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그림자 헝가리편 #001] 부다페스트의 잔혹한 온천 – 5-2화: 깨어진 고요

5-2화: 깨어진 고요

얼마나 지났을까?

사흘이 지났다. 아니, 나흘일 수도 있었다.

지하 3층 독방의 형광등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고, 벽에서는 물이 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채은은 침대에 앉아 벽돌의 개수를 다시 세었다. 가로 스물세 개, 세로 열여덟 개. 지난번과 똑같았다. 적어도 누군가 몰래 이 방의 벽을 바꿔치기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배식구가 열리고 쟁반이 밀려 들어왔다. 마른 빵과 물. 이번에는 빵 옆에 작은 종이컵 하나가 추가로 놓여 있었다. 종이컵 안에는 희뿌연 액체가 담겨 있었다. 수프인지, 죽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녀는 종이컵을 집어 들고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거 먹어. 영양 보충이야.”
배식구 너머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틸라가 아니었다. 다른 경비원이었다. 이틀 전부터 교대 주기가 바뀌었는지, 아틸라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경비원은 목소리가 더 젊었고, 말투가 더 거칠었다. 그러나 채은에게는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았다. 상대의 패턴을 모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정보를 수집할 기회이기도 했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채은이 배식구 너머로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대답이 돌아왔다.
“페테르. 왜?”

“그냥… 누군지 알고 싶어서요.”

또 한 번의 침묵. 그러고는 발소리가 멀어졌다. 채은은 그 발소리의 리듬을 기억했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살짝 무거운 걸음걸이. 아마도 왼쪽 다리에 오랜 부상이 있거나, 아니면 습관적으로 무게 중심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 사람이었다. 이런 작은 정보 하나하나가 언젠가 쓸모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빵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첫째, 경비원 교대가 바뀌었다. 아틸라는 지금 야간 근무만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낮 시간 동안의 감시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페테르가 맡고 있다는 뜻이었다.

둘째, 그녀가 작성한 편지가 일디코를 통해 실제로 외부로 전달되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편지가 중간에 적발되었거나 일디코가 전달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편지가 전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 가능성이 가장 두려웠다.

셋째, 이 건물에는 여전히 그녀가 모르는 빈틈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 18세기의 건물이 증축과 개조를 거듭하면서 생긴 구조적 모순, 노후화된 배수 시스템, 관리가 소홀한 구역들. 그녀는 매일 밤, 완전한 어둠 속에서 귀를 열고 이 건물이 들려주는 소리들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이틀째 되는 밤, 채은은 뜻밖의 것을 들었다.

잠을 청하지 않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그녀의 귀에, 배수구 너머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처음에는 쥐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소리에는 리듬이 있었고, 억양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단어가 있었다.

“…제발… 그만…”

여자의 목소리였다. 헝가리어가 아니었다. 영어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그녀가 알 수 없는 동유럽 언어로 울부짖고 있었다. 아마도 우크라이나어나 루마니아어일 가능성이 높았다.

채은은 배수구에 바짝 엎드려 귀를 댔다. 쇠 격자 사이로 차갑고 습한 공기가 올라왔다. 목소리는 배수관을 타고 내려와 이곳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이 건물의 배수 시스템은 그녀가 예상한 대로 독립된 밀폐 구조가 아니라, 오래된 석조 배수로가 여러 층을 연결하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여기… 누구 있어요?”
채은이 배수구를 향해 속삭였다.

목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놀라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여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영어였다. 간단한 단어뿐이었지만, 최소한의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나야. 위층에 갇혀 있어. 한국인 유학생이야.”
채은이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올레나. 우크라이나. 19살.”
목소리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나 여기 3주… 아니, 한 달? 몰라. 시간 몰라.”

채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크라이나 여자. 아틸라가 언급했던 그 우크라이나 여자는 분명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우크라이나 여성이 같은 지하에 갇혀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자신과 올레나 외에도 더 많은 희생자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올레나, 잘 들어. 나는 채은이야. 우리 둘 다 여기서 나가야 해. 당신 방에는 뭐가 있어?”
채은이 물었다.

“침대… 물… 그게 다야. 문은 항상 잠겨 있고. 가끔 남자들이 와. 무서워.”
올레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올레나, 당신 방에도 배수구가 있지? 나처럼.”
“…응.”
“그럼 우리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 우리 둘 다 혼자가 아니야. 알겠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올레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단단해진 목소리였다.
“알겠어… 혼자 아니야.”

그 순간,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채은은 재빨리 배수구에서 몸을 떼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문 앞에서 멈추었다. 배식구가 열렸다. 페테르의 얼굴이 배식구 너머로 잠깐 보였다.

“아직 안 자?”
페테르가 물었다.

“잠이 안 와요.”
채은은 최대한 무심한 척 대답했다.

“…밥은 먹었어?”
“네.”

짧은 침묵. 페테르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이다가, 이내 배식구를 닫았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채은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페테르라는 남자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아틸라보다는 덜 냉혹한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아직 안 자?’라고 물은 것은 감시자의 확인이 아니라, 어쩌면 아주 작은 인간적 호기심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이 작은 가능성조차도 머릿속에 저장했다. 모든 것은 나중에 쓸모가 있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라고 믿어지는 시간), 채은은 배수구를 통해 올레나와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올레나는 우크라이나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유학을 왔다고 했다. 부다페스트의 무역 회사에서 일하기로 계약했지만,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압수당하고 이곳으로 팔려왔다고 한다.

“3주 동안… 몇 명의 남자들이 왔는지 몰라.”
올레나의 목소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텅 비어 있었다.
“처음엔 나도 저항했어. 그런데… 저항할 때마다 더 아파졌어. 이제는… 그냥 가만히 있어. 그게 더 편해.”

채은은 눈을 감았다. 올레나의 말은 그녀가 걸었던 굴복의 길과 정확히 같았다. 저항을 멈추고, 순응하고, 결국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것. 그녀는 그 길을 걸었고, 그 길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 알고 있었다.

“올레나, 아직 늦지 않았어.”
채은이 간절히 속삭였다.
“나도 한때는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어. 그런데 포기하지 않았어. 아직 내 안에는… 내가 지키고 싶은 게 남아 있어.”

“뭐…?”
“음악. 나는 피아노를 쳤어. 이곳에 오기 전에는. 그 기억만은 아직 내 안에 있어.”

올레나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나도 노래를 불렀어. 교회 성가대에서. 목소리가… 좋다고 다들 그랬어.”

“그럼 그 노래를 기억해. 그 노래가 당신을 지켜줄 거야.”

그 순간, 채은은 깨달았다. 그녀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은 단순히 탈출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다른 희생자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것, 그들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도 하나의 저항이었다.

그날 오후, 채은은 올레나로부터 받은 정보를 자신의 머릿속 지도에 추가했다. 올레나의 방은 지하 3층의 또 다른 구역에 있었고, 그녀의 배수구는 채은의 방과 같은 배수로에 연결되어 있었다. 올레나는 자신이 끌려오던 날, 복도에서 최소한 여섯 개의 철문을 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하 3층에는 최소한 여섯 명 이상의 희생자가 감금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채은은 벽에 손을 대고 건물의 진동을 느꼈다. 지상에서 무거운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 어디선가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그 모든 진동이 벽을 타고 그녀의 손끝에 전달되었다.

그녀는 이 건물의 시간표를 조금씩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저녁 식사 시간, 페테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는 쟁반을 배식구로 밀어 넣은 후, 평소처럼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 배식구 너머로 잠시 서성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왜 저항했어?”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부드러웠다. 아니면, 그렇게 들렸다. 채은은 침대에 앉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것이 진짜 호기심인지, 아니면 이슈트반이 시킨 또 다른 시험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왜 저항했는지… 그게 궁금해요?”
채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여기서 일한 지 1년 됐어. 그동안 저항하는 여자들을 많이 봤지. 처음엔 다들 저항해. 욕하고, 때리고, 도망가려고 하고. 그런데… 며칠 지나면 다들 포기해. 그게 정상이야. 근데 너는… 아직도 안 포기했잖아.”

페테르의 말에는 진짜 혼란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여자가 왜 아직도 무너지지 않았는지. 그런 그의 혼란은 오히려 그의 약점이었다.

“페테르, 당신은 왜 이 일을 해요?”
채은이 역으로 물었다.

“…돈 때문에.”
짧은 대답이었다.

“돈 때문에, 사람들을 가두고 괴롭히는 일을 한다는 거죠?”
“…너한테 그런 말 들을 자격은 없어. 너도 똑같잖아. 돈 때문에 여기 온 거 아니야?”
페테르의 목소리에 방어적인 날이 섰다.

“맞아요. 나도 돈 때문에 여기 왔어요. 하지만 나는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지는 않아요.”
채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요. 이 일을 그만두고, 우리를 도와줄 수도 있어요.”

“미쳤어? 그랬다간 나는 죽어.”
페테르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배식구를 쾅 닫았다.

그러나 그가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채은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문 앞에서 몇 분 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채은은 그가 망설였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 망설임은 작은 균열이었다. 그리고 균열은 언젠가 틈이 될 수 있었다.

밤이 되자, 채은은 다시 배수구를 통해 올레나와 대화했다. 그녀는 올레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페테르라는 경비원에 대해 조심스럽게 탐색해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해. 정보를 모으고, 동료를 찾고,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잡아야 해.”
채은이 말했다.

“기회가… 올까?”
올레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어둡고 무거웠다.

“올 거야. 반드시.”

그때, 복도에서 예상치 못한 소음이 들려왔다. 발소리였다. 여러 명의 발소리가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의 경비원들의 느린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뭔가 긴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찾아! 3층 전체를 뒤져!”
이슈트반의 목소리였다. 그는 분노에 차 있었다. 채은은 지금까지 그렇게 격앙된 이슈트반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문이 하나씩 열리는 소리가 복도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올레나의 방 쪽이었다. 채은은 숨을 죽였다.

“이거 봐! 이 편지…!”
누군가 외쳤다.

채은의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편지. 그녀가 일디코를 통해 보낸 편지였다. 그것이 결국 적발된 것이었다.

곧이어 올레나의 비명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내가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몰라! 제발…!”

“누가 이걸 썼는지 말해! 누가 너한테 이걸 줬어?”
이슈트반의 고함이 울렸다.

올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채은은 자신의 두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올레나는 지금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침묵하고 있었다. 그녀가 쓴 편지 때문에, 올레나가 대신 고통받고 있었다.

그녀는 일어섰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지금 자신이 나서면 모든 것이 끝난다. 올레나는 풀려날지도 모르고, 대신 자신이 더 가혹한 처벌을 받겠지.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그녀의 독방 문이 밖에서 열렸다. 문 앞에 선 것은 이슈트반이었다. 그의 손에는 채은이 쓴 편지가 들려 있었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배신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뒤로 아틸라와 페테르가 서 있었다. 아틸라는 언제나처럼 무표정이었지만, 페테르의 얼굴에는 미묘한 동요가 스쳐 지나갔다.

“채은 씨… 역시 당신이었군요.”
이슈트반은 편지를 채은의 얼굴 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종이에는 그녀의 필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도와주세요. 부다페스트 7구역, 코바치 스파 지하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제 이름은 한채은입니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까지 믿었는데… 지상층 방도 주고, 피아노도 치게 해주고, 좋은 음식도 먹이고… 그런데 당신은 나를 배신했어요.”

“배신이라뇨.”
채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받아쳤다.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속였잖아요. 나는 당신 편이었던 적도 없어요.”

이슈트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당신은 끝까지 저항하는 쪽을 택했어요. 그 선택의 대가가 뭔지, 똑똑히 보여주지.”

그가 손짓하자, 아틸라가 다가와 채은의 팔을 붙잡았다. 페테르는 한 발 물러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술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일디코는 어디 있어요? 그녀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채은이 소리쳤다.

“일디코는 이미 해고됐어요. 그리고 조만간 경찰에 불법 체류자로 신고될 거요. 그女人도 당신 편이었으니까.”
이슈트반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좀 더 특별한 처분이 필요하겠군요. 당신 때문에 오늘 밤 내 VIP 손님들 일정이 다 틀어졌어요. 이걸 어떻게 보상할 생각이에요?”

“나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보상할 생각 없어요.”
채은은 아틸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며 말했다.

“그렇겠지.”
이슈트반은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뀔 거요. 당신을 기다리는 VIP가 한 분 더 있어요. 원래는 다음 주에 오실 분인데, 내가 특별히 오늘 밤으로 일정을 앞당겼어요. 이분은… 어제 장관님보다 훨씬 더 높은 분이야.”

그 말의 의미를 채은은 단번에 이해했다. 그녀의 저항은 더 큰 악몽을 불러왔다. 이슈트반은 그녀를 더 높은 VIP에게 넘겨서, 그녀의 저항심을 완전히 분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올레나 말이에요.”
이슈트반이 덧붙였다.
“당신이 앞으로 얼마나 협조하느냐에 따라, 그 우크라이나 여자에게 가해질 고통의 양이 달라질 거요. 알겠어요?”

채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틸라에게 끌려 복도로 나왔다. 복도 저편에서는 올레나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 너머로, 지상층에서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 건물의 로비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평화로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음악을 들으며 깨달았다. 그녀의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지가 적발되었고, 일디코는 해고되었고, 올레나는 위험에 빠졌고, 자신은 더 가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것도 있었다. 페테르의 균열. 올레나와의 연대. 그리고 이 건물의 빈틈에 대한 정보들.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녀는 아직 한채은이었다.

아틸라가 그녀를 지상층으로 끌고 올라갔다. 복도 끝에는 새로운 VIP 라운지의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안쪽에서는 시가 연기와 위스키 향이 흘러나왔고, 낮선 남자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슈트반이 그 문가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들어와요, 채은 씨.”
그는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내일이면 모든 게 결정될 거요. 당신의 운명도, 올레나의 운명도, 그리고 당신이 여기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운명도. 이제 진짜 마지막 기회예요. 현명하게 선택해요.”

문이 활짝 열렸다. 방 안에는 그녀가 본 적 없는 새로운 VIP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의 눈빛은 뱀처럼 차가웠고, 그의 손에는 이미 위스키 잔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채은을 보며 천천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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