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루비콘 강 앞의 사형수
칠흑 같은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금요일 새벽, 시드니 교외의 타운하우스 거실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34세 역사 교사 엘레나 매카시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바닥에 널브러진 스무 개의 작은 비닐봉지들을 허망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조악한 하이틴 캐릭터가 그려진 비닐봉지 안에는 호주 동부 연합을 장악한 무장 모터사이클 카르텔 ‘블러드 하운드’가 정성스럽게 소분한 1그램짜리 고순도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 악마의 씨앗처럼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핏기가 완전히 가신 창백한 오른손에는, 주방 조리대 서랍장 가장 깊숙한 곳에서 방금 꺼내 든 예리하고 육중한 정육용 식칼이 쥐어져 있었다. 차갑고 묵직한 식칼의 금속성 감촉만이, 그녀가 아직 이 잔혹한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유일하고도 비참한 감각이었다.
주말 내내 엘레나의 아늑했던 타운하우스는 완벽한 심리적 밀실이자 숨 막히는 고문실로 변모했다. 사채업자 믹(Mick)과 그의 짐승 같은 조직원들은 주말 동안 그녀에게 어떠한 전화 연락도, 노골적인 방문 감시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카르텔의 알량한 자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포식자의 유희이자, 그녀 스스로 극한의 끈적한 공포와 죄책감 속에서 자신의 남은 인간성과 영혼을 바닥까지 갉아먹도록 방치하는 고도의 악랄한 심리전이었다. ‘월요일 아침 1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현관문을 닫고 나가며 믹이 남기고 간 그 사형 선고와도 같은 기한은, 주말 내내 엘레나의 뇌리에서 거대한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째깍거리며 그녀의 얇은 신경망을 갈기갈기 난도질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식칼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자신의 왼쪽 손목에 천천히 가져다 대었다. 피부에 닿는 섬뜩하고 차가운 한기. 손목의 얇은 피부 아래로 요동치는 푸른 정맥 위로 칼날을 단 1센티미터만 깊게 긋는다면, 이 모든 지옥 같은 고통과 수치심, 밤마다 이어지던 끔찍한 육체적 유린, 그리고 다가올 끔찍한 죄악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죽음이라는 도피처가 주는 달콤한 유혹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칼날이 살갗을 파고들어 붉은 피를 한 방울 맺히게 하려는 찰나, 그녀의 머릿속에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2학년 학급의 금발 머리의 15세 소년 찰리(Charlie)의 천진난만하고 무해한 미소가 강력한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자신이 이 이기적인 밀실에서 무책임하게 목숨을 끊어버리거나 도망친다면 어떻게 될까? 믹과 레이저를 비롯한 카르텔 조직원들은 그녀의 나약한 죽음을 조롱하며, 곧바로 학교로 쳐들어가 찰리를 납치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싸늘한 시체 앞에서 그 어린아이의 여린 혈관에 직접 필로폰 주사기를 꽂아 넣는 끔찍하고 가차 없는 보복을 감행할 위인들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난 몇 주간의 지옥 같은 합숙을 통해, 그들이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완벽한 악마라는 것을 뼈저리게, 온몸의 흉터로 학습한 상태였다. 이 거대한 거미줄 속에서는 죽음조차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스러운 도피처였다.
엘레나는 결국 비명을 지르며 식칼을 거실 카펫 위로 집어 던지고, 바닥에 엎드려 상처 입은 짐승처럼 오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입을 벌리고 울부짖어도 그녀의 타들어 간 목구멍에서는 쉰 바람 소리만 새어 나올 뿐, 눈물조차 메말라버려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밤낮없이 방독면을 쓰고 제조 과정에서 들이마셨던 유독성 화학 가스는 그녀의 안구 건조를 유발하고 눈물샘마저 완전히 태워버린 듯했다. 주말의 시간은 마치 끈적끈적한 검은 타르처럼 끔찍하게 느리고 숨 막히게 흘러갔다. 그녀는 바닥에 웅크린 채 자신이 교단에 처음 섰던 그 눈부시던 날의 순수했던 기억과,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겠다며 다짐했던 교사로서의 맹세를 떠올리려 필사적으로 애썼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기억의 조각들은 천장에서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환풍기 소리와 카펫에 찌든 역겨운 암모니아 냄새에 잡아먹혀, 이제는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 나버린 지 오래였다.
일요일 저녁, 창밖으로 지는 호주의 핏빛 노을이 굳게 닫힌 검은색 암막 커튼 틈새를 뚫고 새어 들어와 마약 제조 장비가 널브러진 거실 바닥에 섬뜩한 붉은 선을 그었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저녁에 이르기까지 단 1초도 눈을 붙이지 못한 엘레나의 정신은, 이제 이성을 상실하고 완전한 환각과 환청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그녀의 왼쪽 허벅지에 믹이 쇠꼬챙이로 지져버린 끔찍한 화상 흉터에서는 누런 진물이 흐르고 욱신거리는 염증의 고통이 전신을 타고 올라왔지만, 그녀는 서랍에 있는 진통제조차 입에 삼키지 않았다. 타들어 가는 듯한 생생한 육체적 고통만이 자신이 완전히 미쳐버리거나 혼절하는 것을 막아주는 유일하고도 잔혹한 닻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죽은 듯이 고요하던 그녀의 낡은 스마트폰이 테이블 위에서 미친 듯이 윙윙거리며 진동을 시작했다. 화면에 뜬 글자는 ‘발신자 표시 제한’. 엘레나의 심장이 멎을 듯이 요동치며 혈관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화상 입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통화 연결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로 믹의 뱀처럼 차갑고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고막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주말은 편안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나, 엘레나 선생님? 훌륭하고 헌신적인 역사 교사답게, 내일 아침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줄 ‘특별한 화학 교보재’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겠지?”
믹의 조롱 섞인 음성 뒤로는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의 거친 배기음과 다른 문신투성이 조직원들의 야만적이고 상스러운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겹쳐서 들려왔다. 엘레나는 극도의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인 채 단 한마디의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침묵을 즐기듯, 믹이 낮게 킬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침묵은 완벽한 긍정으로 받아들이지. 아, 혹시라도 그 똑똑한 머리로 멍청한 자살이나 도주 같은 쓰레기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 집 앞 도로 맞은편에 주차된 짙은 틴팅의 회색 밴 보이지? 우리 애들이 교대해가며 주말 내내 네 집구석을 철통같이 지켜주고 있었거든. 만약 네가 그 스무 개의 마약 봉지들을 변기통에 쏟아버리거나, 식칼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와 도망칠 궁리를 한다면, 내일 아침 파라마타 고등학교 운동장에는 아주 끔찍하고 질펀한 피바람이 불게 될 거야. 네가 그토록 아끼는 사랑스러운 제자들의 목숨 줄은 전적으로 내일 아침 네 떨리는 손끝에 달려있다는 걸 명심해. 내일 아침 학교에서 멋진 결과를 기대하지. 이따 보자고, 나의 충실한 파트너.”
뚝.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엘레나는 발작을 일으키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암막 커튼의 끄트머리를 아주 미세하게, 벌레처럼 들추고 창밖의 어두운 도로를 내다보았다. 믹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로 도로 건너편 가로등 아래, 짙은 선팅을 하여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낡은 회색 밴 한 대가 조용히 시동을 켠 채 주차되어 있었다. 차창 너머로 조직원이 피우는 듯한 담배 불빛이 붉게 번쩍이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카르텔의 거미줄 같은 감시망은 그녀의 숨통을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1초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조이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철저히 사회적으로, 물리적으로 고립시키고,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강철 거미줄 한가운데에 그녀를 벌거벗겨 매달아 놓은 것이다.
엘레나는 바닥에 흩어진 형형색색의 마약 봉지 스무 개와, 카펫에 꽂혀 있는 식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도망칠 곳도 없었다. 경찰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공권력마저 카르텔의 뇌물을 먹고 충실한 개가 되어버린 이 썩어빠지고 타락한 세상에서, 연약한 여교사인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앙상하게 마른 두 손과, 사람의 살을 찢을 수 있는 날카로운 쇳조각 하나뿐이었다. 엘레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식칼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출근용 검은색 가죽 가방 깊숙한 안주머니에 조심스럽게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 위로, 찰리를 비롯한 무고한 아이들의 영혼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일 스무 개의 메스암페타민 봉지를 차곡차곡, 마치 유언장을 쓰듯 담아 넣었다. 가방의 묵직한 지퍼를 닫는 그녀의 퀭한 눈동자 속에는 이미 교사로서의 인간적인 이성이나 도덕성 대신, 극한의 벼랑 끝에 몰린 피를 갈구하는 야차의 서늘하고 푸른 광기만이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모든 것을 파괴할 파멸의 월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억수같이 내린 비로 시드니 파라마타 외곽의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지만, 거울 앞에 선 엘레나의 온몸은 극도의 긴장으로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두꺼운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를 얼굴과 목, 손등에 겹겹이 떡칠하듯 덧발라, 며칠 밤을 새워 창백하게 핏기가 가신 피부와 조직원들에게 유린당한 검푸른 멍 자국들을 필사적으로 감추었다. 단정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그 안에 무시무시한 물건들을 품은 검은색 가죽 가방의 끈을 부여잡은 그녀의 손마디는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려 있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처럼 현관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그녀의 등 뒤로는 믹의 수하들이 탑승한 시동 걸린 회색 밴이 미끄러지듯 다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승냥이 떼처럼 그녀의 뒤를 집요하게 밟기 시작했다. 카르텔은 이 나약한 사냥개가 임무를 완수하고 학교를 마약의 늪으로 빠뜨리는 그 결정적인 순간까지 결코 감시의 눈초리와 협박의 굴레를 거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파라마타 고등학교로 향하는 20분의 짧은 도보 출근길. 평소라면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이어폰으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팝송을 흥얼거리고, 오늘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나눌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즐겁게 떠올렸을 그 평범한 일상의 길이, 오늘 엘레나에게는 목이 잘릴 단두대를 향해 걸어가는 사형수의 마지막 핏빛 행진보다 천 배는 더 무겁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교문에 들어서자, 천진난만한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 장난을 치고 크게 웃고 떠드는 교복 입은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눈부시게 찬란하고 무해한 청춘의 풍경은, 오히려 더러운 범죄의 늪에 빠진 엘레나의 심장을 예리한 유리 조각으로 수십 번 난도질하는 듯한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세상에, 내가 지금 저 맑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가방에 약을 싸 들고 온 거지? 저렇게 순수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의 영혼을 카르텔의 더러운 주사기 끝에 헐값으로 팔아넘기려 하다니. 나는 악마보다 더한 쓰레기다.’
엘레나의 텅 빈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역겨움과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이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 올라왔다. 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참으며, 귀신을 본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쫓기듯 교무실에 들어섰다. 일찍 출근한 몇몇 동료 교사들이 주말을 어떻게 보냈냐며 평소처럼 가벼운 인사와 커피를 건넸지만, 엘레나는 입술을 깨물며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단 한마디의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온 신경은 오직 오른쪽 어깨에 짓누르듯 매달린 가방의 묵직한 무게에 모든 것이 쏠려 있었다. 가방 안에는 학생들의 미래를 단숨에 박살 내고 영원한 노예로 만들 맹독성 메스암페타민 스무 봉지와, 사람의 살과 뼈를 한 번에 갈라버릴 수 있는 30센티미터 길이의 정육용 식칼이 기괴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믹은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이 아침 운동장 조회에 나간 그 짧은 틈을 타 복도의 사물함에 마약을 몰래 뿌리라고 지시했다. 교무실 벽에 걸린 아날로그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오전 8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교시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단 15분. 그녀의 영혼이 영원히 타락할 것인가, 아니면 피를 흘릴 것인가를 결정지을 운명의 카운트다운이 무자비하게 시작된 것이다. 엘레나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가방을 꽉 움켜쥐고 복도로 나섰다.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등 뒤 교문 밖에서 느껴지는 카르텔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총구가 그녀의 척추를 무자비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아침 조회 종이 울리기 직전이라 복도에는 아직 운동장으로 나가지 않은 몇몇 학생들이 시끄럽게 서성이고 있었다. 엘레나는 벽에 바짝 붙어 창백한 유령처럼 소리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한 곳은 3층에 위치한 2학년 전용 복도. 그녀가 직접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개인 사물함이 낡은 철제 캐비닛 형태로 길게 일렬로 늘어선 그곳은, 그녀에게 있어 이 넓은 학교 건물에서 가장 애정이 깃들고 학생들과 소통하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사물함 문짝마다 아이들이 개성 있게 붙여놓은 하이틴 록 밴드의 사진, 지역 럭비팀의 로고 스티커, 그리고 유치한 낙서들이 흉기처럼 그녀의 시야에 박혀왔다. 엘레나가 카르텔의 끔찍한 첫 번째 타깃으로 지정한 것은 복도 맨 끝,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구석에 위치한 사물함이었다. 그녀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며 심호흡을 한 뒤, 떨리는 두 손으로 가방 지퍼를 아주 천천히 열었다. 어두운 가방 속에서 형형색색의 작은 마약 봉지들이 마치 똬리를 튼 독사 떼처럼 섬뜩한 자태를 드러냈다. 그것을 집어 들어 사물함 환기구 틈새로 밀어 넣으려는 그 결정적인 순간, 누군가 그녀의 트렌치코트 소매를 뒤에서 가볍게 당겼다.
“선생님! 매카시 선생님!”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은 맑고 경쾌한 소년의 목소리. 엘레나는 마치 고압 전류에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가방을 등 뒤로 숨기고 뒤를 돌아보았다. 금발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코에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소년. 그는 바로 찰리였다. 사채업자 믹이 그녀의 집을 점거하고 협박할 때마다 그녀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인질로 삼았던 이름, 그녀가 2학년 학생들 중 가장 아끼고 바른길로 인도하려 노력했던 그 제자였다. 찰리의 작은 두 손에는 주말 동안 정성스럽게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접어온 역사 과제물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 주말 동안 내주신 제1차 세계대전 참호전에 대한 리포트 다 썼어요! 제가 우리 반에서 제일 먼저 제출하는 거 맞죠? 칭찬해 주세요!” 찰리는 자신이 해낸 과제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듯 엘레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해맑게 미소 지었다.
그 흠 없이 순수하고 투명한 아이의 미소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엘레나는 가슴을 육중한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아찔해지며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무릎이 꺾일 뻔했다. ‘이 아이의 사물함에, 이 착한 아이의 코트 주머니에 그 더러운 화학 쓰레기를 집어넣으라고? 이 아이가 중독의 환각에 빠져 길바닥에서 거품을 물고 쓰레기처럼 죽어가는 꼴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라고? 내가 그런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야 한다고?’
엘레나는 황급히 등 뒤로 숨긴 가방의 지퍼를 거칠게 닫아버리며 뒤돌아섰다.
“어… 그래, 찰리. 아주 잘했구나. 정말 훌륭해. 선생님이 나중에 꼼꼼히 읽어볼게.”
그녀의 대답은 형편없이 떨리고 공포로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찰리는 엘레나의 비정상적으로 창백한 얼굴과 이마에 맺힌 굵은 식은땀을 보고, 해맑던 표정을 지우며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어디 많이 아프세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요. 입술도 파랗고요. 지금 당장 저랑 양호실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아이의 그 한없이 진심 어린 걱정과 따뜻한 배려는, 이미 썩어 문드러진 엘레나의 남은 양심을 가장 무참하고 예리하게 도륙하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정신적 고문이었다.
“아니야, 찰리. 선생님은 괜찮아. 그냥 주말에 잠을 좀 못 자고 아침을 거르고 와서 어지러운 것뿐이야.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자, 이제 빨리 운동장 조회하러 나가렴. 곧 종이 칠 거야. 지각하겠다.”
엘레나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이며 찰리의 작은 등을 교실 밖으로 부드럽게 떠밀었다.
“네, 선생님! 이따 수업 시간에 봬요!”
찰리가 아무 의심 없이 해맑게 손을 흔들며 복도 끝 계단으로 사라지는 그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엘레나는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바닥으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그녀의 오른손은 닫힌 가방 안에서 차가운 식칼의 손잡이를 손바닥에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부서져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카르텔의 더러운 노예로 살아남아 저 천사 같은 아이들의 목숨과 영혼을 악마의 아가리에 제물로 던져줄 것인가. 아니면 이 끔찍한 연쇄 지옥을 끝내기 위해 자신의 손에 기꺼이 피를 묻히고 짐승들의 심장에 칼을 꽂을 것인가.
오전 8시 55분. 기어이 운동장 조회를 알리는 길고 날카로운 예비 종이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고, 복도를 서성이던 모든 학생과 교사들이 운동장과 체육관으로 완전히 빠져나갔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3층 복도에는 칠흑 같은 적막과 죽음의 고요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오직 바닥에 주저앉은 엘레나의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만이 공허한 복도 벽을 부딪치며 메아리치고 있었다. 믹이 지시한 1교시 시작 전이라는 최후의 기한까지 남은 시간은 단 5분. 엘레나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우고, 다시 찰리의 사물함 앞에 우뚝 섰다. 그녀의 초점 잃은 시선은 철제 캐비닛에 붙은 ‘찰리 토마스’라는 이름표에 끈적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징-. 그 순간, 트렌치코트 안주머니에서 미세하지만 뼈를 울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믹이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화면을 확인한 엘레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간이 다 되어간다, 엘레나 선생. 멍청한 짓 하지 말고 똑똑하게 행동해. 학교 건너편 회색 밴 안에서 쌍안경으로 네 교실 창문을 전부 지켜보고 있으니까. 약을 다 뿌렸으면 창가로 와서 커튼을 두 번 흔들어. 만약 종이 칠 때까지 신호가 없으면, 내 애들이 당장 무기를 들고 정문으로 진입할 거다.]
그 협박 문자를 확인한 순간, 엘레나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무언가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이성의 끈이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끊어져 버렸다. 그것은 공포에 질린 채 떨고 있던 나약한 소시민의 한계를 넘어선, 극한의 분노와 짐승 같은 원초적인 생존 본능이 뒤엉킨 핏빛 각성이었다. ‘그래, 놈들은 결코 나를 살려주지도, 놓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이 사물함에 마약을 뿌려 기한을 맞춘다고 해도, 악마들은 내일은 더 많은 양의 마약을 다른 학교에까지 퍼뜨리라는 더 끔찍한 요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단물과 영혼이 모두 빨아먹히면 시외의 돼지 농장 분쇄기에 산 채로 던져져 쓰레기처럼 버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이 아이들 역시, 카르텔의 영원한 돈줄이 되어 뇌가 녹아내리는 평생의 생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되겠지. 내가 살기 위해 내 새끼들을 죽일 수는 없다.
엘레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방의 지퍼를 끝까지 열어젖혔다. 그녀의 왼손은 짐승의 내장처럼 징그럽게 모여있는 독사 같은 마약 봉지 무더기를 움켜쥐었고, 오른손은 서늘한 살기를 내뿜는 30센티미터 길이의 거대한 정육용 식칼 손잡이를 핏줄이 터지도록 꽉 움켜쥐었다. 가방에서 뽑혀 나온 식칼의 무자비한 칼날이 복도 창문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을 받아, 마치 피를 요구하듯 섬뜩하고 날카롭게 번쩍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두려움에 떨며 빚쟁이들에게 자비를 구하던 나약한 역사 교사의 것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려 더 이상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부상 당한 짐승의 눈빛, 카르텔의 폭력이 직접 잉태하고 길러낸 가장 잔혹한 괴물의 눈빛으로 완벽하게 변모해 있었다.
이성을 잃고 짐승들에게 굴복하여 무고한 아이들을 끔찍한 파멸로 몰아넣는 악마의 충실한 하수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 더러운 마약 가방을 창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식칼을 트렌치코트 자락에 숨긴 채 교문 밖 회색 밴 안에서 쌍안경을 들고 낄낄거리고 있을 믹과 조직원들의 목줄을 향해 자살에 가까운 마지막 핏빛 돌격을 감행할 것인가. 심장 박동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쾅쾅거리며 복도를 울려 퍼졌다. 엘레나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식칼을 쥔 손등에는 분노의 핏대가 터질 듯이 솟아올랐다. 이제 뒤로 물러설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선택의 시간, 엘레나와 카르텔, 그리고 아이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핏빛 톱니바퀴가 굉음을 내며 거칠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 당신의 선택은? (1차 분기점)
엘레나와 그녀의 무고한 제자들의 운명을 결정할 마지막 선택의 기로입니다. 당신은 어떤 길을 걷겠습니까?
👉 [선택 1] 공포에 굴복하여 아이들의 사물함에 마약을 넣고 카르텔의 완벽한 사냥개가 된다.
👉 [선택 2] 가방을 내던지고 식칼을 쥔 채 밖으로 나가 믹을 향해 최후의 반격을 시도한다. (무료)
(※ 선택하신 분기점의 다음 화를 결제하시면 엘레의 잔혹한 운명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