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의 그림자 캐나다편 #001] 브리-엑스(Bre-X) – 1화: 앨버타의 페니 스톡

1화: 앨버타의 페니 스톡

1993년, 캐나다 앨버타주 칼가리.

겨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3월인데도 발밑의 눈은 질퍽하게 녹지 않고, 골목마다 쌓인 그을음 섞인 얼음은 도시 전체를 우울한 회색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칼가리 타워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낡은 상업용 건물 지하. ‘브리-엑스 미네랄스(Bre-X Minerals Ltd.)’라는 간판은 걸려 있었지만, 누군가 붓으로 휘갈긴 듯 초라했다.

사무실 안은 좁고 어두웠다. 벽지는 군데군데 들떠 있었고, 천장의 형광등 하나는 깜빡이며 신경질적으로 빛났다. 책상 위에는 텅 빈 커피잔과 함께 ‘캐나다 벤처 거래소(CDNX)’의 어제자 주가가 찍힌 팩스 용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주당 7센트.

데이비드 월시(David Walsh)는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댄 채, 천장의 깜빡이는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때 캄비안 광산(Cambrian Mines)에서 성공을 맛본 광산 기술자였지만, 지금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실패한 사업가에 불과했다.

“데이브.”

문이 열리며 남자가 들어왔다. 존 펠더(John Felderhof).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지질학자로, 데이비드와 마찬가지로 한물간 광산 전문가였다. 그의 눈에는 특유의 냉소적인 빛이 스쳐 있었다.

“마이클이 내일 도착한대.”

데이비드는 고개를 돌려 존을 바라보았다.

“마이클? 드 구즈만?”

“그래. 인도네시아에서 굴러다니던 그 천재 맞아.”

데이비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지하라서 보이는 건 사람들의 다리뿐이었다. 바짝 마른 청바지에 낡은 구두. 그들이 바로 칼가리의 또 다른 페니 스톡(Penny Stock) 잡부들이었다.

“우리한테 돈이 없어, 존.”

“있어.”

존이 책상 위에 얇은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여기 보나짜(Bonanza) 광산 자료야. 인도네시아 동칼리만탄, 부상(Busang) 강 근처야. 마이클이 몇 년 전에 이미 정찰은 해뒀어.”

데이비드는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낯선 지명. 낯선 지질 보고서. 하지만 그 서류의 마지막 장에 적힌 문구 하나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표면 채취 샘플에서 0.5g/t(톤당 0.5그램) 이상의 금 함유 가능성 확인. 심부 시추 시 상업적 매장 가능성 높음.”*

데이비드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걸 손에 쥔 거야.”

“그래서 마이클이 온다.”

존이 담담하게 말했다.

“다만, 데이브. 우리에겐 시추 자금이 없어. 당장 1만 달러도 없어.”

마이클 드 구즈만(Michael de Guzman)은 필리핀 마닐라의 호텔 방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방 안은 에어컨이 세게 나와도 후덥지근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마닐라 만의 야경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34세.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파푸아뉴기니를 떠돌며 경험을 쌓은 천재 지질학자였다. 모두가 그를 ‘야생의 탐사자’라고 불렀지만, 정작 그는 지질학보다는 인간의 탐욕에 더 정통했다.

그는 책상 위에 펼쳐진 인도네시아 지도를 응시했다.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1,200km. 보르네오 섬 깊숙한 곳에 위치한 부상. 정글은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터보트와 헬리콥터, 그리고 현지인들의 안내가 필요했다.

“부상……”

마이클은 낮게 중얼거렸다. 1980년대 후반, 뉴몬트(Newmont) 광산의 탐사팀이 이미 이 지역을 스캔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상업적 가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철수했다.

그런데 마이클은 달랐다. 그는 뉴몬트가 간과한 지질학적 단층선에 주목했다. 그리고 몇 년 전, 혼자서 부상에 잠입해 채취한 암석 샘플은 기존 데이터보다 두 배 이상의 금 함량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그는 잠시 멈추고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이 샘플이 정말 그곳에서 채취한 게 맞느냐는 거지.”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정글은 깊고, 증거는 흐려진다. 그것이 탐험의 묘미였다.

다음 날, 마이클은 칼가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내에서는 주변 승객들의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내내 부상의 지질도를 머릿속에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캐나다 벤처 거래소. 칼가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에 위치한 이 거래소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벤처 기업들의 주식이 오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활발하다’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성공한 기업들 한정이었다.

브리-엑스의 주가는 여전히 1주당 10센트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거절당했고, 사무실 임대료도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캘거리 타워의 고급 레스토랑.

데이비드는 존과 마이클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보며 속으로는 한숨이 나왔다. 코스 요리 한 끼에 직원 한 명의 주급이 나가니까.

“마이클, 네가 직접 확인한 게 맞아?”

데이비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이지.”

마이클은 여유 있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뉴몬트는 부상을 포기했지만, 그들은 얕은 곳만 파고들었어. 내가 주목한 건 단층대 하부야. 거긴 달라.”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건?”

“시추. 10개 홀 정도만 뚫어도 상업성은 판명되지.”

존이 끼어들었다.

“문제는 돈이야. 한 홀에 10만 달러는 우스워. 적어도 100만 달러는 필요해.”

마이클이 입을 열었다.

“데이브, 페니 스톡 시장은 기억하지. 중요한 건 지질학이 아니라, 사람들이 뭘 믿느냐야.”

데이비드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네 말은……”

“우리가 먼저 데이터를 발표하는 거야. 충분히 믿을 만한 수치로. 그러면 시장이 반응하지.”

“허위 데이터라도?”

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이클은 어깨를 으쓱였다.

“증명할 수 없는 미래를 내다본 것뿐이야. 지질학은 확률의 학문이잖아.”

그날 밤, 데이비드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잘될 거야.”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남편의 실패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1994년 봄, 인도네시아 부상.

헬리콥터가 정글 위로 떠 있는 동안, 마이클은 창밖을 내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저기 보이는 강 굽이. 그 근처야.”

시추팀은 현지 인력 50여 명과 함께 진을 쳤다. 모기 떼와 진흙, 끝없는 습기. 기계는 자주 고장 났고, 인부들은 말라리아에 걸려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마이클은 집요했다. 그는 직접 시추 코어 샘플을 챙기고, 라벨을 붙이고, 분석을 의뢰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시추공. 깊이 40미터. 코어 샘플에서 눈으로도 보일 정도의 금 입자가 확인되었다.

“톤당 7.5그램.”

기록관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마이클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다음 시추공을 지시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점점 더 높은 수치가 나왔다. 최대 톤당 18그램.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광산에서나 나올 법한 등급이었다.

캘거리로 보고가 전달되자, 데이비드는 숨이 멎을 듯했다.

“이게 말이 돼?”

“마이클이 보낸 데이터야.”

존이 문서를 건넸다.

“그는 여기서 더 많은 시추를 원해. 최소 20개 홀 이상.”

“우리한테 돈이 어디 있어?”

“없지. 하지만 이 데이터면 충분히 투자자를 끌어올 수 있어.”

데이비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1995년 초, 브리-엑스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부상 광산, 세계 최대 금광으로 평가. 시추 결과 톤당 최대 18그램의 금 함량 확인. 매장량 최소 1,000톤 이상 추정.”

캐나다 벤처 거래소는 발칵 뒤집혔다.

주당 15센트였던 브리-엑스의 주가는 단 며칠 만에 1달러를 돌파했다. 칼가리 전역의 주식 중개인들은 브리-엑스에 전화를 걸었다.

“더 시추할 의향 있습니까?”
“우리 펀드에 투자 좀 해주십시오.”
“주식 좀 배정해 주십시오.”

존은 능숙하게 전화를 받으며 시간을 끌었다.

“우리는 아직 시추 중입니다.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데이비드는 그동안 몰래 자금을 끌어모았다. 은행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던 그가 이제는 거대 투자자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캐나다 최대 연기금 중 하나도 브리-엑스에 투자했다.

1996년, 브리-엑스의 주가는 200달러를 돌파했다. 시가총액 60억 캐나다 달러. 그야말로 초대형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데이터는 조작이었다.

마이클 드 구즈만은 깊은 정글에서 직접 시추 코어 샘플을 손으로 개조했다. 다른 지역의 금이 섞인 암석을 부상 시료에 섞어 넣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지질학이라 부를 수 없는 속임수였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정글 깊은 곳에, 그리고 캐나다 증시 한복판에 거대한 거짓말의 제국을 세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제국일수록 그 밑바닥은 텅 비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그 틈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