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선택의 문
폐가스 충전소의 금이 간 콘크리트 벽면 틈새를 타고 스며드는 새벽 안개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오물 냄새로 가득했다. 자밀라는 녹슨 철파이프를 쥔 손을 덜덜 떨며,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들의 거친 구두 굽 소리를 들었다. 가죽 장갑을 낀 사내들의 손에서 권총이 장전되는 둔탁한 금속음이 들릴 때마다, 그녀의 심장은 밑바닥까지 얼어붙다 못해 멈추는 것만 같았다. 5-2화의 지옥 같던 안가 대기실에서 사내들의 술상 위로 던져져 온몸의 나체를 유린당하고, 부러진 손가락으로 그들의 마약 자금을 세탁해야 했던 끔찍한 기억들이 척추를 타고 생생한 공포가 되어 흘러내렸다.
“어이, 거기 숨어있는 거 다 안다. 법대 수석 장학생 누님치고는 대가리가 안 돌아가네. 핏자국을 이렇게 황무지 위에 길게 내놓고 기어가면 우리가 모를 줄 알았어? 얌전히 기어 나오면 목숨줄은 붙여주마.”
바크티야르의 하급 킬러인 아스란의 목소리가 모퉁이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사내들의 군화발 소리가 얼어붙은 자갈을 밟으며 서서히 좁혀오는 순간, 자밀라의 붉게 충혈된 시야에 사방이 깨진 시멘트 벽면과 그 위로 비치는 자신의 처참한 몰골이 들어왔다. 단 한 조각의 성한 옷가지도 없이 더러운 모포 한 장만 걸친 알몸, 이빨 자국과 담뱃불 흉터로 뒤덮인 허벅지, 그리고 옆에서 패혈증 고열로 숨을 헐떡이며 의식을 잃어가는 어린 남동생 일리야스의 짓물러 터진 무릎이 보였다.
현실은 결코 판타지가 아니었다. 여기서 철파이프 하나를 휘두르며 저 장전된 무기를 쥔 사내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기적 따윈 유료 소설이라 해도 일어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반항에 실패했을 때, 보스 바크티야르가 달구어진 쇠붙이로 자신과 동생의 살점을 지지고 산 채로 사지를 토막 내며 비명을 지르게 만들 그 생지옥의 보복 환영이 자밀라의 부러진 손가락 관절을 완벽하게 마비시켜 왔다.
여기에 매일 밤 강제로 주입당했던 아프간산 헤로인의 금단증상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머릿속이 하얗게 마비되는 동시에 전신의 뼈마디를 무디게 짓개는 듯한 극심한 오한과 구토감이 밀려와 당장이라도 바닥에 쓰러져 침을 흘릴 것만 같았다. 판타지 소설의 여전사처럼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생리적 고통이 아니었다. 척추가 뒤틀리고 온몸의 신경이 약물을 달라고 울부짖는 지독한 중독의 사슬이 그녀의 발목을 무겁게 짓눌렀다.
“누나…… 그냥…… 나 버리고 혼자 가…… 제발…….”
일리야스가 괴사해 가는 무릎을 움켜쥔 채 피가 섞인 신음을 뱉었다. 소년의 이마는 이미 사람의 체온을 넘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상처에서 풍기는 악취가 새벽 안개 속으로 번져나갔다. 동생의 마지막 애원마저 새벽의 모래바람 속으로 흩어지는 순간, 사내들의 서치라이트 강력한 불빛이 콘크리트 모퉁이를 돌며 자밀라의 머리채 위로 잔인하게 쏟아졌다. 아스란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뽑아 든 권총의 총구가 그녀의 하얀 이마를 정확하게 겨누었다.
“이야, 우리 장학생 누님 꼴이 아주 볼만하네. 밤새 형제들 밑에서 기어 다닐 때보다 더 걸레짝이 됐잖아? 자, 선택해. 그 고철 덩어리 들고 개기다가 동생놈 머리통이 날아가는 걸 볼래, 아니면 얌전히 손 들고 우리 처소로 기어 들어와서 살려달라고 빌래?”
지독하리만큼 차가운 알마티의 황무지 한복판, 탈출과 완벽한 파멸의 경계선에서 자밀라의 뇌리는 터질 듯이 회전했다. 이대로 무기를 내려놓고 저 짐승들의 발밑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 평생을 ‘낡고 지저분한 가구’처럼 배설구로 연명하며 목숨이라도 붙잡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부러진 손가락뼈가 으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철파이프를 휘둘러 비참하고 처절한 도주를 감행할 것인가. 공권력조차 부패해 믿을 수 없는 이 고립무원의 지옥에서, 그녀의 선택에 따라 이 얼어붙은 대지 위에 새겨질 인과관계의 최종 종착지가 완전히 갈라지려 하고 있었다. 사내들의 구두 굽이 자갈을 짓밟는 소리가 귓전을 날카롭게 때렸다.
당신의 선택은? (1차 분기점)
사내들의 권총 총구가 코앞까지 들이닥친 절체절명의 새벽. 녹슨 철파이프를 쥔 자밀라의 선택에 따라 이후 연재될 서사의 계보가 완전히 분리됩니다.
[선택 A] 도망치다 붙잡혀 마주할 카르텔의 잔혹한 보복이 두려워, 철파이프를 내려놓고 다시 바크티야르의 성노예 밀실로 제 발로 기어 들어간다.
[선택 B] 이대로 끌려가 낡은 가구처럼 썩어 죽느니 차라리 황무지의 죽겠다는 독기로, 아스란의 관자놀이를 향해 철파이프를 사정없이 휘두른다.
(※ 선택하신 분기점의 다음 화를 결제하시면 자밀라의 잔혹한 운명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