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틈새의 기록
리자가 서재에서 알리 씨를 밀쳐내고 뛰쳐나온 그날 이후, 대저택 안에서의 그녀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졌다. 마담 파티마는 그녀를 3층 다락방과 지하실 청소로만 한정시켰고, 그녀의 동선은 철저히 가족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제한되었다. 그것은 강등이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선물이기도 했다.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덜 감시당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리자는 이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을 오르며, 복도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녀가 청소하는 구역에는 카메라가 거의 없었다. 3층 다락방은 오래된 가구와 먼지 쌓인 상자들만이 쌓인 공간이었고, 지하실 복도는 카메라의 사각지대가 많았다. 그녀는 그 사각지대들을 하나씩 머릿속에 입력했다. 언젠가 이 정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가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어느 날 오후, 마담 파티마의 목소리가 1층 거실에서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고, 목소리에는 짜증이 배어 있었다.
“나빌 씨가 또 연락했어요? 지난번에 거절했다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그 사람은 왜 이렇게 집요한 거야.”
리자는 계단 구석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나빌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담 파티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알겠어요.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그 사람도 이제 좀 포기하라고 해요. 우리 집 직원을 그렇게 쉽게 빌려줄 순 없으니까.”
전화가 끊기고, 마담 파티마의 구두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리자는 그 자리에 서서 방금 들은 대화를 곱씹었다. ‘빌려준다’는 말. 그 짧은 단어가 그녀의 피부에 소름이 돋게 했다. 그녀는 이제 이 집의 자산이었고, 자산은 필요에 따라 빌려주거나 양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 나빌이라는 남자가 직접 대저택을 찾아왔다. 리자는 부엌에서 수니타와 함께 저녁 식사 준비를 돕고 있었고, 현관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손을 멈추었다.
“오, 나빌 씨. 예고도 없이 오셨네요.”
마담 파티마의 목소리는 상냥했지만, 그 안에는 불편함이 숨어 있었다. 나빌은 40대 중반의 아랍 남성으로, 단정한 정장 차림에 손목에는 고급 시계가 반짝였다. 그는 거실로 안내되었고, 알리 씨도 서재에서 나와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리자는 식당에 차를 가져다주며 그 남자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의 얼굴은 날카로웠고, 눈빛은 시장에서 상품의 가치를 가늠하는 상인처럼 냉철했다.
나빌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마담 파티마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그 직원, 아직 생각 중이신가요.”
“솔직히 말해서, 저희는 그 직원을 좀 아끼거든요. 주인님도 마음에 들어 하시고.”
“아끼는 직원일수록 좋은 경험을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제 집은 여기보다는 작지만, 대우는 확실히 합니다. 그리고 한 달이면 돌아오는데, 뭐가 문제겠어요.”
그들의 대화는 마치 중고 가구를 두고 흥정하는 장사꾼들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리자는 부엌으로 돌아와 싱크대 앞에 섰다.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위장 깊은 곳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수니타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말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니타의 목소리에는 예전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두려움을 넘어선, 작은 결심 같은 것이.
리자는 나빌의 방문 이후, 자신의 관찰 범위를 더 넓혔다. 그녀는 더 이상 단순히 동선과 시간만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이 집의 권력 구조, 사람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균열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마담 파티마와 알리 씨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마담 파티마는 남편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었고, 알리 씨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점점 더 은밀하게 움직였다. 나빌이라는 외부 인물의 등장은 그 긴장을 더욱 심화시켰다.
리자는 다락방에서 청소를 하며 그녀가 발견했던 다섯 개의 여권을 다시 확인했다. 안젤라 마리노, 마리아 플로레스, 조세핀 아귈라. 그녀는 그 이름들을 입 안에서 조용히 반복했다. 그녀는 이 여성들이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 시스템에 의해 ‘처리’되었을 가능성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밤, 리자는 지하실 복도에서 우연히 수니타와 마주쳤다. 수니타는 그녀를 샤워실 구석으로 이끌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방울이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덮어주었다.
“리자, 내가 알아낸 게 있어. 마담이 없는 금요일 오후에, 뒷문 경비가 교대하는 시간이 10분 정도 비어. 그 시간이면 정원을 지나 뒷문까지 갈 수 있어.”
리자는 수니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두려움을 뚫고 나온 무언가가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라힘한테 들었어. 정원사 말이야. 그 사람도 여기서 3년째 일하면서 모든 걸 다 보고 있었던 거야.”
“라힘이 탈출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그는 우리 편이야. 마담에게 당한 게 많거든. 무릎이 망가졌는데도 병원에 못 가게 했대.”
리자는 그 정보를 머릿속에 조용히 새겼다. 뒷문 경비 교대 시간. 10분의 빈틈. 그녀는 아직 이 정보를 어떻게 사용할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내부에서, 오래전에 거의 꺼져가던 작은 불씨가 다시 깜빡이기 시작했다.
결국 마담 파티마는 나빌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리자는 그녀가 전화 통화를 엿들은 지 2주 만에, 나빌의 집으로 ‘임대’되었다. 마담 파티마는 그녀를 서재로 불러 짧게 통보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고, 그녀의 눈빛은 리자를 향해 있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나빌 씨 집에서 일해. 계약 끝나면 다시 여기로 돌아오는 거야. 물론, 네 빚은 그대로 유지되고. 오히려 이전 수수료가 추가되니까 빚은 좀 늘어나겠지만, 그건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야.”
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거절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 성모 마리아 상본과 몇 벌의 옷가지를 챙겨 검은색 세단에 올랐다.
나빌의 집은 알리 씨의 대저택보다 작았지만, 여전히 화려했다. 그러나 그녀가 안내된 방은 이전보다 더 나은 곳이 아니었다. 방 안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빌은 첫날 저녁부터 리자에게 자신의 기대를 분명히 했다. 그의 태도는 외교적이지 않았고, 그의 손은 필요 이상으로 오래 그녀의 어깨에 머물렀다. 리자는 그 순간들을 통과하며, 자신이 이제 완전히 낯선 사람의 손에 넘겨졌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밤, 불이 꺼지고 나빌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멀어지면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 이 낯선 집의 구조를 머릿속에 그렸다. 복도의 길이, 계단의 위치, 현관문과 뒷문의 방향. 그녀는 이곳에서도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나빌의 집에 머문 지 2주째 되는 날 밤, 리자는 우연히 그의 서재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빌은 외출 중이었고, 집 안은 조용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서재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영어로 된 문서였다. ‘Kafala Sponsorship Transfer Agreement’. 그녀의 이름이 거기에 적혀 있었다. 이전 비용은 15,000디르함이었고, 그 비용은 나빌이 알리 씨에게 지불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문서의 숫자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15,000디르함. 그녀가 알리 씨에게 지고 있던 21,700디르함의 빚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몸값으로 저 남자들 사이에서 오간 금액은 분명히 거기에 인쇄되어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금액으로 환산되어 종이 위에 박제된 그 숫자를 마주하자, 손가락 끝의 감각이 마비되듯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녀는 서류를 원래 자리에 내려놓고 서재를 빠져나왔다. 머릿속은 차갑게 비워져 있었고, 오직 저 숫자들만이 망막에 남아 깜빡였다.
그날 밤, 리자는 자신의 방 침대에 걸터앉아 벽에 기대었다. 방 안의 공기는 무거웠고, 감시 카메라의 작은 붉은 불빛이 어둠 속에서 렌즈 안쪽을 기괴하게 물들이며 깜빡이고 있었다. 안쪽에서 잠글 수 없는 문 너머로 나빌의 집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가방 속 성모 마리아 상본을 더듬어 집었다. 나무 조각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했다. 그녀는 그 차가운 단단함을 손바닥에 올려둔 채, 감시 카메라의 붉은 불빛이 깜빡이는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