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자 스페인편 #001] 백색의 늪 — 2화: 백색의 장벽

2화: 백색의 장벽

경찰서를 나선 것은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갈리시아의 밤공기는 라울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그는 차 문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손가락은 아직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하실에서 미겔 신부의 손목을 비틀던 그 순간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법원 행정직 시절에도, 민간 조사원으로 전업한 이후에도 그는 한 번도 직접 개입한 적이 없었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필요하면 증거를 건네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는 그 경계를 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선택은 충동에 가까웠다. 그러나 에레나의 목에 걸린 그 손가락들의 긴장을 기억할 때마다, 그는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임을 안다.

차량은 산타 크루스 데 리베이라를 떠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국도를 달렸다. 야간 주행 중에도 그는 머릿속에서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있었다.

미겔 신부는 체포되었다. 그러나 라울은 그가 오래도록 감옥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법원 서류 위조 건으로 해고되기 전, 그는 법정 안에서 어떤 변호사들이 증거를 유리하게 재단하는지 수없이 목격했다. 미겔은 그런 변호사들을 여럿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전에도 비슷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모면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겔의 네트워크는 교단 경계 밖으로도 뻗어 있었다. 지역 정치권, 부동산 개발업자들, 그리고 아마도 경찰 내부에도 그의 연줄이 닿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휴대전화에는 발카르셀 부부의 부재중 전화가 5통이나 쌓여 있었다. 그는 그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 내용을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오전, 그는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카를로스 발카르셀의 목소리는 차가운 금속처럼 날카로웠다.

“라울 씨, 당신은 계약 조건을 위반했습니다. 우리와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들었소.”

“그렇습니다.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그 선택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 보셨나요? 이 모든 일이 공개되면 회사 주가가 흔들리고, 제 지인들의 신뢰도…”

“발카르셀 씨.” 라울이 그의 말을 끊었다. “당신의 딸은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전화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카를로스는 아마도 그 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그의 세계에서 명예 훼손과 주가 하락은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피해였지만, 딸의 죽음 직전 상태는 너무 추상적이고 불편한 주제였다.

“에레나는 우리의 딸입니다.” 그가 마침내 말했다. “그녀가 겪은 일은 그녀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더 나은 길을 제시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라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창문을 열고 갈리시아의 눅눅한 바람을 들이마셨다. 건물 아래로는 비에 젖은 포장도로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에레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증언을 철회하던 그녀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녀는 아직 그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재킷을 집어 들고 다시 차량으로 향했다.

산타 크루스 데 리베이라에 재도착했을 때, 마을의 분위기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경찰의 급습 소식은 이미 모든 가정에 전파된 뒤였다. ‘엘 카미노’ 식당의 주인은 이번에는 라울을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당신이 그 신고자군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운터 너머로 그녀의 손은 컵을 닦으며 멈추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예요. 어떤 이들은 영웅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쓸데없는 일을 벌였다고 하죠.”

“평가가 엇갈리네요.”

“이 마을은 원래 평화로웠거든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적어도 겉보기에는요.”

라울은 커피를 주문하며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에레나 발카르셀은 어디에 있죠?”

“경찰 조사가 끝난 뒤 보호 시설로 옮겨졌어요. 인근 도시에 있는 곳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녀가 잠시 멈추었다. “그녀가 다시 이 마을에 나타났다는 소문도 있어요.”

“다시? 왜?”

“글쎄요. 그녀는 교단을 떠나고 싶지 않은가 봐요. 경찰 조사에서도 자발적으로 머물렀다고 진술했다고 해요. 경찰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시설에 머물도록 권고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는 말도 있죠.”

라울은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손끝이 컵의 열기를 감지했다. 그는 에레나가 여전히 교주의 심리적 통제 아래 놓여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희생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니,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한다는 것은 그녀가 지난 1년 동안 의지했던 유일한 안식처가 거짓이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의 정체성 전체를 붕괴시킬 일이었다.

식당을 나서자 하늘은 다시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저택 방향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는 주변의 침묵을 느꼈다. 농기구 소리, 대화 소리, 심지어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을 전체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저택은 경찰 봉인 테이프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옆쪽의 작은 별채 창문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별채로 다가갔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내부에서 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레나 씨, 당신은 위험한 상황에 있었어요. 그 남자는 당신을 학대했고…”

“그분이 저를 구원했어요.” 에레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그분은 제게 진정한 평화를 가르쳐 주셨어요. 제 부모님이 저에게 준 것은 오직 압박과 통제뿐이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겪은 일들은…”

“제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들이에요.”

라울은 문을 두드렸다. 내부의 대화가 중단되었다. 잠시 후, 사회복지사 배지를 단 젊은 여성이 문을 열었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가 서려 있었다.

“누구시죠?”

“라울 가르시아입니다. 에레나 씨의 부모님이 고용한 조사원이었어요.”

사회복지사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훑었다. 그러나 뒤에서 에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여보내 주세요. 아는 사람이에요.”

방은 작고 초라했다. 침대 하나와 나무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에레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창백했고, 눈가에는 검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흩어져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당신은 여기 왜 온 거죠?” 그녀의 목소리는 무표정했다.

“당신이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나는 괜찮아요.”

그러나 그녀가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오른손은 무의식적으로 왼쪽 팔뚝을 감싸 쥐고 있었다. 라울은 그 행동을 눈치챘다. 그것은 방어 자세였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움직임.

그는 그녀 앞에 앉았다. “당신은 증언을 철회했어요.”

“그래요.”

“왜?”

에레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지만, 목소리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듯했다.

“그 증언은 사실이 아니었어요.”

“나는 당신의 눈에서 공포를 봤어요. 당신은 그 남자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에레나가 갑자기 일어섰다. 그녀의 움직임은 거칠었고, 의자가 바닥에 스치며 소리를 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낀 곳이었어요. 내 부모님은 항상 나에게 완벽해지라고 요구했어요.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그리고 적당한 때에 적당한 남자와 결혼해서 적당한 아내가 되라고. 하지만 나는… 나는 그럴 수 없었어요. 나는 항상 부족했어요.”

그녀의 말이 거칠어질수록, 그녀의 호흡도 가빠졌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감쌌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그분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어요. 내가 실수해도, 내가 부족해도,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말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그게 진짜였어요. 하지만 점점…”

“점점?”

“점점 그분의 요구가 커졌어요. 작은 것들부터 시작했죠. 식사 시간, 기도 시간, 누구와 말할 것인지. 그리고 점차… 그분은 내 몸을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영적 정화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나는 그분이 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떠날 수 없었어요. 떠나면 나는 다시 그 공허함으로 돌아갈 것이 두려웠어요.”

라울은 그녀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녀는 자신의 팔을 더욱 세게 감쌌다.

“나는 당신이 이겨낼 수 있다고 믿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으니까. 다만 당신이 증언을 철회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건 생존을 위한 반사작동 같은 거예요. 그걸로 충분해요.”

에레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희망과 같은 것은 없었다.

“당신은 그분을 보호하려는 거예요? 아니면 나를?”

“나는 아무도 보호하지 않아요. 나는 그냥 기록할 뿐이에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당신의 몫이에요. 나는 그걸 기록할 뿐.”

그의 말은 냉철했다. 그러나 그 냉철함이 오히려 에레나에게는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거짓된 위로보다는 차라리 사실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나는 그에게 돌아갈 거예요. 그가 감옥에 가더라도, 나는 그의 가르침을 따를 거예요. 왜냐하면 그게 나를 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라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 복도에서 그는 사회복지사와 마주쳤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녀가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라울이 말했다.

“알고 있어요. 우리는 그녀를 설득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쉽지 않죠.”

사회복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자들은 종종 가해자와의 유대감을 끊지 못해요. 그것은 생존을 위한 심리적 메커니즘이에요. 트라우마 결합이라고 하죠. 그녀는 그를 떠나는 것이 죽음과 같다고 느껴요.”

라울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배갑을 찾아내 한 개를 뺐다. 복도에서의 흡연이 금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라이터를 긁었다. 그는 깊이 들이마시고 연기를 내뿜었다.

“그녀에게 시간을 주세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으세요.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녀는 다른 선택지를 찾을 기회가 있어요.”

사회복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자신 없어 보였다.

라울은 식당으로 돌아와 노인들과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경찰의 급습이 두려움의 댐을 허문 것이다.

한 노인이 그에게 다가와 앉았다. 그는 여든을 훌쩍 넘긴 것으로 보였고, 등이 심하게 굽어 있었다.

“당신이 그 교단을 고발한 사람이지?” “네.” 노인은 주머니에서 낡은 담배 쌈지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의 손은 떨렸지만, 담배를 무는 동작은 수십 년의 내공이 느껴졌다.

“그 교단이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들은 너무 완벽했거든. 너무 정돈되어 있었고, 너무 친절했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항상 제일 위험한 법이야.”

“그 교단에 대해 더 아는 것이 있나요?”

“그들은 이 마을의 귀족 저택을 샀어. 그 저택은 50년 동안 비어 있었는데, 갑자기 외지인이 나타나서 현금으로 사들였지. 처음에는 그냥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인이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어. 그리고 젊은 여성들이 그곳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 처음에는 몇 명이었지만, 점점 많아졌어. 그들 모두 도시에서 온 여성들이었고, 가족 문제나 정신적 압박을 겪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런데?”

“작년에 한 여성이 밤에 도망쳐 나왔어. 그녀는 마을 교회로 와서 도움을 요청했지. 하지만 교회 신부님은 그녀를 다시 저택으로 돌려보냈어. 그 신부님도 그 교단과 연루되어 있었던 거야.”

라울은 메모를 중단하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신부님이요?”

“그래. 이 마을의 성직자는 이미 그들에게 장악되어 있었어. 미겔이라는 자가 이 지역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지.”

라울은 이 정보의 무게를 가늠했다. 미겔 신부는 단순히 한 교단의 지도자가 아니라, 지역의 종교적 권위를 자신의 세력으로 흡수한 인물이었다.

“그 여성은 그 후 어떻게 됐나요?”

노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다시 저택으로 돌아갔어. 그 후로 그녀를 본 사람은 없어.”

라울은 더 많은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그의 떨리는 손은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신호였다.

식당을 나서며 라울은 자신이 이 사건의 표면만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겔 신부는 체포되었지만, 그의 네트워크는 여전히 기능하고 있었다. 교회, 지방 행정, 아마도 사법부까지. 그는 혼자였다. 민간 조사원일 뿐, 어떤 조직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차량으로 걸어가면서 그는 주머니에서 빈 담배갑을 꺼냈다. 그는 그것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며칠 후, 라울은 검찰청에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제출했다. 미겔 신부의 과거 범죄 기록, 교단의 재정 거래 내역, 그리고 피해자들의 증언이 담긴 파일이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정식 수사하기로 결정했고, 미겔 신부는 구속 상태에서 기소되었다.

그러나 라울은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불안을 느꼈다. 그는 미겔의 변호인단이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법정에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들이 스스로 증언대에 서야 했다. 그리고 에레나는 여전히 증언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보호 시설로 향했다. 이번에는 사회복지사가 그를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맞이했다.

“에레나는 아직도 교단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녀에게 다른 보호 시설로 이전할 것을 권고했지만, 그녀는 거부했어요.”

“그녀와 대화할 수 있을까요?”

“시도해 보세요. 하지만 효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요.”

상담실에 들어섰을 때, 에레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등으로 라울을 향하고 있었고, 창밖의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또 왔군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검찰이 증언을 요청하고 있어요. 당신이 법정에 서면, 미겔을 처벌할 수 있어요.”

에레나는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당신은 내가 그를 고발하면, 내가 안전해질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가 감옥에 가면, 그는 당신을 해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는 내 마음속에 살아 있어요.”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가 내게 심어준 두려움과 죄책감은 여전히 여기 있어요. 그가 감옥에 가면, 나는 그 두려움과 홀로 남게 될 거예요. 그것이 더 무서워요.”

라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그는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거짓된 희망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기록할 거예요.” 그가 마침내 말했다. “그게 내 일이니까.”

에레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당신은 정말 냉철한 사람이네요.”

“그렇게 살아남았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라울은 시설을 나서며, 자신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관찰자일 뿐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기록이 나중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미겔 신부는 법정에 섰고, 그의 변호인은 피해자들의 증언이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교단에 머물렀으며, 어떠한 강제도 없었다”는 것이 변호 측의 골자였다.

검찰은 라울이 제출한 증거들을 하나씩 제시했다. 피해자들의 증언, 재정 거래 내역, 그리고 라울이 촬영한 사진들과 영상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증인인 에레나는 법정에 서지 않았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증언을 거부했다.

재판은 미겔 신부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그는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는 무죄 또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었다. 그는 짧은 형기를 선고받았고, 몇 년 안에 가석방될 가능성이 높았다.

라울은 법정의 마지막 날, 뒷줄에 앉아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미겔 신부는 판결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법정을 떠나는 라울의 뒷모습을 향해 있었다.

그는 다시 산타 크루스 데 리베이라로 향했다. 이번에는 아무 계획도 없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그 장소를 보고 싶었다.

저택은 여전히 봉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별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저택 주변을 걸으며, 지난 몇 주간의 기억들을 되새겼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우산을 펴지 않았다.

그가 차로 돌아가려 할 때, 그는 저택 뒤편의 폐허가 된 정원에서 한 여성을 발견했다. 그녀는 흰색 옷을 입고 있었고, 땅에 주저앉아 깨진 십자가 조각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에레나였다.

라울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십자가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멀었다. 그곳에는 더 이상 두려움도 희망도 없었다. 그저 텅 빈 평온함만이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꺼내 그 장면을 한 장 담았다. 셔터 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에레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울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 자리에 서서 비를 맞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몇 분이 지났다. 아니, 몇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마침내 차량으로 돌아갔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실내에 가득 찼다. 그는 앞유리를 통해 정원의 에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시동을 걸었다. 차량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사경 속에서 에레나의 모습은 점점 작아졌다. 그녀는 결국 돌아보지 않았다.

도로는 다시 구불구불하게 펼쳐져 있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그는 라디오를 켰지만, 아무 소리도 듣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핸들을 잡고 앞만 바라보며 운전했다.

그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비는 그치고 있었다. 그는 사무실에 도착해 책상에 앉았다. 그는 카메라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내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가 찍은 마지막 사진이 화면에 떠올랐다. 비 속에서 십자가 조각을 쥔 에레나의 모습.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그 평온함은 죽은 자의 평온함과 닮아 있었다.

그는 그 사진을 ‘증거’ 폴더에 저장했다. 그리고 다른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발카르셀 부부에게 보낼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사실들만을 적어 내려갔다. 발견된 내용, 수집된 증거, 현재 상황. 그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 단지 사실을 기록했을 뿐이다.

보고서를 출력한 후, 그는 그것을 봉투에 넣고 우편함에 넣었다. 그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이 비에 젖은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대답했고, 그는 평소처럼 대답했다.

전화를 끊은 후, 그는 다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에레나의 사진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그 사진을 닫고, 컴퓨터를 껐다.

그는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단지 기록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기록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그는 그 생각을 접었다. 그는 일어나서 불을 끄고, 사무실 문을 잠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그는 자신의 발소리만을 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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