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그림자 두바이편 #002] 대저택의 그림자 – 4-2화: 관찰자의 생존

4-2화: 관찰자의 생존

리자는 알리 씨의 손아귀가 그녀의 턱뼈를 압박하는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마지막 남은 의지 한 조각을 움켜잡았다. 어머니의 얼굴, 미겔의 얼굴, 수니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안젤라’라는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쳐냈다. 알리 씨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몸의 중심을 잃고 소파 등받이 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리자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러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작지 않았다. 서재의 공기를 가르며 날카롭게 울렸다. 알리 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처음 보는 당혹감과 함께 짙은 분노가 스며들었다. 그의 입술이 얇게 굳어졌다.

“네가 지금… 나를 밀친 거야?”

그가 일어서며 와인 잔을 탁자 위에 탁 내려놓았다. 크리스털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리자는 뒷걸음질 치며 문으로 향했다. 그녀의 등 뒤에서 그의 발소리가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는 문고리를 잡고 힘껏 돌렸다. 손목이 삐걱거릴 정도로 세게 문을 밀어 열었다. 그녀의 맥박은 목젖까지 밀려 올라와 숨통을 짓누르고 있었다. 복도로 뛰쳐나오는 순간, 그의 손이 문틀을 잡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복도를 내달렸다. 대리석 바닥이 맨발에 차갑게 달라붙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거의 굴러떨어지듯 내려가며, 그녀는 자신이 방금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이 대저택의 절대적인 지배자에게 처음으로 ‘아니요’라고 말했다. 그 행위의 무게가 계단을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리자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서랍장을 다시 문 앞에 밀어 넣었다. 서랍장이 문에 닿으며 작은 소리를 냈다.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숨을 골랐다. 허파 깊숙이 공기를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알리 씨의 손아귀에 잡혔던 턱뼈 부위가 은은하게 욱신거렸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방금 전까지 그녀를 짓누르던 공포가 조금씩 다른 무언가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이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알리 씨의 동선, 마담 파티마의 외출 패턴, 복도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의 위치와 각도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 하나씩 담아두기 시작했다. 종이와 펜은 없었지만, 기억만이 유일한 기록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관찰이 적발될 경우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알고 있었다. 지하실에 갇힌 사람. 사라진 안젤라. 그 모든 결과를 알면서도,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두었다.

다음 날 아침, 부엌에 올라간 리자를 맞이한 것은 마담 파티마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리자가 들어서는 순간 커피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도자기가 테이블에 닿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리자, 주인님께서 네가 어젯밤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씀하셨어. 몸이 아파서 실수했다고?”

리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알리 씨가 진실을 마담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의 접근이 거절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는 굴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담의 눈빛은 그녀가 이미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 눈빛은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일종의 경고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몸이 안 좋았어요.”

“그래, 이해해.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겠지? 오늘부터 네 담당 구역은 3층 다락방과 지하실 청소로 한정할게. 서재나 침실은 다른 애한테 맡기겠어.”

이것은 명백한 강등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리자는 이것이 그녀를 알리 씨의 직접적인 접근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조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담 파티마는 남편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날부터 리자는 대저택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알리 씨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밀려났고, 이는 그녀에게 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이 집의 리듬을 머릿속에 새겼다.

마담 파티마의 일과는 정확했다. 오전 9시에 부엌에 나와 커피를 마시고, 10시에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다. 그녀가 운동하는 동안에는 음악 소리가 체육관 문 너머로 새어 나왔다. 오후 2시에는 거실에서 전화 통화를 길게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때로는 아랍어로, 때로는 영어로 빠르게 이어졌다. 그녀의 외출은 주로 오후 4시 이후에 이루어졌고,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거의 항상 집을 비웠다.

알리 씨는 더 예측하기 어려웠지만, 그에게도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그는 보통 오전 10시쯤에 운전기사와 함께 외출했고, 저녁 7시 이후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목요일 저녁에는 거의 항상 늦게까지 서재에 혼자 있었다. 마담 파티마가 없는 시간이었다.

보안 카메라는 현관, 복도, 그리고 정원에 설치되어 있었지만,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는 카메라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리자는 청소를 핑계로 그 구석을 여러 번 지나다녔다. 고개를 숙인 채 걸레질을 하면서도, 눈으로는 카메라의 렌즈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녀의 핸드폰은 여전히 데이터 신호가 잡히지 않았지만, 배터리는 아직 30%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끄고 서랍 깊숙이 보관했다. 충전할 방법도, 사용할 네트워크도 없었지만, 이 작은 기계가 언젠가 쓸모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그녀의 손을 멈추게 했다.

며칠 후, 리자는 지하실 복도에서 우연히 수니타와 마주쳤다. 수니타는 그녀를 보자마자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리자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손끝에 닿는 수니타의 팔은 긴장으로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수니타 씨, 잠깐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수니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샤워실 구석, 물소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감춰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녹슨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고, 벽의 곰팡이 자국은 더 넓게 번져 있었다.

“왜 그래. 또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그냥… 이 집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마담이 없는 날이 언제인지, 주인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수니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리자의 팔을 뿌리치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분노 비슷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리자,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도망가려는 거야? 그러다가 지하실에 갇혀. 안젤라처럼.”

“안젤라는 어떻게 지하실에 갇혔어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갇히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수니타는 침묵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앞치마 주름을 반복해서 매만지고 있었다. 샤워실에 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몇 초간 이어졌다.

“안젤라는… 저항했어. 그것도 아주 강하게. 주인님을 밀쳐서 넘어뜨렸대. 그리고 현관문까지 달려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어. 다음 날부터 그 애는 지하실에 갇혔고, 일주일에 한 번만 밖에 나올 수 있었어.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야.”

“그 애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몰라.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어. 마담은 계약이 끝나서 필리핀으로 돌아갔다고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아.”

리자는 그 말을 가슴속에 새겼다. 안젤라는 저항했고, 그 대가를 치렀다. 현관문은 잠겨 있었고, 그녀는 붙잡혔다. 그 사실이 리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수니타 씨, 만약에… 내가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으면, 같이 갈 생각 있어요?”

수니타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리자의 입을 막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제발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 벽이 듣고 있어. 나는…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수니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샤워실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점점 멀어졌다. 리자는 혼자 남아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위장 깊은 곳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리자는 마담 파티마의 지시에 따라 3층 다락방 청소를 맡게 되었다. 그곳은 대저택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방으로, 주로 계절이 지난 옷가지나 낡은 가구들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좁은 계단을 올라 도착한 다락방은 먼지 냄새가 가득했고, 천장이 낮아 서서 다니기조차 어려웠다. 작은 창문 하나가 있었지만 먼지로 뿌옇게 덮여 있어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았다.

리자는 이곳에서 청소를 하며, 그녀보다 먼저 이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의 흔적을 하나씩 발견하기 시작했다. 낡은 구두 한 짝, 필리핀어로 적힌 약 봉지, 그리고 바느질이 덜 끝난 십자수 조각.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삶이 이곳에서 멈추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방 구석에서, 그녀는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고, 뚜껑은 오래되어 삐걱거렸다. 그녀는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여권이 들어 있었다. 모두 필리핀 여권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하나를 집어 펼쳐보았다. 안젤라 마리노, 24세. 그 옆에는 또 다른 여권. 마리아 플로레스, 27세. 또 다른 여권. 조세핀 아귈라, 22세. 총 다섯 개의 여권이 그 상자 안에 있었다. 각 여권의 사진 속 여성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모두 닮아 있었다. 희망과 기대를 품고 이 낯선 땅으로 왔을 젊은 여성들의 얼굴이었다.

리자는 그 여권들을 손에 쥐고 오래 바라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닳아빠진 표지의 감촉이 전해졌다. 이 여성들은 모두 그녀처럼 이 대저택에 왔고, 그녀처럼 일했으며, 그녀처럼 어딘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유일한 탈출 수단이었을 여권은, 이 먼지 쌓인 다락방 상자 속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닫아 원래 자리에 두었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었다. 먼지 섞인 공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왔다. 그녀는 이제 다섯 개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안젤라, 마리아, 조세핀. 그녀가 발견한 것은 단순한 여권 다발이 아니라, 이 집의 역사가 감춰둔 증거였다.

그날 밤, 리자는 지하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서랍장 위의 성모 마리아 상본을 더듬어 집어들었다. 나무 조각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했다. 그녀는 상본을 쥔 채로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콘크리트 벽 너머로 위층의 발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거실에서 누군가 걸어가는 소리, 그리고 서재 문이 닫히는 소리. 그 소리들이 그녀의 방에 닿기까지는 채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 소리들을 들으며, 이 방이 얼마나 얇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지, 그리고 그 벽 너머에 얼마나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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