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분필로 쓴 경고
3월 12일. 우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도요타의 뒷좌석에서 깨어난 것은 비린내 때문이었다. 호수에서 올라온 흙비린내가 차창 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와이퍼는 고장. 운전수는 손수건으로 앞유리를 닦으며 욕을 했다. 조셉은 듣지 않았다.
손에 쥔 편지는 닷새 전 어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땀에 절어 잉크가 번졌다.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지갑을 열었다. 찢어진 영수증 두 장, 낡은 운전면허증, 그리고 에스더의 사진 한 장. 2년 전 간호사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 사진 뒤에 적힌 전화번호는 이미 없는 번호였다. 지갑을 닫았다. 가죽이 해어진 자리로 손가락이 스쳤다.
“여기서 내려주시오.”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요.”
“괜찮아.”
진흙탕에 내려섰다. 도요타가 돌아가자 사방은 적막. 바나나 잎을 때리는 빗방울. 신발에 달라붙는 진흙. 자신의 숨소리. 어머니의 편지는 주머니 속에서 무게 없는 짐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에스더가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곳. 어떤 교회. 성스러운 침묵의 성역. 딸을 찾아달라는 어머니의 글씨는 떨리고 있었다. 조셉은 그 떨림을 지갑 속 빈 영수증처럼 접어두었다.
길 끝에 나무 팻말이 서 있었다. 합판은 썩어가고 있었다. 페인트 글씨.
‘성스러운 침묵의 성역. 방문자는 침묵을 지킬 것.’
그 아래 작은 글씨.
‘말은 영혼을 더럽힌다.’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백지였다. 기자 시절의 습관. 하지만 이 수첩은 해고된 이후 단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었다. 다시 집어넣고 팻말이 가리키는 길을 걸었다.
10분. 진흙 길 끝에 농장이 열렸다.
커피 농장이었을 땅. 지금은 낡은 천막과 컨테이너 박스 몇 개. 중앙 천막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스무 명쯤. 흰 옷. 비가 내리는데도 움직임이 없었다. 돌로 조각된 군상. 빗물이 그들의 어깨를 때렸지만, 움찔하는 이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남자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성스러운 침묵의 성역입니까.”
남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손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손바닥을 보였다. 닥치라는 뜻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도 같았다. 손바닥. 혹은 무반응. 눈은 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를 보는 눈. 조셉은 그 눈빛에서 자신이 지난 2년간 보아온 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감지했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해고 통지서를 받던 날 거울 속에서 마주했던 그 무언가.
천막 안에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흰 로브. 목에는 나무 목걸이. 쉰 살 후반. 얼굴에 미소가 고착되어 있었다. 그 입매를 본 순간, 등줄기에 무언가 스쳤다.
“환영합니다, 방랑자여.”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다른 이들은 말하지 않는데, 이 남자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엘리야 무투카. 이곳의 길을 안내하는 자입니다.”
“조셉 오켈로입니다.”
“무엇을 찾아 이곳에 왔습니까.”
망설임. 2초.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입매가 비틀리며 더 깊게 고착되었다. “진리는 침묵 속에 있습니다. 침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머물 수 있습니다.”
손을 내밀었다. 건조하고 긴 악수.
“한 가지 규칙. 이 경내에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만이 말할 수 있습니다. 침묵의 서약입니다.”
“이해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도 침묵을.”
엘리야가 천막 안으로 사라졌다. 비는 여전했다. 신도들은 돌이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 여자. 흰 옷. 하지만 눈이 달랐다. 공허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열려 있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입을 가리켰다. 입술 대신 들린 건 분필 자국 남은 작은 나무 팻말이었다.
‘왜 왔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말하지 마라.’
팻말을 내렸다. 시선은 이미 진흙 바닥으로 떨어진 뒤였다.
오후 6시. 종소리.
신도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꼭두각시 같았다. 모두 같은 동작으로 천막을 향해 움직였다. 뒤를 따랐다. 진흙 바닥에 찍힌 발자국들이 나란히 줄을 이었다.
천막 안은 넓었다. 거적 바닥. 긴 나무 탁자. 투박한 도자기 그릇들. 맨 끝자리에 앉았다.
식사는 옥수수죽과 빵 한 조각. 음식을 받을 때도, 먹을 때도 아무 말이 없었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누군가 기침을 했다. 손으로 입을 막고, 최대한 작게. 공기 중에 손을 휘저으면 침묵이 깨지기라도 하는 듯이.
신도들의 목울대가 경직되어 있었다. 숟가락 소리조차 금기인 공포가 식당을 지배했다. 누군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쇳소리가 울렸다. 신도들의 어깨가 일제히 움찔했다. 떨어뜨린 자는 허겁지겁 숟가락을 집어 들고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사과의 몸짓. 하지만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옥수수죽만 삼킬 뿐이었다.
부엌 구석. 젊은 여자가 그릇을 닦고 있었다. 아까 그녀. 다가가려는 찰나, 그녀가 먼저 팻말을 들었다.
‘아직 말하지 마. 저녁 기도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추위인지 공포인지 분간할 수 없는 떨림. 그 떨림을 감추듯, 그녀는 팻말을 앞치마 속에 숨겼다. 그리고 다시 그릇을 닦기 시작했다. 물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오후 9시. 기도.
원형으로 앉은 신도들. 중앙에 엘리야. 그의 손에 두꺼운 책. 성경일 수도, 아닐 수도. 조명은 어두웠다. 등유 램프 하나가 천막 중앙에 매달려 그림자를 흔들었다.
“오늘도 우리는 침묵 속에서 진리를 구합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책을 펴지 않았다. 외운 말.
“말은 세상을 더럽혔습니다. 거짓과 비방과 유혹이 모두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입을 닫을 때, 영혼이 열립니다. 영혼이 열릴 때, 진리가 찾아옵니다.”
신도들은 고개를 숙였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다. 울음소리조차 삼키고 있었다. 눈물이 진흙 바닥에 떨어져 작은 점을 만들었다.
“곧 멸망의 날이 옵니다. 세상은 불타고, 순수한 자만이 새 세상으로 옮겨집니다. 그날, 우리는 침묵 속에서 연기와 함께 떠오를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침묵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멸망의 날. 죽음. 연기. 세 단어가 머릿속에 못처럼 박혔다. 종교적 은어가 아니라 구체적 계획의 암호. 조셉은 기자 시절의 감각을 떠올렸다. 사기꾼과 살인자는 항상 아름다운 말로 계획을 포장했다. 엘리야의 말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기도 종료. 신도들이 흩어졌다. 젊은 여자가 천막 뒤편 컨테이너 쪽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따라가려는 찰나, 엘리야가 앞을 막았다.
“오늘 처음 온 분께는 특별한 잠자리를.”
표정은 여전히 고착되어 있었다.
“저쪽 헛간입니다. 조용하고 편안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밤에는 절대 경내를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밤은 순수한 자들만의 시간입니다.”
순수한 자들만의 시간. 조셉은 그 말을 수첩에 적지 않고 머릿속에 입력했다. 엘리야가 물러났다. 헛간으로 향하면서도 시선은 여자가 사라진 컨테이너에 박혀 있었다.
낡았지만 깨끗했다. 요. 양동이. 물수건.
신발을 벗고 요에 앉았다.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2년간 제대로 걷지 않았던 몸이었다. 술집과 집을 오가는 것 외에는. 수첩과 펜을 꺼내 빠르게 적었다.
‘신도 약 20명. 전원 흰 옷. 침묵 서약. 엘리야만 발언 가능. 수화/팻말 소통. 식사 옥수수죽과 빵. 저녁 기도 중 ‘멸망의 날’ 언급. ‘연기와 함께 떠오를 것’ 표현. 집단 죽음 암시 가능성. 엘리야의 표정: 고착된 미소, 입매의 비틀림.’
펜을 멈추려는 순간, 문이 살짝 열렸다.
어둠 속 흰 옷. 그녀였다.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 주머니에서 분필을 꺼내 팻말에 빠르게 썼다.
‘내일 낮, 농장 뒤 바오밥나무 아래. 모두 말할 것. 지금은 안 된다. 그가 지켜보고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팻말을 지우고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문이 닫혔다.
요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곰팡이. 빗물 새는 소리. 바람이 문을 흔들었다.
눈을 감았다. 엘리야의 고착된 표정이 떠올랐다. 통제하는 자의 얼굴. 사기꾼과 살인자에게서 본 적 있는 얼굴. 그 얼굴은 항상 같은 말을 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말 뒤에는 항상 죽음이 따랐다.
에스더. 아직 흔적은 없다. 하지만 저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공포뿐 아니라 토로하고 싶은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갈망은 2년 전 조셉이 해고 통지서를 받던 날 거울 속에서 본 자신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펜을 다시 쥐었다. 수첩 마지막 페이지에 한 줄을 적었다.
‘에스더. 빚을 갚으러 간다.’
베개 밑에 수첩을 숨겼다. 지갑 속 사진을 꺼내 잠시 들여다보았다. 간호사 유니폼을 입은 에스더. 그녀의 미소는 아직 엘리야의 그것처럼 고착되지 않았다. 사진을 다시 지갑에 넣었다.
바깥에서는 빗소리만. 침묵을 덮어주는 음악처럼.
잠들기 직전, 헛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진흙을 밟는 소리.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순찰인가, 아니면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인가. 조셉은 숨을 죽이고 어둠 속에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내일 바오밥나무 아래에서 진실을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