라. 지금 네놈들이 쏘아대는 중기관총 탄환과 갑판 위로 진입한 침투조의 총구 앞에 가장 먼저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은 내 몸뚱이가 아니라, 네놈들이 그토록 떠받들던 선장의 심장이다. 당장 모든 사격을 중지하고 침투조의 진격을 정지시켜라. 만약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단 한 발의 총성이라도 더 들린다면, 나는 이 배의 배수 밸브를 열어 지하 엔진룸에 숨겨둔 여권 가방과 진짜 항해 일지, 그리고 선장의 목숨을 이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깊은 심연 속으로 영원히 수장시켜 버릴 테니까. 선택은 네놈들의 몫이다.”
민우의 서늘한 선언이 무전기 스피커의 노이즈를 타고 페르시아만의 검은 파도 위로 무겁게 퍼져나갔다. 저편 선박의 무전기 너머에서 거친 아랍어 욕설과 함께 다급하게 사격을 중지시키는 고함이 흘러나왔고, 이내 카스피호의 선교를 난도질하던 중기관총의 거친 포성이 거짓말처럼 멈추어 섰다. 선장은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총구의 압박감 속에서 마른 침을 삼키며 무전기를 향해 핏대를 세우며 악을 썼다.
“사격 중지해! 당장 저 침투조 녀석들에게 멈추라고 명령해라! 저 유학생 자식은 진짜로 방당쇠를 당길 미친놈이다! 내 대가리가 터지면 너희 놈들의 화물 거래 대금도 전부 날아가는 거야, 알겠나!”
선장의 비참한 비명이 사방을 에워싼 어둠 속으로 흩어지는 동안, 민우는 왼발 구두굽으로 조타 콘솔 아래쪽에 연결되어 있던 선내 유선 인터콤 수화기를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귀에 댔다. 선장과 외해의 브로커들이 인질 협상이라는 거대한 심리적 덫에 걸려들어 시선이 선교로 집중된 바로 그 타이밍이야말로, 민우가 짜놓은 진짜 반격의 시나리오를 가동할 유일한 사각지대였다. 민우는 인터콤 수화기를 입술 바짝 마주 대고, 배 밑바닥에서 숨을 죽인 채 전력 제어반을 쥐고 대기 중이던 늙은 기관장을 향해 오직 사냥꾼만이 낼 수 있는 은밀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빠르게 속삭였다.
“기관장님, 지금입니다. 조타실 방송을 켜지 말고, 선원 공동 숙소와 통하는 하부 격실의 비상 라인으로만 제 지시를 전달하십시오. 갑판 위에 남아 있는 우리 선원들과 피투성이가 된 찬우를 데리고, 당장 선체 내부의 가장 깊고 복잡한 하부 메인 격실과 지하 엔진룸 구역으로 전원 철수시키십시오. 배 안의 모든 미세한 비상등과 손전등 불빛까지 전부 꺼버려야 합니다. 저 침투조 녀석들이 최첨단 야간 고글을 쓰고 밀고 들어오고 있지만, 사방이 두꺼운 철판과 미로 같은 유압 파이프로 얽혀 있는 이 카스피호의 지하 기하학적 구조는 오직 이곳에서 뼈를 묻어온 우리 선원들만이 몸으로 기억하는 절대적인 영토입니다. 저들을 완전한 암흑의 밀실로 끌어들여 사냥할 준비를 하십시오.”
수화기 너머에서 민우의 정교한 게릴라 전술을 들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늙은 기관장은 지독한 전율과 함께 낮게 감탄사를 뱉어냈다. 최첨단 야간 투시경(NVG)은 시야를 넓혀주는 훌륭한 장비였지만, 시야각이 극단적으로 좁아지고 거리 감각이 왜곡되는 치명적인 전술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장비를 착용한 채 사방이 시커먼 철벽과 뜨거운 증기 파이프, 그리고 바닥에 미끄러운 폐유가 고여 있는 카스피호의 지하 미로 구역으로 진입하는 순간, 적들의 군사적 우위는 완벽하게 무력화될 터였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배의 구조를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는 선원들이 창고 철봉과 대형 스패너를 쥔 채 사각지대에서 기습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완벽한 포식자들을 향한 거대한 덫이 될 것이 분명했다. 기관장은 거친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다, 유학생. 갑판의 아이들을 데리고 지금 즉시 심연의 바닥으로 숨어들겠다. 조타실의 네 놈 몸뚱이나 잘 보존하고 있어라!”
인터콤 통신이 끊어지자, 민우는 수화기를 발로 차서 어둠 속으로 날려버린 뒤 소총 총구로 선장의 가슴을 다시 한번 강하게 내리눌렀다. 창밖 갑판 위에서는 민우의 인질 협상 방송과 기관장의 비밀 통제에 따라, 수십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선원들이 어둠을 틈타 거친 구두굽 소리 없이 선체 하부의 해치 문 너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갑판의 난간을 넘어와 소총을 겨누고 있던 침투조 괴한들은 조타실의 인질 상황 때문에 선뜻 사격을 개시하지 못한 채,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브로커들의 정지 명령에 묶여 조타실 상부를 향해 손전등 광선만을 쏘아대며 대기하고 있었다. 가해자들이 심어놓은 공포의 규칙을 역으로 이용하여, 적들의 전술적 타이밍을 완벽하게 마비시켜 버린 독종 유학생의 차가운 심리전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선장은 바닥에 엎드린 채 갑판 위의 선원들이 지하 격실로 조용히 숨어드는 풍경과, 민우가 무전기를 쥔 채 시간을 끄는 모습을 번갈아 보며 마침내 이 반란의 진짜 결말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유학생이 단순히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인질극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패 삼아 적들의 진격 속도를 늦추고 카스피호의 지하 내부를 거대한 공동묘지로 만들기 위한 올가미를 짜고 있었던 것이다. 선장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가르릉거리는 목소리로 저주를 퍼부었다.
“미친 자식… 네놈이 우리 애들을 지하 엔진룸으로 끌어들여 매복 게릴라전을 벌이겠다는 수작이구나! 하지만 저들은 야간 고글과 군용 화기를 장착한 진짜 도살자들이야! 빛이 없는 밀실이라 할지라도 저들의 총구 앞에서는 너희들의 그 조잡한 철봉 따위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해! 당장 이 미친 짓을 멈추지 않으면, 네놈의 동기 찬우 녀석부터 저 지하 바닥에서 사지가 찢겨 나가게 될 거다!”
선장의 악질적인 협박과 가스라이팅은 여전히 묵직한 두려움의 무게를 품고 있었다. 실제로 조타실 입구의 철문 너머로 상층 데크 복도를 따라 수색을 개시한 침투조의 일부 괴한들이 군용 부츠로 철판을 밟는 서늘한 마찰음이 다시금 조타실 내부의 정적을 깨고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제한 시간은 이제 단 몇 분도 남지 않은 상황. 적들이 조타실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순간, 인질극의 효력은 사라지고 진짜 피비린내 나는 백병전이 이 좁은 선교 내부에서 폭발할 터였다.
그러나 민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소총의 안전장치를 완벽하게 해제하며 선장의 이마 중앙으로 조준점을 고정했다. 철컥, 하는 노리쇠의 금속음이 깨진 조타실 내부의 서늘한 공기를 갈랐다. 서울의 평범한 공대생이었던 과거의 유약함은 이미 페르시아만의 검은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버린 지 오래였다. 가해자들의 언어를 받아들이고, 그들이 짜놓은 장기판의 규칙을 역으로 이용해 그들의 목을 죄어가는 진짜 독종의 광채가 민우의 두 눈동자 속에서 잔혹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선장, 네가 한 가지 아주 크게 착각하는 게 있어. 나는 내 목숨줄을 무사히 보존해서 육지로 돌아갈 생각 따위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잖아. 내 동료 찬우가 피떡이 되고, 우리 선원들이 하루 한 모금의 썩은 물을 두고 인간성을 갉아먹힐 때 이미 나는 이 배와 함께 지옥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준비를 끝냈어. 적들이 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그 찰나의 순간, 네 놈의 대가리에 첫 번째 총알을 박아주는 건 저 침투조의 군용 화기가 아니라 바로 내 손에 쥐어진 이 부러진 철붙이와 소총이 될 거야. 그러니까 저 사냥개들이 문을 열기 전에, 네 그 비열한 입술로 저들을 멈추게 만들 마지막 비명이나 준비해 두라고.”
민우의 서늘하고도 묵직한 선언이 암흑이 깃든 조타실 내부를 얼음처럼 완벽하게 동결시켰다. 선장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 한 줄기가 그의 찢어진 살점 사이의 핏물과 섞여 카펫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망망대해 위 완벽하게 은폐되어 있던 잔혹한 해상 감금 카르텔의 심장부는, 자신들이 가장 나약하게 부려 먹으려 했던 독종 유학생의 거대한 심리적 올가미에 걸려들어 가장 처절하고 완벽한 전복의 종막을 향해 거침없이 방전의 바퀴를 굴려 가고 있었다. 사슬을 끊어낸 자들의 진짜 반격은, 이제 카스피호의 가장 깊고 어두운 지하 격실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심연의 메아리를 퍼뜨릴 준비를 마친 채 최종장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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