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블루 벨벳의 늪, 해체되는 영혼
밀라노 패션 지구의 화려한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된 32층 최고급 펜트하우스. 사방을 둘러싼 강화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야경은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찬란했지만, 카밀라에게 그곳은 사방이 금빛 철창으로 도금된 무덤에 불과했다. 외부의 신선한 공기는 단 한 줌도 허용하지 않는 유리벽은, 안쪽에서 아무리 손바닥이 짓개어지도록 두드려도 서늘한 침묵만을 뱉어낼 뿐이었다.
“카밀라, 이번 주 프랑스 남부 리조트로 발송할 실크 원단 위장 송장이야. 4번 항목 수량이 안 맞잖아.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암호화 단말기를 만지작거리던 프란체스카의 날카로운 음성이 방 안의 정적을 찢었다. 카밀라는 초점을 잃어버린 푸른 눈동자를 간신히 움직여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디자이너로서 정교한 스케치를 채우던 그녀의 수재로서의 두뇌는, 이제 숫자들이 뱀처럼 뒤엉켜 시야를 어지럽히는 자금 세탁 프로그램의 노예로 전락해 있었다.
매일 아침 사채 조직의 브로커들이 들이미는 유령 의류 법인의 가공 서류들. 카밀라는 이제 그 추악한 범죄 매커니즘의 최전선에서 바지사장 노릇을 하며 껍데기만 남은 채 고착되어 가고 있었다.
“죄송해요… 머리가 너무 깨질 것 같아서 그래요.”
카밀라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자신의 사지를 부르르 떨었다. 약 기운이 일시적으로 풀리는 이 새벽 시간은 그녀에게 가장 지독한 형벌이었다. 온몸의 뼈마디를 망치로 부수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고, 피부 밑으로 수만 마리의 벌레가 살을 파먹는 듯한 극심한 금단 증상이 그녀의 정신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프란체스카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은쟁반을 밀어주었다. 그 위에는 이제 카밀라의 산소호흡기나 다름없게 된 신종 액상 마약 ‘블루 벨벳’ 주사기와 보드카가 놓여 있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버티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니까. 루카 님이 주시는 이 은혜가 없으면 넌 당장 저 길거리에서 기어 다니는 쓰레기에 불과해.”
카밀라는 프란체스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떨리는 손으로 주사기를 낚아채 자신의 가녀린 팔뚝에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차가운 액체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순간, 기적처럼 사지를 찢던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뇌세포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환각의 안개가 피어올랐다. 수치심도, 모욕감도, 마랑고니 수석 졸업의 꿈도,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도 모두 그 파란 안개 속으로 부드럽게 용해(溶解)되어 사라졌다. 영혼이 완전히 거세된 채 미소를 짓는 카밀라의 모습은, 주인의 손짓에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마네킹과 같았다.
밤 11시가 되자 펜트하우스의 육중한 문이 열리며 루카와 그의 비호 세력인 밀라노 고위 정객들이 들이닥쳤다. 오늘의 손님은 국경 통과 마약 단속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거액의 뒷돈을 챙기는 국가경찰청 고위 간부와 부패한 세관 수사관들이었다.
“루카, 이 아이가 그 유명한 마랑고니의 천재 카밀라인가? 과연 소문대로 몸매와 눈빛이 아주 묘하군.”
비만 체형의 세관장이 음탕한 미소를 지으며 카밀라의 턱을 거칠게 치켜올렸다. 약 기운에 취해 눈동자가 풀린 카밀라는 거부하는 대신, 본능적으로 사내의 가슴팍으로 파고들며 교성을 흘렸다. 카르텔의 철저한 가스라이팅과 반복된 유린은 그녀의 신체 조건 반사를 완벽하게 노예의 그것으로 개조해 놓은 상태였다.
루카가 만족스러운 듯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손짓하자, 거실의 가학적인 붉은 조명이 켜졌다. 천장에 매달린 카메라는 다크웹 스트리밍 서버를 향해 실시간으로 불빛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카밀라의 얇은 옷가지를 단숨에 찢어발겼다. 그들의 가학적인 손길이 골반에 새겨진 카모라 카르텔의 낙인 흉터 위를 잔인하게 짓이겼고, 담배꽁초의 뜨거운 불씨가 그녀의 새하얗던 등 가죽 위에서 지져질 때마다 카밀라는 환각 속에서 비명 대신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맨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을 약물의 힘을 빌려 쾌락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지독한 세뇌의 결과였다.
사내들은 그녀의 목에 두꺼운 가죽 개줄을 채운 뒤, 양주로 흥건하게 젖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자신들의 구두를 핥게 만들었다. 화면 너머로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전하는 다크웹의 구매자들은 비트코인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카르텔의 장부를 채워주었다.
새벽 4시. 포식자들이 배설을 끝내고 취해 쓰러진 거실 바닥에서 카밀라는 멍과 상처로 얼룩진 나신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코를 찌르는 정액과 술 냄새 사이로, 문득 약 기운이 미세하게 걷히며 아주 찰나의 이성이 돌아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마른 뼈대 위로 푸르스름하게 번진 피멍, 주삿바늘 자국으로 가득한 팔뚝, 그리고 영혼이 완전히 해체되어 가는 푸른 눈동자.
‘나… 도망쳐야 해. 경찰에… 고향으로 가야 해….’
카밀라는 바닥을 기어 테이블 위에 놓인 루카의 암호화 단말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대기실 문이 열리며 안토니오가 거구의 신체를 이끌고 들어왔다. 안토니오는 카밀라의 손이 단말기에 닿기도 전에 그녀의 머리채를 거칠게 휘잡아 소파 벽면으로 쾅-! 내리쳤다.
“이 시발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약이 부족한가 보지?”
안토니오는 주머니에서 고농도 블루 벨벳 주사기를 꺼내 카밀라의 허벅지에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차가운 액체가 근육을 타고 스며드는 순간, 방금 전 아주 미세하게 피어올랐던 저항의 불씨는 잔인하게 압살당했다.
카밀라의 고개가 꺾이며 다시 파란 안갯속으로 의식이 수직 낙하했다. 법도, 공권력도 이 완벽하게 격리된 금빛 무덤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이미 밀라노의 핵심 권력자들이 카밀라의 육체를 공유하며 루카와 공범의 사슬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뼛속까지 카르텔의 자금줄이자 성 노예로 영원히 함몰되며, 빠져나올 수 없는 파멸의 수렁 속으로 완전하게 침전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