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거미줄에 걸린 나비
두바이의 아침은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핏빛 태양과 함께 시작된다. 7월 말의 폭염은 식을 줄을 모르고 도심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지만, 주메이라 지역의 최고급 브런치 카페 내부는 다른 세상처럼 한기가 돌 정도로 쾌적했다. 통유리창 너머로 반사되는 에메랄드빛 해변을 배경으로, 아말의 사촌동생인 ‘레이라’가 화사한 파스텔톤의 원피스를 입고 앉아 있었다. 레이라는 가문에서 가장 촉망받는 인재이자, 티 없이 맑은 영혼을 지닌 대학부 총학생회장 후보였다. 그녀는 사교계의 추악한 이면이나 지하 경제의 포식자들이 치는 덫에 대해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순수한 존재였다. 레이라는 아말이 보낸 초대장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 시종일관 들뜬 표정으로 조잘거렸다.
“언니, 나 정말 이번 선거 준비하면서 스트레스가 엄청났거든. 가문 어른들이 기대하는 눈빛도 너무 부담스러웠고 말이야. 그런데 언니가 이렇게 특별히 나를 위해서 VIP 프라이빗 파티에 데려가 주겠다고 하니까 진짜 살 것 같아. 역시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건 우리 사촌 언니밖에 없어.”
레이라는 진심 어린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아말의 손을 꽉 맞잡았다. 그 순수한 신뢰와 따뜻한 체온이 아말의 손등을 타고 올라오는 순간, 아말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통증을 느꼈다. 불과 얼마 전, 똑같은 눈빛과 똑같은 온도로 자신을 포옹했던 단짝 친구 나디아의 마지막 모습이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말의 내면에서는 거대한 해일처럼 죄책감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은 기계적으로 완벽한 미소를 유지했다. “레이라, 네가 가문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내가 제일 잘 알지. 이번에 가는 파티는 두바이 정재계 고위층 자제들만 모이는 아주 은밀하고 특별한 자리야. 네 선거 운동에 엄청난 인맥이 되어줄 사람들이 가득하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즐기기만 하면 돼.” 아말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다정한 목소리는 마치 꿀을 바른 독사처럼 매끄럽고 정교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인간성을 돈과 생존이라는 계산기 아래 묻어버린 상태였다. 레이라를 바르다크의 도살장으로 밀어 넣어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잔인한 명제 앞에서, 아말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직 철저한 가해자가 되는 것뿐이었다.
레이라는 아말의 감언이설에 완전히 매료되어, 가방 안에서 소중하게 보관해 두던 태블릿 PC를 꺼내 들었다. “아, 맞다 언니. 이번 선거 캠프랑 우리 가문 장학재단에서 같이 사용하는 내부 네트워크 보안 키 말이야. 언니가 말한 그 고위층 인맥들한테 우리 프로젝트를 브리핑할 때 이 자료를 보여주면 확실히 신뢰를 얻겠지?” 레이라가 천진난만하게 보여주는 화면 속에는 바르다크가 그토록 갈구하던 가문의 핵심 보안 문서와 동선 일정이 고스란히 띄워져 있었다. 아말은 침을 들이삼키며 레이라의 눈을 피해 화면을 응시했다. 저 어린 사촌동생의 목에 채워질 무거운 쇠사슬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지만, 아말의 손가락은 이미 테이블 밑에서 바르다크에게 보낼 실시간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지옥의 입구는 이미 활짝 열려 있었고, 레이라는 자신이 가장 믿는 혈육의 손에 이끌려 그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브런치를 마친 후 아말은 레이라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곧장 바르다크가 지정한 두바이 마리나의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했다. 한낮의 태양이 페르시아만을 하얗게 구워버릴 듯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선착장 한구석에 정박한 최고급 요트 내부로 들어서자 등줄기가 시릴 정도의 인공적인 냉기가 엄습했다. 요트의 프라이빗 라운지 소파에 길게 누워 시가를 태우던 바르다크는 아말이 들어서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사냥감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맹수의 그것처럼 오만하고 여유로웠다. 아말은 떨리는 손으로 레이라에게서 빼낸 내부 보안 키의 복사본과 가문 장학재단의 동선 일정이 담긴 USB를 테이블 위로 밀어 넣었다.
바르다크는 USB를 집어 들어 자신의 노트북에 연결한 뒤, 화면에 뜨는 가문의 핵심 데이터들을 빠른 속도로 검토했다. 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아말은 마른침을 삼켰다. “훌륭해, 아말. 네 사촌동생이 아주 유용한 열쇠를 쥐고 있었군. 이 보안 키 하나면 네 가문이 관리하는 장학재단의 은밀한 자금 흐름과 핵심 인물들의 동선을 완전히 손에 쥘 수 있어.” 바르다크는 만족스러운 듯 시가 연기를 아말의 얼굴을 향해 길게 내뿜었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아말은 기침을 참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약속은 지키시는 거겠죠. 이제 제 채무는 전부 탕감된 거고, 그 영상들도 전부 지워주시는 거죠?”
바르다크는 낮게 킥킥거리며 테이블 위에 놓인 가죽 장부를 펼쳐 보였다. 장부에는 아말이 그동안 사치품을 사기 위해 빌렸던 원금과 상상 초월의 이자, 그리고 가문의 정보를 넘기고 친구들을 바친 대가로 차감된 금액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아말의 이름 옆에 적힌 최종 잔액 ‘0’을 가리켰다. 순간 아말은 가슴속에 맺혀 있던 거대한 돌덩이가 내려앉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지옥 같은 빚의 굴레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착각, 그리고 더 이상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약한 안도감이 그녀의 전신을 감쌌다.
하지만 바르다크의 잔혹한 시스템은 그렇게 허술하게 먹잇감을 놓아주는 곳이 아니었다. 바르다크는 노트북 화면을 돌려 아말에게 새로운 문서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말이 방금 넘겨준 보안 키를 이용해, 그녀의 가문 명의로 개설된 정체불명의 페이퍼 컴퍼니 계좌 내역이었다. 그 계좌의 최종 책임자이자 서명인 란에는 아말의 이름과 신원 정보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아말의 얼굴이 핏기를 잃고 하얗게 질려갔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이죠? 난 이런 문서에 서명한 적 없어요!” 아말이 비명을 지르듯 외치자, 바르다크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네가 처음에 서명했던 백지 서약서를 잊은 모양이군, 아말.”
바르다크의 목소리는 낮지만 고막을 찢을 듯한 무게로 다가왔다.
“너는 오늘부로 네 가문의 자금을 밀수하고 해외로 빼돌린 거대 금융 범죄의 총책임자가 된 거다. 네 이전 빚은 깨끗하게 청산해 줬지. 하지만 이제 네가 짊어진 이 새로운 ‘장부’는 차원이 달라. 네가 여기서 도망치거나 우리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네 가문은 너 하나 때문에 공중분해 될 거다.”
아말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나의 덫을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더 거대하고 촘촘한 그물이 그녀의 온몸을 꽁꽁 묶어버린 것이다. 지옥의 사슬은 결코 끊어지지 않았으며, 그녀는 영원히 바르다크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는 인형에 불과했다.
요트 라운지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은 아말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무력감이 그녀의 전신을 짓눌렀다.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처음에 서명했던 가문의 인장이 찍힌 백지 서약서의 기억이 잔인하게 되살아났다. 단순히 사치품을 사기 위해 사채업자의 손을 잡았던 철없는 대학생의 일탈은, 이제 가문 전체를 반역과 금융 범죄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거대한 음모의 도구로 변질되어 있었다. 노트북 화면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자신의 서명과 신원 정보는 아말에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종신형 선고문과 같았다.
바르다크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 주저앉은 아말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고급 가죽 구두가 대리석 바닥을 딛는 규칙적인 발소리는 마치 사형 집행인의 발걸음처럼 아말의 귓가를 때렸다. 바르다크는 아말의 턱을 거칠게 치켜세우며 그녀의 초점 없는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말, 현실을 직시해라. 네가 울고불고 짜증을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너는 이미 우리와 한배를 탔고, 네 손은 네 친구 나디아를 팔아넘겼을 때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졌어. 이제 와서 고결한 명문가의 딸 행세를 하려는 건 역겨운 위선일 뿐이다.”
바르다크의 잔인한 폭언은 아말이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도덕적 방어선을 완전히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자신이 가해자라는 명백한 사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켰다는 추악한 진실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바르다크는 아말의 얼굴 바로 앞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아말의 가문 수장인 숙부와 아버지가 고위 관료들과 함께 찍힌 최근의 뉴스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네가 오늘 밤 열리는 파티에 사촌동생 레이라를 완벽하게 데려오지 않는다면, 이 페이퍼 컴퍼니의 모든 불법 자금 세탁 내역이 검찰과 네 아버지의 메일함으로 전송될 것이다. 네 가문이 쌓아 올린 그 찬란한 명예가 단 하루 만에 어떻게 잿더미로 변하는지 지켜보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잔인할 정도로 차분했기에 역설적으로 도망칠 구멍이 전혀 없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아말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삼켰다. 가문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가문에서 가장 순수한 사촌동생을 지옥의 제단에 바쳐야만 하는 잔혹한 모순. 아말은 완전히 꺾여버린 인형처럼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그녀의 영혼은 이제 완전히 바르다크의 시스템에 복종하는 기계로 개조되어 가고 있었다.
바르다크는 아말의 턱을 놓아주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다. 오늘 밤 9시, 두바이 마리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우리 소유의 펜트하우스로 레이라를 데려와라. 의심을 사지 않도록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혀서 말이지. 사촌동생에게 사교계의 진짜 매운맛을 보여줄 준비를 해라.” 아말은 요트를 빠져나오며 타들어 가는 두바이의 태양 아래 섰지만, 온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이미 레이라에게 오늘 밤 파티의 시간과 장소를 전송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나비를 거미의 입 앞으로 인도하는 잔혹한 잔혹사의 중심에서 완벽하게 가해자의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밤 9시의 두바이 마리나는 낮의 살인적인 열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억 달러짜리 초고층 빌딩들이 뿜어내는 네온사인과 인공 불빛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아말의 최고급 세단이 마리나 중심부에 위치한 최고급 레지던스 빌딩 입구에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발레파킹 직원이 정중하게 차 문을 열었다. 조수석에서는 최고급 실크 드레스를 차려입은 레이라가 설레는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가 빌딩 로비의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고, 그녀의 얼굴에는 오직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사촌 언니를 향한 무한한 신뢰만이 가득했다. 레이라는 아말의 팔짱을 꼭 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니, 여기 정말 대단하다. 두바이에 살면서도 이런 곳은 쉽게 올 수 없었는데, 역시 언니의 인맥은 차원이 달라.”
레이라의 천진난만한 찬사는 아말의 심장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말의 가면은 이제 완전히 피부처럼 고착되어 있었다. 아말은 레이라의 손을 다정하게 감싸 쥐며 미소를 지었다.
“레이라, 널 위해 준비한 자리야. 오늘 밤이 지나면 넌 네가 원하는 대학교 총학생회장은 물론이고, 가문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게 될 거야. 언니만 믿고 따라오렴.”
아말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미동도, 죄책감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바르다크의 완벽한 사냥개로 진화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빌딩 최상층에 위치한 복층 구조의 펜트하우스였다. 웅장한 대리석 문이 열리자, 은은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최고급 샴페인 향이 코끝을 찔렀다. 내부에는 값비싼 보석과 명품 정장으로 치장한 남녀들이 가득했고, 그들의 웃음소리는 상류층 사교계의 우아함을 대변하는 듯했다. 레이라는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광경에 압도되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아말의 눈에는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잔혹한 덫의 구조가 선명하게 보였다. 파티장 곳곳에 배치된 보안 요원들의 차가운 눈빛, 그리고 방 안쪽 깊숙한 곳에서 독한 시가 연기를 뿜어내며 사냥감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바르다크의 실루엣이 아말의 시선에 걸려들었다.
바르다크는 아말과 레이라를 발견하자, 샴페인 잔을 든 채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비열한 미소 속에서 아말은 거대한 파멸의 서막을 읽었다. 바르다크는 레이라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레이라 양. 아말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가문의 촉망받는 인재라고 하더군요. 오늘 밤 이곳에서 당신의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레이라는 바르다크가 지하 세계의 잔혹한 포식자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니가 워낙 칭찬을 많이 하셔서 꼭 뵙고 싶었어요.” 레이라가 바르다크를 향해 지어 보인 그 마지막 순수한 미소는, 그녀가 제 발로 도살장에 걸어 들어왔음을 알리는 잔인한 신호탄이었다. 아말은 차갑게 식어버린 눈으로 사촌동생의 그 미소를 바라보며, 등 뒤의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음을 직감했다.
바르다크는 레이라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펜트하우스 안쪽, 가장 전망이 좋은 루프탑 테라스 방향으로 그녀를 교묘하게 안내했다. 그곳에는 중동의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고위 관료들과 권력자들의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레이라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바르다크의 친절한 에스코트를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안쪽 프라이빗 룸의 두꺼운 대리석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바르다크는 아말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제 네 역할은 끝났으니 나가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아말은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서 사촌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레이라는 뒤를 돌아보며 아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언니, 금방 얘기 나누고 나올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줘!”
그것이 레이라가 온전한 인간으로서 아말에게 남긴 마지막 목소리였다. 이윽고 육중한 프라이빗 룸의 대리석 문이 거대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쾅 하고 닫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아말은 나디아가 사막의 하렘으로 끌려가던 날 밤에 느꼈던 그 지독한 절망과 구역질이 다시 한번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문 너머에서 레이라가 마주할 현실은 보지 않아도 선명했다. 바르다크가 아말에게서 빼앗아 간 가문의 내부 보안 키와 동선 일정은 이미 레이라의 발목을 묶을 완벽한 올가미로 변해 있을 것이었다. 레이라는 자신이 가문을 배신했다는 조작된 증거와 가스라이팅 앞에 철저하게 짓밟힐 것이며, 나디아가 그랬듯 이름 대신 차가운 번호로 불리는 소유물로 전락하게 될 터였다.
아말은 펜트하우스 복도를 미친 사람처럼 빠져나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로비로 내려오는 내내 그녀의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잘게 떨렸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가쁘게 뛰어댔다. 살기 위해 사촌동생을 팔아넘겼다는 추악한 가해자의 낙인이 그녀의 이마에 선명하게 새겨진 것만 같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두바이 마리나의 매캐하고 후끈한 밤공기가 아말의 전신을 엄습했다. 화려하게 일렁이는 네온사인 불빛들은 이제 그녀의 죄악을 비추는 지옥의 업화처럼 보였다. 아말은 자신의 최고급 세단 운전석에 앉아 핸들에 머리를 박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동생을 제물로 바쳤지만, 이제 그녀는 가문을 파멸로 이끄는 가장 완벽한 폭탄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이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징그럽게 번쩍였다. 바르다크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장부상의 숫자가 완전히 지워졌음을 알리는 알림과 함께, 레이라가 방 안에서 겁에 질린 채 서 있는 짧은 영상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아말은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눈물조차 마셔버린 지독한 공포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절대로 이 거대한 잔혹사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녀의 손에는 레이라를 미끼로 삼아 가문의 더 깊은 핵심 자산을 탈취하라는 바르다크의 다음 단계 명령서가 쥐어질 것이었다. 두바이의 밤은 잔인하도록 아름다웠고,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절규는 거대한 사막의 모래바람 속으로 흔적도 없이 파묻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