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니아 잔혹사 호주편 #001] 포키스의 늪 – 2화: 부패한 동아줄과 악마의 통첩 (실제 사건 파일 기반 각색)

2화: 부패한 동아줄과 악마의 통첩 (실제 사건 파일 기반 각색)

 파라마타(Parramatta) 공립 고등학교의 월요일 아침. 눈부신 남반구의 햇살이 교실 창문을 넘어와 반짝이는 먼지들을 비추고 있었지만, 교탁 앞에 선 34세 역사 교사 엘레나 매카시(Elena McCarthy)의 세상은 온통 죽음의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칠판에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과 참호전의 참상에 대해 적어 내려가고 있었지만, 분필을 쥔 손끝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주말 내내 수면은커녕 단 1분의 휴식도 허락받지 못한 채, 방독면을 쓰고 유독성 화학 물질과 사투를 벌인 후유증이 온몸의 신경을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꺼운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를 떡칠하여 눈 밑의 짙고 검붉은 다크서클과 뺨에 번진 끔찍한 화학 화상 자국을 필사적으로 덮었지만, 그녀의 육체는 이미 인간의 한계점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정신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냄새였다. 아무리 독한 프랑스제 향수를 병째로 쏟아붓고,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물에 피부가 붉게 벗겨질 때까지 거친 타월로 몸을 문질러대도,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스며 나오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제조 공정 특유의 역겨운 암모니아와 고무 타는 냄새는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엘레나는 수업 중 학생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올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선생님, 향수 바꾸셨어요?

 뭔가 병원 소독약 같은 냄새가 나요.” 맨 앞자리에 앉은 한 여학생의 무심하고 천진난만한 질문 하나에, 엘레나의 심장은 갈비뼈를 부수고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요동쳤다.

“아… 주말에 집안 대청소를 하면서 좀 독한 공업용 세제를 썼더니 냄새가 덜 빠졌나 보구나. 환기를 덜 시켜서 그래.”

 엘레나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불안한 시선은 교실 중간 줄에 앉아 있는 금발 머리 소년, 찰리에게 끈적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악명 높은 무장 모터사이클 갱단 ‘블러드 하운드’의 추심업자 믹(Mick)이 그녀의 숨통을 조일 때마다 웃으며 들먹이던 바로 그 아이였다. 찰리가 연필을 떨어뜨리거나 지루한 듯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엘레나의 핏발 선 환상 속에서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거대한 검은색 덤프트럭이 아이의 작은 몸집을 처참하게 덮치고 지나가는 끔찍한 파편들이 무한히 반복 재생되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역사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인류의 과거를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갱단의 인질극 한가운데서 애꿎은 학생들을 담보로 고기 방패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동료 교사들이 교무실에 모여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주말 동안 있었던 일상적인 담소를 나누었지만, 엘레나는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 단 1초도 머물 수 없었다. 그녀는 도망치듯 교직원 화장실 맨 끝 칸으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그고, 차가운 변기를 껴안은 채 미친 듯이 헛구역질을 해댔다. 사흘 내내 제대로 된 음식을 씹어 삼키지 못한 위장에서 올라오는 것은 쓰고 노란 위액과 피가 섞인 타액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변기 물을 내리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선 그녀. 거울 속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한때 파라마타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던 단정하고 지적인 교육자의 그것이 전혀 아니었다. 초점을 잃고 탁하게 풀린 동공, 바싹 말라비틀어져 갈라진 입술, 머리카락 끝에서 풍기는 역겨운 화학 약품 냄새, 그리고 극도의 수면 부족과 공포에 찌들어 생기를 잃어버린 잿빛 피부. 그녀의 영혼은 이미 ‘블러드 하운드’ 갱단원들의 육중한 구둣발 아래에서 형체도 없이 짓이겨져 있었다. 엘레나가 필사적으로 유지하려던 ‘모범적인 시민’이라는 일상의 가면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그 끔찍한 균열 사이로 끊임없이 스며드는 것은 오직 끈적하고 피비린내 나는 파멸의 예감뿐이었다. 주말의 도박 중독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그녀의 세상을 완벽한 생지옥으로 재건축하고 있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 시드니 교외에 위치한 엘레나의 아늑했던 2층 타운하우스 거실은 흡사 악마들이 불을 지피는 지옥의 화학 실험실을 방불케 했다. 모든 창문은 빛 한 점 새어 나가지 않도록 두꺼운 검은색 암막 커튼과 청테이프로 철저히 밀봉되었고, 천장과 벽면에는 독성 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조잡하지만 강력한 공업용 환풍기가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엘레나는 무거운 군용 방독면을 뒤집어쓴 채, 불길 위에서 끓어오르는 대형 유리 플라스크 안의 탁하고 끈적한 액체를 길다란 유리 막대로 끊임없이 젓고 있었다.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맹독성 화학 약품의 기운이 두꺼운 고무장갑과 작업복을 뚫고 혈관 속으로 직접 침투하는 것만 같았다. 거실 소파에는 믹과 두 명의 덩치 큰 문신투성이 수하들이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고 피자를 뜯으며 그녀의 처절한 노동을 낄낄거리며 감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의 분위기는 평소의 가학적인 일상과는 사뭇 달랐다. 육중한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여러 대의 배기음이 집 밖에서 요란하게 울리더니, 곧이어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거칠게 열리고 믹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온몸에 뱀과 거미줄 문신을 흉측하게 휘감은 백발의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가 등장하자마자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믹과 조직원들이 일제히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뜯어내는 말단 추심업자가 아니었다. ‘블러드 하운드’ 호주 동부 연합 시드니 지부의 부두목격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처형자로 악명 높은 ‘레이저(Razor)’였다.

“이게 그 고상한 교사년이 밤마다 몸을 굴리는 주방인가?”

 레이저가 날카로운 눈매로 마약 제조 장비로 가득 찬 거실을 훑어보며 흥미롭다는 듯이 짐승 같은 소리로 킬킬거렸다. 그는 굳어있는 엘레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거칠고 억센 손아귀로 방독면을 쓴 그녀의 턱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엘레나는 극도의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았고, 방독면 필터 너머로 헐떡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난주에 뽑아낸 약 품질이 제법이더군. 시내 중심가 킹스크로스(Kings Cross) 클럽에 샘플을 풀었더니 약쟁이 새끼들이 환장을 하고 돈다발을 싸 들고 오고 있어. 명색이 역사 선생 출신이라 그런지 배합 비율이나 계량 하나는 더럽게 꼼꼼하고 정확한 모양이야.”

 레이저의 소름 끼치는 칭찬은 믹을 향한 조직적인 치하였지만, 그 말은 당사자인 엘레나에게는 당장 목을 매달라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약을 완벽하게 잘 만들어낼수록, 조직은 이 쓸만한 ‘물건’을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레이저는 징이 박힌 가죽 재킷 주머니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와 돈다발을 꺼내 믹의 가슴팍에 던졌다. “다음 달부터 이 공장 물량 정확히 세 배로 늘려. 동유럽계 레드 마피아 놈들이랑 멜버른 쪽 대규모 유통망을 새로 트기로 합의했다. 이 샌님 선생 집구석을 아예 우리 지부의 1급 메인 제조장으로 격상시켜. 인력이 부족하면 애들 몇 명 더 붙여주고.”

 엘레나의 가슴이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절망의 나락으로 쿵 떨어져 내렸다. 세 배의 물량. 그것은 그녀에게 남아있는 최소한의 수면 시간마저 완전히 압수당함을 의미했고, 대량의 화공약품 냄새로 인해 경찰의 후각에 발각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진실은, 자신이 단순히 도박 빚 2만 달러를 갚기 위해 일시적으로 착취당하는 말단 채무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호주 대륙 전역의 뒷골목을 집어삼키는 거대 무장 마약 카르텔의 절대 대체 불가능한 핵심 부품이자 톱니바퀴로 전락해 버렸다.

“만약 이년이 도망치려 하거나 물량을 못 맞추면 어떻게 하는지 알지? 이년 명의로 들어놓은 생명보험금 50만 달러나 달달하게 타 먹고, 시체는 흔적도 없이 시골 돼지 농장 사료 분쇄기에 갈아버려.”

 레이저가 등 돌려 나가며 무심하게 툭 던진 한마디에 엘레나는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화학 약품 웅덩이 위로 주저앉을 뻔했다. 그들은 평범한 범죄자가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합법적인 사회의 그늘 밑에서 타인의 피와 살을 갉아먹으며 거대하게 몸집을 불리는 기생수 군단. 엘레나는 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악의 카르텔 굴레에서 자신의 얄팍한 힘만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온몸의 세포 단위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수요일 저녁, 호주 동부를 강타한 사이클론의 영향으로 폭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엘레나는 믹이 조직원들과 함께 다른 구역의 사채 이권 다툼을 폭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운 그 찰나의 틈을 타, 죽을힘을 다해 집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우산조차 쓰지 않은 채,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파라마타 외곽의 인적 드문 낡은 주유소 구석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로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온몸이 비에 젖어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주머니 속 손은 꼭 쥐고 있던 동전 몇 개를 만지작거렸다. 스마트폰은 이미 믹의 철저한 도청 감시 하에 있었기에, 이 구시대의 공중전화만이 그녀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밀어 넣고, 호주 연방경찰(AFP)의 중대 범죄 및 익명 마약 신고 센터 직통 번호를 눌렀다. 뚜루루루- 신호음이 가는 단 몇 초의 시간이 그녀에게는 피를 말리는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연방경찰 긴급 신고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딱딱하지만 규정에 충실한 안정감 있는 목소리. 그 권위 있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엘레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짐승 같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파라마타 지역에 무장 갱단이 제 집을 강제로 점거하고 불법 마약을 만들고 있어요. 그들이 도박 빚을 빌미로 저를 협박하고… 밤마다 감금당한 채 강제로 화공약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발 병력을 보내 도와주세요!”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조직의 이름인 ‘블러드 하운드’와 믹의 인상착의, 오토바이 번호판, 그리고 자신의 타운하우스 주소를 미친 사람처럼 더듬더듬 내뱉었다. 신고를 접수했다는 답변을 듣고 전화를 끊은 엘레나는, 힘이 탁 풀려 공중전화 박스의 더러운 유리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드디어 이 끔찍한 생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먹구름을 뚫고 비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얄팍한 희망의 빛은 단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가장 참혹하고 핏빛 가득한 절망으로 찢겨나갔다. 엘레나가 집으로 몰래 돌아와 젖은 옷을 채 갈아입기도 전, 굳게 닫혀 있던 현관문이 굉음을 내며 부서질 듯이 열렸다. 비에 젖은 가죽 재킷을 입은 믹과 그의 수하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믹의 두꺼운 손에는 그의 최신형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을 터치하자 그 안에서는 엘레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소름 끼치는 음성 녹음 파일이 고음질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파라마타 지역에 무장 갱단이 제 집을 강제로 점거하고…”

 불과 1시간 전, 쏟아지는 폭우 속 공중전화 박스에서 엘레나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부짖던 바로 그 처절한 목소리였다. 엘레나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완전히 가셨고, 심장 박동이 멈추는 듯한 극도의 경악에 휩싸였다.

“파라마타 지역 경찰청 마약 전담반의 데이비스 부장 경사님이 우리 조직과 아주 돈독한 파트너라는 걸 내가 말 안 해줬던가? 그 양반이 방금 아주 재미있는 음성 파일 선물을 하나 보내주셨더군. 짭새들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어? 그것도 공중전화까지 뚫고 가서 아주 애절하고 처절하게?”

 믹의 얼굴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사냥감의 헛된 발악을 비웃는 악마적인 희열로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은 동네 양아치가 아니었다. 지역 사회의 공권력과 경찰 조직 내부에까지 뇌물과 이권으로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철저하게 한통속이 되어버린 괴물들이었다. 공권력이라는 시민의 최후의 보루조차 이 악당들이 던져주는 뼛조각에 꼬리를 흔드는 더러운 사냥개로 전락해 있다는 끔찍한 진실.

 믹의 바위 같은 거대한 주먹이 무방비 상태인 엘레나의 복부를 짐승처럼 강타했다. “컥!” 억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카펫 위로 고꾸라져 내장을 토해낼 듯 켁켁거리는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쥔 믹은, 그녀를 질질 끌고 주방 가스레인지 쪽으로 향했다.

“내가 그동안 널 선생 대접하며 너무 인간적으로 부드럽게 다뤄준 모양이야.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밖으로 짖어대는 걸 보니.”

 그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최대치로 켜고, 고기를 구울 때 쓰는 길고 뾰족한 쇠꼬챙이를 시퍼런 불길 속에 무자비하게 집어넣었다. 끝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열기를 뿜어내는 쇠붙이를 보며, 엘레나는 사색이 되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양팔을 무릎으로 짓누르는 거구의 조직원 두 명의 완력을 여자의 힘으로 당해낼 수는 없었다.

“똑똑히 들어, 이 멍청한 년아. 경찰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우리 카르텔을 돕고 돈을 받는 비즈니스 파트너야. 네가 기댈 곳은 이 썩어빠진 세상 어디에도 없어.”

 믹은 불타오르듯 달궈진 쇠꼬챙이를 반항하는 엘레나의 왼쪽 허벅지 맨살에 가차 없이 깊숙하게 지져버렸다. 치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타들어 가는 살점의 역겨운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웠고, 엘레나의 입에서는 성대가 찢어질 듯한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육체를 파고드는 끔찍한 화상의 고통보다 그녀를 더욱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이 거대한 문명사회 시드니 한복판에 자신을 구원해 줄 1그램의 정의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완벽하고도 철저한 고립감이었다. 경찰에 구조를 요청했던 구원의 환상은,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방식의 화인(火印)이 되어 그녀의 살갗에 지워지지 않는 절망으로 되돌아왔다.

 허벅지 깊숙이 새겨진 끔찍한 화인의 고통은 엘레나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의 신경망을 날카로운 면도날로 찢어놓는 듯했다. 염증이 생겨 퉁퉁 부어올랐지만, 조직은 그녀에게 상처를 치료할 단 하루의 병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고 상처 부위에 대충 거즈를 덧댄 뒤 압박 붕대를 칭칭 감은 채, 그녀는 다음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교복 입은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출근해야만 했다.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복도를 걷는 그녀를 보며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이 의아해하며 다가왔지만, 엘레나는 주말에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비참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그들의 시선을 회피했다. 낮 동안의 육체적 고통은 오히려 끔찍한 현실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진통제 역할을 했다. 진짜 피가 마르는 생지옥은 그녀가 다시 타운하우스의 문을 여는 밤이 되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믹은 그녀가 경찰에 감히 신고하려 했던 ‘불경죄’를 영원히 징벌하고 반항의 의지를 뿌리 뽑겠다는 명목하에, 더욱 악랄하고 변태적인 방식으로 그녀의 남은 존엄을 짓밟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단순히 연체된 이자를 독촉하거나 마약 제조의 할당량을 강요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단정했던 타운하우스 거실은 밤마다 ‘블러드 하운드’ 조직원들과 그들의 동맹 갱단들이 모여드는 난잡하고 타락한 불법 파티장이자 전용 매음굴로 완벽하게 변모했다. 믹은 극도의 수치심을 유발하기 위해, 엘레나에게 알몸에 오직 얇은 앞치마 하나만 두른 채 수십 명의 거친 조직원들 사이를 오가며 술을 따르고 소분된 마약 봉지를 나르도록 강요했다.

“자, 건배하자고! 우리의 충실하고 똑똑한 역사 선생님께서 제공하시는 서비스가 아주 일품이지. 머리에 든 게 많은 년일수록 길들이는 맛이 쏠쏠하거든.”

 짐승 같은 사내들이 쏟아내는 노골적인 조롱과 끈적한 시선, 그리고 틈만 나면 가해지는 거친 스킨십 속에서 엘레나는 모멸감에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들의 모든 가학적인 명령에 기계처럼 복종해야만 했다. 아주 작은 반항조차 곧바로 허벅지에 새겨진 화상보다 백 배는 더 끔찍한 물리적 폭력과, 학교에 있는 찰리를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돌아올 것임을 뼈저리게 학습했기 때문이었다. 수십 명의 무법자들이 한꺼번에 뿜어내는 탁한 마약 연기와 독한 시가 냄새, 그리고 야만적인 웃음소리가 뒤섞인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그녀의 뇌는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스로가 더 이상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이 갱단 전용 집창촌이자 마약 공장에 비치된 쓸모있는 ‘비품’ 중 하나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세뇌당하고 있었다.

 어느 깊은 밤, 파티에 취해 만취한 타 조직의 조직원 하나가 비틀거리며 다가와 엘레나를 거칠게 소파로 덮치려 하자, 지켜보던 믹이 권총의 손잡이로 사내의 머리를 내리치며 제지했다.

“함부로 물건 건드리지 마, 이 쓰레기 새끼야. 저 년은 우리 지부를 먹여 살리는 귀하신  1급 기술자니까. 저년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 약 수율 떨어지면, 네놈 모가지를 날려버릴 거다.”

 그 폭력적인 제지는 결코 엘레나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직 매일 밤 최고급 메스암페타민을 찍어내는 유능한 기계로서의 상업적 가치만을 철저하게 계산한 사물화 선언이었다. 하지만 엘레나의 정신 상태는 이미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모멸감과 수치심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돌파해 버린 나머지, 그녀는 믹의 그 모욕적인 선언을 듣고 오히려 자신이 이 조직 내에서 ‘안전하다’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래, 나는 감정이 없는 기계다. 저들이 시키는 대로 조용히 약만 만들고 시중을 들면, 적어도 나를 죽이거나 토막 내지는 않겠지.’

 그것은 압도적이고 지속적인 극한의 공포와 폭력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뇌가 스스로의 완전한 붕괴를 막기 위해 작동시키는 최악의 방어 기제,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의 완벽한 발현이었다. 엘레나는 이 짐승들이 만들어낸 잔혹한 지하 세계의 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탁한 눈동자에서 마침내 반항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고 텅 빈 어둠만이 남은 것을 확인했을 때, 엘레나는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는 실성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이성과 자아는 그렇게 소음 없이 부서져 내리며 완전히 미쳐가고 있었다.

 지옥 같은 일주일이 지나고 또다시 저주받은 주말이 찾아왔다. 매일 밤낮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강제 노동과 마약 제조, 그리고 처참한 인권 유린 속에서도 그녀의 사채 빚 이자는 원금을 깎기는커녕 살인적인 연체 이율과 억지 페널티를 거듭하며 이제 15만 달러라는, 평범한 교사의 평생 월급으로는 감당조차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숫자를 향해 수직으로 치솟고 있었다. 금요일 자정, 일주일 치 약속된 막대한 물량의 메스암페타민 진공 포장을 간신히 마친 엘레나 앞에 가죽 재킷을 걸친 믹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는 테이블 위에 산처럼 쌓인, 수십만 달러어치에 달하는 하얀 가루가 담긴 진공 팩들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훑어보며 검은색 더플백에 쑤셔 넣더니, 넋이 나간 채 주저앉아 있는 엘레나의 발밑에 손바닥만 한 노란색 서류 봉투 하나를 툭 던졌다.

“이번 주치 밀린 이자는 이 특별 임무로 대신 탕감해 주지. 아주 영광스러운 기회야.”

 엘레나가 화상 입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1그램 단위로 아주 작게 소분된 화려한 색상의 마약 스무 봉지와, 파라마타 지역 고등학교들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들어 있었다. “이… 이게 다 뭡니까? 이걸 왜 저한테…” 엘레나의 갈라진 목소리가 지진이 난 듯 미세하게 떨렸다. 믹은 그녀의 턱을 구둣발로 살짝 들어 올리며 악마처럼 미소 지었다.

“레이저 형님이 우리 카르텔의 사업 영역을 크게 확장하신다잖아. 클럽에서 노는 성인들 코 묻은 돈이나 터는 건 성장에 한계가 있어. 진짜 영원히 마르지 않는 황금어장은 뇌가 덜 자란 십 대 애새끼들이지. 한 번 맛 들이면 평생 우리 노예가 되거든. 넌 존경받는 학교 선생이잖아? 경찰도, 학부모도 널 의심하지 않아. 점심시간이나 체육 시간에 학생들 사물함이나 남녀 화장실 구석에 이 샘플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흘려놓고 오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안 그래?”

 믹의 입술은 잔인하게 찢어지며 승리자의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엘레나의 뇌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그동안 자신이 이 상상 초월의 지옥도를 꾸역꾸역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하고도 마지막 이유는, 비록 자신의 몸은 타락하고 범죄에 찌들어 망가졌을지언정, 낮에 학교 안에서만큼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라는 마지막 자아의 끈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악마 같은 믹은 이제 그녀의 마음속에 남은 그 마지막 성역마저 철저히 파괴하고, 그녀를 아이들의 영혼을 직접 파먹고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진짜 앞잡이이자 악마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카르텔의 마수는 이제 그녀의 육체를 넘어, 그녀가 가르치는 무고한 학생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안 돼… 절대로 안 됩니다. 제발… 밤새도록 약을 두 배, 아니 세 배로 만들고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제발… 우리 학교 아이들만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엘레나가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믹의 더러운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오열했다. 하지만 믹은 귀찮다는 듯이 매몰차게 그녀의 명치를 걷어찼다. 엘레나가 숨을 헐떡이며 나뒹굴자, 믹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뱀처럼 속삭였다.

“징징대지 마, 이 역겨운 위선자 년아. 월요일 아침 1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 스무 봉지를 리스트에 적힌 사물함에 정확히 다 뿌려. 만약 못 하겠다고 발악한다면,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네 반의 그 귀여운 금발 머리 제자 찰리를 당장 납치해서 이 거실 소파에 묶어놓고, 핏줄에 직접 필로폰 주사기를 꽂아 넣는 꼴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줄 테니. 선택해, 엘레나. 끝까지 고상하고 위선적인 선생으로 남아서 네 제자들과 함께 토막 나 죽을 건지, 아니면 우리 카르텔의 진정한 식구로 살아남을 건지.”

 쾅! 굉음과 함께 현관문이 닫히고, 거실에는 칠흑 같은 정적과 홀로 남겨진 엘레나만이 존재했다. 공업용 환풍기가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기계음만이 그녀의 귓가를 어지럽게 맴돌았다. 무고한 제자들에게 마약을 먹여 갱단의 영원한 노예로 만들라는 사탄의 최후통첩. 그녀는 카펫 바닥에 널브러진 형형색색의 작은 마약 봉지들을 넋이 나간 시선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이 ‘투둑’ 하고 끊어지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숨을 곳은 없었다. 믹의 명령에 굴복한다면 그녀는 살아서 아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끔찍한 괴물이 될 것이고, 반항한다면 이 잔혹한 짐승들에게 제자들과 함께 갈기갈기 찢겨 죽을 것이다.

 천천히, 관절이 끊어진 인형처럼 기괴하게 몸을 일으킨 엘레나의 퀭한 시선이 다시 한번 주방 조리대 서랍장 깊숙한 곳에 숨겨둔 날카로운 정육용 식칼을 향했다. 암막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온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식칼의 차가운 금속성 광택이 위태롭게 번쩍였다. 영혼의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닥닥 긁어낸 핏빛 절망 속에서, 짐승들에게 길들여졌던 여자의 눈동자에 기어이 서늘한 광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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