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데이터의 무게
오후 7시 22분. 사무실에 혼자였다.
책상 위에 모든 것이 놓여 있었다. 박물관 메모 원본. 외장 하드 2개. 선불 휴대폰. 하산의 손편지와 USB. 그리고 자이드가 써서 부치지 못한 답장. 금고에서 꺼내 일렬로 늘어놓은 유품들이었다.
2.3GB. 지난 3주간 자이드가 축적한 증거와 하산이 죽음으로 남긴 데이터가 하나로 병합된 용량. 이 작은 저장 장치 하나에 카라즈 공화국 문화부 고위 관료의 국제 유물 밀매 카르텔 전체가 담겨 있었다. 스위스 은행 계좌 3개, 위조된 통관 서류 47건, 국립 박물관 소실 목록과 유럽 경매 출품 비교표 22건, 그리고 자이드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가짜 장부 12건.
이 데이터를 세상에 던지는 순간, 관료의 시스템은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자이드는 외장 하드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암호 16자리. 폴더가 열렸다. 하산의 USB도 함께 연결했다. 하산이 남긴 국제기구 연락처 리스트에는 7개의 이메일 주소가 있었다. 유네스코 문화재 불법거래 감시반, 국제형사경찰기구 문화재 범죄 전담팀, 유럽연합 문화유산 보호국, 그리고 유럽과 중동의 주요 탐사보도 언론사 4곳.
하산은 이 모든 연락처를 이미 검증해두었다. 누가 신뢰할 수 있는지, 누가 관료의 사주를 받은 가짜인지, 모든 것이 주석과 함께 정리되어 있었다. 자이드는 그 리스트를 읽으며 하산이 이 작업에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였는지 처음으로 가늠했다. 집요함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운 시간. 아마 수년.
그는 작성된 이메일을 열었다. 하산이 미리 써둔 초안이 있었다. 수신자는 7개 주소 전체. 제목은 ‘카라즈 공화국 유물 밀매 카르텔 내부 증거’. 본문 첫 줄은 이러했다.
‘이 이메일을 발송한 사람은 카라즈 공화국 물류회사 K-Global Logistics의 현장 관리자 자이드입니다.’
자이드는 이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하산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라고 써두었다. 익명 제보가 아닌, 실명 증언을 선택한 것이었다.
‘나는 지난 14년간 이 회사에서 근무하며 국제 유물 밀매 조직의 물류를 담당해왔습니다. 이 이메일에 첨부된 증거는 지난 3주간 내가 수집한 내부 자료와, 세관 검사관 하산이 사망하기 전 나에게 전달한 조사 기록을 병합한 것입니다.’
자이드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허브-09의 주차장에는 검은 세단이 여전히 서 있었다. 선글라스의 남자는 로비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관료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내일의 선적 서류를 검토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초안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파일을 첨부했다. 2.3GB의 데이터가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회선이 느렸다. 업로드 예상 시간은 4분 22초.
그 4분 22초 동안, 자이드는 자신의 14년을 처음으로 되돌아보았다. 오전 7시 43분의 출근. 삐걱거리는 열한 번째 계단. 고장난 커피머신. 바코드 스캔과 무게 측정과 완충재 선택. C-3 구역의 철문과 코드 9-0A라는 임시 분류. 깨진 점토판과 태워진 메모. 그리고 하산의 목소리.
‘당신은 밤에 잠이 옵니까.’
업로드가 완료되었다. 100%. 자이드는 마우스 커서를 전송 버튼 위에 올렸다. 그리고 클릭했다.
화면에 ‘전송 완료’ 메시지가 떴다.
금요일. 오전 8시. 데이터가 세상에 던져진 지 36시간 만이었다.
자이드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출근했다. 사무실에 앉아 장부를 열었다. 오늘 입고된 화물은 로마 시대 유리병 150점과 소아시아 토기 200점. 그는 바코드를 스캔하고 무게를 측정하고 완충재를 선택했다. 평소와 같은 업무를 평소와 같은 속도로 처리했다.
오전 9시 17분. 첫 번째 뉴스 속보가 터졌다. 유럽의 주요 탐사보도 매체가 카라즈 고위 관료의 유물 밀매 스캔들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30분 후, 두 번째 매체가 후속 보도를 쏟아냈다. 스위스 은행 계좌 동결 소식이 전해졌고, 카라즈 국립 박물관의 전•현직 직원 3명이 연루자로 지목되었다.
오전 10시 3분. 검은 세단이 주차장을 급히 빠져나갔다. 선글라스의 남자가 운전석에, 관료가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도망이었다. 자이드는 창밖을 내다보며 세단의 꼬리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34초. 그 34초 동안,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전 10시 47분. 경찰이 도착했다. 일반 경찰이 아니었다. 카라즈 공화국 특별수사국의 차량이었다. 검은색 SUV 3대가 동시에 셔터 앞에 멈춰 섰다. 8명의 수사관이 내렸다. 그중 2명이 사무실로 향했고, 나머지는 지하 현장으로 내려갔다.
사무실 문이 열렸다. 수사관은 4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는 자이드의 책상 앞에 서서 신분증을 내밀었다.
“자이드 씨, 당신은 카라즈 공화국 문화재 보호법 위반, 국제 유물 밀매 공모, 그리고 문서 위조 혐의로 체포됩니다.”
자이드는 천천히 일어났다. 장부를 저장하고 모니터를 껐다. 14년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이었다. 평소에는 장부를 켜둔 채로 퇴근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변호사 선임 권한이 있습니다. 묵비권도 있고요.”
“알고 있습니다.”
자이드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목에 감겼다. 수갑. 14년간 서류를 만지고 바코드를 스캔하고 장부를 채우던 손이었다.
끌려나가는 길에 지하 현장의 입구를 지나갔다. C-3 구역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수사관들이 철문을 열고 내부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자물쇠는 이미 잘려 나갔을 것이다. 900점의 유물과 15kg짜리 목재 상자가 빛을 보고 있었다.
자이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카라즈 특별수사국 취조실. 오후 2시.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허브-09의 사무실과 똑같은 종류의 형광등이었다. 자이드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 형광등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을지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려다가, 처음으로 그 계산을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수사관이 들어왔다. 한 명은 아까 그 40대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30대 초반의 여자였다. 여자 수사관이 탁자 위에 서류 뭉치를 올렸다. 자이드의 장부 사본이었다. 그가 14년간 작성한 모든 입고•출고 기록.
“자이드 씨, 당신은 이 데이터를 왜 보냈습니까.”
남자 수사관이 물었다. 자이드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장부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자신의 서명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내가 멈춰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누굽니까.”
“하산. 세관 검사관이었습니다.”
여자 수사관이 펜을 멈추고 자이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짧게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자이드는 그것을 연민이라고 판단했다. 혹은 연민에 가까운 무엇. 14년간 무표정을 유지하며 타인의 감정을 읽지 않으려 애써온 그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당신의 협조로 관료의 도주 경로를 확보했습니다. 곧 체포될 겁니다. 또한 제네바로 향하던 컨테이너 KGLU-7702-845는 이탈리아 해상에서 회항 조치되었습니다. C-3 구역에서 발견된 유물 915점은 국립 박물관의 소장 목록과 대조 중입니다. 하지만.”
여자 수사관이 말을 멈추고 서류 한 장을 자이드 앞으로 밀었다. 그가 조작한 통관 서류 12건의 목록이었다. 각 서류의 하단에는 자이드의 서명이 있었다.
“당신의 혐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 유물 밀매 공모 혐의는 최대 징역 15년, 문서 위조는 최대 7년입니다. 두 혐의가 합산되면 당신은 오랫동안 감옥에 있게 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자이드는 서류를 다시 탁자 위로 밀어 돌려보냈다.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데이터를 보낸 건, 내가 무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하산이 믿은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취조실에 정적이 흘렀다. 여자 수사관이 펜을 다시 쥐고 무언가를 적었다. 남자 수사관은 자이드의 눈을 응시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움직임에 담긴 의미를 자이드는 해석하지 않기로 했다. 해석은 숫자가 아니었다.
3주 후. 카라즈 중앙 구치소. 접견실.
아내가 유리 너머에 앉았다. 그녀의 눈은 붉었지만 울고 있지는 않았다. 자이드는 유리 앞에 앉아 수화기를 들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손이 보였다.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움켜잡은 것은 수화기뿐이었다.
“몸은 괜찮아요.”
“응. 여기 밥은 먹을 만해.”
자이드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왜 혼자 그런 걸… 나는 아무것도 몰랐잖아요.”
“혼자가 아니었어. 그걸 마지막에야 알았을 뿐이야.”
“누구요.”
“하산이라는 사람. 나는 그 사람 얼굴도 몰라. 목소리만 알지.”
아내가 수화기를 더 세게 쥐었다. 그녀의 눈에서 비로소 한 줄기의 물기가 흘러내렸다. 자이드는 유리 너머로 그것을 보았다. 유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유리 너머의 그녀는 차갑지 않았다.
“서재 책장 뒤에서 USB를 찾았어요. 당신이 숨겨둔 거.”
“그건 네가 결정해. 버리든, 보관하든, 아니면… 세상에 던지든.”
“이미 던져졌잖아요. 당신이 던졌잖아.”
자이드는 처음으로, 아주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띠웠다. 14년 만에 처음 짓는, 계산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 웃음을 본 아내의 손가락 마디가 조금 풀렸다.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자이드는 그 떨림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무언가의 잔향을 느꼈다. 숫자가 아니었다. 측정할 수 없고, 바코드로 분류할 수 없으며, 장부에 기록할 수 없는 무언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모르겠어. 몇 년일 수도 있고.”
“기다릴게요.”
접견 시간이 끝났다. 교도관이 자이드를 일으켰다. 그는 유리 너머로 아내를 마지막으로 한 번 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어 무언가 말했지만, 유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말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14년간 그가 잃어버렸던 말일 것이다.
3년 후. 카라즈 국립 교도소. 오전 7시 43분.
자이드는 눈을 떴다. 3년째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허브-09의 셔터가 올라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셔터도, 컨베이어 벨트도, 산업용 에어컨의 굉음도 없었다. 대신 철문과 콘크리트 벽과 천장의 형광등이 있었다. 형광등은 여전히 깜빡였다. 그는 이제 그 깜빡임을 세지 않았다.
교도소 작업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자이드는 작업장의 재고 관리 담당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허브-09에서와 정확히 같았다. 입고된 물품의 바코드를 스캔하고, 무게를 측정하고, 수량을 장부에 기록하는 것. 다만 그 물품들은 유물이 아니라 교도소 급식용 식자재와 위생용품이었다.
그는 장부를 열었다. 어제 입고된 밀가루 200kg. 오늘 소비된 세제 45리터. 숫자를 입력했다. 장부는 완벽했다. 그는 이제 장부를 완벽하게 유지하지만, 더 이상 장부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작업을 마치고 독방으로 돌아오자, 편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발신인은 카라즈 국립 박물관이었다. 그는 편지를 뜯었다.
‘자이드 귀하. 귀하의 제보로 회수된 유물 중 도자기 300점과 점토판 600점이 복원을 마쳐 오는 4월 15일부터 국립 박물관 상설 전시실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당신의 용기 있는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자이드는 편지를 접어 침상 아래 서랍에 넣었다. 거기에는 이미 여러 통의 편지가 쌓여 있었다. 아내의 편지. 그리고 하산의 편지 사본. 원본은 3년 전 불태웠지만, 아내가 USB에서 찾아 복사한 사본이었다.
그날 밤, 자이드는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그는 계산하지 않았다. 대신 내일 아내의 면회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카라즈의 박물관에 다시 불이 켜졌다는 이야기. 유리병들이 더 이상 지하 컨테이너에 갇혀 있지 않고 전시대 위에서 빛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더 이상 밤에 잠들기까지 1시간 이상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
눈을 감았다. 잠들기까지 15분이 걸렸다. 14년 전과 같은 시간이었다.
6개월 후. 출소일.
교도소 정문이 열렸다. 자이드는 보따리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보따리 안에는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아내의 편지 묶음, 그리고 하산의 편지 사본이 들어 있었다.
정문 밖에는 아내가 서 있었다. 그녀는 3년 6개월 전보다 조금 야위었지만, 눈빛은 그대로였다. 그녀가 손을 들었다. 자이드는 걸어가서 그 손을 잡았다. 14년 만에 처음으로, 숫자가 아닌 온도를 느끼며.
“집에 가요.”
“응.”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박물관에 들를까요. 당신이 구한 유물들, 보고 싶지 않아요.”
자이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카라즈의 거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 거리 끝에 국립 박물관이 있었다. 4년 전 그가 매일 지나치며 ‘어차피 돈도 안 되는 걸 왜 전시하나’라고 생각했던 그 건물이었다.
“그래. 가보자.”
박물관은 변해 있었다. 외벽의 금이 간 기둥은 보수되었고, 주차장에는 관광버스 2대가 서 있었다. 매표소에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자이드는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상설 전시실. 유리 진열장 안에 소아시아 도자기 300점이 빛을 받고 있었다. 점토판 600점은 서랍형 전시대에 보관되어 관람객들이 하나씩 열어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자이드는 전시실 한가운데 서서 그 유물들을 바라보았다. 바코드도 없고, 코드 9-0A도 없고, ‘반품 대기’ 라벨도 없는 유물들이었다. 그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원래의 모습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가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전시실 입구의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전시실의 유물들은 3년 전, 내부 제보자의 용기 있는 결정으로 세상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제보자의 이름은 익명으로 남기기로 했으나, 우리는 그 결정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자이드는 안내판 앞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내가 다가와 그의 팔짱을 끼었다.
“당신 이름은 없네요.”
“그걸로 됐어.”
그는 안내판에서 시선을 떼고 전시실을 천천히 걸었다. 유리 진열장 너머로 4년 전 자신이 직접 포장하고 직접 장부에 올렸던 유리병 하나가 보였다. 그 병은 이제 깨지지 않은 채로, 적절한 습도와 온도 속에서, 세상의 빛을 받고 있었다.
에필로그: 장부 너머의 숫자
일주일 후.
자이드는 새로운 직장에 출근했다. 카라즈 국립 박물관의 물류 관리 계약직이었다. 급여는 K-Global Logistics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30분. 계단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의 첫 업무는 유럽에서 반환된 유물들의 입고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바코드 스캐너를 들고 유물 하나하나를 등록했다. 수메르 인장 400점. 청동 조각상 12점. 점토판 600점. 모두 그가 4년 전, 허브-09의 지하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것들이었다.
점심시간. 그는 박물관 구내식당에서 닭고기와 쌀밥을 먹었다. 식당 창밖으로 전시실이 보였다. 관람객들이 유리 진열장 앞에 서서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보냈다.
‘나 이제 여기서 일해.’
답장이 3분 만에 왔다.
‘당신 표정이 달라졌어요. 사진 속에서.’
자이드는 자신의 사진을 확대해서 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그 얼굴에는 14년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미소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서툰, 하지만 분명히 미소라고 불러야 할 무엇인가가.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오후 업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유물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는 바코드를 스캔하고, 무게를 측정하고, 보존 온도를 기록했다. 모든 숫자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긋남도, 균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 숫자는 유물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유물을 지키는 데 쓰이고 있었다.
퇴근 시간. 그는 박물관 정문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건물의 외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카라즈의 유산, 카라즈의 미래.’
자이드는 현수막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었다고. 14년 늦었지만, 마침내 도착했다고.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담배를 끊은 지 1년째였다. 대신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깊이 들이마셨다. 바람은 뜨거웠지만, 폐부를 채우는 공기는 가볍다.
집으로 향하는 길. 7km. 내비게이션에는 새로운 경로가 입력되어 있었다. 국립 박물관을 출발해 카라즈의 구도심을 가로질러, 그가 14년간 살아온 집으로 이어지는 길. 이 길은 더 이상 허브-09를 지나치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양고기 케밥과 바스마티 쌀밥. 맥주 한 캔. 평소와 같은 저녁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자이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등록한 유물 중에, 내가 예전에 직접 포장했던 게 있었어.”
아내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어땠는데요.”
“이상하더라. 그때는 그냥 무게랑 부피만 봤는데… 오늘은 좀 다르게 보였어.”
“다르게요.”
“응.”
자이드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덧붙였다.
“그게 아름답더라고.”
아내의 눈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자이드는 그 웃음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올렸다. 이제는 조금 더 자연스러워진, 미소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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