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핏자국
깡—!
새벽 안개가 자욱한 폐가스 충전소의 깨진 시멘트 벽면 사이로, 귀를 찢는 듯한 무겁고 둔탁한 파열음이 세차게 소용돌이쳤다. 그것은 단순히 쇠붙이가 인간의 신체와 충돌하는 물리적인 소음이 아니었다. 평생을 서재와 강의실의 안락함 속에서 자라온 자밀라라는 한 상류층 엘리트의 세계가, 밑바닥 도살자들의 해골을 통째로 깨부수며 비명과 함께 박살 나는 파멸의 선언이었다.
자밀라가 만신창이가 된 전신의 세포와 실핏줄을 모조리 쥐어짜 휘두른 녹슨 철파이프는 모퉁이를 돌던 바크티야르의 하급 킬러, 아스란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콰직, 부드득 하며 두개골이 함몰되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뼈가 날것으로 으스러지는 섬뜩한 감촉이 철파이프의 매끄러운 쇠 표면을 타고 그녀의 손바닥과 손목뼈로 고스란히 역류했다. 사내는 단 한 마디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온몸의 신경이 차단된 인형처럼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컥…… 윽…….”
바닥에 처박힌 아스란의 찢어진 측두부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검붉은 선혈이, 사내들이 던져두었던 더러운 모포 한 장만 간신히 걸친 자밀라의 하얀 얼굴과 쇄골, 그리고 벌거벗은 가슴팍을 뜨겁게 적셨다. 비릿하고 시큼한 피의 온기가 살점에 닿는 순간, 그녀의 전신은 달구어진 인두로 지진 듯 거칠게 경련했다. 사내의 손귀를 빠져나간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먼지 구덩이 바닥을 가볍게 굴러 자밀라의 맨발 끝에 툭 걸렸다.
“이 미친년이…… 지금 무슨 짓거리야!”
폐허 앞마당에 대기하고 있던 대형 픽업트럭의 운전석, 입에 독한 담배를 꼬아물고 엔진을 공회전시키던 다른 조직원이 경악하여 육중한 욕설을 내뱉으며 차 문을 걷어찼다. 사내의 가죽 장갑 낀 손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들려는 그 짧은 찰나, 지옥 같던 지하 안가 대기실에서 영혼을 세포 단위로 타살당했던 수치심의 기억들이 자밀라의 뇌리에서 핵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매일 밤 사내들의 술상 위로 던져져 온몸을 유린당하고, 부러진 손가락으로 마약 자금을 강제로 세탁해야 했던 생지옥의 흑역사가 시야를 시빨갛게 마비시켰다.
여기서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면 다시 그 좁은 방의 배설구로 돌아가 평생을 낡은 가구처럼 썩어가야 했다. 한 발 더 빨랐던 것은 이성이나 학문이 아니었다. 잡히면 사지가 토막 나 사냥개 먹이로 던져진다는 지독하고 악독한 생존 본능뿐이었다.
자밀라는 발끝에 걸린 권총을 향해 몸을 날렸다. 황무지를 기어오느라 손톱이 통째로 뒤집혀 검붉은 진물이 흐르던 부러진 손가락 마디마디로 거칠게 총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쇠붙이의 서늘한 감촉이 손바닥에 닿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트럭 운전석을 향해 눈을 질끈 감은 채 미친 듯이 방화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현실은 결코 판타지 소설이 아니었다. 법대에서 밤새 책만 보던 가녀린 여대생에게 조준선 정렬이나 견착 따위의 기술이 있을 리 만무했다. 총이 발사될 때마다 터지는 무자비한 반동으로 이미 부러져 있던 그녀의 오른손목 뼈가 완전히 바스러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가슴팍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당장이라도 총을 떨어뜨리고 싶었지만, 자밀라는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흐르도록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짓밟듯이 연사했다. 그것은 인간 자밀라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기로 한 야수의 처절한 발악이었다.
지독한 황과 화약 내음이 새벽 안개 속으로 자욱하게 번지며, 고막을 찢는 격렬한 총성이 황량한 카자흐스탄 황무지의 새벽 공기를 사정없이 갈라놓았다. 무작정 허공과 트럭을 향해 갈긴 자밀라의 눈먼 총탄들 중 몇 발이 운전석 사내의 가슴팍과 목덜미를 잔인하게 조각냈다. 와장창! 하고 트럭 앞 유리가 박살 나며 피비린내 나는 선혈이 운전대와 대시보드 사방으로 분수처럼 튀었다. 운전석의 사내는 단발마의 억눌린 신음과 함께 경적 일체형 핸들 위로 무겁게 엎어지며 즉사했다.
빠아아앙————!
주인의 죽음을 알리는 픽업트럭의 둔탁하고 거대한 경적 소리가 황량한 황무지 지평선 너머로 길게 울려 퍼지며, 남매를 사냥하려던 개들의 비참한 종말을 고했다.
피비린내 나는 사투가 끝난 폐가스 충전소 마당에는, 오직 적막을 깨는 트럭의 경적 소리와 자밀라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거친 쇳소리의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그녀의 온몸은 방금 전 자신을 유린하고 가축이라 조롱했던 사냥개들이 흘린 뜨거운 피와, 자갈밭을 기어오느라 사방이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온 선혈로 빈틈없이 시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복수를 완수했다거나 악당을 처단했다는 식의 카타르시스 같은 한가한 감정은 단 한 톨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아프간산 헤로인의 금단증상으로 오한과 발작을 일으키며 약물을 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안가의 지하 본대에 남은 보스 바크티야르의 진짜 무장 추격조가 이 굉음과 총성을 듣고 사냥개들을 풀며 몰려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여기서 지체하면 다음은 진짜 사지가 달구어진 쇠붙이에 지져지는 보복뿐이었다.
“일리야스…… 정신 차려, 일리야스…….”
자밀라는 시체처럼 엎어진 사내의 품을 뒤져 주머니에 가득 차 있던 텡게 지폐 뭉치와 여분의 총탄, 그리고 트럭 열쇠를 피 묻은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운전석 문을 열어 젖히고 피가 철철 흐르는 사내의 거구들을 문밖의 자갈밭 위로 거칠게 밀어내 버렸다. 털썩 하며 시체가 먼지를 일으키며 굴러떨어졌다.
그녀는 가스 충전소 구석자리, 오물 가득한 틈새에서 패혈증의 독기와 고열로 완전히 의식을 잃어가던 어린 남동생 일리야스를 향해 달렸다. 손가락뼈가 으스러지는 극통을 이겨내며 동생의 가냘픈 몸을 안아 들고는, 트럭 뒷좌석의 시트 위로 겨우 태웠다. 사내들의 몸에서 확보한 여분의 마카로프 탄창들을 조수석 바닥에 거칠게 던져놓은 자밀라는, 피와 진물로 미끄러지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키를 돌리자 8기통 대형 엔진이 폭발적인 배기음을 뿜어내며 깨어났다. 자밀라는 가속 페달을 바닥 끝까지 짓밟았다. 트럭은 자신들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바크티야르 안가의 반대편, 알마티 시내와 서쪽 국경 방향을 향해 황무지의 거친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하며 바퀴가 자갈을 튕겨내는 소리 너머로, 뒤늦게 백미러 외곽에서 서치라이트를 켠 카르텔 본대의 다른 무장 트럭 불빛들이 희미하게 번쩍이며 따라붙는 것이 보였다. 자밀라는 핏발 선 눈으로 오직 앞만 보며, 부러진 발목의 고통을 무시한 채 가속 페달을 더욱 잔인하게 짓밟았다. 현실의 도주는 낭만이 없었다. 오직 피와 먼지, 그리고 살기 위한 광기뿐이었다.
사투의 새벽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국경 외곽의 어느 한적하고 황량한 밀수 기지.
자밀라는 카르텔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타고 온 트럭을 흔적도 없는 황무지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린 상태였다. 그녀는 사내들의 몸과 트럭 콘솔박스에서 빼앗은 피 묻은 비자금 가방을 현지의 악독한 밀수업자의 면상 앞에 거칠게 던져주었다. 그 대가로 위조 브로커를 통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조잡한 위조 여권 두 장을 손에 넣었다. 미국의 금융 제재나 국제 경찰의 감시망 따위는 이 중앙아시아의 깊은 밀수 루트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오직 현찰과 총구만이 통용되는 무법지대였다.
자밀라는 삼엄한 국경 경비대의 서치라이트를 피해, 밤새도록 진물이 흐르는 다리로 일리야스를 들쳐업고 야반도주하듯 국경의 철책망을 기어 넘었다. 가시철망에 살점이 한 번 더 찢겨 나갔지만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키르기스스탄의 어느 이름 모를 외곽 요양원,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낡은 지하 병실 침대 위에 일리야스를 간신히 눕혔을 때, 소년의 안색은 이미 죽은 자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패혈증의 지독한 독기가 이미 소년의 가느다란 온몸의 혈관을 타고 뇌리까지 퍼져 있었고, 소년은 숨을 쉴 때마다 가슴팍에서 거친 쳇바퀴 소리를 내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비자금으로 매수한 야매 의사의 녹슨 주사바늘과 조잡한 의료 장비로는, 카르텔의 그 어두컴컴한 지하방 구석에서 무릎뼈가 완전히 썩어 들어가 이미 내장까지 괴사가 진행된 남동생을 살려내지는 못했다. 현실은 결코 기적이 일어나는 판타지가 아니었다. 돈을 들이부어도 썩어버린 육체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누나…… 고마워…… 나를…… 그 지옥 같은 안가에서 꺼내줘서…….”
일리야스는 패혈증의 극통 속에서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손톱이 다 뒤집어진 누나의 피멍 든 손을 꼭 잡은 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자밀라는 울지 않았다. 소리 내어 곡을 하지도 않았고, 눈물 한 방울조차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물샘은 이미 알마티의 그 어두운 지하 대기실에서 사내들에게 공용 가축처럼 돌려지며 짓밟히던 그 수많은 밤 동안 완벽하게 마르다 못해 타 들어 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남동생의 차가운 시신을 이국의 이름 모를 황량한 황무지 공동묘지에 아무런 비석도 이름도 없이 흙으로 묻고 돌아오는 길. 자밀라는 하루에 몇 달러짜리 싸구려 모텔의 금이 간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알-파라비 국립대학교의 교정을 거닐던 화려하고 고결했던 법대생 자밀라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거울 속에는 카르텔 사내들의 뜨거운 피로 온몸을 씻어내고, 오직 생존을 위해 제 손으로 인간을 도살한 뒤 국경을 넘어 흘러 들어온 만신창이 살인귀만이 서 있었다.
그녀는 사내들에게서 빼앗은 마카로프 권총의 공이를 당기며, 이국의 차갑고 어두운 거리 속으로 자신의 자취를 완전히 감춰버렸다. 바크티야르의 잔당들이 언제 자신을 찾아내 사지를 토막 낼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과 노이로제 속에서 평생을 쥐새끼처럼 숨어 살아야 하는 비참한 도망자의 신세. 하지만 그녀의 피로 충혈된 채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더 이상 사내들의 발밑에서 순종하던 가축의 유순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알마티 엘리트의 잔혹사는 그렇게 화려한 복수극이 아닌, 평생을 도망치고 숨어야 하는 지독한 생존의 낙인을 가슴 깊숙이 묻은 채, 차가운 암흑 속에서 완벽하게 박혀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