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바오밥나무 아래
3월 13일. 비가 그쳤다.
조셉은 헛간 문을 열고 진흙 바닥을 밟았다. 발밑이 울퉁불퉁했다. 공기는 축축했고, 바나나 잎에 고인 물방울이 햇빛에 반사되어 작은 점들을 만들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8시 12분. 기자 시절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으로 산 시계였다. 유리가 금이 가 있었다.
신도들은 이미 깨어 있었다. 흰 옷을 입은 그들이 천막 주변을 조용히 오갔다. 어떤 이는 빗물을 퍼내고, 어떤 이는 옥수수죽을 끓이고, 어떤 이는 나무 팻말에 분필로 무언가 쓰고 있었다. 모두 침묵 속에서였다.
조셉은 그들 사이를 걸으며 팻말을 하나 집어 들었다. 부엌 입구에 놓인 여분의 팻말이었다. 분필 한 조각도 함께 집었다. 주머니에 넣었다.
식사 시간. 천막 안에 모여 앉았다. 옥수수죽과 빵. 어제와 같은 메뉴. 같은 침묵. 같은 숟가락 소리. 조셉은 옆자리의 남자를 관찰했다. 40대 초반. 오른쪽 손등에 화상 자국이 있었다. 죽을 떠먹으면서도 시선을 그릇에 고정한 채 단 한 번도 눈을 들지 않았다. 입술이 말라 있었다. 물을 찾는 몸짓조차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 신도들은 각자 작업 구역으로 흩어졌다. 밭을 가는 자들, 천막을 수선하는 자들, 옥수수를 찧는 자들. 모두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조셉은 물통을 나르는 척하며 컨테이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찾기 위해서였다.
컨테이너 뒤편에서 젊은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었다. 흰 천들이 줄에 걸려 바람에 펄럭였다. 로다였다. 조셉이 다가가자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고, 대신 발밑의 진흙에 분필로 한 글자를 썼다.
‘점심 후. 지금은 안 된다. 엘리야가 밭을 순찰 중이다.’
조셉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통을 들고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밭 쪽을 힐끗 보았다. 엘리야의 흰 로브가 바나나 나무 사이로 보였다. 그의 입매는 여전히 고착되어 있었다. 그가 손을 들어 신도 하나를 불렀다. 신도는 팻말을 들고 달려갔다. 복종의 속도가 빨랐다.
조셉은 오전 내내 물통을 나르고 나무를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신도들은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도 말을 걸지 않았다. 침묵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무겁게 내려앉는 종류의 것이었다. 폐부를 누르는 습기처럼.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후 1시. 점심 식사가 끝난 직후.
신도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러 천막으로 돌아갔다. 조셉은 그 틈을 타 농장 뒤편으로 걸었다. 바오밥나무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거대했다. 줄기는 10명이 둘러싸야 할 정도로 굵었고, 가지는 뼈처럼 하늘로 뻗어 있었다. 나무 밑은 그늘이 깊었다.
로다가 먼저 와 있었다. 팻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앉아 있었다. 조셉은 2미터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녀가 팻말을 들었다.
‘로다. 내 이름.’
조셉은 자신의 팻말에 분필로 썼다. ‘조셉.’
로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팻말에 빠르게 쓰기 시작했다. 글씨는 작고 빽빽했다. 분필 가루가 무릎 위로 떨어졌다.
‘당신이 찾는 에스더는 여기 있다.’
조셉의 손이 분필을 더 세게 쥐었다.
‘어디.’
‘지하 벌방. 우리는 구덩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침묵 서약을 어겼다. 2주 전, 기도 중에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 지금은 지하에 갇혀 있다.’
지하 벌방. 구덩이. 조셉은 이 단어들을 머릿속에 새겼다.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 볼 수도 있었다.
‘왜 당신은 나를 도우려 하는가.’
로다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분필을 쥔 채 떨렸다. 손톱이 분필을 긁어 흰 가루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다시 썼다.
‘나도 언니가 있었다. 작년에 멸망의 날 예행 기도 중에 연기 때문에 죽었다. 기도실 환풍구가 막혀 있었다. 사고라고 들었다. 하지만 사고가 아니었다.’
멸망의 날 예행. 환풍구. 연기. 사고가 아닌 죽음. 조셉은 분필로 물었다.
‘멸망의 날이 언제인가.’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하지만 엘리야의 서재에 문서가 있다. 멸망의 날 계획서. 모든 신도의 이름과 순수 등급과… 기도실 설계도가 적혀 있다.’
조셉은 팻말을 내려놓았다. 그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가 기자 시절 익숙했던 감각이었다. 증거를 손에 쥐기 직전의 긴장감.
‘어디에 있나. 서재는.’
‘엘리야의 컨테이너. 사무실 겸 침실. 하지만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열쇠는 항상 그의 목에 걸려 있다.’
조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다가 마지막으로 팻말을 들었다. 그녀의 글씨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읽을까 두려운 듯.
‘한 가지 더. 내일 저녁, 새로운 신도 입회식이 있다. 입회식 때는 모든 신도가 기도실에 모인다. 엘리야도 거기에 있다. 그 시간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로다는 팻말을 지우고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가 천막 쪽으로 걸어가자, 조셉은 바오밥나무 아래에 혼자 남았다. 나무 껍질에 손을 대었다. 거칠었다. 차가웠다. 나무는 이 땅에 100년 넘게 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100년 동안 이 땅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침묵 속에 지켜봤을 것이다.
오후 4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셉은 작업 구역으로 돌아갔다. 밭에서 옥수수 줄기를 묶는 일을 도왔다. 손이 거칠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로다가 건넨 정보로 가득 차 있었다.
지하 벌방. 구덩이. 거기에 에스더가 갇혀 있다. 침묵 서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2주 동안 빛도 보지 못한 채.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이후, 에스더는 이곳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멸망의 날 계획서. 예행 연습에서 이미 한 명이 죽었다. 로다의 언니. 환풍구가 막힌 기도실. 연기. 사고로 위장된 살인. 엘리야는 그 죽음마저도 ‘순수한 자들의 승천’이라 포장했을 것이다.
조셉은 옥수수 줄기를 묶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입회식은 내일 저녁. 그 시간에 엘리야의 컨테이너에 들어가 서류를 찾는다. 그리고 지하 벌방의 에스더를 구출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로다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로다는 이미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녀를 더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까.
작업이 끝나갈 무렵,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진흙을 밟는 소리. 묵직했다. 조셉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옥수수 줄기를 더 천천히 묶으며 기다렸다.
“일은 익숙합니까.”
엘리야의 목소리였다. 조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지키며.
“당신은 참 조용하군요. 다른 신입자들은 보통 입을 다무는 데 며칠이 걸리는데.”
엘리야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손이 조셉의 어깨에 닿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통제하는 자의 손길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처음부터 침묵을 완벽히 지키고 있군요. 마치… 뭔가를 숨기기 위해 그런 것처럼.”
조셉은 옥수수 줄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들어 엘리야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팻말을 꺼내 분필로 썼다.
‘진리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야의 입매가 살짝 비틀렸다. 미소인지 경계인지 분간할 수 없는 비틀림이었다. 그는 팻말을 읽고도 3초간 조셉의 눈을 응시했다.
“좋습니다. 진리를 찾는 자는 환영입니다. 내일 저녁, 입회식이 있습니다. 당신도 참석하십시오. 거기서 당신의 진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엘리야가 돌아섰다. 그의 발소리가 진흙 속으로 멀어졌다. 조셉은 팻말을 지우고 주머니에 넣었다. 손등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어깨에 엘리야의 손길이 남긴 차가운 잔향이 남아 있었다.
오후 11시. 모든 신도가 잠들었다.
조셉은 헛간에서 눈을 뜨고 누워 있었다. 바깥에서는 빗소리만 들렸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유리 금이 시간을 정확히 가르고 있었다. 오후 11시 23분.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문을 살짝 열었다. 진흙 바닥이 빗물에 반짝이고 있었다. 천막 쪽은 어두웠다. 등유 램프도 꺼져 있었다. 엘리야의 컨테이너는 농장 서쪽 끝에 있었다. 로다의 말로는 사무실 겸 침실.
조셉은 어둠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진흙이 적은 길을 골랐다. 컨테이너가 보였다. 창문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엘리야는 아직 깨어 있었다.
컨테이너 뒤편으로 돌아갔다. 작은 환풍구가 있었다. 쇠창살이 박혀 있었지만, 녹이 슬어 있었다. 조셉은 주변을 살피고 환풍구에 귀를 대었다. 빗소리가 거셌다. 컨테이너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서, 엘리야가 평소보다 목소리를 조금 높여야 했는지 평소보다 더 또렷하게 들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계획대로입니다. 입회식은 내일. 멸망의 날은 예정대로 3주 후. 유럽 계좌는 준비되었고, 보험 서류도 완료되었습니다. 사고로 처리될 겁니다.”
전화 통화였다. 엘리야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조셉은 숨을 죽였다. 환풍구 틈으로 엘리야의 등이 보였다. 그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네. 신도 전원이 포함됩니다. 순수 등급과 관계없이. 증인은 필요 없습니다. 이곳은 세상에서 잊힌 곳이니까요. 경찰? 하. 이 지역 경찰은 한 번도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오지도 않을 겁니다.”
잠시 침묵. 빗소리만 컨테이너 벽을 때렸다. 그리고 엘리야의 낮은 웃음소리. 웃음소리는 빗소리보다 낮았지만, 더 날카롭게 들렸다.
“3주 후면 이 땅은 깨끗해질 겁니다. 신도들은 연기와 함께 떠오를 것이고, 나는 유럽으로 떠날 겁니다.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전화가 끊기는 소리. 의자가 끌리는 소리. 발소리가 컨테이너 안에서 움직였다. 조셉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환풍구 아래 웅크리고 앉아 심장이 뛰는 소리를 억눌렀다. 진흙이 무릎에 묻었다. 빗물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불빛이 꺼졌다. 엘리야는 잠든 것 같았다. 조셉은 5분을 더 기다렸다. 빗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저렸다. 빗속을 걸어 헛간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았다. 숨을 몰아쉬었다. 옷은 비에 젖어 있었고, 손은 떨리고 있었다.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첩과 펜을 꺼냈다. 희미한 달빛이 헛간 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 빛에 의지해 빠르게 적었다.
‘엘리야의 통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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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저녁 입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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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날은 3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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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포함. 순수 등급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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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위장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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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계좌 존재. 보험 서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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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개입 가능성 낮음. 지역 경찰과의 유착 의심됨.
-
증인 필요 없다는 발언. 집단 살해 의도 명확.’
수첩을 덮었다. 침묵 속에서 생각했다. 내일 입회식. 그 시간이 유일한 기회였다. 엘리야가 기도실에 있는 동안, 그의 컨테이너에 들어가 서류를 확보해야 했다. 그리고 지하 벌방의 에스더를 구출해야 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주머니에서 팻말을 꺼내 분필로 짧게 썼다.
‘로다. 내일 입회식 전에 만나자. 바오밥나무. 긴급.’
이 팻말을 어떻게 그녀에게 전달할 것인가. 조셉은 생각을 정리하며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 작업 시간에 틈을 봐서 그녀의 빨래 바구니에 넣어두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이다.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천둥이 먼 곳에서 울렸다. 빅토리아 호수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헛간 문을 흔들었다.
내일.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었다.
잠들기 직전, 그는 지갑 속 에스더의 사진을 한 번 더 꺼내 보았다. 간호사 유니폼. 그녀의 미소는 아직 살아 있었다. 지갑을 접어 베개 밑에 넣고 눈을 감았다.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