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달콤한 미끼
런던의 10월은 안개와 비의 계절이다. 블룸즈베리에 위치한 UCL(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캠퍼스는 고딕 양식의 석조 건물들 사이로 젖은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클로에는 오전 9시 강의를 앞두고 항상 같은 루틴을 반복한다. 챗가의 싱글룸에서 일어나,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를 타 마시고, H&M에서 산 기본 블라우스에 ZARA의 트렌치코트를 걸친다. 그녀의 모든 옷은 빠르게 마모된다. 소매 끝은 실밥이 풀리고, 코트의 단추는 흔들거린다.
UCL 경제학과 2학년인 클로에는 작년까지 이 사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영국 중산층 가정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아버지는 작은 회계 법인을 운영하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다. 브리스톨 외곽의 조용한 마을에서 자란 그녀는 늘 ‘머리로 승부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왔다.
하지만 런던은 달랐다.
특히 그녀가 속한 경제학과는 더욱 그랬다.
“클로에, 오늘 오후에 메이페어에서 칵테일 파티가 있어. 우리 아버지 투자자들 모임인데, 인턴십 기회도 있을 거야.”
말을 건 사람은 같은 과의 플로렌스다. 그녀는 항상 완벽했다. 손톱 하나까지 관리된 모습에, 입고 있는 것은 세일 중에도 클로에가 감히 가격을 확인할 수 없는 브랜드들이었다. 플로렌스의 아버지는 헤지펀드 매니저다.
“고마워, 플로렌스. 그런데 오늘 프로젝트 마감이라…”
“또 핑계야? 클로에, 너는 항상 도서관에만 있어. 네 점수는 이미 최상위권이잖아. 가끔은 네트워킹도 중요해.”
플로렌스의 말은 친절했지만, 그 속에는 또렷한 계층의 벽이 있었다. ‘네트워킹’이라는 단어는 플로렌스에게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안전망이었지만, 클로에에게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임시 다리 같은 것이었다.
점심시간, 학생 식당에서 클로에는 도시락을 꺼냈다. 어머니가 싸준 샌드위치다. 옆 테이블에서는 같은 과의 마커스와 그의 친구들이 포장된 프레타 포장지를 풀며 졸업 후 아버지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빠가 작년에 런던 시티에 새 사무실을 냈거든. 나는 일단 쭉 가서 배워야지.”
“부럽다. 나는 컨설팅 회사 서류 준비 중인데, 경쟁이 치열해 죽겠어.”
클로에는 조용히 샌드위치를 씹었다. 그녀는 이 대화에 끼어들 수 없다. 그녀에게 ‘아버지 회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자신의 성적, 자신의 능력뿐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 이상한 감정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망과 분노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박탈감’이었다.
그들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클로에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었다. 플로렌스가 방학마다 타는 스키 여행, 마커스가 당연하게 여기는 미술품 수집가 아버지의 컬렉션, 강의 중간에 나오는 ‘내가 어릴 때 살던 체어시’라는 말 한마디.
클로에는 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공부해 얻은 성적으로 그들과 같은 교실에 앉아 있지만, 그들의 세계관, 그들의 네트워크, 그들의 미래는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더 선명하게 깨닫고 있었다.
결국 클로에는 플로렌스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프로젝트 마감은 다음 주였지만, ‘기회’라는 단어에 끌렸다.
파티는 메이페어의 한 프라이빗 멤버스 클럽에서 열렸다. 클로에는 큰맘 먹고 세일 기간에 산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여성들은 하나같이 이번 시즌 최신 샤넬이나 생로랑을 입고 있었고, 그들의 귀걸이 하나하나에서 보석이 반짝였다. 클로에는 손가락으로 드레스 소매를 꼭 잡았다. 최소한 표가 나지 않도록.
“긴장하지 마, 다들 처음은 그래.”
플로렌스가 그녀의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클로에, UCL 경제학과 수석 환영이야. 앞으로 영국 경제를 이끌 사람이지.”
사람들은 그녀에게 관심 없는 듯한 미소를 보냈다. 나이 든 남성들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훑고는 플로렌스 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갔다. 여성들은 그녀의 드레스의 브랜드를 확인하는 눈빛을 보냈다.
클로에는 와인잔을 꼭 쥐었다. 이곳의 한 잔에 20파운드는 우습게 넘어갈 가격이었다. 바에는 ‘캄파리’부터 ‘도멘 페리뇽’까지, 그녀가 평생 마셔보지 못할 술들이 즐비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복도에서 두 명의 여성이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다.
“저 옷 좀 봐. ZARA지? 여기가 무슨 하이드 파크 벤치야?”
“플로렌스 참 착하지, 저런 아이를 데려오다니. 분명 장학금 받는 학생일 거야. 얼굴 보면 알지, 긴장한 티가 너무 나.”
클로에는 화장실 칸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메이크업은 최선을 다했지만, 손톱은 깨끗하지만 매니큐어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는 플로렌스처럼 전문 스타일리스트를 거친 웨이브가 아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SNS를 뒤적였다. 그녀의 피드에는 영국 명문 대학생들의 화려한 일상이 넘쳐났다. 몽펠리에에서의 크리스마스, 고등학교 졸업식 때 받은 까르띠에 시계, 주말마다 찾는 미슐랭 레스토랑.
클로에는 갑자기 자신의 생활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브리스톨의 작은 집에서 공부하며 자랐고, 가족 여행이라야 겨우 프랑스 남부 캠핑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런던의 중심, 절반은 이 세계에 속한 듯 속지 못한 채 서 있었다.
파티를 일찍 빠져나오던 그녀는 스마트폰에 뜬 광고를 보았다.
‘엘리트 소사이어티(Elite Society) – 상류층 전문 매칭 앱’
‘검증된 전문가와 학생들이 만나는 프리미엄 커뮤니티. 당신의 지적 가치를 인정받으세요.’
클로에는 잠시 멈추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이 앱이 자신에게 무언가 다른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며칠 후, 클로에는 ‘엘리트 소사이어티’ 앱에 가입했다. 가입 과정은 간단했다. 신분증, 대학 이메일, 그리고 몇 장의 사진. 그녀는 자신의 최근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한 장을 올렸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앱은 그녀에게 ‘슈가 대디(Sugar Daddy)’가 아닌 ‘멘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경제적 후원’ 대신 ‘장학금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모든 것이 포장되어 있었다. 고급스럽고, 지적으로, 그리고 위험할 정도로 달콤하게.
이틀 후, 그녀에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알렉스, 34세, 자산운용사, 런던 시티.
“클로에 씨, 당신의 프로필을 보았습니다. UCL 경제학과라니, 인상적이군요. 제가 당신의 논문 주제인 ‘행동경제학과 시장 실패’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식사 한 번 어떨까요?”
클로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메시지에는 다른 남성들의 접근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의 외모가 아닌 ‘지적 능력’에 집중하는 듯한 어조. 그건 그녀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었다.
만남은 메이페어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졌다. 클로에는 이곳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간판도 없이, 문 앞에는 단정한 차림의 직원이 서 있을 뿐이었다.
알렉스는 그녀보다 먼저 와 있었다. 그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완벽하게 다림질된 네이비 수트, 손목의 오메가 시계, 그리고 그의 미소는 마치 수년간 연습한 듯 자연스러웠다.
“클로에, 직접 보니 더 인상적이군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클로에는 악수하는 그의 손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이 약간 땀에 젖어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식사 내내 알렉스는 완벽했다. 그는 그녀의 논문 주제에 대해 질문하고, 케인스와 프리드먼의 이론을 비교하며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그녀가 말할 때 집중해서 듣는 법을 알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가끔 미소 지으며, 정확한 타이밍에 질문을 던졌다.
“당신 같은 학생이 어떻게 이런 깊이 있는 분석을 할 수 있죠?”
그의 칭찬은 그녀의 자존심을 정확히 찔렀다. 그것은 플로렌스처럼 무심코 던지는 칭찬이 아니라, 그녀의 노력과 재능을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클로에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브리스톨에서 올라온 이야기, 장학금 받으며 공부하는 어려움, 그리고 메이페어 파티에서 느꼈던 소외감까지.
알렉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 지었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클로에.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식 없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
그는 잠시 멈추었다.
“사실 나는 최근 사업 확장으로 스트레스가 많아요.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돈 이야기만 할 뿐. 당신과의 대화는 정말 신선해.”
클로에는 그 말에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녀에게 ‘당신은 특별하다’는 말로 들렸다.
두 번째 만남은 소호의 작은 갤러리에서 열렸다. 알렉스는 그녀에게 현대 미술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는 그림 한 점, 조각 하나에 담긴 작가의 의도와 시장 가치를 명확하게 풀어냈다.
“사실 나는 현대 미술 수집이 취미예요. 그런데 내 친구들은 그냥 투자 수단으로만 보더라고. 클로에는 어때? 이 작품, 어떤 느낌 들어?”
클로에는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이상해 보였는데, 당신 설명 듣고 나니까 내 삶의 어두운 부분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해요.”
알렉스는 그녀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다. 그것은 스킨십이라기보다는 격려에 가까운, 적절한 선을 지키는 터치였다.
“역시 당신은 달라. 감성도 있고, 지성도 있고.”
그들은 갤러리 맞은편의 차가운 와인 바에 앉았다. 알렉스는 와인을 따르며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클로에, 내가 당신의 후원자가 되고 싶어요.”
“…네?”
“당신은 재능이 있어요. 그런데 재능만으로는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거, 당신도 잘 알 거예요.”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에는 어떤 위험한 의도도 없어 보였다. 그저 한 비즈니스맨의 현실적인 판단처럼.
“당신이 원하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매달 2,000파운드를 지원해주고 싶어요. 물론 조건은 없어요. 우리는 멘토와 멘티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거죠. 가끔 이렇게 식사하고, 전시회 가고,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정도.”
클로에는 숨이 막혔다. 2,000파운드. 그녀의 한 달 생활비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그 돈이면 그녀는 더 이상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되고, ZARA에서 세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플로렌스처럼 당당하게 그 세계에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저인가요?”
알렉스는 웃었다. “나는 투자를 해요, 클로에. 부동산에도, 암호화폐에도, 그리고 사람에게도. 당신은 분명 성공할 사람이에요. 지금 당신을 도와주는 것이 결국 나에게도 좋은 인연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장기 투자죠.”
그의 말은 너무나 합리적이었다. 너무나 사업가다웠다. 거기에는 달콤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냉철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클로에는 그 계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들린 것은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확인뿐이었다.
“생각해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하지만 클로에,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아요.”
그가 건네는 명함에는 ‘알렉스 레인, Apex 자산운용 대표’라고 쓰여 있었다. 런던 시티의 번지수와 함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클로에는 그 주말에 알렉스에게 ‘수락’ 의사를 밝혔다.
일주일 후, 그녀의 해외 계좌에 2,000파운드가 입금되었다. 발신자는 카리브해의 페이퍼 컴퍼니였다. ‘Blue Horizon Holdings Ltd.’
클로에는 왜 해외 계좌인지, 왜 페이퍼 컴퍼니인지 의문을 가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의문을 애써 묻어버렸다. ‘창업자들은 다 그런 식으로 운용하지 않을까? 세금 문제일 거야.’
그녀는 처음으로 런던 최고급 백화점인 하로즈에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생애 첫 명품 코트를 샀다. 막스 마라의 베이지 색 롱 코트. 1,800파운드. 그녀는 코트를 입고 거울 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점원이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했을 때, 클로에는 처음으로 이 도시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또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법, 와인을 주문하는 법,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당당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알렉스는 그녀에게 이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다큐를 봐, 클로에. 성공한 사람들은 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성장해.”
클로에는 점점 더 알렉스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일상은 그가 없으면 무언가 허전했다. 그녀는 그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그의 칭찬에 기뻐하고, 그가 바쁘다는 이유로 약속을 연기할 때 실망했다.
그녀는 아직 이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멘토링도, 투자도, 심지어 로맨스도 아니었다. 그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중독’의 첫 단계였다.
그날 밤, 클로에는 알렉스의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의 전화 통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는 그녀가 자는 척하는 줄 몰랐다.
“…네, 이번 달 신입은 UCL 출신이에요. 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 학생이죠… 물론이죠, VIP 분들이 원하는 건 항상 최고급이니까.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관리하고 있어요.”
통화가 끝난 후, 알렉스는 뒷좌석의 클로에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좋은 꿈 꾸세요, 클로에. 당신의 진짜 인생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그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그동안 그녀가 보아왔던 부드러움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미로 속으로 쥐를 들여보내는 실험자의, 냉소적인 만족감에 가까웠다.
그러나 클로에는 그 미소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달콤한 꿈속에 잠들어 있었다. 하로즈의 코트, 고급 레스토랑의 와인, 그리고 그녀의 ‘멘토’가 약속한 화려한 미래.
그녀는 스스로 미끼를 삼켰다. 깨닫지 못한 채.
이제 그녀는 알렉스가 쳐놓은 거대한 그물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서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그녀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