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납치(Качарла)
알마티의 겨울은 메데우 산맥에서 불어오는 칼날 같은 바람과 함께 시작된다. 그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카자흐스탄 최고의 명문인 알-파라비 국립대학교 법학과 수석 장학생 자밀라의 세계가 송두리째 찢겨 나가는 데는 단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자밀라, 네 아비가 침켄트의 지하 카지노에서 날린 사채 장부다. 원금 5만 달러에 매달 복리로 붙는 이자만 8천 달러지. 법대생이니까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 텐데?”
알마티 외곽, 잿빛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불법 사채업자 바크티야르의 지하 안가. 시큼한 저급 보드카 냄새와 독한 담배 연기가 찌들어 있는 밀실에서 자밀라는 맨바닥에 꿇려진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던져진 것은 도박에 미쳐 집을 날려버린 아버지가 핏빛 지장을 찍은 사채 장부 사본, 그리고 그녀가 매일 품에 안고 다니던 법학 전공 서적들이었다.
사채업자 바크티야르 일당은 처음부터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이 황량하고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땅에서, 고작 스물한 살짜리 엘리트 여대생의 신분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이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카자흐스탄 지하 경제에서 가장 자극적인 상품, 즉 아무런 사회적 배경이 없는 상류층 엘리트 미녀의 육체를 합법이라는 허울을 쓰고 철저하게 갈취하는 것이었다.
“바크티야르 씨, 제발…… 전 다음 달에 국가 장학금 면접이 있어요. 법무법인 인턴 급여도 나오는 대로 전부 장부에 넣을게요. 제발 아버지만 풀어주세요…….”
“장학금? 인턴 급여? 이 잘난 여대생 분이 아직도 현실을 모르네. 네 아비는 벌써 장기 브로커들한테 넘어가 국경을 건넜어. 그리고 넌 이제 돈 대신 네 몸뚱이로 그 빚을 탕감해야 한다.”
바크티야르가 비열한 폭소를 터뜨리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내의 가죽 장갑 낀 거친 손길이 자밀라의 단정하게 묶여 있던 머리채를 휘잡아 그대로 대리석 책상 위로 거칠게 짓눌렀다. 쿵! 하는 무거운 파열음과 함께 자밀라의 고개가 꺾였고, 터진 입술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려 사채 장부 위를 더럽게 적셨다. 사내의 칼날이 그녀가 입고 있던 대학 과잠바와 하얀 셔츠 자락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악! 놓으세요!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이거 엄연한 강력 범죄야, 이 악마 새끼들아!”
자밀라는 법대에서 밤새우며 외웠던 형법 조항들을 비명처럼 울부짖으며 부러진 손톱으로 책상 모서리를 미친 듯이 긁어댔지만, 현실은 가차 없었다. 문가에 버티고 서 있던 거구의 히트맨 둘이 다가와 그녀의 가느다란 양 손목과 발목을 바닥에 칼같이 고정해 짓눌렀다. 평생을 서재와 강의실의 품위 속에서만 살아온 여대생의 약한 완력으로는, 중앙아시아 밑바닥에서 사람을 도살하던 짐승들의 힘을 단 1밀리미터도 밀어낼 수 없었다.
그 좁고 어두운 지하 방에서, 자밀라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지성과 여왕 같던 자존심은 세포 단위로 타살당했다. 사내들은 저항하는 그녀의 입안에 정체 모를 불법 약물을 강제로 쑤셔 넣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마비되고 전신의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달아오르는 절망적인 환각 속에서, 사내들의 거친 군화발과 탐욕스러운 손길이 자밀라의 하얀 살점과 허벅지를 사정없이 유린하기 시작했다.
“이야, 국립대 수석이라 그런지 몸매가 아주 끝내주는구만! 바크티야르 형님, 이년 약에 절여서 우리 안가 전용 공용 인형으로 쓰면 주 정부 관료들이 환장하고 돈을 싸 들고 오겠습니다!”
전통을 빙자한 강제 납치 악습인 ‘카차를라’의 진짜 추악한 민낯이 자밀라의 절규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내들의 노골적인 성적 수탈과 집단 유린은 새벽이 지나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다. 단 한 톨의 옷가지도 남지 않은 자밀라의 알몸 위에는 담뱃불 흉터와 시커먼 피멍, 그리고 사내들이 싸구려 보드카와 함께 뱉어낸 시큼한 타액들이 오물처럼 더럽게 흩어졌다. 짓물러 터진 피부의 극통보다 더 괴로운 것은, 약물의 환각 속에서 이놈 저놈에게 돌려지며 정신이 서서히 폐인으로 무너져 내리는 스스로의 비참한 몰골이었다. 배설을 끝낸 사내들은 바닥에 초점 없이 누워 침을 흘리는 자밀라의 전신 위로 구겨진 텡게 지폐 몇 장을 침과 함께 던져댔다.
몇 주 동안 지하 안가에 감금된 채 카르텔의 비밀 무역 우회 장부를 정리하는 금융 노예로 굴러가고, 밤이 되면 하급 조직원들과 부패한 지역 단속반원들의 배설구가 되는 지옥 같은 이중생활이 반복되자 자밀라의 몸은 완벽하게 망가져 갔다. 거울조차 없는 시멘트 벽면에 비치는 자신의 형상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사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낡고 지저분한 가구’처럼 방치된 가축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 반, 카르텔의 밀수 대금 세탁을 자축하던 바크티야르와 부하들이 보드카에 취해 대자로 뻗어 잠드는 짧은 감시의 공백이 발생했다. 사내들이 자밀라를 완전히 도망칠 기력조차 없는 시체로 확신한 나머지, 안가의 철문 빗장이 허술하게 풀려 있었고 복도의 간수들은 독주를 마시며 카드 도박을 하느라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었다. 평생에 단 한 번 찾아온 절체절명의 타이밍이었다.
자밀라는 진물이 흐르는 허벅지와 약물 금단증상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뼈의 극통을 이를 악물고 버텨내며, 소리 없이 바닥을 기어 옆방으로 스며들었다. 그곳에는 그녀를 대신해 인질로 잡혀 무릎뼈가 완전히 부서진 채 신음하던 어린 남동생이 철제 사슬에 묶여 있었다. 자밀라는 부러진 손톱 끝에서 피가 솟구치는 줄도 모르고 녹슨 송곳으로 남동생의 족쇄를 미친 듯이 쑤셔 파냈다.
철컥.
마침내 사슬이 풀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밀라는 허술하게 열려 있는 지하 안가의 뒷문과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황량하고 차가운 알마티의 모래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온몸은 걸레짝이 되었고 남동생은 제대로 서기조차 못 하는 절망적인 상황. 현실은 결코 판타지가 아니다. 여기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 뒤에는 카르텔의 피비린내 나는 도살도구와 영원한 종말의 추격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밀라는 얼어붙은 어둠을 응시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