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잔혹사 태국편 #001] 방콕의 가짜 낙원 – 1화: 하이소의 그늘 (실제 사건 파일 기반 각색)

1화: 하이소의 그늘

방콕의 열기는 사계절 내내 식을 줄 모른다.

3월의 어느 오후, 시암 광장 근처의 고급 아파트 단지. 출라롱코른 대학교까지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이 건물은 중산층 이상의 학생들이 즐겨 찾는 주거지다. 핌은 그곳 12층에서 작은 원룸을 임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 테이블 위에 펼쳐진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의 병원비 청구서, 어머니가 빌린 사채 이자 내역, 그리고 은행에서 온 대출 연체 통지서.

몇 개월 전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핌은 방콕에서 가장 명문인 출라롱코른 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성적은 상위 10%, 교수들에게도 신뢰를 받는 우등생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방콕에서 꽤 안정적인 중산층에 속했다. 아버지는 소규모 수출입 회사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그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난달,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바뀌었다. 의사는 즉시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용은 80만 바트. 태국의 평균 월급이 1만 5천 바트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가족의 저축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버지의 회사는 몇 년째 부진했고, 그동안 가족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은행을 찾았지만, 대출은 거절당했다. 신용 등급 문제였다.

핌은 그때 처음으로 현실의 벽을 느꼈다.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녀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며칠 후, 핌은 같은 과 친구인 플로이를 만났다. 플로이는 핌의 상황을 알고 있었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핌, 너 아버지 수술비는 어떻게 되고 있어?”

“아직… 마련을 못 했어.”

“내가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는데… 들어볼래?”

핌은 플로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플로이는 주저하는 듯 잠시 멈췄다.

“혹시… ‘프라이빗 파이낸스’라는 걸 들어봤어?”

“그게 뭔데?”

“일종의… 프라이빗 대출 업체야. 은행보다 조건이 훨씬 좋아. 금리가 조금 높긴 한데, 급할 때는 정말 도움이 돼. 나도 작년에 급하게 돈이 필요했을 때 이용했거든.”

핌은 의심스러웠다. 금리가 높다는 말에 뭔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혹시… 사채 같은 거 아니야?”

“아니야. 완전 합법적인 곳이야. 방콕에서 꽤 유명한 프라이빗 금융 가문이 운영한대. 이용해 본 사람들한테 물어봐. 평판이 좋아.”

플로이는 자신 있게 말했다. 핌은 결국 그녀의 말을 믿기로 했다.

며칠 후, 플로이는 핌을 그 금융 회사의 중간 연락책에게 소개해주었다. 연락책은 세련된 정장을 입은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핌을 부드러운 말투로 맞이했다.

“핌 씨, 플로이 씨에게 많이 들었어요. 걱정 마세요. 우리는 고객의 상황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핌은 그녀의 말에 조금 안심했다.

계약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핌은 방콕 시내의 고급 오피스 건물을 방문했다.

건물 20층 전체를 사용하는 그 사무실은 호텔 로비처럼 화려했다. 대리석 바닥, 크리스탈 샹들리에, 그리고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핌은 접수대에서 안내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한 남성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30대 초반. 깔끔한 수트에 손목에는 고급 시계.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핌 씨? 저는 타닌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직접 상담을 도와드리겠습니다.”

핌은 놀랐다. 플로이가 말했던 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네… 안녕하세요.”

타닌은 그녀를 사무실 안으로 안내했다. 그의 방은 특히 컸다. 창밖으로는 방콩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핌 씨의 상황은 이미 들었습니다. 아버님 수술비가 필요하시죠?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80만 바트요.”

“알겠습니다. 저희는 최대 100만 바트까지 대출이 가능합니다. 금리는 연 15%입니다.”

15%. 은행보다는 확실히 높았다. 하지만 사채보다는 훨씬 양심적인 조건이었다. 핌은 고민했다.

“만약…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타닌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저희는 고객님의 상황에 맞게 상환 일정을 조정해드립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핌은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계약서에 서명했다.

첫 달, 핌은 정해진 이자를 냈다. 부담스러웠지만, 아버지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에 그녀는 안도했다.

하지만 두 번째 달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아버지의 회사는 결국 부도 처리되었다.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 사라졌다. 어머니는 편의점에서 시간제 일을 시작했지만, 그 수입으로는 생활비조차 부족했다.

핌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이자를 감당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타닌 씨, 이번 달 이자를 좀 미뤄주실 수 없을까요? 다음 달에 두 배로 내겠습니다.”

“핌 씨, 저희 규정상 그건 어렵습니다. 이자가 연체되면 원금에 이자가 붙어서…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핌은 점점 절망에 빠져갔다.

석 달 후, 그녀의 빚은 80만 바트에서 120만 바트로 불어나 있었다. 핌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 타닌이 다시 연락했다.

“핌 씨, 제가 좋은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습니다.”

“무슨 방법이요?”

“이번 주 금요일, 방콩 통로(Thonglor)의 프라이빗 클럽에서 VIP 파티가 열립니다. 거기서 간단한 접대를 도와주시면, 빚의 30%를 탕감해드리겠습니다.”

핌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접대. 그 단어가 주는 의미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 그런 일은 못 합니다.”

“걱정 마세요. 별거 아니에요. 그냥 분위기를 띄워주는 겁니다. 술 따르고, 웃고, 가벼운 대화 나누는 정도. 우리 고객 중에는 대학생들이 자주 이런 기회를 활용합니다. 안전합니다.”

핌은 망설였다. 하지만 빚의 압박은 점점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다.

금요일 밤.

핌은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통로 지역의 한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건물 외관은 평범했다. 아무런 간판도 없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어두운 조명, 고급 가구,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예술 작품들. 바에는 수천만 바트짜리 위스키 병들이 줄지어 있었다.

타닌이 그녀를 맞이했다.

“핌 씨, 잘 왔어요. 오늘 밤은 별거 아니에요. 긴장하지 마세요.”

그는 그녀를 클럽 안쪽의 큰 룸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남성들이 있었다. 모두 고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담배와 술잔이 들려 있었다. 그중에는 방콕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업가들도 있었다. 핌은 그들의 얼굴을 TV에서 본 기억이 났다.

“여러분, 오늘 밤을 빛내줄 핌 씨입니다. 출라롱코른 대학교 경영학과 학생이죠.”

남성들은 핌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불쾌했지만, 핌은 참았다.

술이 돌기 시작했다. 핌은 잔을 따라주고, 웃고, 가벼운 농담에 받쳐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점점 이상하게 변했다.

누군가 작은 병을 꺼냈다.

“핌 씨, 이거 한 번 해볼래? 기분 좋아져.”

핌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마약은 안 됩니다.”

남성들은 웃었다.

“마약? 이건 그냥 ‘해피 워터’야. 합법이야. 걱정 마.”

핌은 다시 거부했다. 그 순간, 타닌의 표정이 변했다.

“핌 씨, 우리가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했지? 그 대가야. 안 마실 거면… 계약대로 이자를 갚든가.”

핌은 눈을 감았다.

그녀는 잔을 들었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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