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니아 잔혹사 뉴질랜드편 #001] 달콤한 초대의 그늘 — 5-2화: 맞서는 자들 (실제 사건 파일 기반 각색)

5-2화: 맞서는 자들

오클랜드 중앙 경찰서.

유진, 지민, 소라. 세 사람은 경찰서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침 10시. 뉴질랜드의 하늘은 맑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라가 두툼한 서류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들어갈까?”

유진이 물었다. 소라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응.”

세 사람은 함께 경찰서 안으로 걸어갔다. 유진은 처음으로 한국의 지방 경찰서가 아닌 외국 경찰서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몇몇 경찰관들이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고, 한 명의 여성 경찰관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Can I help you?”

소라가 영어로 대답했다. 그녀의 영어는 생각보다 유창했다. 오랫동안 뉴질랜드에 살아서인지, 아니면 미리 준비를 해온 것인지.

“We need to report a crime. It’s about human trafficking, drug distribution, and sexual exploitation.”

여성 경찰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Please follow me.”

그들은 경찰서 안쪽의 작은 회의실로 안내되었다. 벽은 흰색이었고, 가운데에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유진은 그 테이블에 앉으며 자신의 심장이 너무나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곧 형사 두 명이 들어왔다. 한 명은 중년의 남성 형사였고, 다른 한 명은 젊은 여성 형사였다. 그들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I’m Detective Williams, and this is Detective Kim. She’s Korean, so she can help you if you feel more comfortable speaking in Korean.”

김 형사는 한국어로 말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최대한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기는 안전한 곳입니다.”

소라가 서류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수백 장의 서류들과 사진들, 그리고 USB 메모리들이 들어 있었다.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토니라는 한국인 남성이 운영하는 조직의 불법 대출 내역, 마약 거래 기록, 그리고 성착취 증거들입니다. 피해자는 저를 포함해서 최소 20명 이상입니다.”

형사들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진술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소라는 자신의 경험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어떻게 토니를 만났는지, 어떻게 돈을 빌렸는지, 어떻게 빚이 불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착취와 마약의 세계로 끌려들어갔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가끔 떨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저는 3년 동안 이 지옥에서 살았습니다. 토니는 저의 여권을 압수했고, 비자도 연장해 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불법 체류자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도망가면 가족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김 형사가 메모를 했다.

“그가 보관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사진과 영상은 어디에 있나요?”

“클라우드와 여러 개의 외장 하드에 분산 보관하고 있을 겁니다. 토니는 항상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다고 말했어요.”

지민이 이어서 진술했다.

지민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손이 계속 떨렸고,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기도 했다. 마약 금단 증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이야기했다.

“저는 토니의 내연녀이자 빚노예였습니다. 그는 저를 이용해서 다른 여성들을 끌어들였어요. 유진이도 그중 하나였고요. 저는… 저는 토니의 꼭두각시였습니다.”

지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진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마지막으로 유진이 진술했다.

“저는 토니에게 5천 달러를 빌렸습니다. 처음에는 이자가 없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가 붙기 시작했어요. 저는 다니엘이라는 마약 공급책에게 약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토니는 더 많은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유진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저를 협박했습니다. 제 사진과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저는 무서워서 경찰에 오지 못했어요. 하지만 소라 언니가 용기를 주었습니다.”

Detective Williams가 고개를 끄덕였다.

“You all did the right thing. This will take time, but we will investigate thoroughly.”

김 형사가 번역해 주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합니다. 당분간은 안전을 위해 보호 시설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토니가 당신들의 신고를 알게 되면 어떤 일을 할지 모르니까요.”

유진, 지민, 소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보호 시설. 그것은 곧 감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보호 시설은 오클랜드 외곽의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주택처럼 보였지만, 곳곳에 보안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CCTV, 비상벨, 그리고 24시간 대기하는 직원들.

유진은 자신에게 배정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작은 옷장. 모든 것이 깔끔했지만, 감옥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가 과연 안전한 걸까?

소라는 같은 건물의 다른 방에 있었다. 그녀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마약 금단 증상이 심해져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시설의 의사가 그녀에게 진통제를 처방해 주었다. 하지만 소라는 그 약조차 거부했다.

“더 이상은…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

유진은 소라의 의지에 놀랐다. 자신이 만약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마 약을 찾았을지도 몰랐다.

지민은 유진과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그녀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밤에 자다가 갑자기 깨어나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괜찮아, 지민아. 여긴 안전해.”

유진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지민은 유진의 품에 안겨 오랫동안 울었다.

며칠 후, 김 형사가 시설을 방문했다.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토니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고, 일부 증거물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토니 본인은 아직 체포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행방을 찾는 중입니다.”

“그가 도망갈까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저희가 공항과 항만에 그의 사진을 배포했으니, 쉽지는 않을 겁니다.”

유진은 안심할 수 없었다. 토니는 교활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경찰의 손쉽게 잡힐 사람이 아니었다.

“조심하세요. 토니는 사람을 시켜서 우리를 찾을 수도 있어요.”

김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보호 시설이 있는 겁니다. 여기에 있는 동안은 절대 안전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유진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틀 후.

밤 11시. 유진은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지민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시설 안은 조용했다. 가끔 직원들의 발소리만 들릴 뿐.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철컥.

무엇인가가 문을 따는 소리였다.

유진은 벌떡 일어났다. 귀를 기울였다. 다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더 가까이에서.

철컥, 철컥.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직원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유진은 문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잠겨 있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문이 갑자기 강하게 흔들렸다.

쿵! 쿵!

누군가 문을 발로 차고 있었다.

“유진아, 문 열어. 나야.”

낯선 목소리였다. 유진은 그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이 사람이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누구세요! 경찰 부를 거예요!”

“경찰? 너희가 경찰에 신고한 줄 몰라? 토니 형님께서 보내셨어. 문 열면 편하게 갈 수 있어. 안 열면… 힘들어질 거야.”

유진은 휴대폰을 들었다. 그런데 신호가 없었다. 와이파이도 끊겨 있었다. 누군가 시설의 통신을 차단한 것이 분명했다.

“지민아! 일어나! 지민아!”

지민이 잠에서 깨어났다.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떡해… 우리 어떻게 해?”

유진은 침대를 문 쪽으로 밀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문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이 점점 찢어져 갔다. 합판으로 된 문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복도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소라였다.

“소라 언니!”

유진은 소라의 방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자신들의 방마저 위험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문이 부서지며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체격이 컸다. 한 명은 유진을 향해 다가왔고, 다른 한 명은 지민을 향해 다가갔다.

“조용히 따라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유진은 저항했다. 발버둥 쳤다. 하지만 상대는 너무 강했다. 그녀의 팔이 비틀렸다. 아팠지만,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입이 막혔기 때문이다.

지민은 이미 기절한 상태로 끌려가고 있었다.

유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 순간, 복도에서 총소리가 났다.

빵!

“Police! Drop your weapons!”

경찰이었다. 김 형사였다. 그녀는 보호 시설 근처에서 잠복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통신이 두절되자 이상함을 느끼고 바로 달려왔다.

남자들은 놀라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명은 창문으로 뛰어내렸고, 다른 한 명은 복도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곧 다른 경찰관들에게 붙잡혔다.

유진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몸이 떨렸다. 지민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유진을 끌어안았다.

“살았구나… 우리 살았어…”

소라는 구조되었다. 그녀의 방도 공격받았지만, 소라는 욕실에 숨어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날 밤, 그들은 다른 보호 시설로 이송되었다. 더 안전하고, 더 비밀스러운 곳으로.

일주일 후.

김 형사가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토니를 체포했습니다. 공항에서 일본으로 도망가려다 검거됐어요.”

유진은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요?”

“네. 당신들의 진술과 증거물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소라는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 3년 동안의 지옥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지민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해방의 눈물이었다.

유진은 김 형사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

“당분간은 보호 시설에 있어야 합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요.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토니는 이미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으니까요.”

“그럼…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야 하니까, 일정을 조율해야 할 거예요.”

유진은 지민과 소라를 바라보았다.

“우리… 한국으로 돌아갈까?”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는 너무 추워.”

소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도… 가고 싶어. 하지만 그전에, 내가 도와야 할 사람들이 있어. 나처럼 이 일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여성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여기에 남을 거야.”

소라의 눈빛은 단호했다. 유진은 그녀에게서 예전의 화려함 대신, 더 단단한 무언가를 보았다.

“언니, 대단해요.”

“아니야. 나는 그냥…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뿐이야.”

그 후,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토니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다니엘도 함께 체포되어 7년을 선고받았다. 다른 조직원들도 각각 처벌을 받았다.

유진은 재판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부모님께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 처음에는 충격과 분노, 그리고 눈물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은 유진을 받아들였다.

“잘 돌아왔다. 딸아.”

엄마의 그 한 마디에 유진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제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지민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마약 재활 센터에 입소하여 치료를 받기로 했다. 유진은 그녀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소라는 뉴질랜드에 남아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경험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비는 그쳤다.

오클랜드의 하늘은 오랜만에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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