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파벨라의 지하 규칙
SUV가 요철을 넘을 때마다 루카스의 머리통이 철제 바닥에 부딪혔다. 검은 천이 머리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목 부분을 케이블 타이로 조여 놓아 숨을 들이쉴 때마다 천이 입가로 빨려 들어왔다. 발목도 같은 재질의 타이로 묶여 있었다. 플라스틱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이 차체의 진동과 함께 팬텀 페인처럼 번져갔다.
얼마나 달렸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20분일 수도 있고, 한 시간일 수도 있었다. 공포가 시간의 밀도를 찢어놓은 탓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이 상황을 부정하려 했다. 지금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사실, 이사벨라가 그 미소를 지으며 조수석에 올라탔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아이폰이 복면을 쓴 남자의 손아귀에 들려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뺨에 닿는 매트의 거친 질감과 목을 조르는 케이블 타이의 압박이 매 순간 현실을 강제로 주입했다.
차가 멈춘 것은 갑자기였다. 브레이크가 급하게 걸리며 루카스의 몸이 앞쪽으로 쏠렸다. 머리가 운전석 뒷벽에 부딪혀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엔진이 꺼지고,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세 번. 운전석, 조수석, 그리고 뒷문. 이사벨라는 차에서 내린 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자갈을 밟으며 멀어졌다.
뒷문이 열리고 거친 손이 루카스의 멱살을 잡아 차 밖으로 끌어냈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어깨가 흙바닥에 긁혔다. 통증이 쇄골을 타고 올라왔지만,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복면을 쓴 남자 둘이 그의 양팔을 잡고 질질 끌었다. 발목에 묶인 타이 때문에 발이 땅에 질질 끌렸다. 신발 밑창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돌멩이들이 바짓단 안으로 튀어 들어왔다.
공기에서 냄새가 바뀌었다. 자동차 매연과 휘발유 냄새가 사라지고, 하수구와 썩은 음식물이 뒤섞인 퀴퀴한 악취가 밀려들었다. 파벨라 특유의 냄새였다. 상파울루에서 태어나 32년을 산 루카스는 그 냄새를 알고 있었다. 도시의 가난이 수직으로 쌓여 올라간 무허가 주택군. 경찰도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구역. 이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루카스는 콘크리트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땅바닥은 차갑고 축축했다. 누군가 그의 머리에서 검은 천을 벗겨냈다. 형광등 불빛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와 루카스는 눈을 찡그렸다.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손이 묶여 있어 닦을 수 없었다.
눈이 빛에 적응하는 데는 30초쯤 걸렸다. 그가 본 첫 번째 풍경은 회색 콘크리트 벽이었다. 창문은 없었다. 방의 크기는 대략 3평 남짓. 한쪽 구석에는 녹슨 철제 프레임의 침대가 있었고, 매트리스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반대쪽 벽에는 쇠창살이 박힌 작은 통풍구가 뚫려 있었지만,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크기는 전혀 아니었다.
방 중앙에는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짧게 민 머리, 왼쪽 눈 밑으로 칼자국 같은 흉터가 세로로 길게 뻗어 있었다. 상의는 낡은 축구팀 저지를 입고 있었고, 목에는 굵은 금 체인이 걸려 있었다. 오른손에는 글록 권총을 느슨하게 쥐고 있었다.
덩치 큰 남자가 루카스의 아이폰을 꺼내 브루누에게 건넸다. 브루누는 권총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아이폰을 받아들었다. 그는 화면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Acordou, dorminhoco.”
잠꾸러기, 일어났구나.
브루누였다. 이사벨라가 SUV에 타기 전, 루카스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 하지만 이 남자가 이 공간의 주인이라는 것은 첫눈에 알 수 있었다. 말투에는 여유가 있었고, 눈빛에는 폭력을 일상처럼 소비해온 인간 특유의 무감각이 깔려 있었다.
“너 지금 많이 혼란스럽지? 이해해. 누구나 처음엔 그래.” 브루누가 의자에서 일어나 루카스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글록의 총구가 루카스의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걱정 마. 여기 규칙은 아주 간단하니까.”
그는 루카스의 아이폰을 그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덩치 큰 남자가 뒤에서 루카스의 머리채를 잡아 얼굴을 정면으로 고정시켰다. 페이스ID가 작동했는지 화면이 잠금 해제되고 홈 화면이 나타났다. 브루누는 뱅크 앱을 찾아 탭했다. 이타우 은행 앱이 열리고, 잔액이 표시되었다. 87,342헤알.
“보자… 8만 7천 헤알. 저축 계좌는 얼마지?”
브루누는 앱을 이리저리 탐색하며 저축 계좌 잔액을 찾아냈다. 45,000헤알. 이어서 투자 계좌까지. 32,000헤알. 그는 숫자를 하나하나 확인할 때마다 만족스러운 듯 혀를 찼다.
“합치면 16만 4천 정도네. 연봉 18만에 6년차 개발자치고는 꽤 모았어. 칭찬해. 진짜야.”
루카스의 몸이 경직되었다. 연봉, 직업, 경력. 이사벨라에게만 말했던 정보들이었다. 그 3주간의 대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이 남자의 귀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중요한 규칙을 설명할게.” 브루누가 루카스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장난인지 협박인지 모를 애매한 강도로. “브라질 금융법, 너도 잘 알지? Pix 이체는 하루 한도가 정해져 있어. 오늘 밤 이미 한도를 다 채웠고, 다음 한도는 내일 밤 8시에 풀려.”
그는 잠시 말을 끊고 루카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말은, 내일 밤까지 네가 살아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내일 밤에 다음 한도를 이체하고 나면, 또 다음 날 밤까지 살 수 있고. 아주 공정한 시스템이지.”
브루누가 일어서며 권총을 허리춤에 꽂았다.
“계좌가 텅 비는 날. 그날이 네 제삿날이야. 그러니까 기도해, 루카스. 네 돈이 최대한 오래 가길.”
브루누의 부하들이 루카스를 의자에 묶었다. 손목을 의자 팔걸이에 케이블 타이로 고정하고, 발목도 의자 다리에 묶었다. 덩치 큰 남자가 다시 루카스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얼굴을 정면으로 고정시켰다. 브루누가 아이폰을 루카스의 얼굴 앞에 갖다 댔다. 페이스ID 센서가 그의 안면을 읽는 동안, 루카스의 시선은 강제로 화면에 고정되었다. 앱이 열리고 이타우 은행의 이체 화면이 나타났다.
Pix 이체 화면.
브루누가 대포통장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마른 남자가 숫자를 입력했다. 이체 금액: 5,000헤알. 일일 한도 최대치였다.
“확인.”
덩치 큰 남자가 루카스의 검지를 잡아 ‘이체 확인’ 버튼 위로 강제로 밀어 올렸다. 억지로 구부려진 손가락 관절에서 통증이 번져갔다.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짧은 알림음이 울렸다. 이체 완료.
브루누는 화면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내일 또 보자.”
그들이 방에서 나가고 철문이 닫혔다. 루카스는 의자에 묶인 채로 어둠 속에 남겨졌다. 형광등이 꺼지면서 방 안은 완전한 암흑이 되었다. 통풍구 쪽에서 희미한 바깥 공기와 함께 개 짖는 소리, 먼 곳에서 울리는 삼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스마트폰을 생각했다. 지금쯤 브루누가 자신의 폰을 들고 은행 앱,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까지 전부 뒤지고 있을 것이었다. 얼굴인식으로 모든 잠금이 풀렸으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육체적 고통은 아직 견딜 만했다. 어깨 관절이 욱신거리고, 목에 케이블 타이가 조여들었던 자리가 따가웠다. 그러나 진짜 고통은 머릿속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전 재산이 하루 5,000헤알씩, 정해진 시간에, 마치 링거액이 방울방울 떨어지듯 빠져나갈 것이라는 상상. 그리고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브루누가 그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갖다 댈 것이라는 확신.
잔액: 159,342헤알.
남은 날짜: 약 32일.
32일 후면 자신은 죽는다. 그 계산이 끝나자 루카스의 입술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공기만 빠져나가는 소리였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형광등이 다시 켜졌을 때는 이미 다음 날이었다. 브루누의 부하 두 명이 들어와 루카스를 의자에서 풀어 침대에 던져놓고, 빵 한 조각과 물컵을 바닥에 놓고 나갔다. 루카스는 손목의 케이블 타이가 풀린 틈을 타 손목을 문질렀다. 피부가 벗겨져 있고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빵은 딱딱했지만 그는 끝까지 씹어 삼켰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몸을 움직이게 했다.
둘째 날 밤. 브루누가 다시 들어왔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이사벨라가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다른 옷차림이었다. 첫날의 검은 원피스 대신 청바지와 탱크톱 차림이었다. 손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고, 화면에는 다른 남자와의 데이팅 앱 대화창이 열려 있었다. 그녀는 방 구석에 선 채 벽에 기대어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하고 있었다. 루카스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사벨라.”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목이 쉬어 있었다. “왜… 왜 나야.”
이사벨라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너였을 뿐이야.”
그 말은 어떤 분노나 악의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덤덤했다. 마치 커피숍에서 ‘왜 아메리카노를 시켰냐’고 물었을 때 ‘그냥’이라고 답하는 것과 같은 무게였다. 그 무심함이 루카스의 가슴을 더 깊게 찔렀다. 그녀에게 자신은 상품이었고, 이미 팔려간 상품에 불과했다. 이제 그녀의 스마트폰에는 다음 상품이 떠 있었고, 그녀의 엄지손가락은 이미 그를 스와이프하고 있었다.
브루누가 다시 루카스의 아이폰을 꺼냈다. 덩치 큰 남자가 다시 머리채를 틀어쥐고 루카스의 얼굴을 정면으로 고정시켰다. 페이스ID 센서가 그의 안면을 스캔하는 그 짧은 순간, 루카스는 화면 속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봐야 했다.
“자, 둘째 날 시작하자.”
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얼굴을 강제로 고정당한 채 이체 화면으로 진입했다. Pix 이체로 5,000헤알이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추가로 적금 계좌에서도 이체를 시도했다. 적금은 Pix 이체 한도와 별도로 출금이 가능했기에, 10,000헤알이 추가로 빠져나갔다. 하루 만에 15,000헤알이 사라졌다.
이체가 끝난 후에도 이사벨라는 벽에 기대고 있었다. 브루누가 철문을 열고 나가자 그녀도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켜 그 뒤를 따랐다. 문을 나서기 직전,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살짝 돌려 루카스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시선이 마주치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렸고, 철문이 닫혔다.
루카스는 그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깨달았다. 그녀가 잠시 멈춘 것은 망설임 따위가 아니었다. 단지 신발 끈이 풀렸는지 확인하는 정도의, 그런 무게였다.
잔액: 144,342헤알.
남은 날짜: 더 짧아졌다.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하루하루가 똑같은 패턴으로 흘러갔다.
매일 밤 브루누가 찾아왔다. 때로는 부하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매번 같은 의식이 반복되었다. 부하가 머리채를 잡아 얼굴을 고정시키고, 브루누가 페이스ID를 통과시키고, 이체 앱으로 진입해 계좌를 털어갔다. 하루에 빠져나가는 금액은 평균 15,000헤알에서 25,000헤알 사이였다. 브루누는 루카스의 금융 포트폴리오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계좌에서 얼마를 빼낼 수 있는지, 어떤 펀드는 중도 해지 수수료가 있는지까지 세밀하게 계산해 하루하루 최대 금액을 뽑아냈다.
루카스는 그 며칠 사이에 육체적으로 급격히 쇠약해졌다. 식사는 하루 한 번, 빵과 물이 전부였다. 위생은 전혀 관리되지 않아 방 구석에 놓인 플라스틱 양동이만이 유일한 화장실이었다. 방 안은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했고, 루카스는 자신의 체취와 배설물 냄새가 섞인 공기를 마시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은 정신적 압박이었다.
매일 밤,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이체 완료’ 알림음. 그 짧은 전자음이 들릴 때마다 루카스의 심장은 멎는 듯했다. 그 소리는 단순한 금전적 손실이 아니라, 자신의 수명 카운트다운이 한 칸씩 줄어드는 소리였다.
다섯째 날 밤, 브루누가 이체를 마친 후 평소와 다른 말을 꺼냈다.
“내일이면 네 투자 계좌가 완전히 청산돼. 남은 건 월급 통장 잔액뿐.” 그가 아이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길어야 나흘 정도인가? 아니면 더 짧을 수도 있고.”
브루누는 권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금속이 콘크리트에 닿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나흘이면 한 주의 절반도 안 돼, 루카스. 주말 계획은 잡았어?”
루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목이 말라 말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할 말도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안쪽에서, 아직 눈에 익은 이타우 은행 앱의 메뉴 구조가 떠올랐다.
그는 IT 엔지니어였다. 풀스택 개발자로 6년을 일하면서 수많은 시스템을 설계하고, 버그를 수정하고, 보안 취약점을 분석했다. 은행 앱의 구조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고객센터 메뉴, 일반 민원 접수, 사고 신고,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서브메뉴들. 그중 하나는 분명히 ‘위급 상황 신고’ 탭이었다. 앱 최초 설치 시점에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뿐, 실제로 눌러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 탭을 활성화시키려면 최소한 네 번의 화면 터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네 번을 위한 단 10초조차, 지금 그에겐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철문 너머에서 브루누와 부하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사벨라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고, 그 목소리는 루카스와 데이팅 앱에서 대화할 때 썼던 그 달콤한 톤이었다. 아마도 다음 타깃이었을 것이다.
루카스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반복했다. 잔액이 6만 7천 헤알 정도 남은 상태에서, 하루 평균 2만 헤알 가까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흘. 그마저도 브루누의 추정일 뿐이었다. 내일 투자 계좌가 청산되면 마지막 남은 월급 통장에서 Pix 한도 외 추가 출금까지 모조리 털어갈 것이 분명했다.
그가 가진 유일한 희망은, 그가 IT 엔지니어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설계한 적 없는 단 한 가지 기능. 은행 앱 내부에 숨겨진 긴급 범죄 신고 모드의 존재를 브루누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통풍구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바깥세상의 소음들이 벽을 넘어 방 안으로 배어들었다. 개 짖는 소리, 어딘가에서 틀어놓은 라디오의 축구 중계 소리, 그리고 파벨라의 비포장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오토바이의 엔진음. 그 엔진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루카스는 자신에게서도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감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밤이 지나고 있었다. 여섯째 날 아침이 오고 있었다.
잔액: 67,230헤알.
남은 날짜: 나흘. 혹은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