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잔혹사 카자흐스탄편#001] 알마티의 얼어붙은 땅 – 제2화: 족쇄(Шок) (실제 사건 파일 기반 각색)

제2화: 족쇄(Шок)

 

 지하 안가의 부서진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알마티의 새벽 공기는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렸다. 단 한 조각의 성한 옷가지도 없이, 사내들이 던져둔 더러운 모포 한 장만을 간신히 몸에 걸친 자밀라는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동생 일리야스의 팔을 어깨에 강제로 걸쳐멨다. 무릎뼈가 부서진 일리야스의 발끝이 자갈 섞인 흙바닥을 긁을 때마다 서리 가득한 황무지 위로 끈적한 선혈이 길게 궤적을 그렸다.

“누나…… 나 두고 가…… 어차피 나 때문에 멀리 못 가. 바크티야르 그 인간들, 도망치다 잡힌 애들 가죽을 벗기는 놈들이야…….”

 일리야스가 덜덜 떨리는 입술로 각혈을 뱉어내며 애원했다. 하지만 자밀라는 대답하는 대신 터진 입술을 피가 나도록 악물었다. 귀청을 찢는 비명과 함께 자신의 지성과 존엄이 말단 킬러들의 군화발 아래 짓밟히던 그 수많은 밤 동안, 그녀의 나약했던 감정은 이미 타살당한 지 오래였다. 지금 자밀라의 가느다란 뼈마디를 움직이는 것은 혈육에 대한 단순한 연민이 아니었다. 이 얼어붙은 구덩이 속에서 사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냄새나는 가구’처럼 처박혀 서서히 배설구로 썩어 죽지 않겠다는, 오직 생존을 향한 악독한 본능뿐이었다.

스스슥, 스스슥.

 자밀라는 전신의 살점이 비명을 지르는 극통을 참아내며 칠흑 같은 중앙아시아의 모래 황무지를 향해 기어 나가기 시작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법전을 넘기던 하얗고 고운 손가락은 이미 손톱이 통째로 뒤집혀 검붉은 진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거친 자갈밭을 움켜쥐는 힘을 늦추지 않았다. 날카로운 덤불 가시와 얼어붙은 바위 파편들이 그녀의 맨 무릎과 얇은 허벅지 피부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사내들에게 유린당해 시빨간 피멍과 이빨 자국으로 가득했던 나체 위로, 이제는 대지의 혹독한 겨울바람이 피비린내 나는 새로운 낙인을 잔인하게 새겨 넣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가슴팍이 찢어지는 듯한 거친 쇳소리의 숨소리가 새벽의 지평선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뒤를 돌아보면 안가 창문 너머로 사내들이 밤새도록 그녀의 얼굴 위에 들이붓고 조롱했던 싸구려 보드카의 역한 냄새와 시큼한 땀 냄새가 바람을 타고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았다. 그녀는 핏발 선 눈으로 오직 앞만 보며 질질 몸을 끌었다. 돌아보는 순간, 다시 그 어두운 방 구석의 배설구로 돌아가 영원히 인간의 형상을 잃어버릴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황량한 모래 지평선 너머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 땅에서 빛이 들어온다는 것은 구원이 아닌 최악의 재앙을 의미했다. 어둠이라는 유일한 장막이 걷히는 순간, 곧 잠에서 깨어날 바크티야르와 그의 사냥개들이 자밀라가 황무지 위에 길게 남긴 핏자국과 진물의 흔적을 따라 미친 듯이 추격해 올 것이 분명했다.

“컥…… 쿨럭!”

 일리야스가 쇼크로 거품을 물며 자밀라의 어깨 너머로 완전히 고꾸라졌다. 소년의 이마는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부패해가는 무릎의 악취가 새벽 안개 속으로 퍼져나갔다. 자밀라 역시 이미 인간의 체력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상태였다. 부러진 손목은 시커멓게 부어올라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매일 밤 강제로 주입당했던 불법 약물의 금단증상까지 겹쳐 전신의 뼈마디가 도끼로 찍히는 듯한 오한과 발작이 밀려왔다. 힘겹게 황무지를 기어가던 그녀의 붉게 충혈된 시야에, 멀리 도로변에 버려진 폐쇄된 가스 충전소 건물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자밀라는 마지막 남은 신경줄을 쥐어짜 일리야스의 몸을 이끌고 낡은 콘크리트 벽 뒤편의 오물 가득한 구석자리로 간신히 숨어들었다.

 바로 그 순간, 멀리 안가가 있던 방향에서 거친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대형 픽업트럭의 배기음 굉음이 황량한 모래바람을 찢으며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추격이었다. 잠에서 깬 사내들이 마침내 밀실 구석의 걸레짝 같던 인형이 사라진 것을 눈치챈 것이다. 트럭의 강력한 서치라이트 불빛이 새벽의 안개를 뚫고 자밀라가 숨어있는 폐건물의 금이 간 벽면을 잔인하게 훑고 지나갔다.

끼이이익— 쾅!

 거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대형 트럭이 가스 충전소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며 밤새도록 그녀의 몸뚱이를 난도질했던 말단 수색책 사내들의 거친 구두 굽 소리와 욕설이 콘크리트 벽 너머로 둔탁하게 울렸다.

“이 걸레짝 같은 년이 감히 누굴 속이고 튀어? 바닥에 피가 흥건하잖아. 잡히면 사지를 찢어 발겨서 사냥개 먹이로 던져버린다.”

 사내들의 군화 소리가 자밀라가 숨은 벽모퉁이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철컥하며 장전되는 총기류의 금속음이 새벽 공기를 서늘하게 갈랐다. 일리야스는 이미 극도의 두려움과 고열에 질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잡히면 가축보다 못한 도살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처절한 수탈이 기다릴 뿐이었다.

 자밀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던, 묵직하고 녹슨 철 파이프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상처있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피가 배어 나와 차가운 철제 파이프를 붉게 적셨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깨진 시멘트 벽면에 비치는 자신의 망가진 나체를 보며 영혼을 타살당했던 수치심의 기억들이, 마침내 사내들의 대가리를 통째로 부숴버리겠다는 중앙아시아의 태양보다 더 잔혹한 독기로 화해 타오르기 시작했다. 현실은 판타지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짐승이 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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